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127
제127화
송도.
한때는 빌딩 숲을 이루며 인천에서 최고로 잘 나갔던 시가지는 중국군의 폭격으로 급격히 슬럼화가 되었다. 또한 이곳은 신간척지 난민지구와 아주 가까웠고 방벽 하나만 넘으면 바로 난민지구였다.
난민지구와 가까운 곳은 아무래도 마약이나 그런 쪽 인물들이 꼬이게 마련이다.
가뜩이나 슬럼화되었던 송도는 부서진 건물들 사이로 마약 중독자들이 널브러져 있는 그런 마굴이 되었다.
이진영은 버스에서 내린 후 바로 폭발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이미 소식을 듣고 모인 44팀 팀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오, 한창 뽈 신나게 차고 있는데 폭탄이 터질 게 뭐람? 제가 골을 넣었는데.”
어찌나 급하게 달려왔는지 김대현은 아직도 형광색 축구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다른 팀원들도 모처럼 일요일 늘어지게 휴일을 즐기다가 폭탄을 처맞고 끌려온 행색이다.
김상현은 아이와 놀아주다가.
임은혜는 미용실에서 머리하다가 롤을 머리에 붙인 채로.
유인환은 게임하다가.
멀쩡한 사람은 당직인 윤숙희와 그냥 경찰서에 나와 있던 전상영 밖에 없었다.
이진영은 EOD 로봇으로 벌써 감색을 시작한 전상영에게 다가갔다.
“선배님.”
“로봇 폭탄이야. 로봇에 폭탄을 설치해서 터지게 한 거지. 파편은 원형으로 비산했고.”
“그 말은 처음부터 사람을 노렸다는 건가요?”
“그래, 이 팀장. 이건 명백히 사람을 노린 테러 사고야.”
이진영은 허름한 공원에서 주변을 돌아봤다. 이 공원은 그래도 가족 단위로 많이 나와서 쉬는 곳이었다. 사고가 있었음에도 저 멀리서 배드민턴을 치고 있는 아이들도 보였다.
“이브이, 성명을 낸 단체는.”
– 인간해방전선입니다.
“그 새끼들은 뭐 다 지들이 했대?”
신희정의 정보로 이진영은 아선과 마이크로웍스 테러가 그들의 소행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때도 그랬지만, 뻔뻔하게도 인간해방전선은 이번 테러 역시 자기들 소행임을 밝히면서 인간해방을 외치고 있었다.
“아무튼, 선배 감식 결과는 어떤가요?”
“좋지 않아. 하지만 프로의 솜씨가 아니라는 건 알겠어. 이 케이블 정리가 말이야. 엉망진창이야.”
전상영은 파괴된 로봇의 양자두뇌와 연결된 일종의 신경가닥인 케이블들을 보여줬다.
“초짜 솜씨야. PLF 놈들은 이딴 싸구려 케이블 안 써. 까딱 잘못했다간 지들이 날아갈 수 있거든. 여기까지 폭탄이 터지지 않고 온 것만 해도 기적이야.”
윤숙희가 말했다.
“팀장님, 초짜라니까 검색해 보니 대학의 학생조직과도 러다이트 테러리스트들이 연계되어 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진영은 점점 과격하게 변해가는 반기계주의 학생운동의 현장에 갔다 왔다. 대학생들은 경찰의 프락치라고 몰아서 벌써 한 명을 때려서 죽였다.
“초짜라……. 선배 이거요, 로봇을 뜻대로 조종하려면 관련 기술자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로보틱스 비헤이비어 널리지라던가, 액츄에이션 엔지니어링 관련 기술이 필요하지. 로봇 3원칙을 사실상 바이패스하는 거니까.”
전상영은 구수한 발음으로 영어를 섞어 쓰는 게 또 특징이었다.
이진영은 로봇행동공학, 구동공학 그리고 로봇 3원칙의 우회에 대해서 생각했다.
로봇 폭탄 테러는 생각보다 까다롭다. A에서 B 지점까지 폭탄을 나르면 그만이니 간단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로봇 3원칙은 그 간단한 작업을 까다롭게 만든다. 로봇은 아무리 청소 로봇이라도 최소한 인간에게 해가 될 물건을 나르는 행위는 수행하지 않는다.
그 이익형량은 아무리 인간이 지능이 낮아도 불붙은 장작을 손으로 잡지 않는 것과 비슷했다. 로봇은 주변 사물의 인식은 물론 로봇끼리의 인식으로도 인간에게 위험한 물건을 구분해 낼 수 있다.
청소 로봇이 폭탄을 판단 못 해도 경찰 전임 인공지능이 판단해서 ‘너 폭탄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주는 식이다.
그래서 저가형 청소 로봇들은 폭탄 테러에 결코 사용되지 않는다. 이들은 장착한 게 폭탄이라는 걸 모를 테지만 곳곳에 있는 다른 인공지능이 위험을 감지하고 로봇을 멈추게 한다.
인간의 명령보다 인간을 해치지 않는 것이 명령상 우위기 때문에 경찰 인공지능의 통보를 받은 인공지능들은 그 자리에서 멈추기 마련이었다.
“여기 사용된 로봇은…….”
– 호리코시의 고급모델입니다. 아무래도 이 회사는 팀장님과는 악연이 있는 것 같군요.
또 호리코시였다. 특별 단독 스캔들로 나락에 갔다고 생각했더니 호리코시는 의외의 사업에서 대박을 쳤다. 그것도 이진영과 관련이 있었다.
호리코시는 엑소슈트도 만들고 있었고 미군 군납 엑소슈트인 랜서도 호리코시와 제너럴 에어로믹스의 합작품이었다. 그 랜서가 한승우의 놀라운 기동으로 재평가되며 대박을 쳤다.
덕분에 일반 로봇 라인도 아선 등 다른 회사에게 인수합병되는 걸 피했고 지금도 짱짱하게 가정용 라인업을 뽑아내고 있었다. 폭탄 테러에 사용된 모델은 인조 스킨이 씌워진 고급형이었다.
“로봇 소유주는?”
이번에는 임은혜가 서류를 뒤적이며 말했다.
“예, 분실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 소견에는 납치가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전상영 선배님의 말대로 전문가가 있을 겁니다. 로봇은 제2원칙 부칙 때문에 함부로 다른 사람의 명령을 듣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경우는 부칙보다 로봇의 선한 사마리아 법이 우선하겠지. 1원칙 말이야.”
2원칙 부칙은 바로 ‘정당한 명령권자’라는 조건이다.
2원칙을 그대로 나이브하게 적용하면 길을 가는 모르는 사람이 자신의 소유가 아닌 로봇에게 ‘따라와!’라고 말하면 로봇은 따라갈 수밖에 없다.
이래서야 로봇의 소유권 문제는 물론이고 경찰 로봇까지 범죄자에게 쩔쩔매게 된다.
바로 이것 때문에 인공지능 설계자는 정당한 명령권자의 명령만을 듣도록 설계한다. 하지만 2원칙 부칙까지 무시되는 경우도 있었다.
바로 1원칙, 즉 인간이 극도로 위험해지면 로봇들은 아낌없이 몸을 던진다.
당장 천도영 사건 때 열차에서 사과를 나르던 로봇이 류모성을 대신해서 목숨을 바쳤었고 사람들은 로봇 1원칙을 ‘로봇의 선한 사마리아 법’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사실 선한 사마리아 법도 법이론을 따져보면 로봇 공학 3원칙과 굉장히 닮았다.
자신이 위험하지 않다면 죽어가는 다른 사람을 도우라.
로봇은 로봇 3원칙, 로봇 자신이 위험하지 않는 한 로봇 1원칙이 우선되며 위험에 빠진 인간을 모른척할 수 없다.
그러나 2원칙 부칙 때문에 꽤 자주 논란이 되기는 했다. 저가형 로봇들은 센서의 범위 문제로 가끔 위험에 빠진 인간을 인식할 수 없어 이익형량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호리코시의 고급모델 정도 되면 이익형량으로 타인의 명령, 그것도 테러범의 명령 정도는 거부할 수 있을 거야. 로봇의 선한 사마리아 법을 우회하려면 꽤나 공을 들였을걸?”
작년 여름을 달궜던 특별단독 사건도 로봇 1원칙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온갖 수단이 다 동원되었다.
“근데 폭탄은 초짜가 만든 물건이라.”
그 순간 이진영은 온갖 플래카드가 걸린 서울대를 떠올렸다.
“이브이, 혹시 인공지능 관련 기술자들이나 학생들 중에 러다이트 관련 테러로 수배된 사람들 명단 볼 수 있을까? 폭탄 기술은 초짠데 고급 로봇의 이익형량을 가지고 놀 기술자들은 그리 많지 않으니까.”
말이 끝나자마자 EV-1은 이진영의 핸드폰 화면에 수많은 수배명단을 띄워주었다. 팀원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44팀 명물 콤비의 세트플레이를 지켜봤다.
– 팀장님. 기묘한 우연이군요.
“뭐가 또?”
– 말씀하신 수배 명단에 공과대 학생회장이 있습니다. 한 번 탐문조사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이진영은 수첩을 펴서 아까 서영은에게 받아적은 명단을 바라봤다.
공과대 학생회장.
“하하이고 수배 중인데도 로맨스라? 캬아. 한창 좋을 때다잉.”
44팀 팀원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이진영을 쳐다봤다.
“아, 뭐. 다들 궁금하실 것 같으니. 이건 아까 웡꺼…… 아니 진소홍의 창고를 떨었을 때 나온 반지고, 이 명단은 진소홍의 남자친구들.”
44팀 팀원들은 폭탄테러 로봇보다도 요리사의 딸 진소홍에 대해 더 관심이 많은 모양이었다.
“제가 서울대로 가겠슴다!”
임은혜가 손을 번쩍 들었다.
“안 돼.”
“힝, 왜요?”
“서울대 분위기 험악한 거 알잖아? 경찰 뱃지를 보여주는데도 때려죽일 기세였어. 여기는…….”
김대현이 손을 들었다.
“후후후, 베테랑 형사가 필요하시겠죠?”
“아니, 집이랑 가까우니 내가 갈게. 시발, 오늘 강남하고 인천을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는 건지. 코레일에서 할인 쿠폰이라도 줘야 해.”
그때 이진영의 뒤에서 뜨뜻한 입김이 느껴졌다.
“팀장, 내가 가지. 그쪽에 아는 교수도 있고.”
“아! 깜짝이야. 아니 전상영 선배! 그냥 앞에서 말을 하면 되지 왜 꼭 뒤에서 말을 거는데요?”
“아는 사람이 있어.”
전상영은 음침한 얼굴로 눈만 초롱초롱 빛냈다.
“아, 예. 근데 PL 계열 애들한테 괜찮겠어요? 걔네 살벌하던데요? 경찰 옷만 보여도 쇠파이프로 후려칠 기세였어요.”
“뭐, 뭐하면 로봇도 있으니까.”
전상영의 파트너 로봇은 그가 계속 마개조를 하던 EOD 로봇 파이로였고 내구도는 EV-1 못지않았다.
“음, 근데 파이로는 데리고 가면 너무 눈에 띌 겁니다. 그렇다고 혼자 보내기는 그렇고. 유인환, 선배님이랑 같이 가라.”
“흐흐흐, 호위병입니까?”
“그래. 서울대 안이라 무기는 못 챙겨갈 테니 가능하면 들키지 말고 전투도 하지 말고. 어디까지나 탐문이야. 첩보를 들으면 바로 공유하고.”
유인환은 러다이트 테러리스트랑 일선에서 싸우던 전투경찰 출신이었다. 아직 풋내기 러다이트인 학생 운동가들을 상대로 이보다 더 좋은 호위병은 없었다.
“그리고오. 로봇 주인과 만나는 사람은…….”
이번에도 임은혜가 손을 번쩍 들었고 이진영은 각각의 팀원들을 수사에 배치했다. 특별경계기간 이후 손발을 맞추면서 팀원들은 척하면 척이었다.
이진영이 수첩에 각각의 조사처를 적었을 때 또 핸드폰이 울렸다.
“아따 그 양반 아직 쌀도 안 불렸는데 밥 타령할 거 같네. 예, 부장님 이진영입니다아. 현장에 있슴다.”
이진영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바로 중부서 강력대응팀 1팀에서 44팀까지, 중간에 ‘영구결번(?)’이 된 팀을 제외하고 총 34개 팀을 이끄는 강력전담부 부장이었다.
– 어, 현장 어디?
“로봇 원격 폭파 테러요.”
– 아, 거기? 잘됐네. 사건 하나 더 맡자. 공항 근처에서 익사체가 나왔다고 공항경찰에서 신고가 들어왔어. 중부지청에서 검시 받아와.
“예? 익사체요? 고거슨 다른 팀에 배당하시면 안 될까요? 지금 로봇 테러 쫓느라고요.”
– 아, 그 근처야. 얼른 가. 그리고 또 하나 있어. 서장님 강아지가 분실되었대. 그것도 찾아보고.
“아니 부장니임……. 하다하다 서장님 강아지까지 찾아야 합니까? 그냥 그건 공공로봇망으로 찾는 게 더 빠르지 않나요? 그리고 저희 강력부는 강력 사건만 전담하는 거 아닙니까? 살인, 강간, 강도 뭐 이런 거.”
– 아, 몰라. 사진 보냈으니까. 오늘 중으로 찾어. 안 그럼 니네 수사활동에 애로사항이…… 알지?
강력부 부장은 막무가내로 통화를 끊고 포메라니안 강아지 사진을 보냈다.
“나참, 개는 귀엽긴 하네.”
“그르게요. 귀엽네요.”
“임은혜, 그럼 니가 찾아볼래?”
“아뇨, 저는 이만 가보겠슴다.”
“그럼 이 개는…….”
임은혜가 경례를 마치는 것과 동시에 냉큼 다다다 파트너 로봇과 도망쳤고 다른 사람들도 제각각 이진영이 나눠준 대로 탐문수사를 하러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