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128
제128화
이진영은 폭발 현장에 홀로 남아 벤치에 앉았다.
“아니 뭔 시발 대응팀한테 개를 찾으라고 난리야. 가뜩이나 티오도 모자른판에.”
– 팀장님 공공망에 접속할까요?
“그냥 냅 둬. 바빠 죽겠는데 서장 개까지 찾아야 하냐? 우리는 익사체 부검이나 하러 가자. 구자연 부장검사님도 오랜만에 뵈어야겠군.”
– 그러면 진소홍 사건은 어떻게 할까요?
“그건 내사잖아. 수사 착수한 것부터 우선해야지.”
– 후후, 팀장님이라면 진소홍 사건을 캘 줄 알았는데요?
“더 이상 한량 경위가 아니라는 거지. 휴, 딸린 식구들이 많아서 걱정이다. 가자 이브이.”
이진영은 윤숙희가 타고 온 순찰차로 익사체가 발견된 현장으로 향했다.
* * *
월미도에서 익사체가 발견되는 건 그리 낯선 일은 아니었다. 한때 롱꺼 패거리끼리 월미도에저 전쟁을 벌였을 때 월미도 해변에는 마치 노르망디 상륙작전마냥 수많은 시체가 물에 휩쓸려 떠내려오기도 했다.
지금도 비바람이 치는 날이면 종종 신원을 알 수 없는 시체들이 해변에서 발견된다. 대부분은 난민들이었고 난민들의 시체 따위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신영종공항의 부지는 구 영종공항의 활주로등 부지 일부를 점유하고 있긴 하지만 신간척지의 섬 같은 곳이었다. 육지와는 냉전 시절 베를린처럼 긴 신영종대교로 이어져 있고 공항 외곽은 간척 테넌트를 일부러 뜯어버려 폭이 넓은 만이 만들어져 있다.
난민들이 공항으로 넘어오지 못하게 물리적으로 만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덕분에 신영종공항은 가장 착륙하기 어려운 곳으로 악명이 높았다. 일단 링로드를 옆에 끼고 착륙해야 하는 데다 동쪽에서 오는 비행기들은 난민지구의 무허가 건물들을 피해서 착륙해야 했다.
지금도 여객기 한 대가 아슬아슬하게 중화대루 꼭대기를 스치고 곡예비행을 하듯 영종공항에 착륙했다. 그나마 츠루마츠가 없어서 망정이지 츠루마츠의 게이샤 간판은 항공사에겐 눈엣가시였다.
이진영은 여객기가 착륙하는 걸 멍하니 바라보다가 담배를 바다에 던졌다. 담배가 떨어지기도 전에 EV-1이 매니퓰레이터 암으로 담배꽁초를 잡았다.
– 환경오염입니다.
“딱히 내가 안 더럽혀도 충분히 드러운 거 같은데? 고지식한 녀석.”
그는 더러운 인천 앞바다를 힐끔 바라보며 푸념을 했다.
현장에는 정복을 입은 공항 경찰이 배치되어 있었고 경찰은 이진영을 알아보고 경례를 붙였다. 경관 뒤로는 높다란 공항 펜스가 좌르륵 이어져 있고 만 건너편에 있는 월미도 신간척지, 그리고 쭉 뻗은 해안도로가 보인다. 해안도로 너머는 쎄잉꺼의 폐차장이었다.
이곳은 평일에도 사람이 드나들지 않는 곳이고 굉장히 황량했다. 시체는 뻘과 자갈이 섞인 해변에 널브러져 있었다.
“으윽. 뭐에요. 이건?”
시체는 생각보다 상태가 안 좋았다. 바닷속에서 오래 있었는지 부풀어 올랐고 물고기들에게 여기저기를 뜯어먹히면서 피부도 징그럽게 문드러졌다.
“저희 공항관리 로봇이 발견…….”
쐐애애액!
공항 경찰이 상황을 설명하려고 할 때 초음속 여객기가 착륙했다.
그 옛날 콩코드 호를 닮은 여객기는 크기가 무려 120미터에 달했고 델타형 날개도 굉장히 커서 비행기가 착륙할 때 이진영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관광객들은 옛 카이탁 공항처럼 난민지구의 네온사인을 배경으로 비행기가 착륙하는 모습을 찍으러 공항 담장을 넘기도 했다.
이윽고 비행기가 끼이익 착륙하고 경관과 이진영이 대화를 이어갔다.
“또 사진 찍으러 온 관광객일까요? 신원은요?”
“일단 여자라는 건 알겠는데. 저희 쪽 로봇으로는 감식이 잘…….”
“아, 그쵸? 돌돌아 감식해봐.”
오랜만에 돌돌이가 활약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돌돌이가 순찰차 뒤에서 냉큼 바퀴를 돌돌 거리며 다가오다 뻘밭에 철푸덕 엎어졌다. EV-1은 매니퓰레이터 암으로 돌돌이를 들어서 시체 근처로 다가왔다.
돌돌이는 일단 외부상태만 확인하고 이진영에게 결과를 알려줬다.
“돌돌아, 사인이 익사가 아니라고? 아, 이거 골치 아프게 됐네.”
돌돌이는 자신을 믿지 못하겠냐는 투로 삐리빕하고 신호를 냈다.
“알았어. 알았어. 사인은 아직 불명이지만 단순 익사는 아니다. 그거군.”
– 발에 이상한 흔적 있습니다.
이진영도 이미 익사체의 발목 피부가 벗겨진 걸 눈치챘다.
– 이 흔적은 뭔가로 묶은 흔적 같습니다. 피부조직 일부에서 섬유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밧줄로 추정됩니다.
“Lays a cement bag just dropping on down~~ That’s cement’s there, it just for the weight, dear~~ (첨벙하고 빠지는 시멘트 백은 말이지, 그건 그냥 무게 때문에 달아놓은 거야.)”
이진영은 뜬금없이 노래 맥 더 나이프(Mack the knife)의 한 구절을 불렀고 공항 경찰은 ‘뭐 하는 놈이지?’하는 표정으로 이진영을 쳐다봤다.
“무게추를 달아 놓고 수장시킨 거예요. 그래서 돌돌이가 단순 익사사고가 아니라고 한 거고. 먼저 죽이고 수장시켰는데 익사사고일 리가 있나.”
– 밧줄이 끊기면서 시체가 공항 쪽으로 떠밀려 내려온 거군요.
“그치, 인천 앞바다 조류는 지랄 맞고 조석간만의 차도 있으니까.”
공항경찰은 그제야 아아아하는 소리를 냈다.
“그러면은 시체를 어디서 버렸을까아?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공항 쪽으로 와서 버렸을 리는 없고. 여긴…….”
또다시 초음속 여객기가 착륙하며 이진영과 공항경찰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공항 경찰에게 럭키스트라이크를 건네며 바다 건너를 노려봤다. 또다시 비행기가 착륙하고 공항 경찰이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저짝 난민이면 형사님도 일거리가 줄어들어 좋겠네요. 어차피 사건접수도 안 될 테니.”
“예, 뭐. 그렇죠.”
이진영은 불쾌했지만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난민의 시체는 확실하게 타살인 걸로 드러나도 내사에서 끝난다. 아니 내사번호를 받지도 못하고 그냥 변사체1이 되어 화장된다. 그나마 화장이나마 시켜주는 것도 인도적인 처리였다.
인천시 의회에서는 하도 변사체가 많이 휩쓸려 내려오니 장례비용을 대폭 줄이고 그냥 비료공장에 보내자고 해서 한바탕 난리가 났다.
공항 경찰은 바다에 담배꽁초를 던지고 말했다.
“그럼 저는 가봐도 될까요?”
“아, 예. 수고하셨습니다.”
“뭘요, 형사님이 고생이죠. 으으으.”
공항 경찰은 부패한 시체를 보고 진저리를 쳤다. 그의 말대로 이진영이 더 수고를 해야 했다.
중부서 로봇이 변사체 수습용 밴을 가져왔고 이진영은 시체와 함께 중부서로 돌아왔다.
중부서에는 검시 로봇이 있었다. 부검의는 아주 오래전에 사라졌다. 살아있는 사람의 경우는 반드시 의사가 처치 경과를 보고 로봇에게 명령을 내리는 식이지만, 시체를 검시하는 경우 로봇은 로봇 3원칙에 적용을 받지 않는다.
그 때문인지 청소 로봇이 고독사한 노인의 시체를 ‘분리수거’했다는 괴담까지 나돌았다.
검시 로봇은 부패한 변사체의 옷을 채취하고 지문부터 피부 상태, 각종 임플란트 인공장기까지 세세하게 살폈다.
검시 로봇은 바로 이진영에게 결과를 보고했다.
– 팀장님, 직접적 사인은 교살입니다. 발을 묶은 섬유질의 밧줄로 뒤에서 목을 졸라 살해한 후 바다에 유기했습니다. 범인은 피해자보다 키가 크고 피해자 오른쪽 목의 상흔으로 미뤄봤을 때 오른손잡이입니다.
“피해자의 신원은?”
– 지문과 발의 지문까지 모두 훼손했습니다.
“신분이 밝혀지기를 원치 않았던 거군. 유류물이나 임플란트는? 치과 기록은? 치과 기록은 있을 텐데? 이브이 의료망과 연결해서 협조해봐.”
잠시 후 이브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 치료 흔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난민일 가능성이 높겠군. 아니면 이빨을 존나게 잘 닦았거나. 검시 유류물은?”
– 유류물 신체적 특이점으로는 신원 파악이 안 됩니다. 옷은 백화점에서 파는 흔한 물건이고, 매니큐어도 없습니다.
이진영은 한숨을 쉬었다.
“또 상부에서는 난민으로 처리하라고 하겠군. 뭔 시발 신원을 확인할 수 없으면 다 난민이래?”
일종의 행정편의였다. 하지만 중부서를 비난할 수도 없는 것이 웡꺼와 체잉꺼가 붙었을 때 떠내려온 변사체의 숫자만 세 자릿수였고 그중에는 난민번호는커녕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이진영은 착잡한 표정으로 고인이 된 여자를 바라봤다.
“나이가 얼마라고?”
– 20대 중반, 자궁의 상태로 봤을 때 스물세 살에서 다섯 살 사이입니다. 사망 추정 시각은 3달 전으로 추정됩니다.
“참…… 아까운 나이에 돌아가셨군. 흉수를 밝힐 수 없어서 무념입니다. 그려.”
이진영은 어쩔 수 없이 고인의 앞에서 합장을 하려고 했다. 그때 EV-1이 이진영의 팔을 잡았다.
– 의외의 기록이 있습니다. 이 여성은 윤락녀였군요. 보건증에 DNA 등록이 되어있습니다. 보건부 망으로 확인했습니다.
“창녀라. 보건증에 DNA 등록까지 되어있다면 고급 콜걸이었겠군.”
로봇 섹스돌이 일반화된 후 매춘은 거의 자취를 감췄다.
영화 속 미남미녀의 외모를 가진 로봇들과 섹스할 수 있는데 뭐하러 인간 매춘부를 찾는단 말인가? 기본소득이 시행되고 출산율이 바닥에 바닥을 찍는 것도 섹스돌이 한몫했다.
하지만 오히려 높으신 양반들은 인간 여자와 자는 걸 즐기기도 했다.
희소성 문제였다.
당장 롱꺼의 츠루마츠도 미성년자의 성을 사고팔며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그리고 각종 신종 성병 문제와 ‘사생아’ 문제 때문에 이런 고급 콜걸들은 DNA 등록을 하게 되어있었다.
“유기한 놈이 그건 몰랐겠군. 피해자 신원은?”
– 한국인입니다. 이름 김민지. 나이는 24세, 주소는 서울이고 대학생입니다.
“대학생? 대학생인데 콜걸이란 말이야?”
EV-1은 대답 대신 피해자 김민지의 사진을 보여줬다. 김민지는 꽤 예뻤고 이국적인 외모라 인기도 많았을 것이다.
이진영은 모니터에 뜬 사진을 노려봤다.
“피해자의 소셜미디어는?”
– 별거 없었습니다. 요리와 풍경 사진이 다입니다. 월미도의 사진이 있긴 합니다만 특이한 점은 없습니다.
이진영은 저 멀리 링로드가 보이는 음식점 사진을 보고 흐음 하는 소리를 냈다.
월미도 난민지구는 외국인뿐만 아니라 내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다. 난민지구는 마치 그 옛날 라스베이거스처럼 매춘, 도박, 마약 일상을 벗어나 짜릿한 일탈을 즐길 수 있는 마굴이었다.
게다가 이 김민지라는 여자는 고급 콜걸이었고 업소가 아니라 따로 개인영업으로 굴다리에서 장사를 했다고 쳐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또 발품을 팔아야겠군. 어디히 보자. 피해자 주소는 얼씨구? 신흥동이고, 대학으은?”
– 홍익대입니다.
이진영은 서울에 간 전상영과 유인환에게 김민지의 신원을 알려주려고 했다. 하지만 전화를 걸자마자 들리는 건 고함 소리였다.
– 팀장님! 마침 전화 잘 거셨습니다. 여기 난리가 났어요!
“뭐야? 뭔데?”
유인환은 영상통화로 바꾸고 주변의 풍경을 보여주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유인환과 전상영은 하필 신학기 학생회 출범식에 학교에 간 것이다.
붉은 마그네슘 신호탄이 빵빵 하늘로 날아가고 무슨 축구 경기 훌리건들처럼 붉은 신호탄을 흔드는 행렬이 보였다.
서울대는 PL계 러다이트 테러리스트들의 본산지였고 도대체 어떻게 삼엄한 보안을 뚫고 왔는지 타대생들이나 외부인들도 섞여 출범식은 점점 더 과격해졌다.
– 해산하십시오! 해산에 불응하면 강제 진압하겠습니다! 해산…….
탕탕탕!
누군가가 M5W 자동소총으로 경비로봇을 쏴버렸다. 학생들은 인간해방전선의 도움을 받아 속속 무기를 지급받고 학내 경비로봇들을 박살 내기 시작했다.
“가자아아아! 인간해방의 길로오오!”
인간해방전선이 무기를 대준 이상 지금 저건 그냥 학생운동 시위가 아니라 내전 상황이나 마찬가지였다. 서울대 상아탑의 그 경비초소가 학생들에게 장악되었다.
무기를 들여온 이상 경비 로봇들은 학생들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 경비 로봇들이 사용할 수 있는 무장이라고 해봤자 그저 전기충격기나 포박기뿐이었고 그나마도 인간의 지시가 없으면 사용할 수 없었다.
반면 학생들은 로봇이고 경비업체 직원이고 뭐고 다 갈아엎을 기세로 마구잡이로 총을 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