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138
제138화
장동천.
민족민생당 대통령 후보.
장동천은 운 좋게 민민당의 대통령 후보로 결정되었다.
이진영은 장동천의 발언 영상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장동천은 난민지구가 대한민국의 암덩어리고 이 암덩어리를 잘라내야 대한민국의 미래가, 우주시대가 열린다고 연설했다.
그러나 잘 들어보면 장동천의 연설은 히틀러의 논리와 굉장히 유사했다.
– 나라의 경제를 좀 먹는 게토의 유대인들을 박멸해야 새로운 독일로 거듭날 수 있다.
게토를 난민지구로, 유대인을 중국인 난민으로, 독일을 대한민국으로 치환하면 다음과 같이 된다.
– 나라의 경제를 좀 먹는 난민지구의 중국인 난민들을 박멸해야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거듭날 수 있다.
기본소득자 소위 라종 인생들은 장동천의 극단적인 논리에 열광했다.
원래 장동천은 이토록 난민 정책에 극단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정상수-김수겸의 특별단독 스캔들로 하마터면 낙마할 뻔한 이후, 대다수를 차지하는 기본소득자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며 기사회생했다.
우리가 비참하게 사는 건 난민 때문이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국가총생산의 일부가 롱꺼 패거리를 살찌우고 있었고, 대한민국 정부는 난민의 인도적 지원 때문에 상당 부분 지출을 하고 있었다.
지금 전 세계의 화두는 ‘우주 접근권’이었다.
미국은 궤도 엘리베이터를 발판으로 착착 우주시대 개막을 준비하고 있었고 미국과 발맞춰 우주에 접근하지 못하는 국가는 자연스럽게 도태됐다.
케냐가 링로드가 지나간다는 이유로 아프리카의 신흥강국으로 부상하고 링로드에서 먼 서유럽 일부 국가가 뒤처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장동천의 캐치프레이즈는 그런 면에서 굉장히 영리했다.
장동천 캠프의 포스터 중에는 3단 로켓이 발사되는 그림이 있었는데 분리되는 로켓들에는 ‘난민 문제’, ‘소득불균형 문제’ 등이 빨간색으로 쓰여 있었다.
장동천은 자신이 대한민국이라는 로켓을 궤도에 올릴 수 있고 우주시대를 열어갈 수 있을 거라 연설했다.
비전만 놓고 보면 장동천의 정책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장동천과 그 지지자들의 언어가 굉장히 극단적이라는 점이었다.
이진영은 단상을 주먹으로 내려치며 격렬하게 몸을 부르르 떠는 장동천을 보며 왠지 모를 불길함을 느꼈다. 새로운 히틀러와 친위대의 등장을 보는 것 같다.
반면 난민 문제 때문에 안보문명당의 지지율은 시원치 않았고 아직 경선도 흐지부지 진행 중이었다. 다만 안보문명당의 희망이 딱 하나 있다면.
“아이구, 저 양반 혼자 미모로 열일하시네.”
장동천의 연설 영상이 나오고 민민당의 억지에 밀리던 토론 분위기가 이세화가 입을 열면서 반전되었다.
이세화는 하얀 블라우스에 검은 치마 정장 차림이었고 스튜디오의 조명을 받아 무슨 하얀 여왕처럼 보였다.
– 존경하는 의원님, 그렇다면 난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가스실이라도 만들어서 전부 다 처넣게요? 아, 그런 방법이면 간단하겠네요.
– 아니, 누가 그런 극단적인 방법을 도입하잡니까?
– 난민등록번호가 없는 사람들을 무작정 추방하자는 말은 가스실에 몰아넣자는 거와 다를 바 없지 않습니까? 그들이 어디로 갈 수 있을까요? 일본, 미국? 그 어떤 나라가 저 난민들을 받아 줄까요?
– 그럼 뭐 어쩌자는 겁니까? 롱꺼 패거리들이 사람 장사를 하는데도 우리 대한민국 경찰은 말이에요! 감히 손 하나 못 대고 있어요! 이게 법치국가 대한민국의 현실이란 말입니까!
– 저희 당은 난민과의 공존을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점진적으로 폭력조직의 제거가 선결되어야겠지만, 분명 월미도 난민지구는 매력적인 곳입니다. 위험한 곳인데도 관광객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걸 양성화시키자는 거지요.
– 흥, 그러니까 지금 세금을 받자고요? 롱꺼한테요?
– 적어도 저들을 폭격하고 죽여버리자는 민민당의 주장보다는 현실성 있는 것 같은데요?
이세화의 논리도 완벽한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민민당의 과격한 주장보다는 설득력이 있었다.
공존.
월미도의 230만 난민들은 어찌 되었든 대한민국 국민들과 공존할 수밖에 없다. 그건 바꿀 수 없는 현실이었다.
이진영은 이세화의 부드러운 미소를 보며 ‘이세화 대통령 후보’라는 말도 영 어처구니없는 말도 아니라고 느꼈다.
“계속 수고해주십쇼. 선배님.”
이진영은 화면 속의 이세화에게 경례를 붙이고 부천역에서 내렸다.
부천역은 예전 삼화 구급이 있던 주안역과 상황이 비슷했다. 역사 자체와 역 주변은 신소재로 만든 고층빌딩이었지만 그 주변에는 허름한 옛날 4, 5층 콘크리트 빌딩들이 늘어서 있었다.
이진영은 마치 우주선 내부와 같은 부천역사에서 한동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제기랄, 역사 안이 아닌 건가?”
그는 비상계단을 통해 허름한 부천 구시가지로 내려갔다. 강남과 비슷하게 부천도 고층빌딩 밑에 구시가지가 마련되어 있었다.
부천역 근처의 상권은 탄환라인 정차역이라 그런대로 활발했다. 붕어빵이나 닭꼬치를 파는 노점상들이 우후죽순 구시가지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기본소득 시대에 끈질기게 살아남은 직종이 있다면 바로 노점상이었다.
사람들은 인간 냄새를 느끼기 위해 노점상에 들르곤 했다.
아직도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이진영은 추위에 오뎅 하나를 물었다. 이진영의 옆에도 작업복을 입은 사람이 종이컵의 오뎅국물을 후릅 마시고 있었다.
“저, 말씀 좀 묻겠습니다. 여기 근처에 츠바메라는 초밥집이 있지 않나요?”
“아, 거기요? 저기요?”
주인은 오뎅국물을 종이컵에 따라주며 츠바메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초밥집 츠바메는 부천역 바로 앞에 있었다. 이진영은 동전으로 계산하고 종이컵을 입에 문 채 스펀지밥 우산을 펼쳤다.
초밥집 츠바메의 컨셉은 쇼와시대(1926~1989)였다. 마치 일제 강점기 고급 초밥 가게처럼 ‘스시야’라고 일본어로 쓰여있고 이름답게 제비 그림이 창호지 바른 덧살문에 그려져 있었다. 회칠한 하얀 벽에 창호지 문만 봐도 꽤 고급 요릿집이었다.
“이럇샤이이이.”
선명한 한국어 발음으로 종업원이 인사했다.
“오, 과연 로봇 접객이 아니구만?”
인간 종업원을 쓰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 이진영이 카운터석에 앉자 기모노를 입은 한국 여자가 이진영에게 녹차부터 갖다줬다. 테이블은 바테이블 밖에 없고 10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아담한 크기였다.
이진영은 힐끔 메뉴를 바라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월급으로 먹기는 쉽지 않은 가격이다.
초밥을 쥐는 것도 로봇이 아니라 인간이었다. 일식 요리사는 수건을 말아서 머리에 두건처럼 쓰고 하얀 일식 요리복을 입고 있었다. 나이는 팔자주름으로 보면 이진영보다 윗 연배로,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으로 보였다.
카운터 너머의 남자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참치 대뱃살 초밥을 만들어 접시 위에 올렸다. 남자는 이진영에게 말했다.
“뭐, 드시겠습니까? 말씀해주시면 바로 만들겠습니다. 오늘은 방어도 좋고, 광어도 좋습니다.”
이진영은 쓴웃음을 지었다.
“다른 일로 찾아왔습니다.”
“다른 일이라면…….”
“혹시 진소홍을 아시나요?”
소위 네타, 생선을 썰던 요리사의 손이 멈췄다. 이진영은 요리사의 손을 노려봤다.
“그 친구 이야기를 왜…….”
“실종돼서요. 아시는 거 없나 해서.”
“손님은 혹시…….”
이진영은 점퍼 안쪽의 권총과 뱃지를 보여줬다.
“아, 알겠습니다. 나카이(仲居, 나 잠깐 휴식 좀? 손님 잠시 로봇이 대신 초밥을 쥘 겁니다. 오마카세가 있다면 말씀해 주십쇼.”
요리사는 급히 앞치마를 벗어던졌고 그 자리를 인간 스킨이 씌워진 휴머노이드 로봇이 대신했다. 초밥은 인간의 체온 때문에 로봇이 만드는 편이 더 맛있다는 사람도 많았지만, 어차피 비싼 가격 때문인지 손님이 몇 없기도 했다.
요리사는 카운터 뒤 뒷문으로 이진영을 불렀다. 뒷문은 구시가지의 더러운 뒷골목으로 연결되었다. 츠바메의 주방장은 바깥으로 나가자마자 담배를 입에 물었다.
“초밥 요리사는 담배 피우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흥, 어차피 그 맛을 알아채는 사람도 이제 드물어요. 아무튼 형사님이죠? 안 그래도 찾아올 때가 됐다고 생각했어요. 그년 어떻게 되었습니까?”
“진소홍이요? 아직은 모릅니다.”
“안 그래도 그년 저를 속여서 돈을 어마어마하게 뜯어냈어요. 내 참, 나중에 창녀라는 걸 알았기에 망정이지. 아무튼 살아있다면 돈을 반드시 받아낼 거라고 말해줘요.”
이진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돈을 뜯어냈다고요? 그쪽한테?”
“예에, 무슨 가게를 열 거라나? 가게는 무슨. 여기저기 다리를 벌리고 돈을 버는 주제에.”
“제가 조사해오기론 그레첸의 고급라인이라고 그러던데 금전적으로 쪼달려 보였나요?”
“몰라요. 만날 명품만 사 입고 돈 달라 뭐 해라. 그런 거죠 뭐. 흥청망청 쓰다가 나까지 말려들 것 같아서 내 쪽에서 찼어요. 형사님,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내 쪽에서 찬 거라고요.”
문득 이진영은 다이아 박현숙이 말해준 ‘호구’라는 말이 떠올랐다.
“혹시 이 사람은 아십니까?”
“누구예요? 이 여자는?”
이 일식요리사는 어지간히 여자에게 껄떡대는 놈이었다. 그는 김민지 사진을 보자마자 혀로 입술을 핥았다.
“그레첸에서 같이 일하던 사람입니다. 진소홍과 친하게 지냈다던데?”
“모르겠어요. 제가 봤다면 아마 돈 주고 사 먹지 싶습니다. 하하. 젠장, 그년도 창녀라는 걸 알았다면 신나게 사 먹었을 거에요.”
이진영은 노골적인 말에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근데 그년 어떻게 되었대요?”
“알고 보니 웡꺼의 요리사의 딸이었다더군요. 아무튼 수고하시길.”
“워, 웡꺼요?”
남자는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아마도 진소홍에게 좋은 짓만 한 게 아닌 모양이었다. 이진영은 하얗게 질린 요리사를 뒤로하고 츠바메를 나왔다
“저놈은 다이아가 말한 호구가 아니야.”
아무리 초밥집이 잘 나간다고 해도 가게 위치가 문제였다.
츠바메는 고급 일식 요릿집이 목표였지만 임대료가 싼 부천 구시가지 밑에 있다. 츠바메의 하얀 회벽과 오뎅집은 영 어울리지 않았다. 그 말은 저 일식요리사는 그다지 돈을 많이 벌지는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레첸 같은 업체에서 고급라인이라는 진소홍의 고객이 될 정도는 아니다.
“돈이 필요했다. 세팅비였겠군. 더 큰 호구를 낚기 위한 세팅비.”
이진영은 티파니 반지를 꺼내서 살펴봤다.
“그렇다면 이 커플링이 왜 여기 있는지도 알겠어. 이건 여자가 산 거고 그 두 명 중에 한 명을 꼬시려고 했던 거야. 사진 속 두 명 중 한 명.”
여자 쪽에서 커플링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반지를 주는 건 어느 문화권에서나 남자가 한다.
“여자의 자존심을 꺾고서라도 먹음직스러운 호구. 그리고 그놈은 웡꺼의 조직원도 추적하지 못할 뭔가가 있고. 보통 놈이 아니라는 거야.”
이쯤이면 EV-1이 맞장구를 쳐줘야 할 테지만 이진영의 주변에는 그저 빗소리만 들렸다. 이진영은 반지를 꽉 틀어쥐고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노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