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87
86화. 반격잠시 후, 일호는 으슥한 골목길로 끌려들어 갔다.
골목길 안에 사라진 이호, 삼호, 사호가 기절한 채로 널브러져 있었다.
그 앞에는 복면을 쓴 세 명의 무인이 서 있었다.
‘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흑림의 살행조가 저항도 못 해 보고 무력화되었다.
일호는 이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자신을 끌고 온 여자를 노려봤다.
아니, 상대는 더 이상 여자가 아니었다.
우드득.
여장을 하며 굽혔던 허리를 펴자 키가 훌쩍 커졌다.
찌이익!
인피면구를 떼어내자, 감탄이 나올 정도로 잘생긴 사내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는 백수룡이었다.
바닥에 널브러진 살수들을 본 백수룡이 복면을 쓰고 있는 동료들에게 말했다.
“다들 수고했어.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다시 어르신에게 가 봐.”
“…….”
복면인들은 악연호, 명일오, 제갈소영이었다.
세 사람은 과묵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동시에 경공을 펼쳐 벽을 박차고 사라졌다.
“……쟤들 왠지 살수 놀이에 맛 들인 것 같은데.”
가볍게 혀를 찬 백수룡은 다시 일호를 돌아봤다. 그가 손을 뻗어 일호의 아혈을 풀어주었다.
“아혈 풀었으니까 이제 말해도 돼. 그렇다고 갑자기 소리 지르거나 하진 말고. 피차 선수끼리 쉽게 가자. 응?”
“…….”
“살수답게 입이 무거운 친구네.”
일호의 무덤덤한 반응에도 백수룡은 피식 웃었다.
“이러면 입이 좀 가벼워지려나.”
우지직! 백수룡은 일호의 한쪽 어깨를 단숨에 뽑아 버렸다.
“큽!”
무릎을 꿇은 일호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고통에 익숙하고 인내심이 강한 살수였기에 망정이지, 보통 사람은 고래고래 비명을 지를 만한 고통이었다.
“고문이…… 통할 것 같나.”
일호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백수룡을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죽여라. 날 고문해 봐야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그의 비장한 태도에 백수룡은 피식 웃었다.
“죽고 싶으면 직접 혀를 깨물지, 왜 나한테 죽여 달라고 그래?”
“…….”
“사실은 살고 싶지?”
일호를 빤히 바라보는 백수룡의 눈은 유리알처럼 투명했다.
스스슷…….
그의 눈동자에 희미하게 붉은 기운이 맺혔다.
“난 너 같은 살수 놈들을 잘 알아. 사람을 죽이는 게 일이니까, 자신이 죽음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정말 그럴까?”
“…….”
일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피식 웃은 백수룡은 그의 옷을 뒤져서 수많은 암기를 찾아냈다.
그중 표창 하나를 꺼내 허공으로 던졌다 받았다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더니, 갑자기 옆으로 던졌다.
푸욱!
기절한 채로 쓰러져 있던 사호의 미간에 표창이 틀어박혔다. 즉사였다.
놀란 일호가 몸을 움찔 떨었다. 백수룡이 그를 내려다보며 나른하게 웃었다.
“남의 죽음을 자주 본다고 죽음이 안 무서워질까? 아니. 죽어가는 사람의 공포에 질린 눈을 들여다볼 때마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점점 커지지.”
“…….”
상대의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어 뇌까지 박히는 기분.
일호는 애써 무표정을 유지하며 백수룡을 똑바로 노려봤다.
“그런 협박이…….”
백수룡이 이번에는 단검을 옆으로 던졌다.
푹!
삼호의 심장에 단검이 틀어박혔다.
푸들푸들 떨리던 삼호의 몸이 서서히 움직임을 멈췄다.
뚝……. 뚝…….
가슴에 박힌 단검의 손잡이를 따라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일호는 자기도 모르게 이를 꽉 악물었다.
“살수들은 훈련을 통해 감정을 죽이고, 고통에 무뎌지지. 누군가를 죽이는 일에도 무감각해진다. 그걸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했다고 착각해. 하지만 잘 봐.”
“그만……!”
백수룡은 바늘처럼 얇은 금침을 이호에게 던졌다.
푹!
이번에는 한 번에 목숨을 빼앗지 않았다. 이호가 번쩍 눈을 뜨더니, 고통에 몸부림치며 두 손으로 목에 박힌 금침을 빼내려고 했다.
“컥, 커헉……!”
이호는 천천히 죽어갔다. 일호는 그 모습을 보며 덜덜덜 떨었다.
일호 앞에 쪼그려 앉은 백수룡이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인간은 고통에 익숙해질 수 있을진 몰라도 죽음에는 익숙해질 수 없어. 누구든 죽음은 처음이거든.”
“나, 나, 나는…….”
백수룡은 검집으로 일호의 가슴을 툭 쳤다.
그러자 깜짝 놀란 일호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으허어억!”
백수룡은 창백하게 질린 일호를 바라보며 물었다.
“다시 묻지. 살고 싶어?”
“사, 살고 싶습니다. 살고 싶습니다!”
일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에서 사호, 삼호, 이호가 죽는 것을 보았다.
평생 살수로 살아오며 동료들이 죽는 것을 본 것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백수룡이 그에게 보여 준 공포는 차원이 달랐다.
‘살고 싶어. 죽고 싶지 않아. 만약 이 남자에게 죽으면…… 영혼조차 구제받지 못할 거야.’
평생을 통틀어 이토록 두려움을 느끼고, 절실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일호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살려…… 주십시오. 제발…….”
백수룡은 납작 엎드려 비는 일호의 어깨에서 검을 치웠다.
어느새 그의 눈에서 일렁이던 혈기도 사그라들었다.
“살고 싶으면 내 질문에 잘 대답해야 할 거야. 어디 소속이지?”
“흐, 흑림. 흑림입니다.”
일호는 흑림에 대해 아는 것을 전부 이야기했다.
이곳에 몇 명이나 왔고, 어떤 식으로 살행에 나서며, 책임자는 누구인지.
일개 조의 조장인 일호가 아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대답했다.
“아까 휘파람으로 신호를 주고받던데. 그거 어떻게 하는 거야?”
“그건…….”
백수룡은 흑림의 살수들끼리만 아는 통신 수단에 대해서도 알아냈다.
‘이건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겠어.’
잠시 후, 아는 정보를 모두 쏟아낸 일호는 결국 탈진해서 쓰러졌다.
“……지독하군.”
골목의 어둠 속에서 한 사내가 걸어 나왔다.
그는 청천이었다.
청천은 질린다는 표정으로 시체들과 일호, 백수룡을 번갈아 바라봤다.
“원래…… 살수였나?”
방금 백수룡이 보여 준 잔인한 손속과 행동을 보면, 청천이 그런 추측을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백수룡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예전에 살수들도 가르쳐 봤거든.”
“하…….”
청천은 묻고 싶은 게 많은 얼굴이었지만, 결국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대신 그는 백수룡을 부탁한 대로 일호를 어깨에 둘러멨다.
“이 녀석은 감옥에 가둬 두면 되겠나?”
“부탁 좀 할게. 일이 마무리되면 증인이 필요할 수도 있거든.”
“알겠다. 시체는 포졸들을 불러 치우게 하지.”
청천은 시체들을 둘러보며 대답했다.
그는 백수룡이 살인을 저지른 것에 대해서는 큰 감흥이 없었다.
죽은 자들은 전부 살수였다.
사람을 죽이고 대가를 받는 것을 업으로 삼는 쓰레기들.
‘동정할 가치도 없는 놈들이지.’
청천은 고개를 돌려, 일호에게서 벗겨낸 인피면구를 뒤집어쓰고 옷을 갈아입는 백수룡을 바라봤다.
“살수 사냥을 계속할 건가?”
“그래야지. 이놈들은 말로 해선 안 듣거든.”
“……조금 전에 말로 한 놈 설득한 것 같았는데.”
순식간에 변장을 마친 백수룡이 청천을 돌아봤다. 어느새 그는 중년 여인으로 변해 있었다.
“시간이 오래 걸리잖아. 아까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쉬운 것도 아니고. 게다가 아까 그 방법이 모두한테 통하는 것도 아니거든.”
중년의 여인이 소매에 암기를 숨기며 인심 좋게 웃었다.
“그리고 더 쉽고 빠른 방법이 있으니까.”
“…….”
“그럼 또 보자고.”
몸을 돌린 백수룡이 골목을 빠져나가며 손을 흔들었다.
청천은 작아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어쩌면 이곳에서 가장 뛰어난 살수는 저 녀석일지도 모르겠군.”
청천은 새삼 저 남자를 적으로 돌리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백수룡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 * *
흑림의 살수들은 갑자기 혼란에 빠졌다.
휘익! 휙! 휘이익!
사방에서 들려오는 휘파람 소리.
본래 흑림의 살수들 사이에서만 사용하는 신호였으나, 언제부턴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적들에 의해서 사용되고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은 휘파람으로 흑림의 살수들을 교란했다.
흑림의 살수들이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을 땐, 이미 절반에 가까운 숫자가 당한 후였다.
[현 위치에서 대기!] [적들의 위치부터 파악해라!] [당황하지 마라. 지금부터 휘파람 신호는 무시한다.] [간격 유지. 일단 인파에 몸을 숨겨라.]몸을 숨긴 살수들은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도대체 누가?’
‘목표물에 가까이 접근한 조는 모두 당했다.’
‘이 수법……. 상대도 살수다.’
‘최소한 셋 이상이야. 여러 명이 동시에 전음이 끊겼다.’
‘혈방 놈들인가? 아니면 혹시 살막이…….’
살수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도록 평정심을 유지하는 훈련을 받는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훈련을 받는다고 해도, 알 수 없는 적에 의해 동료들이 하나씩 죽어 나가면 공포에 질릴 수밖에 없었다.
휘잉~
그저 가벼운 바람이 불어왔을 뿐인데도 몸이 움찔거렸다.
아니, 불행하게도 이번엔 가벼운 바람이 아니었다.
“잘난 척하던 흑림도 별것 아니군.”
“!!”
귓가에 비웃는 목소리가 들려왔을 땐, 비수가 폐를 찌르고 지나간 뒤였다.
푹.
그림자는 살수의 옆을 스쳐 자연스럽게 걸어갔다.
“조만간 본 방(放)이 너희를 쓸어버릴 것이다. 지옥에서 구경하도록.”
다리에 힘이 풀린 살수는 흐릿해지는 상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방……. 혈방(血放) 놈들이었구나!’
흑림의 살수는 쓰러지는 척하며 군중 속으로 몸을 숨겼다.
놈은 자신을 끝장낸 줄 알겠지만, 다행히도 아슬아슬하게 폐에서 반 치 정도 옆을 찔렸다.
살수는 그것이 천운이라고 생각했다.
‘어서 삼대주께 보고를…….’
적의 정체를 알아냈다고 생각한 흑림의 살수는 비틀거리며 삼대주를 찾아갔다.
그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방금 자신의 옆구리를 찌른 살수가, 잠시 후 혈방의 살수에게도 말만 살짝 바꿔서 똑같은 말을 하리라는 것을.
* * *
콰앙!
일격에 탁자를 부숴 버린 삼대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두 눈에서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듯했다.
“혈방 이놈들이 감히!”
그는 방금 수하로부터 보고를 받았다.
공손수를 암살하기 위해 보낸 살수들이 당했는데, 그 흉수가 혈방이라는 보고였다.
“이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공손수의 목을 먼저 취하기 위해, 삼대 살수 조직이 서로 경쟁하리라는 것은 예상했다.
하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공격해 올 줄이야.
이것은 흑림에 전쟁을 선포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평소 혈방을 몇 수 아래로 보던 흑림의 간부로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네놈들이 먼저 시작한 일이다. 후회하게 해 주지.”
이를 부드득 간 삼대주는 대기 중인 모든 살수들을 집결시키라고 명령했다.
혈방들이 먼저 싸움을 걸어온 이상, 놈들을 모두 죽인 후 공손수의 목까지 취할 것이다.
삼대주가 짙은 살기를 뿌리며 말했다.
“내가 곧 갈 테니 모두에게 대기하라 일러라.”
“존명!”
같은 시각, 혈방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흑림 이 새끼들이 미쳤구나! 우리 애들을 건드려!”
혈방 남창 지부.
평소에는 지하 도박장으로 쓰이는 이곳에서 보고를 받은 혈방의 지부장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남아 있는 애들 싹 불러! 전부 죽여 버릴라니까!”
지부장은 벽에 걸린 커다란 도끼를 꺼냈다. 그의 우락부락한 몸에는 흉터와 문신이 가득했다.
“잘난 척하던 면상을 당장 쪼개러…….”
그 순간, 우당탕 소리가 나며 지상과 연결된 도박장의 문이 부서지고 무언가가 굴러떨어졌다.
도박장 바깥을 지키고 서 있어야 할 문지기가 피투성이가 된 모습으로 기절해 있었다.
“스, 습격이다!”
“적이다!”
도박장 안의 낭인들이 일제히 무기를 뽑아 들었다.
그 숫자가 족히 오십 명은 되었기에, 혈방의 지부장은 의기양양하게 계단을 향해 소리쳤다.
“이것들이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 들어와 이 새끼들아!”
잠시 후, 계단 위에서 누군가가 천천히 내려왔다.
저벅. 저벅.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규칙적인 발걸음.
“너희가…….”
눈처럼 새하얀 머리카락과 수염, 그와 어울리는 짙은 옥색 도포.
허리를 검처럼 꼿꼿하게 편 노인이 뒷짐을 진 채로 도박장 내부를 둘러봤다.
“혈방이라는 인간 백정의 무리더냐?”
“미친……. 저건 뭐 하는 노인네야!”
혈방의 지부장이 도끼를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삐질삐질 흐르고 있었다.
‘고수다. 엄청난 고수.’
그 모습을 본 노인이 가볍게 혀를 찼다.
“다들 눈에 살기가 가득한 걸 보니, 맞나 보구나.”
“이런 빌어먹을……. 쳐라!”
수십 명의 낭인이 고함을 지르며 달려드는 가운데, 검치 매극렴이 천천히 검을 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