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79
78화. 만 냥? 어림도 없지뒤로 물러났던 나는 폭발의 현장으로 돌아가, 한때 조막생이었던 존재의 흔적을 살폈다.
“미친…….”
폭발이 일어난 자리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살점과 뼛조각, 핏물 외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것이 탈혼대법(奪魂大法)이다.
어린아이의 머릿속에 마공을 주입해, 성장하면서 서서히 마인으로 각성하게 만드는 극악한 사술.
그것으로도 모자라 죽기 직전에 마지막 선천지기를 쥐어짜 폭사하도록 만들었으니, 웬만한 고수도 미리 알지 못하면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장로님. 탈혼마인은 어떻게 통제합니까?
-클클. 알고 싶으냐?
비죽 웃으며 나를 바라보던 마뇌의 얼굴.
그 얼굴을 짓이기고 싶었지만, 당시의 나는 무뚝뚝한 표정 속에 살기를 숨길 수밖에 없었다.
-……통제할 방법이 없으면 너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마기가 골수까지 파고든 마인은 적아를 가리지 않습니다.
-걱정할 것 없다. 지존께서 모든 마를 다스리시니, 탈혼마인들 또한 지존 앞에 무릎을 꿇고 경배할 것이다.
마뇌가 말하는 지존이란 혈마신교의 교주인 혈마를 뜻했다.
아마도 혈마에게 탈혼마인을 제압할 방법이 있다는 뜻이었겠지.
-하지만 항상 지존께서 나서실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전쟁이 벌어지면 일선 지휘관들에게도 마인들을 통제 수단이 필요할…….
-오늘따라 혀가 길구나. 그것이 왜 그리 궁금하더냐? 무림맹에 정보를 팔아넘기기라도 하려고?
광기가 일렁이는 마뇌의 눈과 시선이 마주친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클클. 농담이었다. 그래도 괜한 호기심으로 스스로 명을 단축하지 말거라. 너는 사대악인을 완성하는 데만 신경 쓰면 될 일이다.
-예.
-자, 이 안에서 근골이 있는 아이들을 추려내 보거라. 몇몇은 실험 삼아 내가 직접 가르칠 것이야.
-…….
그것은 전생에 마뇌와 관련된 기억 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기억 중 하나였다.
나는 죽기 전 고통에 울부짖던 조막생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마뇌. 정말 네가 살아 있는 거냐? 아니면 혈교의 잔당들이 네가 남긴 유산을 이어받아 이런 짓거리를 벌이는 거냐.”
조막생은 죽어 마땅한 악인이었다.
탈혼대법을 각성해 마인으로 변하지 않았더라도, 녀석은 훗날 수많은 양민을 해치는 마두가 되었을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그게, 녀석의 성정이 타고난 악인이었기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지만, 멀쩡한 어린아이를 납치해 뇌를 가르고 마공을 심어 넣어 엉망으로 만들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크히히히! 죽여, 다 죽일 거야. 날 고아라고 무시한 놈들……!
고아로 자라지 않았다면, 그 녀석은 아주 평범한 운명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이제 와서 가정해 봐야 아무 의미도 없겠지만.”
나는 시체의 흔적을 최대한 지웠다.
찢어진 옷가지를 모아 태우고, 신분을 알아볼 수 있을 만한 흔적도 모두 없앴다.
그 모든 작업을 끝내니 어느새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입고 온 흑의무복에 피 냄새가 진하게 배었다.
“후우……. 돌아가면 옷부터 갈아입어야겠군.”
몸보다는 정신이 더 피곤했다.
나는 몸을 돌려 터덜터덜 백룡장을 향해 걸었다.
경공을 펼쳐서 빨리 갈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청천에게 혈우마공을 건넨 놈, 위지천이 가짜 무극검을 익히게 한 놈, 헌원세가에서 벌어진 광마혈사, 그리고 탈혼대법까지…….’
이쯤 되면, 혈교가 다시 무림에 피바람을 몰고 올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바보다.
놈들은 정체를 숨긴 채 수십 년 이상 힘을 모은 것이 틀림없었다.
아마도 이미 상당한 세력을 이루었겠지.
“……미치겠군.”
나는 누구보다 혈교에 대해서 잘 안다.
지금도 혈교의 잔당을 찾고 있는 무림맹보다, 혈교의 후예를 자처하는 놈들보다도 잘 알 것이다.
그래서 한눈에 청천이 익힌 마공을 알아보았고, 낭인시장에서 위지열의 정체를 눈치챌 수 있었다.
헌원세가의 혈사에 혈교가 개입한 것도, 탈혼대법도, 오직 나만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탈혼대법을 펼치려면 엄청난 자금과 많은 고수들이 필요해. 그걸 다 어디서 구했을까?’
자금과 고수.
따로따로 구하기도 힘들지만, 둘을 동시에 구하는 것은 몇 배로 어렵다.
정파 세력으로 치면 최소한 구대문파나 오대세가쯤은 되어야 그만한 여력이…….
그 순간, 나는 조막생이 했던 말 중 하나를 떠올렸다.
-몰라, 모른다고! 혈교라니. 애초에 난 고아야……. 무공은 고아원에서, 그 후에 남궁세가에서 배웠어…….
남궁세가(南宮世家).
오대세가의 수좌이자 천하제일검문을 말할 때 항상 첫 손에 꼽히는 명문세가.
그들이 지닌 무력은 구파일방과도 충분히 자웅을 겨룰 만큼 강하다.
‘조막생이 남궁세가 근처의 고아원에서 자란 게 우연일까?’
지나친 억측일지도 모른다.
아무도 모르게 꿀꺽 집어삼키기엔, 남궁세가는 너무 큰 세력이니까.
하지만 만에 하나 내 억측이 일부라도 맞다면…….
‘그 고아원이란 곳엔 언젠가 한번 가 봐야겠군.’
지금 당장은 어렵다.
입학시험도 남아 있고, 내가 갑자기 휴가를 내고 떠난다면 이상하게 생각할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면, 남궁수라든가.
‘혈교의 뒤를 캐기엔 내 무공도 아직 부족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정체를 놈들에게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내가 무슨 의협심 가득한 협객도 아니고, 괜한 위험을 자초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다만, 이번 생에서는 혈교라는 악연을 완전히 끊고 싶을 뿐이다.
“마뇌. 만약에 네가 아직 살아 있다면…….”
꽈악…….
나도 모르게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게 끝장을 내주지.”
다행히도, 새벽의 차가운 공기가 뜨거워진 머리를 식혀 주었다.
* * *
“후우…….”
운기조식을 끝낸 공손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시간은 꼭두새벽이었다.
아직 백룡장에서 잠에서 깬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르신. 조금 더 주무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자신과 흑영만 빼면 말이다.
“허허. 늙어서 그런지 잠이 안 오는구나. 너야말로 나 때문에 이 새벽에 고생이구나.”
“괜찮습니다.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요.”
살짝 투정 부리는 듯한 그녀의 말투에 공손수는 빙그레 웃었다.
불과 며칠 사이에, 흑영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일이 많아졌다.
‘이것도 백 선생 덕분이로군.’
강제로 휴가를 보낸 날, 백수룡이 흑영을 만나 고민 상담을 해 줬다는 걸 알고 있었다.
‘참으로 고마운 사내로다.’
차마 자신의 입으로는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대신 해 주었으니 말이다.
공손수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중요한 날이니 오늘은 깨끗하게 목욕재계를 해야겠다.”
“그러실 것 같아서 미리 따뜻한 물을 받아 놨습니다.”
“허허. 네가 시집가면 내가 참으로 서운할 게야.”
“예? 갑자기 시집이라니…….”
“설마 안 갈 셈이었더냐.”
“……생각도 해 본 적 없는데요.”
공손수가 짓궂게 웃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지금부터 미리미리 찾아보거라. 네 인물이 모자란 것도 아니고, 능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마음만 먹으면 괜찮은 사내들이 줄을 설 것이다. 뭣하면 내가 중매라도 서 주랴?”
“됐으니 빨리 씻으러 가세요!”
찰싹!
등짝을 얻어맞은 공손수가 욕탕으로 들어갔다.
그가 깨끗이 목욕재계를 하는 동안, 흑영은 밖에서 호위를 섰다.
공손수는 천천히 몸을 씻으며 문밖에 있는 흑영에게 말했다.
“시간이 참으로 빠르구나. 벌써 약속한 한 달이 지나다니.”
“……그러게 말이에요.”
오늘, 공손수는 청룡학관 입관 시험을 치른다.
처음에는 스스로 생각해도 터무니없는 도전이라고 여겼던 일이지만, 이제는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전부 한 사내의 가르침 덕분이었다.
“백 선생은 안 돌아왔느냐?”
“지난밤에 나가서 아직입니다.”
“흐음. 분명 훌륭한 사내인데 은근히 음흉한 데가 있단 말이지. 그 야밤에 나가서 무엇을 하길래 아직도 안 들어올꼬……?”
“……한번 알아볼까요?”
“되었다. 다 큰 사내의 사생활을 침해해서야 되겠느냐. 아니면…… 혹시 네가 궁금한 게냐?”
“……예?”
“오호라?”
황궁에서 수많은 암투와 권모술수를 수십 년 넘게 경험한 공손수였다.
흑영의 말투에서 미묘한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할 리 없었다.
“너 설마…….”
“아닙니다.”
“허허…….”
“……아닙니다.”
“허허허허!”
“아니라니까요!”
욕탕에 들어와 있어서 다행이었다. 옆에 있었다면 흑영에게 등짝을 몇 번은 더 얻어맞았을 것이다.
“하아…….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어차피 제가 뭐라고 말해도 놀리실 거잖아요.”
“푸헐헐헐. 청춘이야. 청춘이로구나.”
껄껄 웃으며 몸을 씻던 공손수가, 문득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밀서가 도착했더구나.”
“……읽어 보셨습니까?”
“보았다. 다행히 시험은 치르고 떠날 수 있을 것 같구나.”
“……채비를 해 두겠습니다.”
잠시 후, 목욕을 끝낸 공손수는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오늘만은 때가 꼬질꼬질하게 낀 훈련용 회색 무복이 아닌 새하얀 무복을 입고, 이마에는 영웅건을 단단히 맸다.
마지막으로 허리춤에 검을 차고 거울을 보니 제법 그럴듯해 보였다.
“흐아암-. 할아범. 일찍도 일어났네.”
“좋은 아침입니다…….”
그즈음 헌원강과 위지천도 일어났다. 둘 다 눈에서 눈곱을 떼지도 않고 바로 씻으러 갔다.
공손수는 홀로 마루에 나와 앉아 대문을 바라봤다.
잠시 후, 밤에 나갔던 백수룡이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백 선생. 이제 오는가?”
“……어르신. 일찍 일어나셨네요.”
공손수는 오늘따라 유독 피곤해 보이는 백수룡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의 몸에서 피 냄새가 진동했다. 하지만 굳이 그것을 아는 척하지 않았다.
“표정이 좋지 않군.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 겐가?”
“……티가 많이 납니까?”
“보통 사람은 못 알아볼 것이네.”
하지만 공손수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무공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을 뿐, 그가 가진 직감과 통찰력은 무학의 대종사에 못지않았다.
“고민이 있거든 말해 보게나.”
“누구한테 말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백수룡도 그런 사실을 알기에 굳이 숨기지 않았다. 그저 어깨를 으쓱하며 씩 웃을 뿐이었다.
“자네가 말하고 싶지 않다면 굳이 더 묻지는 않겠네. 그 대신…….”
공손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백수룡에게 걸어갔다.
그는 이 능구렁이 같은 청년도 심각한 고민을 한다는 것이 신기하고, 또한 기꺼웠다.
드디어 이 청년에게 받은 은혜를 갚을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고작 만 냥으로는 어림도 없지.’
공손수는 백룡장을 떠나기 전에 이런 기회가 와서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말했다.
“내 자네의 부탁이라면, 어떤 부탁이든 한 번은 무조건 들어주겠네. 이건 내가 죽기 전까지 유효한 약속이네.”
“예?”
“어르신!”
백수룡은 놀라서 눈을 깜빡였다. 옆에서 듣고 있던 흑영도 깜짝 놀랐으나,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기, 어르신. 제가 아주 곤란한 부탁이라도 하면 어쩌시려고 그런 약속을 하십니까?”
“자네가 잘 모르나 본데, 나를 곤란하게 할 부탁은 많지 않아.”
껄껄 웃은 공손수는 “그럼 그리 알게”라고 말하며 백수룡을 어깨를 툭툭 두드린 후 돌아섰다.
그리고 이제 막 씻고 나오는 헌원강과 위지천에게 웃으며 말했다.
“다 같이 아침 식사나 하자꾸나. 꼭두새벽부터 일어났더니 배가 아주 등가죽에 달라붙겠어. 허허허!”
다섯 사람이 모여 아침 식사를 한 후, 그들은 다 함께 백룡장을 나섰다.
그것이 그들이 함께한 마지막 아침 식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