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132
제132화
“로봇 의족 괴사증도 그렇고 인간의 감각을 완전히 로봇에 연결하기 힘든 건, 알기 쉽게 말하자면 서로 다른 시스템의 호환성 문제라는 거죠. 인간의 뇌나 시스템은 생체시스템을 움직이는 오퍼레이팅 시스템이니까요.”
“아 그렇긴 하네요. 각종 호르몬이나 면역체계 등까지 복잡하게 제어하다가 떨렁 액츄에이터나 인공근육을 제어해야 하니 문제가 생기겠군요.”
“예, 그런 거예요. 기계도 OS를 생판 처음 보는 기계에 넣으면 잘 작동할 리 없잖아요? 뭐 저는 그것도 시간문제라고 보지만요. 아마 좀 더 기술이 발전하면 뇌를 속이거나 백업하는 것도 가능해질 거고요.”
김대현이 또 익살스럽게 말했다.
“미리미리 로봇들에게 기름칠도 해주고 아부 좀 떨어야겠군요. 오오오, 다가올 기계제국을 대비하라!”
사람들은 킥킥거리며 웃음을 터뜨리며 김대현의 농담에 가세했다.
하지만 이진영은 도은주의 이야기를 들으며 EV-1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신희정은 EV-1이 인간의 뇌를 백업한 것이 아닐까 추측했다.
로봇의 로직으로 볼 수 없는 유연한 사고, 로봇은 불가능한 이익형량. 신희정이 EV-1을 의심하는 것도 당연했다.
마침 도은주는 마이크로웍스의 부장이었고 어쩌면 미국 본사의 사정도 알고 있지 않을까?
이진영은 그녀에게 EV-1의 정체를 물어보려고 하다가 그냥 입을 꾹 다물고 화제를 돌렸다.
“아무튼, 뭔 이야기하다 이렇게 되었죠? 아 맞다. 그거요. 학부생이 손댈 수 없는 우회 방식.”
“아, 맞네요. 그 얘기 하다가 여기까지 흘러왔네요. 당신 말대로 학부생이 했다기엔 너무 교묘해요. 아마 외부에서 소스를 가져왔을 거예요.”
“인간해방전선이군요.”
“아뇨, 이것도 제 생각이지만 인간해방전선은 아닌 것 같아요. 그 친구들은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떠도 지들 소행이라고 주장할 놈들이니까.”
“그럼…….”
“굉장히 고급스러운 방법이었어요. 폭탄을 케이크로, 테러리스트를 정당한 주인으로 인식하게 짧은 기간에 딥러닝시키다니. 사용한 코드 보니 본사에서 금년에 보안패치를 한 부분을 교묘하게 피해갔어요.”
“프로의 솜씨군요.”
“예, 프로예요.”
“그러면 혹시, 겨울에 있었던 본사 테러랑 연관 있지 않을까요? 그때 소스 코드가 유출되었다거나?”
도은주는 국물을 숟가락으로 먹다 말고 ‘음!’하는 표정으로 이진영을 바라봤다.
“아, 맞다! 그때 유출된 걸 수도 있겠네요. 강남 지사를 폭파한 것도 그것 때문일 수도 있어요. 그거 아직 범인 안 잡혔죠? 미국 CIA도 쫓고 있다던데.”
정 대령.
잊을 만하면 거머리처럼 달라붙는 이름이었다. 신희정은 정대령과 천수관음이 마이크로웍스를 공격한 것이 ‘특별병과번호’의 누군가를 구출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 와중에 마이크로웍스의 보안이나 소스 코드도 털린 것이 아닐까?
만약 도은주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이건 굉장한 위협이었다.
마이크로웍스는 태성 AI를 인수하고 현재 인공지능 OS 시장의 과반 가까이 장악한 독점기업이나 마찬가지였다. 일개 학부생 설계자가 마이크로웍스의 OS를 테러에 이용할 정도라면 로봇은 굉장히 위험해진다.
“이건 본청 공안과 정보국에 알려줘야겠군.”
범인 중 한 명이 어설프게 꼬리가 잡히면서 간단하게 해결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송도 폭탄 테러는 굉장히 위험한 상황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정보국이요? 아 맞다. 팀장님. 근데 왜 요새 그 사람 안 보여요? 잘쌩긴 요원님. 우리 셋이서 종종 술 마시고 그랬잖아요?”
“아, 그 사람은…….”
아직도 신희정은 정보국에 돌아오지 못했고 이진영도 그 ‘잘쌩긴’ 요원을 본 건 겨울 한승우 사건이 끝나고 바에서 본 게 마지막이었다. 신희정은 이진영에게 전혀 연락하지 않았다.
“뭐 해외에 나갔다나 봐요. 정보국이 워낙 하는 일이 많으니 잘 지내고 있겠죠.”
“아, 그렇구나. 만날 자기는 제임스 본드라며 나더러 본드걸이 되지 않겠냐고 되도 않게 꼬시더니.”
이진영은 본드걸이라는 말에 하마터면 술을 뿜을 뻔했다. 신희정의 요원관리번호는 정말로 끝자리가 007이었고 종종 자칭 제임스 본드라고 말하고 다녔다.
못 생기기라도 했으면 몰라도 신희정은 연예인 뺨치게 잘 생겼는지라 썩 어울리는 별명이긴 했다.
“아무튼지 간에. 도은주 부장님 인천에 오셨으니 종종 뵙게 되겠네요.”
이진영과 도은주는 힘차게 악수했다.
“아, 근데 왜 인천으로 오셨죠?”
“그야, 이곳이 인공지능이 딥러닝의 성지니까요.”
도은주는 로봇과 인간이 섞여 있는 월미도의 풍경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순 거짓말이었다.
x3 It’s a rainy day, hallelujah!
월요일. 봄비치고는 장맛비처럼 비가 세차게 내렸다. 난민지구의 푸른 방수포가 비에 흠뻑 젖어 퍼렇게 번들거렸고 튀긴 물방울이 물안개처럼 보인다.
이진영은 노란 스펀지밥 우산을 들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7팀 경찰이 노란 우산을 보고 픽 웃었다.
“오우 그 우산은 뭐야?”
“아이가 고집을 부려서 우산을 바꿨어. 나 참 쓸데없는 데서 고집이 세다니까? 아니, 봄인데 이렇게 비가 오면 여름에는 어쩌란 거야?”
이진영은 스펀지밥 우산을 우산꽂이에 꽂아 넣고 44팀 팻말로 향했다. 이미 팀원들은 다 출근해 있었고 뭔가 폭탄이 떨어진 것처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뭐야? 뭔 일인데?”
“형님, 사건이 또 배당되었어요. 굴다리에서 관광객 죽은 거 우리더러 조사하래요.”
“뭐야? 관광객이 왜 죽어? 웡꺼 놈들이 미쳤나?”
“저도 모르겠어요. 요새 롱꺼 패거리가 좀 조용하다 싶기는 했어요. 아무튼 죽은 사람이 미국 이중 국적자라 미 대사관에서도 난리에요.”
임은혜는 영어로 대사관의 항의전화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또 있어요.”
“또? 우리한테 배당된 사건이 몇 개야? 김민지 사건에 서장님 개에. 아, 선배 개는 어떻게 됐어요?”
전상영은 음침한 얼굴을 들고 왠 개를 들어 보였다.
“어! 찾은 거예요?”
“아니, 이거 다른 개래. 일단 임시 보관.”
전상영이 들고 있는 포메라니안은 서장의 개와 굉장히 비슷해 보이긴 했지만 체내 삽입칩 확인 결과 다른 개로 밝혀졌다.
“나 참. 서장 개까지 사람 빡치게 하네. 쌍현아 그리고 또 뭔 사건이야?”
“다른 사건은 강간 사건인데 이것도 월미도 관광객이 당한 거예요. 윤숙희한테 배당 줬고 지금 피해자 조서 쓰러 갔어요.”
성범죄 수사는 철저하게 비밀리에 진행되고 경찰서에 출두하지 않아도 된다.
“아니 근데 왜 우리 팀만 이렇게 사건이 많이 배당된 거래? 쟤네 놀고 있잖아?”
아까 우산을 지적했던 7팀 형사는 중장비팀 경찰들과 실내에서 족구를 하고 있었다.
“모르죠. 배정은 부장님이 하시는 거니까. 우리 찍혀서 그런 거 아닐까요?
“하기느은. 내가 한량 경위 시절에 사고치고 보험료 올려놓은 게 있으니. 뭐 어쩔 수 없지. 차근차근하자. 피살 사건은……. 아, 시발. 굴다리 들어갔다 와야 되네? 다 같이 우르르 몰려가면 웡꺼 놈들이 난리를 피울 거고. 유인환?”
“예, 팀장님. 제가 따라갈까요?”
“뭐 견학이다 생각하고 따라와.”
“햄식이는 어떡할까요?”
유인환은 자신의 파트너 로봇 햄식이를 가리켰다. 햄식이는 다기능 휴머노이드 로봇이긴 하지만 공격 로봇이 아니라 감식 로봇이었다.
“이브이가 있으니 걱정 마. 어차피 로봇 하나만 있으면 되니까. 가자 이브이.”
김상현은 44팀 총가에서 두 사람에게 각각 소총을 건넸다. 굴다리에 제대로 무장을 하지 않고 들어가는 건 자살행위였다. 사건이 발생한 곳은 중화대루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아마 미 대사관이 항의하지 않았다면 굳이 중부서에서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난민지구는 무법지대긴 했지만, 아예 규칙이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
웡꺼는 관광객을 건드리는 놈을 가만두지 않는다. 죽인 사람이 누군지는 몰라도 웡꺼는 관광객을 살해한 놈을 직접 죽이거나 아니면 포장해서 중부서에 던져놓는다.
유인환은 처음으로 굴다리 안쪽으로 들어가는지라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AK-99 화약식 소총을 점검했다.
“유인환, 근데 넌 참전자도 아니면서 왜 화약식 소총을 받은 거냐?”
“손맛이 좋아서요. 팡팡.”
“또라이 새끼.”
때마침 또 23대응팀장이 이진영의 옆을 스쳐 지나가며 말했다.
“누가 누구한테 또라이 새끼라고요오? 수사한답시고 경찰차를 여섯 대나 때려 부순 놈은 또라이가 아니고요오?”
“…….”
김상현을 비롯한 사람들은 킥킥 웃음을 터뜨렸다.
요새 아주 작정했는지 그동안 이진영에게 당한 한을 풀고 있는 23팀장이었다.
* * *
준비를 마친 이진영과 유인환은 바로 굴다리로 출발했다.
두 사람은 만약의 경우를 위해 우비를 입었고 그 아래 소총을 숨겼다. 우비 위로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졌다.
EV-1은 두 사람의 뒤가 아니라 난민지구의 옥상에서 광학위장을 한 채 이동하고 있었다.
잘 보면 반투명하게 변한 EV-1의 프레임을 따라 빗방울이 튀기지만 워낙 비가 세차게 내려서 그곳에 로봇이 있는지 구분할 수 없었다.
난민지구는 비가 오는데도 여전히 장사가 잘됐다.
번체자 한자로 써진 각종 구조물들과 이젠 명물이 된 난민지구 안의 KFC에는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비를 피하고 있었다.
어제 새벽 이 근처에서 관광객이 총에 맞아 죽었고 뉴스까지 나왔는데도 다른 관광객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진영은 난민지구를 잠시 멍하니 바라봤다.
대나무 찜기에서 증기기관차처럼 김이 하얗게 나고 그 옆에는 웍으로 밥을 볶는 모습이 보인다. 사람들은 김치를 찢어먹고 일본식 라멘을 먹으며 중국식 튀김 요리를 고명으로 먹는다.
관광객에게 월미도 난민지구는 지루한 일상을 잊을 수 있는 자극제였고 난민지구의 매력을 맛본 사람들은 그 매력에서 잘 헤어나올 수 없었다.
“팀장님?”
“어, 미안. 초동 끝나고 우리도 국수나 먹자.”
유인환은 씩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은 다시 중화대루 근처의 먹자골목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또 다른 관광객에 따르면 피해자는 노점에서 술을 마시다가 누군가와 시비가 붙었고 그 누군가는 바로 총을 쐈다고 한다.
“난민이면 어쩌죠? 등록번호도 없는 난민들도 많고 북중국에서 밀항한 사람도 있잖아요?”
“찾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우린 그냥 액션만 취하러 온 거야.”
두 사람은 빗속에서 문제의 노점에 다다랐다. 어제 살인사건이 벌어졌는데도 광동요리 노점은 태연하게 장사를 하고 있었다.
이진영은 백 달러짜리 지폐를 턱하고 포장마차 매대에 올려놓았다.
“唔咳, 我可唔可以問有啲……. 琴日嘅事? (실례합니다. 어제 일에 대해 쫌…… 물어봐도 될까요?)”
주인은 이진영과 백 달러 지폐를 번갈아 바라보다 경계하는 눈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我唔能講……. 因為……. (말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주인장은 중화대루 쪽을 바라봤다. 이진영은 별수 없이 백 달러짜리 지폐를 회수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중화대루 근처의 노점은 당연히 웡꺼의 지배를 받고 있었고 주인장으로서는 수상한 한국 놈에게 협조하기 껄끄러운 게 당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