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109
제109화
이진영은 응사는커녕 애기아빠의 저격을 피하기도 바빴다.
전투 초반이 숨막히는 저격전이었다면 이제 전황은 화약총의 콩 볶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 보병전으로 바뀌었다.
타다다다다!
비용 문제 때문에 쎄잉꺼의 조직원들은 화약총을 많이 들고 다녔다. 화약총이 레일건보다 좋은 점은 바로 소리였다.
인간은 총성에 위축되게 마련이었고 이진영은 마구잡이로 쏴대는 화약 소총 소리에 점점 더 심리적으로 밀렸다.
그러나 쎄잉꺼 패거리는 화약총만 가지고 다니는 건 아니었다.
쎄잉꺼의 주 사업은 우주개발과 링로드와 관련된 이권 다툼이었고 그 이름에 어울리게 우주용 병기를 든 놈들이 속속 폐선 안으로 들어왔다.
우주에서 쓰는 증기식 기관단총은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가우스 건은 달랐다.
플라즈마를 응축해서 쏘는 가우스 건이 이진영의 옆을 때리면서 지향성 레이저처럼 철판을 두동강 냈다. 놈들은 그걸로 이진영을 몰아붙였다.
이진영이 피할 수 있는 곳이 점점 사라져갔다.
우주복을 입은 놈들이 속속 폐선 위로 올라와 이진영을 공격한다. 그는 더블배럴 유탄발사기와 저격소총으로 응사했지만 쎄잉꺼의 조직원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래, 저 새끼들이 우주복을 입고 있는 거에서 쎄잉꺼의 비호를 받는다는 걸 눈치챘어야 했어!”
쎄잉꺼 패거리들 중에는 보험 사기단 놈들처럼 우주복을 입은 놈들이 많았고 바로 이놈들이 쎄잉꺼의 정예부대였다.
간위예 전쟁은 지구상에서만 벌어진 게 아니다.
미국의 궤도엘리베이터 스타즈 앤 스프라이츠를 접수하기 위해 중국은 우주선을 발사해서 공격부대를 보냈고 우주 공간과 궤도 스테이션에서 치열하게 보병전이 벌어졌었다.
지금 저 전투용 우주복들은 첫 ‘우주전쟁’이 남긴 유산이었다. 전투용 우주복이니만큼 어느 정도 충격에 강했고 두터운 장갑을 입은 놈들도 더러 있었다.
놈들은 전술방패를 앞세우고 이진영을 몰아붙였다.
이진영은 할 수 없이 위로, 또 위로 밀리다가 유조선의 높다란 브리지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미 기울어진 유조선 위에도 적들이 새카맣게 몰려들었다.
놈들은 빌딩 같은 유조선 브리지에 마구잡이로 총을 쏘며 낄낄댔다.
쎄잉꺼도 중부서 경찰들에게 감정이 많았고, 이진영을 잡으면 그를 죽이고 아마 굴다리를 순례할지도 모른다. 전에 잡힌 경찰은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당하다가 죽었다.
게다가 이진영은 그들에게도 죽여 마땅한 놈이었다. 천도영 사건으로 이야기가 쑥 들어가긴 했지만, 페어차일드 개발이나 미국은 아직도 신간척지를 눈독 들이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그 발단은 츠루마츠 폭격이었고 원인 제공자인 이진영은 여전히 요주의 인물이었다.
롱꺼는 무슨 이유에선지 이진영을 그냥 내버려 두라고 했지만 웡꺼, 쎄잉꺼는 생각이 달랐다.
이진영은 이제 응사는커녕 고개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저 아래에서 광동어 고함 소리가 연이어 들리며 이제 브릿지도 함락당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쾅!
미사일이 날아오더니 폭발이 연달아 터지면서 브릿지 천장이 내려앉았다.
“으윽!”
이진영은 급히 엑소슈트 모듈을 뒤로 뺐지만, 천장에 엑소슈트가 깔리면서 관절 부분이 두터운 철판에 깔렸다.
계단에서는 이진영을 생포하러 쎄잉꺼의 조직원들이 개미 떼처럼 몰려오고 있었다. 이진영은 발을 빼려고 했지만, 철판에 다리가 으스러지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그는 바텐더에게 받은 권총을 꺼냈다.
쎄잉꺼에게 잡히며 그냥 죽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는 곧 다시 권총을 버리고 산탄총을 들었다.
“아니 시발. 끝까지…… 끝까지 싸운다.”
로봇 만식이는 이진영의 전쟁은 끝났고 행복하게 살라는 말을 유언으로 남겼다.
어쩌면 천수관음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이진영은 매번 스스로 전쟁터에 몸을 던지고 있었으니.
그는 만식이의 유언을 곱씹으며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때.
– 이진영이!
뜻밖에도 이진영의 통신기에서 이민호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국장님?”
– 너 뭐하는…… 미쳤…… 또 대형사고……
쎄잉꺼가 개입하며 이 일대는 통신교란이 걸렸고 이민호의 목소리는 심하게 끊겼다.
– 이진영! …… 갈 거야! …… 기다……
“시발 오긴 뭐가 와요!”
– 이 새끼…… 갈 거라니까!
“지원군이 온다는 거예요? 오지 마세요! 위험해요!”
이진영은 반사적으로 위에 있는 틸트로터를 노려봤다.
틸트로터는 육군 것까지 여섯 대로 늘어났지만, 그냥 고고도에서 선회하고 있을 뿐 밑으로 내려올 기미는 없었다. 블랙스와트가 강하하려면 저 고도에서는 어림없었다.
쾅!
이진영이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뭔가가 떨어졌다.
그는 순간 폭격이라도 떨어졌나 착각했다. 하지만 폭발이 나진 않았고 그냥 주변에 있던 쎄잉꺼 패거리가 놀라서 자빠졌을 뿐이다.
어느새 눈은 눈보라로 변해 세차게 휘날린다. 그 눈보라 속에서 검은 형체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진영은 하늘에서 떨어진 그것을 확인하고 얼빠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브이?”
놀랍게도 하늘에서 강하한 건 블랙스와트가 아니라 EV-1이었다. 천도영 사건 이후 새롭게 개조된 검은 프레임은 눈보라 속에서도 늠름하게 우뚝 서 있었다.
EV-1의 프레임은 아무리 봐도 경찰 로봇과는 거리가 멀었다. 게다가 지금 EV-1은 최신형 KF-37도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과무장 상태였다.
양쪽 어깨에는 식스팩 대전차 미사일 포트가 달려 있고 양 옆구리에는 각각 M2 중기관총과 헬기용 로켓발사기 포트가 달려 있다. 어깨에는 장갑차용 부시마스터 30밀리포가 장착되어 있어서 앞에서 보면 검은 장갑차를 보는 것 같았다.
아무리 이민호라도 쎄잉꺼의 영역에 블랙스와트를 강하시킬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경찰 상부에 강력하게 건의해 EV-1을 내사 해제시키고 이진영에게 보낼 수 있었다.
“하하하. 우리 팀의 마무리 투수가 납셨군.”
– 경위님!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EV-1은 애프터버너와 슬라스터 노즐을 동시에 가동해서 하늘로 날아올랐다. 애프터버너에 쎄잉꺼의 조직원이 허수아비처럼 뒤로 날아갔다.
EV-1은 바로 유조선 브리지의 창문을 찢어발기고 촤르륵 롤러대시를 가동시켜 이진영의 옆에 멋들어지게 착륙했다.
“이브이, 어떻게 된 거냐!”
– 설명하자면 깁니다. 경위님, 일단 사건부터 정리하시죠.
EV-1은 우선 이진영의 다리를 깔아뭉갠 철판을 가볍게 들고 그가 빠져나올 수 있게 도와줬다.
– 괜찮으십니까?
“아니. 제기랄 바텐더에게 면목이 없군.”
엑소슈트 다리 부분은 완전히 으스러져 고치려면 비용이 꽤 들 것 같았다.
– 일단 빠져나가겠습니다.
EV-1은 매니퓰레이터 암으로 이진영을 신중하게 등 뒤의 보병 지휘관석에 싣고 본격적으로 학살극을 시작했다.
계단을 내려오던 놈들은 M2 중기관총에서 쏟아지는 총탄에 허수아비처럼 픽픽 쓰러졌다. 공격모드에 들어간 EV-1 역시 이진영처럼 인정사정없었다. 이진영은 오른손으로 트리거모듈을 쥐고 EV-1이 조준하는 놈들을 인정사정없이 쓰러뜨렸다.
EV-1은 친절하게도 공격 로봇용 글라스 모듈을 싣고 왔고 이진영은 주변 상황은 물론 바깥 상황까지 전부 볼 수 있었다.
EV-1의 레이더가 쎄잉꺼의 트럭과 장갑차를 조준하고 식스팩을 발사했다. 여섯 발의 미사일이 브릿지에서 빠져나오는 것과 동시에 트럭과 중장비에 처박혔다.
로봇은 적중을 확인하지도 않고 등을 돌리며 멋지게 텅 빈 식스팩 모듈을 분리했다. 로봇의 등 뒤에서 화염이 치솟아 오르며 쎄잉꺼의 차량이 박살 나는 모습이 보였다.
x7 영 오발탄 같은 손님이구먼.
“이브이! 그 사람을 찾아야 해! 한승우!”
– 한승우요?
“애기아빠! 그 사람은 딸 때문에 보험 사기에 가담했어!”
이진영을 노린 저격수 애기아빠는 전에 이진영이 만난 제 1기병 출신 중장기병이었다.
이진영은 고가도로 저격 때 부채꼴로 쏜 총탄 중 딱 한 장면에서 뭔가 이상한 걸 눈치챘다.
생일 케이크가 실려있던 차량.
그 승용차에는 로봇과 어린아이가 하나 타 있었고 한승우는 어린애를 관통하면 이진영을 죽일 수 있었는데도 방아쇠를 당길 수 없었다.
바로 그 장면을 감식하고 EV-1은 의문의 저격수가 천수관음이 아님을 알아챘다. 천수관음이었다면 어린아이고 뭐고 바로 총으로 쏴서 죽였을 것이다. 놈은 굉장히 무자비했고 이진영, 한승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놈이었다.
– 그 사람을 구하려고 혼자 돌입하신 겁니까?
“어! 그 사람이 잡히면 애가 치료를 받지 못할 거야! 그 사람은 풀어줘야 해!”
– 하지만 그자는 경관 살해 미수범입니다.
“시팔! 완전히 풀어주자는 건 아니야! 적어도 애가 치료를 다 받고 걸어 다닐 수 있을 때까지만 눈감아줘!”
지금 EV-1은 미친 듯이 총을 쏘고 쎄잉꺼 놈들을 학살하면서도 이진영의 말을 곱씹었다.
– 알겠습니다. 그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저기! 무위공 이순신 위에! 아마 엑소슈트를 타고 있을 거야!”
EV-1은 그 말을 듣자마자 슬라스터 노즐을 가동했고 그와 동시에 또다시 식스팩을 발사했다.
이진영과 EV-1에게 몰려드는 쎄잉꺼 패거리들 머리 위로 두 발의 확산탄이 터졌다.
보병용 확산탄은 작은 궤도폭격이나 마찬가지였다. 작은 캐니스터가 펑하고 터지고 그 안에서 BB탄처럼 작은 원형 탄자가 밑으로 쏟아졌다.
기세등등하게 몰려오던 쎄잉꺼 부대가 단숨에 픽픽픽 쓰러지고 EV-1은 시체들이 쓰러지는 그 자리에 가볍게 낙하했다.
그러나 이대로 멍청하게 당할 쎄잉꺼가 아니었다.
“랜드쉽이다! 이브이!”
지상전의 왕자는 엑소슈트나 공격 로봇이 아니었다. 광저우 전역에서 주력전차가 시가전에서 보병들의 공격에 취약한 걸 보고 중국군이나 미군은 다포탑 중전차를 투입시켰다.
랜드쉽은 첫 전차이자 ‘랜드쉽’이라는 별명이 처음으로 붙은 영국군의 마크1과 외형이 상당히 비슷했다. 궤도폭격에도 견뎌낼 수 있도록 장갑을 배치하고 사방에 떡장갑을 붙여놓다 보니 마크1과 비슷해졌다.
마름모꼴로 생긴 모습에 위쪽에는 반구형의 무인포탑이 여러 개 달린 모습이었고 그 포탑들에서 쏟아져 나오는 레일건 포탄은 보병의 소총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쾅! 비폭발 탄자가 마치 폭발이 터지는 것처럼 EV-1과 이진영 옆에서 터졌다. 두 개의 대형포좌가 다시 로봇을 노릴 때 다른 무인포탑에서는 대공포가 다다다다 쏟아져 나왔다.
“미, 미친 새끼들.”
한승우는 저격용 스코프로 이 광경을 지켜보다 헛웃음을 터뜨렸다.
지금 쏘면 이진영을 죽일 수 있었지만, 그는 랜드쉽을 향해 자살돌격을 하듯 달리는 콤비를 보고 차마 방아쇠를 당길 수 없었다.
북경까지 지옥을 맛봤던 한승우도 과연 랜드쉽을 EV-1이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했다.
EV-1은 정말 자살돌격이라도 감행하는 것 같았다. 랜드쉽의 두 개의 포탑에서 쏟아져 나오는 포탄 중 단 한 발만 EV-1에 맞으면 EV-1은 끝이었다.
그러나 딱 하나 랜드쉽보다 EV-1이 우위에 있는 게 있다면 바로 인공지능 그 자체였다.
포탑을 조준하는 건 전차의 전임인공지능이었고 인공지능은 수많은 데이터를 토대로 EV-1의 예상 이동지점을 공격했다.
하지만 EV-1은 보통의 전임인공지능보다 연산 능력이 훨씬 더 뛰어났고, 어린애를 가지고 놀 듯 포탄을 전부 피하는 묘기를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