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101
제101화
놈들은 망설이다가 쪽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발밑의 판자가 삐걱하는 소리가 들리고 쇠꼬챙이가 한 놈의 발을 꿰뚫었다. 아무리 우주복이라지만 스프링 장치가 되어 있는 작살을 막을 수는 없었다.
“으윽!”
두 놈 중 한 명의 발등이 작살에 꿰이고 작살이 우주복 신발을 뚫고 위로 튀어나왔다. 사이공 샌드위치라 부르는 부비트랩이었다. 작살에 당한 놈은 고통에 몸부림을 쳤지만 뒤로 쓰러지지는 않았다.
우주복 안에 있는 엑소슈트 프레임이 체중을 떠받치고 부상당한 다리의 하중을 줄여줬다. 놈은 작살을 부러뜨리고는 상처 위에 라미네이트 폼을 치익하고 뿌렸다.
“이 새끼. 부비트랩을 설치하다니? 크윽, 먼저 가.”
다른 한 놈이 문을 열었을 때 위에서 낚싯바늘 같은 쇠꼬챙이가 붕하고 떨어졌다. 쇠꼬챙이에는 콘크리트 추가 매달려서 딱 사람의 머리통이나 목을 찍을 수 있는 각도로 설치되어 있었다.
문을 연 놈의 헬멧을 가가각 긁어놓으며 쇠꼬챙이가 스치고 지나갔다. 반사적으로 목을 옆으로 꺾지 않았다면 문을 연 놈은 낚싯바늘에 꿰인 생선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이 새끼…….”
두 명의 습격자들은 이진영의 여우 같은 함정에 치를 떨었다. 두 사람도 광저우에서 이런 원시적인 부비트랩에 많은 동료들을 잃었다. 하늘에는 최신예 전투기와 궤도폭격이 떨어지지만 결국 깃발을 꽂는 건 보병들이었고 그들의 싸움방식은 이렇게 원시적이고 끔찍했다.
문을 열고 나오니 바로 빌라의 뒷계단으로 이어졌다. 예나 지금이나 소방서에서는 대피로를 막지 말라고 늘 경고를 줬지만 사람들은 온갖 잡동사니를 비상구 계단에 쌓아놓는다.
이 빌라에 사는 사람들 역시 골판지 박스에 물건을 담아 계단을 창고처럼 이용했다. 이진영의 발자국은 선명하게 계단 아래로 이어져 있었다.
“봉식아, 밑으로 내려간 것 같아. 그쪽에서 보여?”
– 아니, 너희들 모습도 안 보여. 드론을 사용할게.
저격수는 드론을 띄웠고 금세 드론이 빌라 뒤쪽을 샅샅이 수색했다. 열화상 스캔으로 아무리 뒤져봐도 보이는 거라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노인뿐이다.
굳이 열화상 스캔까지 안 써도 빌라 주변에 눈이 쌓여 있었고 누군가 빌라 바깥으로 나갔다면 발자국이 찍혔을 텐데 사람들이 이동한 흔적이 전혀 없다.
– 아직 안에 있어. 눈에 발자국이 안 찍혔다.
“그럼 밑으로 내려간 건가? 밑에 층을 수색해줘.”
세 놈의 호흡은 찰떡이었다. 저격수는 쌍안경처럼 생긴 전술 탐색기로 빌라 아래층을 샅샅이 스캔했다.
하지만 탐색기에도 보이는 거라곤 로봇 콜걸과 거나하게 정사를 즐기는 청년이나 TV를 보는 중년 여자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돌입조 두 명은 발자국을 따라 빌라 계단을 통해 내려갔다. 놈들은 여전히 광학위장 판초를 머리에 둘러썼고 멀리서 보면 유령 두 사람이 천천히 계단을 내려오는 것처럼 보였다.
두 놈은 조그만 소리가 들려고 바로 그쪽으로 총구를 겨눴다. 놈들이 계단참까지 내려왔을 때 바람에 쌓인 눈이 밀렸는지 푸르륵하고 눈가루가 위에서 떨어졌다.
뒤에 있던 놈이 반사적으로 머리 위에 떨어진 눈가루를 털어냈고 그때 위에서 뭔가가 스스륵 그의 머리 위로 내려왔다.
“윽!”
뒤에 있던 놈은 단말마의 비명을 내질렀고 그의 동료는 뒤를 돌아봤다. 동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분명 뒤를 따라오고 있었는데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뭐, 뭐야 이거. 어이 벵장님? 어?”
설상가상으로 그들이 쫓아가던 이진영의 발자국 역시 중간에 뚝 끊겨 있었다.
“시, 시발 이건 인디언…….”
인디언 트릭.
신발을 거꾸로 신거나 아니면 거꾸로 내려가며 발자국을 좇아오는 추적자를 따돌리는 속임수였다.
뒤늦게 놈은 자신이 이진영의 함정에 빠진 걸 눈치챘다. 이진영은 발자국을 일부러 찍으며 내려갔다가 완강기 로프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갔고 완강기의 로프로 놈의 동료 하나를 목매달았다.
우주용 엑소슈트 모듈은 관측을 위에 목 부분은 부드러운 소재로 되어 있었고 고작 완강기 밧줄에 걸려 놈은 무력화되었다.
“커윽, 위, 위.”
위에 있는 놈이 버둥거리면서 어떻게든 완강기 로프를 끊으려고 했지만 계속해서 완강기가 기이잉하고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당황한 습격자는 총으로 로프를 노렸다. 인공지능식 조준이라 로프 따위는 손쉽게 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워낙 동료가 몸을 버둥대고 있어 한 방에 맞추지 못했다.
그리고 그때 밑에 있던 습격자의 다리를 뭔가가 깔끔하게 관통했다.
“크윽.”
두 발째는 놈의 헬멧을 아슬아슬하게 관통했고 습격자는 잡지 더미 사이로 몸을 숨겼다.
우주복 모듈을 입은 완전군장의 퇴역병을 상대로 이진영은 간단하게 한 놈을 무력화시키고 다른 한 놈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봉식아, 벵장님이 당했어. 놈은 위쪽에 있다! 드론으로 검색해봐!”
퍽.
소리 없이 총탄이 날아온다. 이진영 역시 군용 레일건을 쓰고 있었고 퓩하는 소리와 함께 잡지 박스에 구멍이 뚫렸다. 마치 펀치기로 구멍을 뚫을 때처럼 구멍이 뚫리고 습격자는 그 구멍으로 이진영이 어디 있는지 알아챘다.
이진영은 옥상 바로 아랫집 비상계단에서 레일건을 겨누고 있었다.
“어, 어떻게 서울에 총기를 숨긴 거지?”
습격자는 어이가 없었다. 봉천동에서 강남은 지척이었고 아무리 경찰이라도 서울에 총기를 가지고 들어올 수는 없었다.
놈들은 이진영이 비무장이라고 착각했다가 오히려 큰코다치게 생겼다.
팡팡팡.
저소음의 레일건 사격이 오고 갔다. 습격자는 전술방패를 펼쳐서 마치 ‘파비스’처럼 앞을 막았고 이진영의 총탄은 방패에 튕기고는 바로 낡은 빌라의 콘크리트에 박혔다.
“아 조용히 좀 해요! 밤마다 이게 무슨 지랄이야!”
“떡을 치려면 바깥에 나가서 치든가! 이젠 아주 빌라를 다 무너뜨리겠네!”
레일건 탄자들이 벽을 때리며 뭔가 쿵쿵하는 소리가 들리자 입주민들은 층간소음인줄 알고 여기저기서 아우성을 쳤다.
입주민들이 난리를 치거나 말거나 이진영과 습격자는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저소음 레일건으로 서로의 머리를 노리며 공격했다. 이진영의 뺨에도 길게 상처가 나고, 습격자의 헬멧 역시 레일건이 스치고 지나가면서 길게 골이 패였다.
“봉식아! 드론으로 자폭시켜! 놈의 위치는 여기다!”
습격자에게는 동료가 있다. 놈은 이진영의 위치를 스캔해서 보내줬고 봉식이라는 저격수는 드론을 자폭모드로 바꿨다.
그러나 이진영에게도 동료는 있었다. 빌라 아래에서 EV-1이 조종하는 오픈프레임 로봇이 올라오더니 드 라일 카빈을 습격자에게 연달아 쏴버렸다.
드 라일 카빈은 2차대전에 영국 코만도들이 작전에서 사용한 총기였고 지금은 박물관에 들어가야 할 구시대의 화약 총기였다. 하지만 올디스 벗 구디스. 소음성능은 여전히 놀라웠다.
습격자는 어디서 총알이 날아오는지 전혀 가늠하지 못했고 EV-1이 쏜 45구경 총탄이 습격자의 어깨를 관통했다.
“으윽!”
습격자가 비틀거리는 사이 이진영의 레일건이 놈의 팔을 맞췄다. 팔에 동그랗게 구멍이 뚫리며 단백질 타는 냄새 같은 게 솔솔 피어올랐다.
아래에서는 EV-1이 소음총으로 저격하고 있었고 위에서도 이진영이 내려오고 있었다. 습격자는 총을 버리고 냅다 비상계단에서 바깥으로 몸을 날렸다.
“현명한 판단이군.”
우주용 엑소슈트 모듈은 굉장히 튼튼했고 안에 들어 있는 사람을 데브리로부터 보호하도록 완충설계가 되어 있었다.
놈은 소복이 쌓인 눈 위에 착지하고 드론의 폭파스위치를 눌렀다.
그러나 EV-1이 그걸 그냥 보고 있을 리 없었다. 로봇은 볼트액션식 소총을 멋들어지게 재장전하고 드론을 45구경 권총탄으로 격추시켰다. 드론의 통신패널이 박살 나면서 폭탄은 불발되고 드론은 잡지 사이에 처박혔다.
“이런 제기랄. 봉식아 철수다!”
– 벵장님은!
“놈에게 잡혔어! 작전은 실패야!”
저 위에는 축 늘어진 ‘벵장님’이 완강기 로프에 걸려 대롱대롱 매달려있었다. 이진영은 마치 참치를 낚아 올린 낚시꾼마냥 벵장님의 엉덩이를 두들기며 놈들이 급히 철수하는 걸 노려봤다.
– 쫓을까요?
“아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저격수는?”
– 항공 탐색 결과 철수하고 있습니다. 하수구로 들어가는군요. 이제는 쫓아가기 힘들 것 같습니다.
“항공? 야, 너 뭘 해킹하고 있는 거야?”
– 경찰청 틸트로터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진영은 어이가 없었는지 허어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너한테는 원한을 사면 안 되겄다. 아주 내 빤쓰까지 다 털어가겠어.”
– 하지만 저만한 친구는 없을걸요? 알라딘 주인님?
이진영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x5 기조야, 그리고 풀리는 의문
한밤에 목숨을 건 총격전을 벌였지만 싱겁게도 이진영의 완승으로 끝났다.
이 빌라 곳곳에는 입주민들도 모르게 이진영의 함정이 설치되어 있었고 이진영이 광저우에서 가져온 무기들도 숨겨져 있었다.
가끔 이진영에게 보복하러 온 탈옥수들이나 범죄자들은 빌라에서 낭패를 당하기도 했다. 설마 강남에서 가까운 봉천동에 무기가 잔뜩 숨겨져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 틸트로터의 강하 램프가 열렸습니다.
“이제 뒷북치시러 슬슬 오시는군.”
– 그놈은 어쩌실 겁니까?
“맡겨둬야지. 그 양반은 나한테 신세를 진 것도 있고 말이야.”
이진영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아이고 격조했습니다. 잘 지내시죠?”
– 뭐야? 이진영이? 미친 새끼 잘 자고 있는데 전화질이야?
“아이고 술 마시는 데 부장님이 갑자기 생각나서 말이죠. 영전하시더니 소식이 감감무소식입니다, 그려.”
– 이진영이 너 뭔데? 또 뭐야?
“부탁드릴게 있습니다. 제 덕에 좋은 곳으로 가셨으니 이번 한 번만 도와주시죠?”
– 니가 그딴 말 하면 난 존나게 무서워.
이진영은 소곤소곤 전화기에 대고 뭔가를 말하면서 대롱대롱 매달린 습격자를 노려봤다. 이윽고 전화가 끝나고 이진영은 EV-1에게서 드 라일 카빈을 받아들었다.
“열려라 참깨.”
이진영은 예의 무기들을 숨겨둔 비상용 궤도폭격 쉘터에 무기들을 되돌려 놓고 잡지 더미들을 무너뜨렸다.
쾅쾅쾅쾅.
뒤늦게 경찰청 직속 특수경찰인 블랙스와트가 강하하는 소리가 들렸다. 보병용 엑소슈트를 장비한 스와트들은 눈가루를 흩날리며 멋지게 빌라 아래에 착지했다.
이진영은 담배를 피우면서 블랙스와트가 올라오는 걸 눈여겨봤다.
“손들어!”
이진영은 담배를 든 채로 대충 손을 드는 시늉을 했다. 저 멀리서는 내사팀의 밴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고 이진영은 담배를 계단 아래로 톡 튕겼다.
빌라 사람들은 경찰들이 잔뜩 들이닥치고 나서야 무슨 일이 터졌다는 걸 깨달았다. 빌라주민들은 이진영이 끌려가는 모습을 보며 혀를 쯧쯧 찼다.
“저 친구 내 사고 칠 줄 알았어. 만날 술만 퍼마시더니.”
“하여튼 퇴역병들은 골칫거리라니까?”
입주민들은 이진영이 경찰이라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고 그를 끌고 가는 사람들이 내사팀이라는 걸 몰랐다.
이진영은 바로 서울 경찰청 본청으로 압송되었다. 형식상으로 수갑은 채우지 않았지만. 이효진의 내사 11팀은 그를 완전히 범죄자 다루듯 끌고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