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116
제116화
관광객들과 상인, 곡예사로 가득 차 있던 중화대루 앞의 큰 길이 완전히 비워지고 롤스로이스 리무진이 줄지어 중화대루 앞에 멈춰 섰다.
이제는 박물관에 들어가야 할 가솔린 리무진을 본 한 관광객이 사진을 찍으려다 험악한 웡꺼의 조직원에게 핸드폰을 빼앗겼다. 관광객은 영어로 핸드폰을 돌려달라며 항의했지만 웡꺼 조직원들은 핸드폰을 바닥에 패대기치면서 눈을 부라렸다.
리무진이 도착하며 한껏 달아올랐던 분위기는 완전히 살벌해졌다. 이곳이 괜히 세계 3대 우범지구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란 걸, 관광객들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유니폼을 갖춰 입은 웡꺼의 조직원들이 중화대루 앞에 줄 맞춰 서고 관광객들을 향해 총을 겨눴다. 놀란 관광객들 중에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사람도 있었다.
웡꺼의 조직원들은 눈을 부라리며 누군가 총 비슷한 거라도 꺼내는 순간 그쪽을 벌집으로 만들어놓을 기세였다.
큰길의 상황이 정리되고 롤스로이스의 문이 열렸다. 변검사처럼 가면을 쓴 누군가가 내리고 그 뒤를 양복 정장을 입은 조직원들이 우르르 쫓아온다.
누군가가 양복을 입은 조직원들의 완장을 보고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로, 롱꺼다.”
월미도의 지배자.
전 세계 최대 폭력조직의 보스.
230만 난민의 정점에 서 있는 사람.
가면을 쓴 사람은 바로 난민들의 우두머리인 롱꺼였다.
롱꺼의 가면 속 얼굴을 본 사람은 몇 명 밖에는 없다.
사람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롱꺼가 중화대루의 계단을 천천히 오르는 걸 지켜봤다.
이곳 중화대루는 롱꺼의 부하인 웡꺼의 영역이었다.
왜 롱꺼는 춘절날 중화대루에 찾아온 걸까?
롱꺼의 본거지는 중화대루보다 더 깊숙한 곳 어딘가였다.
롱꺼는 그 본거지에 처박혀 두문불출했고 이렇게 롱꺼가 직접 모습을 드러내는 건 정말로 이례적인 일이었다.
롱꺼가 웡꺼 2인자의 환대를 받으며 중화대루 안으로 들어가자 기다렸다는 듯 또 다른 리무진이 중화대루 앞에 멈췄다.
이 리무진은 내연기관이 아니라 최신형 미국제 크라이슬러 리무진이었고 얼핏 보면 우주선을 보는 것처럼 차 겉면이 은색으로 반짝였다.
크라이슬러에서 문이 열리자 더더욱 살벌한 분위기가 되었다. 이번에도 가면을 쓴 사람이 제일 먼저 내리고 보병용 엑소슈트와 우주장갑복을 입은 사람들이 좌르륵 따라 내렸다.
이번에도 누군가가 수행원의 옷만 보고 가면을 쓴 사람이 누군지 알아차렸다.
“사다우카! 그, 그럼 저건 쎄, 쎄잉꺼다.”
별 형님, 쎄잉꺼가 롱꺼의 뒤를 따라 중화대루로 올라간다.
이로써 세계 최대의 폭력조직의 세 명의 수장이 모두 중화대루에 모인 셈이었다.
“도,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왜, 세 명의 따이꺼들이?”
관광객들은 물론이고 상인들이나 난민들도 불안한 눈으로 쎄잉꺼가 호텔 안으로 들어가는 걸 지켜봤다.
롱꺼 조직이 난민지구를 평정한 후 처음으로 세 보스가 공개적인 장소에서 만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중화대루에 오는 것은 세 보스만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테크니컬 전투트럭에서 인민복을 입은 누군가가 뛰어내렸다.
“체잉꺼(靑哥)다.”
체잉꺼는 얼굴이 알려진 보스 중 한 명이었고 전쟁 때 한쪽 눈을 잃는 바람에 안대를 하고 있었다. 거기에 체잉꺼는 광동자유군 군복을 입은 채 주렁주렁 기관총 탄띠를 목에 걸고 있었다. 마치 조금 전까지 전쟁터에 있다 온 모양새였다.
체잉꺼는 마치 프로레슬링 선수들이 입장할 때처럼 환호성을 유도하며 건들거리며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체잉꺼를 시작으로 짬꺼(毡哥) 등 군소조직 보스들이 차례로 중화대루에 도착해 제각기 다른 행동을 하며 호텔로 들어간다.
어떤 놈은 체잉꺼처럼 쇼맨십을 부리는 놈이 있는가 하면, 어떤 놈은 회사로 들어가는 샐러리맨처럼 축 처진 어깨로 들어가는 놈들도 있었다.
지금 롱꺼 산하의 모든 조직 보스들이 중화대루에 모였다.
굴다리에 잠복한 경찰은 다급하게 경찰청 본청에 이 이변을 알렸다. 하늘에는 대번에 경찰과 육군의 틸트로터가 떠서 선회하고 웡꺼는 레이더를 켜서 미사일을 조준했다.
즐거운 설 명절에 왜 조직의 모든 보스가 한곳에 모이게 되었을까?
경찰, 육공은 물론 난민들도 그걸 궁금해했지만, 알 방법은 없었다.
중화대루 안에서도 호텔과 식당 올드차이나가 싹 비워져 있었고, 그 안에는 롱꺼의 조직원 외에는 들어올 수 없었다.
롱꺼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드차이나에 들어섰을 때 안에 있던 웡꺼가 활짝 웃으며 그를 맞이하러 나왔다.
“龍哥好久唔見啊! 恭喜,恭喜 新年好呀! (롱꺼 오랜만입니다! 신년 축하드립니다!)”
롱꺼는 별다른 인사 없이 웡꺼의 어깨를 두드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롱꺼는 아직도 가면을 쓴 채였고 웡꺼는 중국 알록달록한 중국 청나라 부자 옷을 입고 롱꺼를 안내했다.
롱꺼는 원형 테이블의 가장 상석인 창가 쪽 자리에 턱하고 앉았다. 롱꺼가 자리에 앉자 인사치레를 마친 웡꺼가 이번에는 쎄잉꺼에게 인사를 건넸다.
“星弟你好啊? 我聽咗最近你嘅事業好繁盛嘅? (동생 잘 지냈나? 듣자 하니 요새 사업이 잘된다며?)”
“黃哥, 唔使過讚啊, 只有鑽小錢 (형님,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그저 푼돈이나 번 거죠.)”
웡꺼는 쎄잉꺼에게 ‘요놈 봐라’하는 식으로 삿대질을 하며 낄낄 웃었다.
쎄잉꺼가 롱꺼의 옆에 앉자 각 보스들이 속속 들어와서 롱꺼와 웡꺼에게 신년 인사를 하고 알아서 자리를 찾아 앉았다. 널따란 원형 테이블을 빙 둘러서 각 보스들이 착석하자 롱꺼는 말없이 술 한 잔을 따라 들어 올렸다.
각 보스들도 앞다퉈서 술잔을 들고 말없이 술을 들이켰다.
롱꺼는 잔을 탁하고 내려놓고 가면을 벗었다.
각 조직의 보스들은 롱꺼의 얼굴을 알고 있었고 술을 들었을 때 각 보스들의 수행원들은 전부 이 별실의 자리를 비우고 바깥으로 나갔다.
쎄잉꺼도 가면을 벗고 가면을 쓴 사람들은 앞다퉈 가면을 벗었다. 롱꺼는 광동어로 계속 말했다.
“신년을 맞이하여 이렇게 형제들을 볼 수 있게 된 것에 다시 한번 천지신명에게 감사드린다.”
롱꺼는 일어서서 포권의 예를 취하며 각 보스들과 눈을 마주쳤다.
“오늘 이렇게 모인 것은 다름이 아니라 금년의 새로운 사업들과 앞으로 조직이 나아갈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롱꺼는 다시 한번 술잔에 술을 따라 선 채로 마셨다. 각 보스들도 롱꺼를 바라보며 독한 백주를 들이켰다.
“먼저 웡 형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던데?”
롱꺼가 자리에 앉고 웡꺼가 일어선 후 그의 말을 미녀 통역 로봇이 비장하게 대신 말했다.
“이제 병력은 충분히 모였다. 전 세계에서 동포들이 보내준 자금도 충분히 쌓였다. 이제 봉기를 일으켜도 좋다.”
쎄잉꺼는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들었다.
“형님, 봉기라니요? 그건 다 옛날이야기 아닙니까? 지금 링로드로 장사가 다 잘되는데 왜 하필 봉기 이야기를 꺼내시는 겁니까?”
“동생, 우리는 광동자유민이다. 한국 놈들의 노예가 아니야. 동생도 핍박받는 우리 동포들을 보지 않았는가?”
쎄잉꺼는 콧방귀까지 뀌지는 않았지만 가당찮다는 듯 웡꺼를 쳐다봤다.
웡꺼는 방금 말한 ‘동포’의 아이들을 인신매매해서 장기매매나 매춘용도로 팔아버리고 있었다.
이 자리에 앉은 사람들 모두는 웡꺼의 사업을 잘 알고 있었고 그가 진심으로 핍박받는 동포들을 위해서 봉기를 입에 올린 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의외로 웡꺼는 진심이었다. 그는 전쟁 때 목을 부상 당하고 자신을 그 꼴로 만든 중국은 물론 대한민국에도 원한을 가지고 있었다.
“롱 형님, 우리들을 위해서라도 이제는 국가를 세워야 합니다.”
“…….”
롱꺼는 말없이 술을 따라 들이켰다.
“지금의 우리라면 얼마든지 국가를 세울 수 있습니다. 병력도 있고, 국민들도 있습니다. 무기도 쌓였고요.”
“왜요 형님, 군대를 일으켜 북중국에 쳐들어가시려고? 그 꼴을 한국이나 미국이 잘도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그려.”
“쎄잉, 입조심해라. 너도 알잖아? 미국은 이미 페어차일드 개발과 손잡고 난민지구를 갈아엎으려고 했어. 먼저 선수를 치지 않으면 우리는 이곳에서도 쫓겨날 거야. 그다음은 어디로 가게? 다시 바닥부터 시작하자고? 난 싫다.”
여기 모인 모든 보스들은 난민지구가 생긴 이후 그 혼란을 몸으로 겪은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웡 형님. 누가 우리를 국가로 인정해 줄까요? 누가 어떻게 뭘 해주겠다는 겁니까? 우리는 폭력으로 제국을 세웠고 그 어떤 나라도 우리를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그냥 지금처럼 조용히 돈이나 벌고 경제 돌아가는 거나 보면서 놉시다? 어때요?”
쎄잉꺼와 웡꺼의 조직은 사업 내용부터 달랐다. 웡꺼는 무기 밀수와 인신매매 등이 주 사업이었지만, 쎄잉꺼는 궤도 엘리베이터와 링로드를 둘러싼 이권 사업이었다.
전쟁과 평화.
웡꺼의 사업은 전쟁이나 분쟁이 있어야 큰돈을 벌고 쎄잉꺼의 사업은 정반대로 평화 시, 교역을 해야 돈을 번다.
웡꺼의 말대로 봉기를 일으키기라도 한다면 자연스럽게 쎄잉꺼의 사업은 큰 타격을 받게 된다.
교역하는 국가끼리는 전쟁하지 않는다는 루소의 영구평화론이 여기서는 어째 제대로 들어맞았다. 쎄잉꺼로서는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는 사업이 웡꺼의 ‘내전’ 때문에 타격받는 걸 원하지 않았다.
두 형제는 늑대처럼 으르렁거리며 서로를 노려봤고 처음 인사할 때의 가식적인 분위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정 대령.”
“예? 누구요?”
“정 대령이 도와주겠다고 했어.”
“정 대령이라면…….”
쎄잉꺼는 잠시 생각하다가 코웃음을 쳤다.
“아, 그놈이군요. 형님한테 잡혀서 정말로 껍질이 벗겨지다가 몸값 내고 풀려난 놈.”
“그래, 그 정 대령. 정 대령은 미국 CIA와 이어져 있고, 페어차일드 개발과도 직접 통한다. 그들을 구슬리면 개발권을 페어차일드에게 주고 우리는 신분보장과 난민국가로서 인정을 받을 수 있어.”
“페어차일드요?”
쎄잉꺼도 그 말에는 눈을 빛냈다.
페어차일드는 미국 단독으로 만든 궤도 엘리베이터 스타즈 앤 스프라이츠의 민영지분을 가지고 있었고 우주 태양광 발전과 우주 개발의 선두주자였다.
지금도 화성의 개척지에 물자를 보내고 달에서 희귀광물을 캐면서 페어차일드 개발은 어마어마하게 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페어차일드는 궤도 엘리베이터의 ‘무게 쿼터’를 가지고 있다.
궤도 엘리베이터 컨소시엄에 참여한 기업들은 막대한 자본을 들이부었다.
그 대가로 궤도 엘리베이터를 화물의 무게를 재서 쿼터 한도가 있는 한 화물이든 승객이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미 국방부도 우주함대를 만든답시고 물자를 궤도권에 올려놓는 데 골머리를 앓는 판에 페어차일드는 무게 쿼터로 궤도 스테이션 한쪽에 우주 별장까지 만들어놓았다.
“페어차일드라…….”
쎄잉꺼가 궤도 엘리베이터에 직접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했다.
“정 대령을 믿을 수 있을까요?”
“흐흐흐, 놈은 증명했잖아? 시험 삼아 마이크로웍스와 아선을 치고도 놈은 아직 잡히지도 않고 있어. 이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나?”
“확실히…… 그가 미국 정부의 비호를 받고 있다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