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75
74화. 내가 이긴 것 같구나‘이건 뭔가 잘못됐어.’
조막생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복부의 통증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이런 시발…….’
처음에는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었다.
주제도 모르는 늙은이와 위지천이라는 애송이를 대련장으로 데려온 후, 수많은 사람이 보이는 곳에서 오줌을 지리게 만들 생각이었다.
구경꾼을 모으는 것은 어렵지 않았고, 어린애들 사이에 끼고 싶어 하는 늙은이를 비무대 위로 올라오도록 유도하는 건 더 쉬웠다.
“어르신. 대련은 안전하게 목검으로 하죠. 입관 시험 전에 다치기라도 하면 안 되니까요.”
“허허. 좋네. 역시 안전이 제일이지.”
이 냄새 나는 늙은이에게 목검으로도 뼈를 부러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직접 알려 줄 생각에, 조막생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두 사람이 비무대 위에 마주 섰다.
조막생은 더 압도적인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제안했다.
“괜찮으시면 삼 초식을 양보해 드릴까요?”
“허허. 그럼 내 사양하지 않고 가겠네.”
공손수는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린 보법으로 다가왔다.
방심을 안 하고 싶어도 안 할 수가 없었다.
저 힘없는 공격을 어떻게 막을지 머릿속에 방법이 다섯 개쯤 떠올렸을 때쯤, 검이 가까이 다가왔다.
‘이딴 건 눈 감고도 막겠다.’
조막생은 여유 있게 검을 들어 올렸다.
그런데 그 순간, 상대의 검이 갑자기 빨라졌다.
“흡!”
평소 같았으면 그 정도 속도에 당황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느리게 움직이던 검이 갑자기 빨라지면, 상대적으로 두 배는 더 빠르게 느껴지기 마련이었다.
퍽!
허겁지겁 검을 들어 올린 탓에 제대로 방어가 되지 못했다.
삼 초는 무슨.
조막생은 간신히 상대의 공격을 쳐낸 후, 습관적으로 곧바로 반격을 시도했다.
휘익!
몸을 뒤로 젖혀 공격을 피한 공손수가 뒤로 몇 걸음 물러나며 웃었다.
“허어. 삼 초를 양보한다더니……. 좋은 공부가 되었네. 거짓말을 능숙하게 하는 것도 무공이로군.”
“아니…….”
뒤늦게 자신의 추태를 깨달은 조막생의 얼굴이 붉어졌다.
‘빌어먹을!’
사방에서 많은 눈이 지켜보고 있었다.
동기들은 물론이고 선배, 간혹 강사들까지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거짓말쟁이로 몰릴 수는 없었다.
“……방금은 실수였습니다. 이 초, 아니 다시 삼 초를 양보하겠습니다.”
“허어. 이번엔 믿어도 될지…….”
‘빌어먹을 늙은이가!’
공손수는 영 못 믿겠다는 표정이었고, 조막생은 부글부글 끓는 속을 가라앉히며 삼 초를 양보하겠다는 약속을 몇 번이나 거듭했다.
“알겠네. 속는 셈 치고 믿어 보지.”
조막생의 속을 뒤집어 놓은 공손수가 다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삼 초를 양보한다는 것은 세 번의 공격을 반격하지 않고 막기만 한다는 뜻.
하지만 공손수는 조막생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했다.
삼 초를 막는 동안 조막생의 손발이 꼬였고, 그 틈에 안으로 파고든 공손수가 복부에 일장을 날렸다.
퍼엉!
“커헉!”
복부에 일장을 얻어맞은 조막생이 뒤로 주르륵 밀려나 허리를 꺾었다.
“이런. 미안하네. 설마 그것도 못 막을 줄은 모르고…….”
여기까지가 두 사람이 비무대 위로 올라와 벌어진 일련의 사건이었다.
“일어날 수 있겠나?”
“큭……. 물론입니다.”
조막생은 이어질 공격에 대비해 곧바로 상체를 세웠지만, 공손수는 더 이상 공격할 마음이 없다는 듯 가만히 서 있었다.
“자네가 원한다면 무승부로 해 주겠네.”
한순간에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말.
그의 표정, 말투, 행동 하나하나가 조막생의 복장을 뒤집어놓았다.
“무승부?”
비무대 주위의 구경꾼만 수십, 아니 점점 늘어 이젠 백이 넘었다.
놀란 표정, 흥미롭다는 표정, 그리고 비웃음이 담긴 표정들이 보인다.
그중에서 조막생이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은, 자신을 벌레 보듯 바라보는 진진과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는 듯 감정이 없는 남궁석의 얼굴이었다.
“빌어먹을……!”
조막생의 눈에 살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그가 퉤, 하고 바닥에 침을 뱉으며 말했다.
“벌써 이긴 것처럼 말하지 마시지. 난 아직 시작도 안 했으니까.”
“허허. 내 자네를 걱정해서 한 말이었는데…….”
“입 닥치고 덤비기나 해!”
버럭 소리친 조막생이 전력으로 덤벼들었다.
더 이상의 방심은 없다.
지금까지 당한 것을 몇 배로 갚아 줄 것이다.
‘늙은이! 뼈마디를 모조리 부숴 주마!’
목검에 실린 힘이 공기를 찢었다.
살초에 가까운 공격에 구경꾼 중 일부가 눈살을 찌푸렸다.
“저건 좀…….”
“말려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아직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상대의 공격에 맞서는 공손수의 표정이 놀랍도록 차분했기 때문이다.
“허허. 백 선생의 말이 맞구나.”
“으아아아!”
멧돼지처럼 달려드는 조막생을 보며, 공손수는 백수룡이 해 준 조언을 머릿속으로 떠올리고 있었다.
-공손수 교육생. 스스로의 장점이 뭐라고 생각하나?
-나이에 비해 뛰어난 근골? 혹은 가공할 오성?
실없는 농담에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던 얼굴이 떠올랐다.
-우선 침착함. 산전수전을 다 겪어서 그런지, 교육생은 어지간한 위협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더군.
휘익!
백수룡은 기습적으로 검을 휘둘러 공손수의 목에 가져다 댔다.
공손수는 놀라기는커녕, 한참 늦었지만 막으려고 반응했다.
-조금 전에도 안 놀라고 대응했지?
-……그럼 뭘 하나. 반응이 늦어서 공격을 다 허용해 버렸는데.
-그건 상대가 너무 압도적이라 그런 거다.
-잘난 척은…….
-두 번째 장점은 심리전이다. 교육생은 다른 지원자들에 비해 늙었고, 무공 입문도 늦어서, 딱 봐도 몸이 별 볼 일 없어 보인다.
-……흑영아. 지금 이 녀석이 나를 모욕하는 게지?
-벨까요, 어르신?
-……둘 다 끝까지 듣도록. 상대는 자연스럽게 교육생을 무시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이때 말로 살살 긁어 주면 얼마든지 쉽게 요리할 수 있다, 이거야. 교육생이 그런 건 잘하잖아?
-허…….
사악하게 웃으며 말하던 그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
덕분에 지금 이렇게 잘 써먹고 있지만 말이다.
“하아압!”
조막생이 크게 기합을 지르며 휘두른 검을 전부 피하고, 공손수는 느물거리며 웃었다.
“허허. 내 늙었어도 귀는 먹지 않았으니 그렇게 소리 지르지 않아도 된단다.”
놀리는 것이 다분한 공손수의 말에 얼굴이 새빨개진 조막생이 소리쳤다.
“시끄러워!”
“음? 시끄럽긴 네가 더 시끄럽지 않느냐?”
“빌어먹을 늙은이가!”
“허허허.”
평생을 그 복마전 같은 황궁에서 혀에 칼을 감춘 자들과도 싸웠다.
저런 핏덩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가쯤은,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싹수가 아주 노란 녀석이로다.’
전형적인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성격.
처음 만난 이들의 수준을 가늠해 보고, 자신보다 약하다고 판단되면 숨겼던 이빨을 드러내는 교활함.
공손수가 가장 싫어하는 종류의 인간이었다.
-백선생. 혹시 세 번째 장점도 있나?
-이건 두 번째와 이어지는 건데……. 심리전에서 상대에 앞서면 자연스럽게 수 싸움에서 유리해진다.
-요컨대 설전으로 상대를 흥분시켜서 실수를 유발하게 하라는 게지?
-찰떡같이 알아듣는군. 훌륭하다, 교육생. 왜 전음을 익혀야 하는지 알겠지?
백수룡.
그 젊은 무공 과외 선생은 가끔 보면 한 오십 먹은 능구렁이처럼 보일 때가 있다.
-육성으로 하든, 전음을 보내든. 상대를 도발해서 실수하게 만들어. 그리고 그 빈틈을 놓치지 말고 끝장내는 거다.
-허……. 내 소싯적에 무협지를 많이 봐서 아는데. 보통 사파 놈들이 그런 짓을 많이 하던데 말이야.
-본 교관은 그런 면에서는 생각의 틀이 매우 자유로운 편이거든. 흐흐흐.
잘생긴 얼굴만 아니었다면, 분명 사파의 마두라고 생각할 법한 미소를 지으며 백수룡이 말했다.
-잊지 말도록. 차분함. 심리전. 수 싸움. 이것들만 있으면 청룡학관의 핏덩이들은 얼마든지 가지고 놀 수 있다는 걸.
그 얼굴을 떠올린 공손수는 그만 헛웃음을 터트렸다.
“솔직히 반신반의했건만…… 선생 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군.”
“젠장! 아까부터 중얼중얼 뭐라고 떠드는 거야!!”
“아이야. 네게 한 말이 아니란다.”
공손수는 부드럽게 움직여 조막생의 공격을 피했다.
상대의 공격은 빠르고 거칠었으나, 그만큼 동작이 크고 빈틈이 많았다.
‘뻔히 보이는구나.’
흥분한 조막생이 어디를 노리는지, 어떤 생각으로 보법을 밟는지, 초식을 어떻게 이어 나갈 것인지 너무나도 선명하게 읽혔다.
‘허허. 개안을 한 기분이야.’
공손수의 검이 부드럽게 호를 그렸다.
그 모습을 본 구경꾼들이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떠들었다.
“무당의 무공?”
“아니, 무당은 아니야.”
“도가의 무공 같긴 한데…….”
“……유능제강의 묘리가 제대로 담겨 있어.”
공손수가 펼치는 무공은 그들이 추측한 것 중 그 어느 것도 아니었다.
다만 한 달 내내 백수룡이 강조한 무공의 묘리가 담겨 있을 뿐.
유능제강(柔能制剛).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제압한다.
말은 쉽지만, 실제로 행하기 위해선 큰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보다 강한 힘을 거스르지 않고 받아들일 용기.
‘이, 이게 뭐야?’
검끼리 부딪친 순간, 조막생은 자신의 검이 깊은 늪에 빠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공손수의 검은 빠르지도, 강하지도 않았다.
그 대신 한없이 부드러웠고, 자신의 공격을 옭아매며 조금씩 전진해 왔다.
“크윽……!”
조막생은 자신이 뒷걸음질 치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분명 강하지 않는데.
얼마든지 이길 수 있는 상대인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화가 솟구쳤다.
“젠장! 별것도 아닌 늙은이가!”
흥분한 조막생이 검에 내공을 잔뜩 불어넣었다.
우우웅! 하고 목검이 부르르 떨었다.
힘으로 단숨에 상대를 떨쳐 낸 후, 최강의 초식으로 끝장을 내 버릴 생각이었다.
“끝났군.”
남궁석과 진진은 옆에서 들려온 싸늘한 목소리에 몸을 움찔 떨었다.
대체 언제 왔는지, 남궁수가 그들 곁에서 비무를 관전하고 있었다.
“스승님…….”
“인사는 됐다. 놓치지 말고 끝까지 봐라. 자기 주제도 모르고, 상대의 능력도 파악하지 못한 자가 어떻게 되는지 보고 반면교사로 삼거라.”
“……예.”
본인이 가르친 제자에 대한 평가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신랄한 평가였다.
“하아아압!”
기합을 터트린 조막생의 공격은 또래 중 손에 꼽을 정도로 빠르고 강맹했다.
하지만 공손수는 이미 그 궤적을 읽고 있었다.
휘익!
회심의 일격이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그 빈틈으로 부드럽게 파고든 공손수의 검이 조막생의 손목과 허벅지를 때렸다.
따악! 딱!
두 번의 타격음.
그리 강하지 않은 힘이었지만, 조막생의 검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무릎을 꿇게 하기엔 충분했다.
“내가 이긴 것 같구나.”
“크윽…….”
목검이 바닥에 무릎을 꿇은 조막생의 턱 끝에 닿아 있었다.
공손수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아이야. 네가 사람들 앞에서 내게 망신을 주려고 했다는 것을 안다.”
“나, 나는…….”
“허나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단다. 계략을 꾸미려면 얼마든지 반대로 당할 수 있음도 알아야 한다.”
“큭…….”
조막생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비무에서 졌을 뿐만 아니라, 상대에게 자신의 계획까지 읽혔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웠다.
“앞으로 그런 못된 버릇은 고치도록 해라.”
말 몇 마디로 사람이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을 알기에, 공손수는 짧게 훈계를 내린 후 몸을 돌렸다.
‘후우. 피곤하구나.’
온몸의 긴장이 풀리며 급격하게 피로가 몰려왔다.
그래도 기분은 더할 나위 없이 상쾌했다.
백룡장으로 돌아가면 흑영에게 이겼다면서 실컷 자랑하겠다고 다짐할 때였다.
““우와아아아아!””
사방에서 쏟아지는 함성과 박수에 공손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으응?”
그는 비로소 비무대 주변을 꽉 채운 관중들을 보았다.
“대단해요, 어르신!”
“정말로 멋졌습니다!”
“아까 들었어. 저분이 역대 최고령 지원자라던데?”
“놀랍군. 저 나이에 그런 도전을 할 수 있다니…….”
어린 시절, 그가 동경했던 소년과 소녀들이 자신에게 진심 어린 환호와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허허, 허허허허…….”
공손수는 비무대 위에 한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쾌감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주책맞게 눈물도 조금 흘러나오려고 했다.
“어르신!”
저쪽에서 손을 흔드는 위지천의 모습도 보였다. 착한 녀석. 자기가 이긴 것보다 더 기쁜지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허허허……. 고맙소이다. 모두 고맙소이다!”
공손수가 사람들을 향해 포권을 취하며 인사를 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사고가 벌어진 것은 그때였다.
“으아아아아아!”
흰자위가 시뻘겋게 물든 조막생이, 괴성을 지르며 등을 보인 공손수에게 덤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