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81
80화. 대체 스승이 누구야?
“저분이라니? 저기 하얀 무복 입은 노인 말하는 건가? 자네가 아는 사람이야?”
다행인지 불행인지, 노군상은 저 노인의 정체를 모르는 듯했다.
“그것이…….”
남궁제학은 뒤늦게 아차 싶었다.
‘일부러 정체를 숨긴 거라면…….’
함부로 정체를 알려서 노인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서는 안 된다.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남궁제학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내가 잘못 봤네. 돌아가신 외조부님과 닮아서 깜짝 놀랐지 뭔가.”
“외조부?”
남궁제학이 대충 둘러댄 변명에, 노군상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내 자네를 안 지 50년이 넘었는데, 돌아가신 외조부 얘기는 처음 듣는군.”
“돌아가신 지 60년쯤 되었네. 허허허! 외조부가 나를 참 예뻐하셨는데…….”
“그걸 믿으라고? 쯧. 알았네. 곡절이 있는 듯하니 내 못 들은 셈 치지.”
“……고맙네.”
더 이상 캐묻지 않는 노군상의 태도에 남궁제학은 고마움을 느꼈다.
그러나 노군상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노군상이 능글맞게 웃으며 남궁제학의 어깨를 툭툭 쳤다.
“아무튼 내기는 내가 이겼으니 말일세. 남창에서 제일 비싼 주루를 예약할 테니 각오해야 할 게야.”
“끄응……. 알았네.”
남궁제학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돈은 아깝지 않았으나, 내기에서 졌다는 사실이 영 찝찝했다.
하지만 천하의 창천검왕을 놀라게 할 일들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 * *
청룡학관 입관 시험은 크게 오전과 오후로 나뉘어 있었다.
오전에는 지원자의 기초체력, 내공, 외공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강사들 앞에서 증명하는 시험.
오후에는 필기시험, 학생회 선배들과의 실기 대련이 준비돼 있었다.
“하아아압!”
기합을 넣으며 땅을 박찬 공손수가 공중에서 몸을 회전시켰다.
휙휙휙휙!
그는 동서남북 모든 방위에 모두 검을 찔러 넣은 후, 한 마리 학처럼 우아하게 바닥에 내려섰다.
“후우우…….”
천천히 심호흡을 한 공손수는 검을 천천히 검집에 넣었다.
준비해 온 마지막 초식의 시연이 모두 끝났다.
자세를 바로 한 공손수가 심사관들을 향해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이상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두 심사관의 표정은 좋은지 나쁜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은 앞에 놓인 종이에 무언가를 휙휙 휘갈기더니, 자기들끼리 귓속말을 나누었다.
공손수가 조금 초조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다 말했다.
“저, 심사관님. 아까 초식 하나를 중간에 깜빡 생략했는데, 기회를 주신다면 지금이라도 펼쳐 볼 수…….”
“불가합니다. 다음 지원자 올라오시오!”
“…….”
자리에서 내려온 공손수는 땀이 줄줄 흐르는 이마를 소매로 닦으며 한숨을 푹 쉬었다.
“후우……. 쉽지 않구나.”
체력 시험은 간신히 턱걸이로 합격점을 넘었다.
내공은 오래전부터 영약을 밥 먹듯이 먹어온 터라 자신이 있었다.
백 선생도 이렇게 말했다.
-어르신의 내공은 지원자들 중에서도 상위권입니다.
내공 시험은 물 항아리에 가득 찬 물을 내공으로 넘쳐흐르게 하는 것이었는데, 공손수는 보통의 학생들보다 몇 배는 많이 흘러내리게 했다.
하지만 문제는 방금 치르고 나온 마지막 외공 시험이었다.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다면…….’
특출한 재능이 있지 않은 한, 여러 초식의 형을 완벽하게 익히기엔 한 달은 짧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공손수는 천재가 아니었다.
‘허어. 비무에서 한번 이겼다고 자만했던가.’
얼마 전 유능제강(柔能制剛)의 묘리를 살려 조막생과의 비무에서 승리하긴 했지만, 그것은 선공과 심리전이 어우러진 결과이지 공손수의 무공이 특출해서는 아니었다.
또한 백수룡이 공손수에게 가르친 검은 부드럽고 유연한 검이어서, 다른 학생들의 초식과 비교하면 다소 밋밋했다.
“끄응. 당당하게 합격하고 오겠다고 말했는데 떨어지면 부끄러워서 어쩌누……. 아니.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지.”
공손수는 스스로의 뺨을 찰싹찰싹 때리며 불안한 생각을 털어냈다.
오전 시험은 이제 거의 막바지였다.
백 선생은 바쁘고, 위지천과는 조가 달라서 공손수는 한동안 혼자였다.
잠시 여유가 생긴 그는 잠시 다른 학생들이 시험을 치르는 모습을 구경했다.
“하아아압!”
“타하앗!”
땀방울을 흘리며 검을 휘두르는 젊은이들이 지금처럼 부러웠던 순간이 없었다.
탄력 있는 근육과 튼튼한 관절, 건강한 신체는 하늘이 내린 축복이었다.
“부럽구나. 부러워. 내 삼십 년만 젊었어도…….”
잠시 후, 입관 시험을 총괄하는 매극렴이 내공을 담아 외쳤다.
“이것으로 오전 시험을 끝마치겠소! 지원자들은 한 시진 동안 휴식 후 다시 이곳에서 집합하시오!”
한 시진의 휴식이 주어졌다.
오전 시험을 끝낸 지원자들은 학관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가족이나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일제히 밖으로 나갔다.
공손수도 청룡학관 밖으로 나가기 위해 발걸음을 서둘렀다.
점심은 백룡장 동기들과 모여서 함께하기로 약속돼 있었다.
만나서 시험도 복기하고, 오후에 있을 실기대련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었다.
[승상.]청룡학관을 나서자마자 들려온 전음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표정이 굳은 공손수가 제자리에 멈춰 섰다.
“누구……?”
전음 자체는 공손수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그리 어려운 기예가 아니지만, 그것이 들려오는 방향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것은 상대가 기의 흐름을 숨길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고수라는 의미였다.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 왼편에 있는 골목으로 들어오시면 됩니다. 해를 끼칠 마음은 조금도 없습니다.]공손수는 잠시 고민하다가 목소리가 시키는 대로 했다. 목소리에서 무척 조심하는 기색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누가 날 부른 게요?”
공손수가 골목으로 들어서며 말을 걸자, 어둠 속에서 스르륵 한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창천검왕 남궁제학이었다.
“저 남궁제학입니다. 전에 한번 뵌 적이 있는데, 기억하시겠습니까?”
무림인들이 보았다면 경악을 금치 못했을 장면.
무림에서의 배분과 명성, 실력.
창천검왕이 이렇게까지 예의를 갖출 상대는 전 무림을 통틀어도 다섯을 넘지 않았다.
하지만.
“남궁 대협이셨구려. 물론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까 대연무장에서도 알아뵈었는데……. 허허. 아는 척할 수 없었던 것은 이해해 주십시오.”
공손수는 남궁제학의 태도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상대가 자신의 정체를 아는 자라면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허! 정말 승상이셨군요.”
오히려 남궁제학의 표정이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놀라고 있었다.
“어떻게 이곳에 계신 것입니까. 몸이 편찮으셔서 요양 중이라는 말씀은 들었습니다만…….”
관무불가침이라는 말이 있지만, 남궁세가는 황궁에도 연줄을 대고 있었다.
그들은 막강한 무력과 자금력으로 여러 권력자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공손수는 그런 남궁세가에서도 감히 건드리지 못하는 존재였다.
‘황제의 스승…….’
현재는 일선에서 물러나 은퇴하였으나, 공손수는 과거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지위인 승상을 지낸 인물이었다.
그는 현 황제가 어릴 때부터 이십 년 이상 보필했으며, 학문과 정신의 스승이기도 했다.
-승상은 어릴 적 돌아가신 선왕 폐하를 대신해 과인을 길러 준 마음의 어버이요. 다들 그리 아시오.
황제가 공공연한 장소에서 그리 말할 정도였으니, 공손수에 대한 신임이 얼마나 두터운지는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를 시기한 정적들이 여러 번 암살을 시도했으나, 매번 살아남아 상대를 거꾸러뜨린 철혈의 재상이기도 했다.
‘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모처에서 요양 중이라 들었는데…….’
남궁제학의 의문 가득한 표정을 본 공손수가 허허로운 웃음을 터트렸다.
“어쩌다 보니 그리되었습니다. 사실 이곳이 제 고향이지요.”
“어째서 청룡학관 시험을…….”
남궁제학의 질문에 공손수는 민망한 웃음을 지었다.
“어린 시절 꿈이었지요. 죽기 전에 한번 도전해 보고 싶었습니다. 허허. 주책인 건 알지만 너무 나무라진 마십시오.”
“제가 어찌 감히 승상을 나무라겠습니까. 헌데, 실례지만 승상께서는 몸이…….”
두뇌는 비상하지만 선천적으로 신체가 허약하고 탁기가 많이 쌓이는 체질이 있다.
공손수는 그런 체질이었고, 황제는 승상의 건강을 위해 직접 생사신의를 불러 침을 놓고 약을 지으라 명령했다.
‘그렇게 했음에도 나날이 건강이 나빠져 몇 년 더 살지 못할 것이라고 들었거늘…….’
저 생기로 가득한 얼굴을 보라.
앞으로 이십 년은 너끈히 정정하게 살 것 같지 않은가!
“고향이 내려오니 심신이 평화로워져서 절로 건강해지지 뭡니까. 허허허!”
“허허…….”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남궁제학은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캐물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으니까.
“헌데 무공은 언제부터 배우신 겁니까? 미리 말씀해 주셨으면 남궁세가에서…….”
“허허. 운이 좋아 훌륭한 스승을 만나 배우고 있소이다.”
훌륭한 스승이란 말에 남궁제학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예? 혹시 그 스승의 이름을 알 수 있…….”
그때였다.
“아 맞다니까! 아까 할아범이 저 골목으로 들어갔다고!”
“정말이에요?”
멀리서 들려온 목소리에,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공손수가 곤란한 표정으로 남궁제학에게 말했다.
“남궁 대협. 죄송한데 자리를 좀 비켜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저 아이들은 내 신분을 모릅니다.”
“……저 아이들이 누굽니까?”
“허허. 같은 스승 밑에서 무공을 배운 동기들입니다.”
“예?”
“할아범!”
목소리가 한층 가까워졌다. 공손수가 다급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음에 또 뵙지요. 남궁 대협. 오늘 저를 본 것은 비밀로 해 주실 게지요?”
부드럽지만, 결코 부탁이라고 할 수 없는 눈빛에 남궁제학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그것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허허. 그럼 살펴 가십시오.”
낯선 기척이 골목으로 들어오기 직전, 남궁제학은 공손수 앞에서 모습을 감췄다.
스르륵.
따로 은신술을 배우지는 않았지만, 남궁제학과 같은 고수에게 존재감을 감추는 것은 간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남궁제학은 바로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공손수가 말한 동기들이 누구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잠시 후, 한 청년이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할아범! 역시 여기 있었네.”
바로 헌원강이었다.
공손수는 벽 앞에서 바지춤을 추켜올리는 척을 하며 능청을 떨었다.
“허허. 소피가 급해서 잠깐 들어왔다. 마침 나가려던 참이었거늘.”
“뭐야. 오줌 누러 온 거였어? 난 또 할아범이 골목으로 들어가 안 나와서 놀랐잖아.”
“놀랄 건 또 뭐가 있느냐?”
“……조막생 같은 양아치가 또 있을지 어떻게 알아.”
괜한 걱정을 했다며 입을 삐죽이는 헌원강의 등을 공손수가 껄껄 웃으며 두드렸다.
“내 원강 선배 덕분에 든든하다니까.”
“젠장. 몇 번이나 말했거든. 원강이 아니라 강(强)! 외자라고!”
헌원강의 사나운 표정을 지으며 으르렁거렸다.
그 건방진 말투에, 숨어서 지켜보던 남궁제학이 눈을 부릅떴다.
‘미친놈이구나. 삼대가 멸하고 싶지 않고서야 감히 승상에게 저리 오만불손한……. 으음?’
그 순간 남궁제학의 눈이 다른 의미로 커졌다.
가까이에서 본 헌원강의 탄탄한 육체에 절로 감탄이 나올 뻔했다.
아직 완성되려면 멀었으나, 대단한 잠재력이 느껴졌다.
‘허어. 자질만 보면 천무학관에서도 찾기 힘든 아이로군.’
창천검왕 남궁제학의 놀라움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헌원강보다 조금 늦게, 위지천이 골목 안으로 들어왔다.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그 선한 얼굴의 소년을 본 순간, 남궁제학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몸을 떨었다.
‘!!’
아니, 실제로 벼락이 눈앞에 떨어졌어도 십존을 이처럼 놀라게 할 수는 없었다.
‘어찌 이런……!’
얼마나 놀랐는지, 하마터면 은신이 깨져 망신을 당할 뻔했다.
위지천을 본 순간, 남궁제학은 한 자루 검을 떠올렸다.
‘벌써 마음에 검을 품고 있다니.’
당장이라도 저 아이에게 검을 휘둘러 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 옆에 공손수만 없었다면, 분명히 그리했을 것이다.
“허허. 천이도 왔구나. 너도 나 때문에 온 게냐?”
“원강 선배님이 갑자기 먼저 뛰어가서…….”
“강! 강이라고!”
“허허. 괜히 걱정을 끼쳐 미안하구나. 배가 고플 텐데 얼른 가자꾸나.”
“그런데 흑영 누이는 어디 갔어요?”
“누굴 좀 만나고 오라고 보냈다. 오후 시험까진 돌아올 게야. 자자, 가자꾸나.”
공손수는 두 소년의 등을 떠밀면서 서둘러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스르륵.
세 사람이 떠난 자리에 나타난 남궁제학이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저 셋이 동기라고?”
황제의 스승.
보기 힘든 재능을 가진 도객.
마음에 검을 품은 소년.
이 세 명의 스승이 한 명이란다.
“대체…… 저들의 스승이 누구란 말인가.”
남궁제학은 그 정체를 반드시 알아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시각, 백수룡은 밥도 못 먹고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