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72
71화. 오늘은 휴가다한 달.
누군가에겐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가 버렸다고 느낄 만큼 짧고, 누군가에겐 끔찍하게 길었을 시간.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했지만, 그 시간 동안 얻은 결과는 결코 공평하지 않았다.
“이곳이 청룡학관이구나……!”
공손수는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커다란 현판을 올려다봤다.
청룡학관(靑龍學館).
용사비등한 필체가 마치 살아서 꿈틀거리는 것만 같았다.
감격을 주체하지 못한 공손수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기어이 내가 이곳까지 오다니…….”
“참나. 누가 들으면 벌써 합격한 줄 알겠네. 겨우 입관 신청하러 왔으면서 호들갑은.”
헌원강이 옆에서 투덜거렸지만, 그 정도로는 공손수가 느끼는 벅찬 감동에 초를 칠 수 없었다.
“허허허!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나!”
정말로 열심히 했다.
질긴 무명으로 만든 무복 곳곳이 해지고 색은 잿빛으로 바랠 정도로, 손에 굳은살이 생기고 그 굳은살이 찢어져 그 위에 다시 굳은살이 생길 정도로 열심히 했다.
그리고 이 앞에 섰으니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줄이 정말 기네요.”
위지천이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바라보며 말했다. 소년은 한 달 전과 비교하면 몸에 근육이 꽤 붙은 모습이었다.
“작년 재작년은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올해는 좀 많네.”
반대로 헌원강은 한 달 동안 살이 조금 빠지고 턱선이 날렵해졌다. 그러나 몸은 더 단단해진 느낌이었다.
새벽 훈련을 끝내자마자 바로 출발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 앞에는 대기 줄이 이미 길게 늘어서 있었다.
“허허허! 과연 무림 오대학관이란 명성에 걸맞구나! 헌앙한 청년들이 아주 많아!”
‘이 할아범은 오대학관 중에서 청룡학관이 제일 처진다는 건 모르나? 아니면 상관없는 건가…….’
헌원강은 문득 궁금했지만, 그걸 이 자리에서 물어볼 정도로 눈치가 없지는 않았다.
“허허허허!”
공손수는 굉장히 들떠 있었다.
수시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별것 아닌 것에도 감탄했다. 마치 부모 손을 잡고 축제에 놀러 나온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주변에서 사람들이 힐긋거렸으나 공손수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자네들, 나이가 들면 좋은 점이 뭔지 아나? 바로 얼굴 가죽이 두꺼워진다는 거야!”
“우린 아직 안 두꺼우니까 그만해요 좀…….”
“할아버지…….”
쏟아지는 시선에 얼굴이 붉어진 두 사람의 부탁에, 공손수는 그들의 등을 두드리고 껄껄 웃었다.
굳은살이 가득한 손을 내려다본 공손수는 빙그레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시간이 참 빠르구나. 입관 시험까지 이제 사흘밖에 남지 않았다니.”
사흘 후, 드디어 청룡학관 입관 시험이 시작된다.
서류를 통한 입관 신청은 한 달 전부터 받았지만, 본인이 직접 와서 등록하는 것은 오늘부터였다.
사흘 안에 등록까지 완료해야, 사흘 후 시작될 입관 시험의 참가 자격을 얻는다.
오늘 세 사람이 이곳에 온 이유도 입관 신청 등록을 하기 위해서였다.
웅성웅성.
며칠 전부터 도시 전체가 전국에서 몰려든 입관 시험 지원자들로 붐볐다.
“입관 시험 지원자들은 신분을 증명할 호패와 추천서를 미리미리 준비해 두시오!”
위사가 정문 앞에서 외쳤다.
청룡학관 입관 시험을 치르려면 신분에 이상이 없음을 증명해야 했고, 무관이나 문파, 세가, 혹은 믿을 만한 보증인으로부터 추천서도 받아야 했다.
“흥. 말은 사파의 간자를 솎아내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요즘 제대로 된 사파가 어디 있다고. 그냥 처음부터 적당히 거르겠다 이거지.”
냉소적인 헌원강의 말에 위지천은 속으로 뜨끔했다.
그는 사파의 간자는 아니었지만, 과거 혈교의 기둥 중 하나였던 팔대가문 출신이었으니까
‘혈교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망했지만…….’
정체가 탄로 날 수도 있다는데, 걱정이 조금도 안 된다면 거짓말이다.
예전에는 평생 조용히 신분을 숨기고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위지천을 이 도시로 데려와 새 신분을 준 백수룡, 그리고 할아버지인 위지열은 손자가 청룡학관에 입관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천아. 앞으로 혈교는 잊어라. 너는 이제 정파의 무인으로 살아가거라.
지난밤, 위지 가문의 마지막 가주 위지열은 손자와 마주 앉아 그렇게 말했다.
-평생 숨어다니는 건 불가능해. 차라리 섞여들어. 청룡학관에 수석으로 입학하고 수석으로 졸업해. 그렇게 누구도 널 의심하지 못하게 만들어.
백수룡도 비슷한 조언을 했다.
그는 현역 청룡학관 강사라는 신분을 이용해 위지천에게 추천서까지 써 주었다.
‘선생님에겐 평생을 갚아도 다 못 갚을 은혜를 입었어.’
위지천은 품 안에 넣어둔 추천서를 손바닥으로 꾹 눌렀다.
자신을 믿어 준 두 사람을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내 실력으로 수석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수석은 꿈도 꾸지 않았다.
위지천은 그저 합격만 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초조한 표정으로 조금씩 줄어드는 줄을 바라봤다.
“선생님은 안에 계시겠죠? 아까 먼저 출근하셨으니…….”
“아마 들어가도 만나긴 힘들걸. 생활지도부 선생들은 꽤 바쁘거든. 요즘엔 입관 시험 준비하느라 더 그럴 거고.”
옆에 있던 헌원강이 조금 우쭐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여전히 대련만 하면 얻어맞는 것이 일상인지라, 오늘처럼 위지천에게 형이자 선배로서 위신을 세울 기회는 좀처럼 없었다.
“긴장들 풀어. 별것 아니니까.”
헌원강이 오늘따라 거만하게 어깨에 힘이 들어간 이유였다.
사실 재학생은 기다리지 않고 바로 청룡학관 안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굳이 함께 줄을 서서 이런저런 설명을 해 주었다.
“궁금한 거 있으면 편하게 나한테 다 물어보라고.”
“네, 선배님!”
“허허. 선배가 있어 든든하구먼.”
조금씩 대기 줄이 줄어들면서 위지천 일행의 차례 또한 점점 가까워졌다.
그때 청룡학관 안쪽이 조금 소란스러워지더니, 안에서 강사로 보이는 한 사내가 걸어 나왔다.
사내는 내공을 담아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외쳤다.
“현재 입관 신청자들이 많이 몰려 청룡학관 내부가 매우 혼잡합니다! 지금부터는 입관 신청 당사자 외에 가족이나 지인의 청룡학관 출입을 금지하겠습니다!”
곧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갑자기 이러는 법이 어디 있소!”
“기껏 멀리서 왔는데!”
자식과 함께 온 부모들, 친구를 응원하기 위해(겸사겸사 청룡학관을 구경하기 위해) 온 사람들이 그런 법이 어디 있냐며 투덜댔다.
그러나 청룡학관의 방침은 바뀌지 않았다.
정문에서 입관 지원 신청서와 추천서를 확인한 후 지원자들만 안으로 들여보냈다.
난감하기는 위지천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허허. 이러면 흑영 자네는 밖에서 기다려야겠군.”
“……어르신.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동안 말 한마디 없이 조용히 서 있던 흑영이 고개를 저었다.
공손수가 어디를 가더라도 함께하며,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의 신변을 지키는 것이 그녀의 임무였다.
“제가 어르신 곁에 없으면,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에 대처할 수 없습니다.”
“청룡학관 규정이 그렇다지 않나. 그리고 저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생긴다고.”
“혹시라도 모를…….”
암살 시도.
흑영은 차마 그 말을 꺼내지 못했다. 물론 공손수는 충분히 알아들었다.
그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걱정도 팔자로군. 그럴 일이 있으려면 진즉에 있었겠지. 그리고 내 옆에 이토록 든든한 동기들이 있지 않나.”
공손수가 양옆으로 손을 뻗어 위지천과 헌원강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헌원강이 자기는 동기가 아니라 선배라며 툴툴댔다.
‘저 둘이 제법 강하긴 하지만…….’
그래도 흑영은 안심할 수 없었다. 그녀는 공손수에게만 전음을 보냈다.
[정 안 된다면 은신술을 쓰고 따라가겠습니다.]“하지 말게.”
공손수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어서 그가 전음을 보냈다.
[저 안에는 무림의 고수들이 여럿 있을 게야. 그들의 이목을 모두 속일 자신이 있나?] [……해 보겠습니다.]흑영이 익힌 무공의 대부분은 잠행, 은신, 암살 등 살수의 무공에 특화돼 있었다.
그리고 흑영을 가르친 교관은 그녀가 자신이 가르친 훈련생 중 최고라고 단언했다.
[최대한 조심해서 따라가겠습니다. 중심부로만 가지 않는다면…….] [불가.]공손수가 고개를 저으며 흑영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만약에라도 들키면 많이 곤란해질 게야.]살수의 무공을 익힌 자가 청룡학관에 몰래 숨어든다?
그 사실이 발각되는 순간, 흑영과 공손수는 해명을 위해서라도 자신들의 신분을 밝혀야 한다.
그리고 공손수의 신분이 밝혀진다면…… 청룡학관의 입관 시험을 보는 것도 불가능했다.
입관 시험이 문제가 아니라, 청룡학관이 뒤집힐 것이다.
[나는 아무런 잡음 없이, 순수하게 내 능력으로 시험을 보고 싶네.]“…….”
흑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백룡장에서 무공을 배우기 시작한 이후, 공손수의 변화는 보면서도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새벽 찬바람만 쐬어도 으슬으슬 떨던 몸은 알통 구보를 할 정도로 건강해졌고, 매일 달여 마시던 탕약도 더는 마시지 않았다.
무엇보다 놀라운 변화는 그의 얼굴에 넘치는 생기였다.
매일 익숙하지 않은 근육통에 힘들어하면서도, 훈련이 끝나고 난 뒤 공손수의 얼굴에는 항상 만족스러운 미소가 맺혀 있었다.
“허허허. 내 평생 이렇게 하루하루가 충만한 적이 없구나.”
흑영도 그런 모습이 싫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받은 임무는 목숨을 바쳐서라도 호위 대상을 지키는 것이었다.
평생 명령에 복종하고 임무에 충실한 삶을 살아온 그녀였기에, 어떻게든 방법을 찾고자 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끝에, 흑영은 방법을 하나 생각해냈다.
[만약 제가 발각되더라도 어르신에 대해서는 끝까지 함구하겠습니다. 고문에 대한 훈련도 충분히 되어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필요하다면 혀를 끊어…….]흑영은 말을 멈췄다.
이곳에 오는 내내 웃고 있던 공손수의 표정이 무시무시하게 일그러진 것이다.
지난 몇 년간 호위를 해왔지만, 저만큼 화가 난 얼굴은 처음이었다.
“날 화나게 할 셈인가.”
전음이 아닌 육성.
분노로 파르르 떨리는 그 목소리에, 흑영도 당황해서 육성으로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그런 의미가 아니라…….”
공손수가 성큼 흑영에게 걸어와 손을 휙 뻗었다.
흑영은 뺨을 맞을 각오를 하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공손수의 분노가 풀린다면 뺨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공손수는 흑영의 뺨을 때리지 않았다.
[흑영.]대신 그녀의 어깨를 붙잡은 그는 그녀와 얼굴을 마주하며 전음을 보냈다.
[네가 나를 어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너를 딸처럼 생각한다.]“…….”
[그런 너에게 그런 말을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들 것 같으냐?]“죄송……합니다.”
흑영은 이 순간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그런 훈련은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직이 한숨을 내쉰 공손수는 그녀의 어깨를 토닥인 후에 말했다.
“정 네 마음이 불편하다면 명령을 내리마. 오늘 하루는 휴가다.”
“예……?”
흑영의 눈동자가 당황으로 물들어 크게 흔들렸다.
공손수는 그런 모습이 재미있다는 듯 껄껄 웃었다.
“가서 먹고 싶은 것도 마음껏 먹고, 옷과 장신구도 사고, 가 보고 싶었던 곳이 있으면 실컷 놀다 오너라.”
“어, 어르신?”
“다시 말하지만 명령이다. 어긴다면 너를 내 호위에서 해임할 것이야.”
“…….”
공손수의 단호한 눈빛에, 흑영은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휴가라니.
평소 같았으면 농담으로 넘길 수 있을 텐데, 지금 공손수의 눈빛은 감히 거절해서는 안 되는 종류의 것이었다.
결국, 그녀는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우리는 입관 신청 등록을 하고 저녁까지 돌아갈 테니, 너도 마음껏 휴가를 즐기다 오너라.”
“……예.”
“지금 바로 가거라.”
공손수에게 등을 떠밀린 흑영은, 한동안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시장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 * *
“……아까 흑영 누이한테 뭐라고 했길래 그래요?”
헌원강은 별로 궁금하지 않다는 투로 물었다.
하지만 아까부터 흑영의 뒷모습을 힐끗거리는 것이, 둘이 전음으로 나눈 대화가 많이 궁금한 모양이었다.
“다 듣지 않았나. 휴가를 줄 테니 놀다 오라고 했지.”
“무슨 휴가를 그런 식으로 줘요. 휴가받은 사람은 표정이 꼭 버림받은 강아지 같고…….”
“선배. 세상엔 온갖 사연을 가진 사람이 있는 법이라네.”
공손수는 그 이상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도 흑영의 인생을 다 알지는 못한다.
잘 모르는 것을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한다는 것도 오만이자 무례일 것이다.
“쩝…….”
헌원강도 더 자세히 묻지는 않았다. 그냥 습관처럼 투덜거렸을 뿐이다.
“하여튼 저쪽도 특이한 누이야. 남들 같으면 한참 연애도 하고 그럴 나이에 노인네 호위무사 같은 일이나 하고…….”
“……원강 선배. 혹시 흑영에게 관심이 있나?”
“예? 관심은 무슨…….”
“다행이군. 내겐 딸 같은 아이라네.”
“……잠깐. 그 안도의 한숨 무슨 의미예요?”
“허허허…….”
“아니 누가 관심이라도 있대? 이 영감탱이가…….”
“허허허허!”
“관심 없다니까! 야, 위지천! 너는 또 왜 음흉하게 웃는데!”
“선배님. 그런 취향이셨군요…….”
두 사람의 놀림에 헌원강이 발끈하려는 순간, 앞쪽의 대기 줄이 사라지며 정문의 위사가 소리쳤다.
“다음 지원자들 들어오시오!”
세 사람이 허겁지겁 서류를 꺼내며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맞는 것 같지?”
“…….”
세 사람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