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84
83화. 차라리 우리가무영은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말도 안 돼…….”
천영은 그가 10년 이상 키워 온 정보 조직이자 살수 조직이었다.
황궁의 조직이었기에 무림에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무림의 삼대 살수 조직과 비교해서도 그 역량이 부족하지 않다고 자부해 왔다.
그런 천영의 살수들이, 단 한 명의 사내에게 도륙당하고 있었다.
촤아아악-!
살수 한 명의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허리까지 비스듬히 잘린 몸에서 내장과 피가 쏟아졌다.
퍼억!
백수룡은 그 시체를 걷어차 옆에서 덤벼든 다른 살수에게 밀었다.
시야가 가로막힌 살수의 움직임이 잠시 굳었다.
그 순간 전광석화처럼 달려든 백수룡이 시체와 살수를 함께 꿰어 버렸다.
푸욱!
배가 꿰뚫린 살수가 입술을 살짝 벌리고 독침을 쏘았다. 지독한 훈련을 받은 살수답게, 죽어가는 순간에도 비명조차 지르지 않고 암기를 발출한 것이다.
하지만 백수룡은 고개를 옆으로 젖히는 것으로 간단히 독침을 피했다.
동시에 검을 옆으로 당겨서 살수의 허리를 완전히 끊어내고, 몸을 돌려 천장에서 떨어져 내리는 다른 살수를 향해 좌장을 뻗었다.
퍼어엉!
북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천장에서 떨어지던 살수가 벽에 처박혔다.
백수룡은 상대가 튕겨 나가면서 손에서 놓친 검을 왼손으로 잡았다.
그가 검의 무게를 가늠하며 중얼거렸다.
“흠. 쌍검은 오랜만인데.”
잠시 후, 그를 상대하는 살수들은 속으로 외쳤다.
‘거짓말하지 마라!’
오랜만이라면서, 백수룡은 좌우의 구분이 의미가 없을 만큼 능숙하게 쌍검을 휘둘렀다.
핏빛 검기가 너울너울 춤을 췄다.
쌍검을 들고 검무를 추는 백수룡의 모습은 넋을 놓고 볼 만큼 아름다웠다.
그러나 검무가 이어질 때마다 누군가의 팔다리가 잘려 나가고, 코를 마비시키는 피 냄새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살수들이 잠시 공격을 멈추자, 백수룡이 웃으며 그들을 바라봤다.
“살수가 무서운 건 모르고 있다가 기습을 당할 때지, 미리 알고 있으면 별것 아니거든. 자, 이번엔 내가 간다.”
그리고 달려드는 백수룡.
놀랍게도 그의 옷에는 아직 단 한 방울의 피도 묻지 않았다.
무영은 그 모습을 보며 침음했다.
‘저자……. 무공도 무공이지만, 살인에 익숙하다.’
어지간한 사파의 무인들도 이 정도로 시체가 쌓이고 피 냄새가 진동하면 역겨워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저 사내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살수들보다도 살인에 무감각하고, 검을 휘두르는 데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오히려 즐기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저런 괴물이…….’
무영은 이를 악물며 암영류를 끌어올렸다.
더 이상 살수들을 소모시켰다가는 천영이란 조직의 존립 자체가 위험했다.
스스슷…….
무영의 몸이 주변에 동화되며 서서히 흐릿해졌다. 동시에 다른 살수들에게 전음을 보냈다.
[빈틈을 만들어라. 내가 끝내겠다.] [[존명!]]동귀어진을 각오한 살수들이 전후좌우, 그리고 천장에서 백수룡을 노리고 동시에 덤벼들었다.
공간이 비좁아 서로가 서로의 공격을 방해했지만 살수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들은 미끼일 뿐, 마무리는 무영이 할 테니까.
푹푹푹푹!
좁은 공간에 억지로 동시에 달려든 살수들의 미간과 심장에 칼이 꽂혔다. 하지만 그들은 끝까지 임무를 완수했다.
꽈악…….
죽어가면서도 두 손으론 검날을 붙잡고, 몸으로 백수룡의 시야를 방해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빈틈으로,
무영이 유령처럼 파고들었다.
“조심해요! 다른 살수들의 공격은 미끼예요!”
흑영이 눈을 번쩍 뜨며 소리쳤다.
백수룡이 살수들과 싸우는 동안 그녀도 가만히 눈만 감고 기다리지는 않았다. 정신을 집중해 스스로 혈도를 풀었다.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된 그녀가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진짜 공격은 무영이에요!”
“늦었다.”
스르륵.
흐려졌던 무영의 모습이 다시 나타난 곳은 백수룡의 등 뒤였다.
그가 백수룡의 등에 검을 꽂으며 싸늘하게 웃었다.
“끝이다.”
찢어진 푸른 장포가 허공에 펄럭였다. 하지만 백수룡은 그곳에 없었다.
“끝이라고?”
“!!”
눈을 부릅뜬 무영이 급히 몸을 뒤로 돌리며 왼팔을 뻗었다.
장포를 벗어던진 백수룡이 그곳에 서 있었다.
“이게 끝이지.”
우드득!
백수룡은 무영의 왼팔을 잡아서 꺾일 수 없는 방향으로 꺾어 버렸다.
그러나 팔이 꺾였음에도 무영은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입가에 독기 가득한 미소가 맺혔다.
“흐흐. 걸려들었구나.”
왼팔을 먼저 뻗은 것은 무영의 노림수였다. 왼팔이 꺾이는 동안, 한 박자 늦게 뻗은 오른팔이 백수룡의 가슴을 겨냥했다.
흑영이 비명을 지르며 달려왔다.
“조심해요! 무영의 오른팔은…….”
그 순간 무영의 오른팔에서 “달칵”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손바닥이 열리고 강침 수십 개가 발사됐다.
“어디 이것도 미리 알고 있었다고 나불대 봐라!”
이것이 무영이 가진 마지막 비장의 수!
무영은 자신의 승리를 의심치 않았다.
잠시 후면 백수룡은 강침에 수십 개의 구멍이 난 시체가 되어 쓰러질 것이다.
하지만 다시 들려온 백수룡의 목소리는 무영을 절망에 빠뜨렸다.
“의수? 당연히 알고 있었지. 강침인 것까진 몰랐지만.”
조롱 섞인 웃음소리와 함께, 백수룡의 신형이 다시 흐려졌다.
‘잔상!’
파바바박!
백수룡은 잔상이 흩어지고, 잔상을 꿰뚫은 강침은 전부 벽에 틀어박혔다.
촤아아악!
무영의 옆으로 돌아선 백수룡은 무영의 의수를 어깨에서부터 베어 버렸다. 중심을 잃은 무영이 비틀거렸다.
툭.
어느새 무영의 목에 차가운 검날이 닿아 있었다.
“더 보여 줄 거 없으면 그만하지? 오후 시험 전에는 돌아가야 하거든.”
그 압도적인 실력 차에, 무영은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 * *
“어르신이 승상이라고?”
흑영에게 자초지종을 듣게 된 백수룡은 입을 떡 벌렸다.
공손수가 대단한 신분일 거라는 건 짐작했지만, 설마 승상이었을 줄이야.
승상이라면 황제를 제외하곤 이 나라 최고의 권력자가 아닌가.
“그…… 내가 한 달 동안 뭐 실수한 건 없지?”
“첫날부터 말씀드릴까요?”
“커, 커흠!”
흑영은 헛기침을 하는 백수룡을 보며 피식 웃었다.
저 모습이 방금까지 무표정하게 살수들을 도륙하던 사내가 정말 맞나 싶었다.
하지만 흑영의 표정은 금세 다시 굳었다.
“어르신이 위험해요.”
공손수를 죽이기 위해 황궁의 정보 조직이 동원되었다.
그들은 황제와 공손수가 나눈 밀서를 훔쳐보았고, 승상의 복귀를 두려워하는 간신들과 결탁했다.
‘무영은 나를 회유해 어르신을 죽인 후 자연사로 위장하려고 했어. 하지만…….’
황궁의 그 야차 같은 권력자들이 천영만 믿고 이만한 일을 도모했을까?
실패하면 반대로 자신들이 몰살을 당할 수도 있는 도박을?
흑영의 걱정은 괜한 기우가 아니었다.
“큭큭…….”
포박당한 채 무릎 꿇려진 무영이 웃음을 흘렸다. 그가 핏발 선 눈으로 백수룡을 올려다봤다.
“이제야 누군지 알아보겠군. 백수룡. 승상에게 헛바람을 넣어 무공을 가르친 무공 강사…….”
“누가 헛바람을 넣었단 거야. 어르신이 먼저 찾아와서 가르쳐 달라고 했다고.”
백수룡은 사실을 정정해 주었으나, 무영은 백수룡의 말에 관심이 없었다.
“흐흐. 설마 이 정도의 고수였을 줄이야……. 흑영만 경계한 것이 내 판단 착오였군.”
“무영. 어르신을 죽이러 온 살수들은 당신들이 전부냐?”
흑영의 서슬 퍼런 눈빛에도 무영은 피식 웃었다.
“그랬으면 좋겠지만…… 그럴 리가 없지 않느냐. 이 나라 권력자들이 바보도 아니고.”
“역시……! 누가 또 동원되었지?”
다급해진 흑영이 무영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그러나 무영의 눈빛에는 그 어떤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다.
이곳에서 살아남아도, 결국은 죽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무림 삼대 살수 조직이 모두 동원되었다.”
“!!”
무영이 흑영에게 사실을 말해 주는 것은, 자신의 계획을 망친 자들을 더 큰 절망에 빠뜨리기 위해서였다.
“흑영아. 내 제안을 듣는 것이 승상이 가장 편안하게 죽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무림의 살수들이 나처럼 승상을 배려할 것 같으냐. 놈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
“내가 실패했다는 것은, 승상이 자신이 노려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큭큭. 이제 황궁의 권력자들에게도 뒤가 없어. 그들은 어떻게든 황제가 알기 전에 승상을 죽여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자신들이 죽을 테니까…….”
“…….”
“이제 상황 파악이 되느냐? 내가 그들에게 붙지 않았어도 승상은 결국 죽을 운명이었다. 멍청한 년. 네년이 순순히 내 말만 들었어도……!”
빠악!
무영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백수룡이 주먹에 묻은 피를 털며 중얼거렸다.
“에이 씨, 피 묻었네.”
코피를 줄줄 흘리면서, 무영은 백수룡을 노려보며 저주를 퍼부었다.
“곧 내가 실패한 걸 알게 된 살수 조직들이 움직일 것이다. 승상은 결코 오늘을 넘기지 못해. 그리고 그건 너희도 마찬가지다!”
무영은 미친놈처럼 키득키득 웃었더니, 갑자기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이곳 지부대인의 목도 날아가고 청룡학관이 불탈 것이다. 승상이 죽었으니 책임을 물어야지. 권력자들이 살수로 누굴 지목할 것 같으냐? 예순이 넘은 노인에게 무공을 가르친 놈, 그걸 받아준 학관, 그걸 방치한 관아……. 엮는 것쯤은 아주 간단한 일이야! 크하하하하!”
무영의 광소가 시체와 피로 가득한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임무에 실패하고, 살길이 없음을 깨달은 그는 미쳐 버렸다.
“유언 잘 들었다.”
서걱.
백수룡이 휘두른 일검에 무영의 목이 잘렸다.
“그래서.”
데구루루 바닥을 구르는 목을 일별한 백수룡이 흑영에게 물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상황이 많이 심각해 보이는데. 어떻게 할 생각이야?”
승상이 죽으면 청룡학관이 불타고 관련된 자들은 전부 잡혀가 죽을 거라니.
최악의 상황이라도 한 몸 빼내는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그의 모든 기반이 이곳에 있었다.
“……살수들로부터 어르신을 지켜야죠. 동시에 황제 폐하께 연락을 취해야 하고요.”
그렇게 말한 흑영은 죽은 무영의 품을 뒤져 해독약을 찾아 삼켰다.
“관군은 믿을 수 있어?”
“이 상황이라면…… 이미 저쪽에 넘어갔을 확률도 있어요.”
“어르신이 숨을 만한 은신처는?”
“제가 아는 곳은 천영이 이미 다 파악하고 있어요.”
백수룡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관도 믿을 수 없고, 숨을 곳도 없다 이거지. 황궁에 은밀히 연락을 취할 방법은?”
“가능해요. 하지만 저쪽에서 상황을 알아차리고 조치를 취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거예요.”
“얼마나?”
“길면 며칠…….”
즉, 그때까진 살수들의 위협으로부터 공손수를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절망스러운 이야기였지만, 백수룡은 의외로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든 해 보자고. 일단 여기부터 나가면서 얘기하자.”
두 사람은 빠르게 건물을 빠져나가며 앞으로의 계획을 세웠다.
“청룡학관 입관 시험은 중지해야겠어요. 우선 저희가 어르신의 신병을 확보하고…….”
“잠깐만.”
잠시 생각을 정리한 백수룡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입관 시험은 그대로 가자.”
“네? 어르신을 그 많은 사람들 앞에 노출시키자고요?”
흑영이 반대했지만, 백수룡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우리가 어르신을 꽁꽁 싸매며 보호하면 살수들도 쉽게 덤비진 않을 거야. 대신 온갖 지저분한 방법을 쓰겠지.”
독, 암기, 폭약, 지인을 볼모로 잡아 협박하는 등.
백수룡의 머릿속에서만 벌써 여러 가지 방법이 떠오르고 있었다.
“차라리 놈들의 선택지를 간단하게 좁혀 주는 게 나아.”
그것은 흑영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백수룡이라서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어르신을 미끼 삼아 살수들을 끌어들이고, 우리가 놈들을 사냥하자.”
그렇게 말하는 백수룡의 두 눈이 사냥감을 앞에 둔 맹수처럼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