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71
70화. 고맙네“허억, 헉, 허어, 허허……. 교, 교관님. 저, 저는 아주, 아주 멀쩡합니다…….”
홀로 목검을 휘두르던 공손수가 비지땀을 흘리며 나를 돌아봤다.
그 얼굴은 곧 삼도천을 건널 사람처럼 창백했는데, 흑영이 옆에서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정말 괜찮은 것 맞나?”
“후우, 후우……. 예. 정말 괜찮습니다. 다른 교육생들과 차별 없이 훈련시켜 주십시오!”
거 노인네, 의욕은 좋은데…….
다리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후들거리고, 목검을 지팡이 대용으로 바닥에 짚으며 그런 말을 해 봤자 설득력이 하나도 없었다.
슬쩍 옆에 있는 흑영을 보자, 그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미 한계입니다.]흑영의 전음이 아니더라도, 공손수의 상태가 어떤지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공손수 교육생은 잠시 훈련에서 열외해서 쉬도록.”
“예? 아직 더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 아주…… 멀쩡합니다.”
“가서 거울이나 보고 와. 교육생 안색부터 안 멀쩡해.”
내 지시에도 공손수는 쉽게 검을 내려놓지 못했다.
그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정말로 괜찮습니다. 이 정도는 의지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
여기도 좋게 말로 해서는 안 통하겠군.
작게 한숨을 쉰 나는 그에게 성큼 다가서며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그리고 살기를 내뿜으며 으르렁거렸다.
“공손수 교육생. 본 교관의 말이 말 같지 않나?”
내 살기에 공손수가 움찔했고, 흑영이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각각 훈련에 집중하던 헌원강과 위지천도 무슨 일인가 하고 이쪽을 힐끗거렸다.
공손수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아니라…….”
“이 이상은 훈련이 아니라 몸을 학대할 뿐이다. 내 눈에는 자네가 빨리 죽고 싶어 하는 것으로밖에 안 보이는데.”
주름진 뺨이 모멸감으로 파르르 떨렸다.
그 위로 흘러내리는 굵은 땀방울.
부릅뜬 눈은 붉게 충혈돼 있다.
단련되지 않는 늙은 몸뚱이는 진작부터 한계에 도달했다.
그 사실이 너무 분할 것이다.
나는 아까부터 공손수의 부러움 가득한 시선이 헌원강과 위지천을 향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공손수 교육생.”
“……예.”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린 나는 한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몸이 마음대로 안 따라 줘서 분하겠지. 하지만 이게 자네의 현실이다. 그 나이에 기체조만 해 온 몸으로 하루아침에 다른 교육생들과 동등한 훈련을 소화할 수는 없다.”
“……저도 압니다.”
공손수는 십 대의 회복력을 지닌 헌원강, 위지천과는 다르다.
‘게다가 저 둘은 천재지.’
두 소년은 자신의 몸을 아슬아슬한 한계까지 몰아붙일 줄 알았고, 본능적으로 거기서 멈출 줄 알았다.
반면 공손수는 아무리 좋게 봐 줘도 범재다.
비슷한 나이였어도 따라가는 것이 어림도 없는데, 예순다섯의 나이에 저 둘의 훈련을 따라간다는 것은 어불성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려다간 가랑이가 찢어질 뿐이다.
“조급해하지 말고 날 믿도록. 자네에게 맞는 맞춤형 교육으로 반드시 청룡학관에 입관시켜 줄 테니까.”
남궁수 그 자식의 콧대를 콱 눌러 주기 위해서라도 말이지.
“……예. 제가 과욕을 부린 것 같습니다.”
다행히 공손수는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가 천천히 목검을 내려놓았다.
나는 공손수를 장원 한편에 있는 정자로 데려갔다.
“현재 본인의 몸 상태를 가감 없이 솔직하게 보고하도록.”
“허리, 어깨, 무릎, 손목, 발목이 아픕니다.”
“…….”
이건 좀 너무 가감이 없는데.
“검을 오래 쥐었더니 손가락도 아프고, 목도 결리고…… 눈도 좀 침침해진 것 같고……. 허허허허…….”
“…….”
내 굳어가는 표정을 본 공손수가 뒤늦게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 그래도 견딜 만합니다. 고약 좀 붙이고 침 좀 맞으면 금방 낫겠지요. 마침 좋은 약도 가지고 있고…….”
“공손수 교육생. 바닥에 엎드리도록.”
“예?”
얼차려라도 받는 줄 알았는지 공손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흑영도 당황해서 입을 열려고 했다.
“뭉친 근육을 풀어줄 테니 엎드리란 뜻이다.”
“……허허허.”
안도의 한숨을 내쉰 공손수가 엎드렸다.
나는 그의 몸 이곳저곳을 손으로 꾹꾹 누르기 시작했다.
헌원강에게 해 준 것과 달리 손으로 안마를 하자, 공손수의 입에서 가느다란 신음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오, 오오. 오오오…….”
처음에는 잔뜩 긴장해 있던 그는 어느새 눈을 감고 안마를 즐기기 시작했다.
“오오, 좋구나. 그래 거기, 조금만 더 아래……. 흐흐흐. 흐어어어! 이거 극락이 따로 없구나-.”
얼마나 좋은지 눈가에 눈물까지 찔끔 고였다.
‘……내가 교관인지 안마사인지 모르겠군.’
짙은 자괴감을 뒤로하고, 몸 뒤쪽 안마를 끝낸 나는 공손수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뒤집어.”
“허허…….”
몸을 뒤집은 공손수가 감탄한, 그리고 전보다 한결 개운해진 표정으로 나를 올려봤다.
“교관님. 제가 황궁에서도 안마를 많이 받아 봤습니다만…… 거기서도 교관님만큼 안마를 잘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저 진심 가득한 표정……. 거짓 하나 없는 칭찬 같아서 기분이 아주 복잡미묘하다.
“혹시 나중에라도 다른 일을 알아보신다면, 제가 황궁에 안마사로 소개해 드릴까요?”
“……필요 없어.”
내가 혈교에선 악마 교관이었지만, 그때도 예순다섯 먹은 훈련생을 가르쳐 본 적은 없었다.
‘그리고 뭐? 황궁? 보통 노인네가 아닌 줄은 알았지만…….’
무공을 익히지 않았는데도 말 몇 마디로 사람을 압도하던 존재감.
만 냥이라는 거금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겠다고 말하고, 흑영 정도의 고수를 개인 호위로 부릴 수 있는 권력자.
‘이만한 부와 권력을 가지고 왜 무공을 배우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뭐, 굳이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
문득 궁금증이 들었지만, 굳이 캐묻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정해진 기간 내에 공손수를 청룡학관에 입관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나는 공손수의 뭉친 허벅지를 꾹꾹 눌러 주며 물었다.
“훈련은 많이 힘든가?”
“힘듭니다. 그래도 퍽 즐겁습니다.”
공손수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비록 몸은 늙었지만, 그의 눈빛은 어린아이처럼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교관님. 저는 말입니다. 어릴 때 남들보다 몸이 작고 약했습니다. 사나흘에 한 번씩 고뿔을 달고 살았지요.”
확실히 공손수는 약한 체질을 타고났다.
몸에 남들보다 탁기가 많이 쌓인 것도 그런 이유였다.
“다행히도 머리가 썩 총명한 편이라 공부는 잘했지요. 없는 살림에 홀어머니가 저를 학관에 보냈습니다. 매일 코피를 쏟으며 공부를 했고…… 결국 입신양명하여 부와 권력을 누릴 만큼 누렸습니다. 홀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신 후였습니다만……. 허허. 몇 년만 더 사시지.”
노인의 쓸쓸한 눈이 과거를 더듬고 있었다.
“그런데 제가 어렸던 시절에 말이지요. 항상 부러웠습니다.”
“……부럽다니?”
“책보에 무거운 책을 가득 넣고 학관으로 가는 길에 보았던 아이들. 허리춤에 검을 차고, 하얀 무복에 이마에 영웅건을 매고 무관으로 들어가던 제 또래 소년들 말입니다.”
또래보다 작고 약하던 소년은, 키가 크고 건강한 무림의 소년들을 항상 동경했다.
“……부러워서 힐끔거리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습니다. 허허. 한 번은 재수가 없었는지 심하게 얻어맞은 적도 있지요. 기분 나쁘게 쳐다봤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흑영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공손수는 그것도 다 옛 추억이라며 껄껄 웃었다.
“제 커다란 책보에는 항상 무협지가 한 권씩 들어 있었습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읽었지요. 한 자루 검을 들고 천하를 유랑하는 검객. 사파의 수많은 마두를 베고, 홀로 혈교로 쳐들어가 끝내 혈마의 심장에 칼을 꽂아 넣었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몰라주고 쓸쓸하게 서서 죽어가는, 이름 모를 협객의 이야기 같은 것 말입니다.”
“완전 삼류 소설이네.”
나도 모르게 나온 퉁명스러운 혼잣말에, 공손수가 멋쩍은 듯이 웃었다.
“허허. 어린 시절엔 누구나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기 마련 아닙니까. 실제로 혈교가 갑자기 약해진 이유에 대해서 말이 많기도 했지요. 그때가 제가 어렸던 시절이라, 그 이유를 상상해서 써낸 소설이 많았습니다.”
“……그건 또 처음 듣는 얘기군.”
“허허. 옛날이야기니까요.”
옛날이야기라…….
본인이 혈교의 마두들을 키우던 교관에게 무공을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공손수는 무슨 표정을 지을까.
그리고 혈교가 망하게 된 진짜 이유를 알게 된다면…….
나는 잠시 그런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 의미도 없는 가정이니까.
“다 늙어서 고향에 돌아와 보니 종종 그 시절이 떠오르더군요. 허허. 주책이지요. 예순이 넘어서 무관에 다니겠다니……. 다들 절 보고 노망이 났다고 할 겁니다.”
“…….”
나는 아무 말 않고 공손수의 말을 들어주었다.
몸을 일으킨 그가 빙그레 웃으며 나를 보았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이렇게 무공을 배우는 것이 즐거운데요.”
“…….”
“비록 몸뚱이는 예순다섯이지만, 마치 열다섯으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입니다.”
공손수가 맑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봤다.
조금 짓궂으면서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미소가 그의 입가에 번졌다.
“고맙네.”
“음?”
계속 내게 존대를 하던 그의 말투가 갑자기 바뀌었다.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해 줘서 고맙네.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던 늙은이의 삶에 의미를 만들어 주어서 고마우이.”
“무슨…….”
“내 미리 약속하지. 입관 시험에서 떨어지더라도 나는 자네를 원망하지 않을 게야. 돈도 모두 지불할 것이네. 나는 이미 자네에게 큰 은혜를 입었으니.”
“…….”
예상치 못한 공손수의 호의에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곧 억지로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본 교관에겐 존댓말을 하라고 했을 텐데.”
“허허. 알겠습니다. 앞으로는 조심하겠습니다, 교관님!”
능구렁이 같은 노인네 같으니.
그 앞에서 당황한 속마음이 들킨 것 같아 괜히 민망했다.
그런데…….
“니들은 또 뭔데?”
나는 어느새 우리 곁으로 모여든 헌원강과 위지천을 바라봤다.
공손수의 이야기를 다 들었는지, 둘 다 표정이 가관이었다.
위지천이 울먹울먹하는 표정으로 공손수의 손을 꼭 잡았다.
“할아버지……. 반드시 합격하실 수 있도록 제가 옆에서 도와드릴게요!”
“허허. 고맙구나. 꼭 함께 합격하자꾸나.”
그 옆에서 헌원강이 자신의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말했다.
“할아범. 앞으로 궁금한 거 있으면 나한테 물어봐. 청룡학관 선배로서 조언 정도는 해 줄 테니까.”
“허허. 고맙소, 선배.”
한숨을 푹 내쉰 나는 두 녀석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가서 훈련이나 해, 이것들아. 지들 앞가림도 못 하는 것들이.”
“너무해요…….”
“냉혈한 같으니! 이런 얘길 듣고 어떻게 가만히 있어!”
“허허. 애들에게 너무 나무라지 마시게.”
“본 교관에겐 존댓말 하라니까!”
“허허허허!”
한참 교육생들과 투닥투닥하다가, 어느새 피식피식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어색함에 입가를 매만졌다.
하지만 그 어색함이 싫지 않았다.
‘혈교의 악마 교관은 무슨…….’
아무래도, 그 시절로 완전히 돌아가는 것은 이제 불가능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