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146
제146화
“사건 배당을 한 사람은 서장님이야. 형사부장님 눈치를 보니 모르는 것 같더군. 근데 그 사건들이.”
“어이없게도 거의 다 연결되며 이 지경이 되었군요. 만약 서장님이 각 사건을 배당했다면 굉장히 당황했겠는데요?”
김대현이 센스 있게 끼어들었다. 이진영은 김대현에게 손가락으로 권총을 만들어 쏘면서 화이트보드에 44팀이 그동안 담당했던 사건들을 나열했다.
우연이었지만 뜻밖에도 서장이 배당한 사건들 중 주요 사건들이 모두 한 가지 흐름으로 연결되었다.
1. 진소홍 실종.
2. 서장 개의 실종 및 수색지시.
3. 해안 변사체로 발견된 김민지.
4. 그레첸 다이아 박현숙 강간사건.
5. 이두영의 자살.
이외에도 월미도 관광객 피살사건이나 수동운전 상해사고, 유인환의 피지컬이 돋보인 공과대 학생회장 검거 등이 있긴 했지만, 이 사건들은 지엽적으로 연관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화이트보드에 쓴 5개의 사건은 진소홍의 실종을 제외하고 상부에서 배당받은 사건이었고 전부 연관이 있었다. 설마 이 모든 것이 다 연결될 줄이야?
이진영은 5개의 사건을 화이트보드에 나열하며 각각의 사건을 화살표로 연결했다.
그레첸 연쇄 강간사건은 김민지 사건으로 연결되고 김민지 사건은 진소홍의 실종과 연결된다. 그리고 이두영의 자살과 그의 개 실종은 김민지 사체투기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보니 전부 다 연관이 있군요. 그냥 보면 전혀 다른 사건들처럼 보이지만요.”
김상현은 감탄했다.
“그래, 꼬여도 이렇게 꼬일 줄이야. 인과응보라는 게 있는 모양이야. 마구잡이로 배당한 사건들이 하필이면 하나같이 다 연관이 되어 있으니. 그리고 이거.”
이진영은 비로소 품에서 이세화에게 받은 내사번호 인천중부 057399 문서를 꺼냈다.
“어? 이거 문서 수발목록이잖아요?”
이진영은 팀원들에게 짧게 EV-1과 조사로 알아낸 사실을 알려줬다. 팀원들은 내사접수 시각에 일제히 의문을 표시했다.
“전 의심스럽다에 한 표. 사라진 무궁화호의 항적과 하필 내사 접수 시간이 비슷한 건 아무리 봐도 이상해요.”
임은혜가 진돗개 인형옷을 들고 손을 들었고 김대현도 따라서 손을 들었다.
“야, 뭔 반장 투표하냐? 알았으니까 손 내려. 그리고 이걸 최종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다?”
김대현과 임은혜가 입을 모아 말했다.
“서장님이요.”
팀원들은 이진영이 조사한 정보들과 내사번호 문서를 돌려보면서 자기들끼리 수군수군 이야기를 나눴다.
서장은 어떤 사건을 묻으려고 하고 있었다.
이진영이 이제부터 서장을 들이받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한 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자, 지금부터는 내가 카바칠 테니 앞으로 상부에서 오는 모든 사건들을 제낀다.”
임은혜가 냉큼 손을 들었다.
“다른 팀 지원이나 본청 지원도요?”
“좆까라 그래. 우리 44팀은 오직 이 다섯 개의 사건만 쫓는다.”
임은혜는 오오하고 환호성을 지르고는 인형탈을 벗어던졌다. 연이틀 초등학생 견학으로 ‘지옥’을 맛보고 온 그녀로서는 이보다 더 좋은 명령은 없었다.
이진영의 명령이 떨어지자 44팀 팀원들의 얼굴에 생기가 맴돌았다. 방금 전까지 다들 죽을 소리를 하던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팀장님, 그럼 저는 그레첸 종업원들 쪽을 더 알아보겠습니다. 혹시나 1월 11일, 진소홍이나 김민지의 마지막 행적에 대해 뭔가 알지도 몰라요.”
윤숙희가 제일 먼저 일어서면서 경례를 붙이고는 냉큼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형님, 그럼 저는 월미도 쪽 애들과 접촉해 볼게요. 아무리 잘 빼돌렸다곤 해도 구급선이라면 눈에 뜨일 거에요.”
이진영만큼이나 난민지구에 대해 잘 아는 김상현이 그다음으로 일어섰다.
“대현아. 상현이 도와줘라. 혼자 가면 위험하다.”
“예, 알겠습니다. 무기 불출 허가 내주세요.”
이진영은 바로 컴퓨터 콘솔에서 소총 불출 허가를 내줬다.
“그리고 김대현 무리하지 마라?”
김대현은 이동우의 마지막을 지켜봤고 나름 그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다.
“대답 안 하지? 무리하지 말라고. 새꺄.”
“걱정 마쎄이요우.”
김대현은 어디서 들었는지 삼화 구급의 로고송을 흥얼거리며 김상현을 따라나섰다.
“팀장님 저는 뭘 할까요?”
“어, 형님과 통화될까? 무궁화호를 쫓으려면 해군의 기록이 필요해.”
“그건 영장이 있어야 협조해줄 텐데요?”
“걱정 마, 내가 인공지능 판사를 설득할 테니까.”
“오케이! 정말로 저는 본청에서 육공에게 시달리는 거만 아니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이진영은 장난스럽게 경례를 붙이는 유인환의 엉덩이를 살짝 발로 걷어찼다.
“임은혜, 너는 항만청에 가서 항적 기록을 확인해. 분명 기록이 있을 거야. 로그 기록을 박살 내서라도 알아내. 내가 김민지 건으로 영장 받아온다.”
“알겠습니다!”
임은혜는 인공지능과 네트워크 전문가이기도 했고 법원 영장만 있다면 무궁화호의 항적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임은혜가 문을 열었을 때 마침 형사부장이 서류들을 들고 이진영의 사무실로 들어왔고 임은혜와 부딪쳐 서류들을 다 쏟을 뻔했다.
“어이? 이진영이 카텐치고 팀원들과 뭐 하는 거야? 역적모의?”
이진영은 김대현과 부장이 부딪칠 때 잽싸게 화이트보드를 돌려버렸고 형사부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 서류는 또 뭡니까?”
“어, 이건 서장님이…….”
부장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진영이 단호하게 말했다.
“안 할 겁니다.”
“뭐 이진영 미쳤어?”
“예, 미쳤죠. 지금 사건들만 해도 오버히트입니다. 아니 기계도 이렇게는 안 돌릴 거예요.”
“아니, 서장님이 이걸 바로 해결하라고…….”
이진영은 그러거나 말거나 씩 미소를 지었다.
“안 할 겁니다. 제 수사원들도 이젠 마음대로 빼가지 마세요. 지원 안 갑니다.”
“이진영이.”
부장의 말이 딱딱해졌다.
“서장님한테 전하세요. 수사 방해하려는 거 다 알아요. 하지만 우릴 막을 수는 없을 겁니다.”
“뭐? 이진영이 너 진짜 미쳤냐?”
“그리고 개, 본청 내사 11팀 이효진이 냄새 맡았다고 전해주세요. 어쩌면 우리보다 더 빨리 찾을지도 모른다고.”
형사부장은 개에 대해서는 영문을 모른다는 투였다.
“너 자꾸 이민호 국장 빽 믿고 까불다간 뒈진다?”
“부장님, 부장님도 줄 잘 서서야 할 겁니다. 내사과의 사냥개, 개코 스트리퍼가 냄새를 맡았어요.”
형사부장은 이진영의 진지한 말에 움찔했다.
이진영은 괜히 책상 위의 서류를 툭하고 건드려 쓰러뜨리고는 먼저 바깥으로 나갔다. 지금 그는 각지로 파견된 팀원들의 영장을 청구하러 법원에 가야 했다.
이진영이 순찰차를 불렀을 때 중부서 주차장에 수많은 밴이 들어왔다. 중앙계단과 가까운 곳에 척하고 승용차가 멈춰서고 차량에서 낯익은 사람 하나가 내렸다.
경찰청 본청 내사 11팀 팀장 이효진.
여전히 호리호리한 몸매에 검은 여성 바지정장이 모델처럼 잘 어울렸다. 그녀는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며 계단을 올라오다가 이진영과 눈이 마주쳤다.
이효진은 이진영을 잡아먹을 듯이 바라보면서 씹는 껌을 씹다가 퉷하고 하얀 계단에 뱉었다.
“아, 그거 경범죄 위반입니다.”
이효진은 이진영을 무시하고 뒤에 있는 합동수사팀 수사원들에게 고함을 질렀다.
“서장 방부터 뒤져!”
이효진의 뒤에 서 있던 내사팀원들과 지원요원들이 우르르 경찰서 안으로 몰려 들어갔다.
“암행어사 출두야아아.”
이진영은 이효진의 속을 긁어놓는 걸 잊지 않았다.
서장 내사.
특히나 인천 중부서는 업무 특성상 어지간해서는 서장을 건드리지 않는다. 서장을 건드리면 형사들이 불안해하고, 월미도의 치안은 엉망진창이 된다.
하지만 내사 11팀은 지원병력까지 받아서 이진영의 사무실까지 다 들쑤셨다. 그들은 진주군처럼 들어와서 형사들의 반감을 샀다.
11팀들은 이렇다 할 증거를 수집하지 못했는지 이효진에게 한소리를 들었고 저녁때가 돼서야 중부서를 빠져나갔다.
중부서 형사들은 번개처럼 들이닥쳤다 나가는 내사 11팀에게 야유를 보내고 조롱하는 걸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 어수선한 분위기도 가라앉을 때쯤 중부서 강력전담부 1팀 책상에 웬 20대 청년 하나가 다가왔다.
“저 여기가 강력부 1팀인가요?”
“아, 예. 무슨 일이시죠?”
“자수하러 왔습니다.”
1팀 형사는 내사 11팀이 휩쓸고 간 물건들을 정리하다 말고 청년을 빤히 쳐다봤다.
“뭐죠?”
“예, 리스 차가 손괴되었는데 아무래도 인공지능 말썽 같아서요. 차량 손괴죄 및 과실상해죄로 자수하려고요. 일단 제가 운전명의자였으니까. 뭐 과실이 있다면 처벌받으려고요.”
청년은 해맑게 웃으며 자신을 체포하라는 듯 1팀 형사에게 두 손을 내밀었다.
* * *
김상현과 김대현은 감식 로봇 탕후루-FR10과 함께 이진영이 왔다간 월미도 부두 위에 서 있었다.
“아니, 진짜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로구만. 임은혜는 뭐 연락 없어?”
“글쎄요오오. 알아볼게요.”
김상현은 김대현의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다 문득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뭐어야. 니네 사귀냐? 왜 개인 통신 터미널이 열려있냐?”
“어, 그게. 월미도 맛집 공유하고 그러다 보니.”
김상현은 김대현을 미심쩍게 바라봤다. 김대현이나 임은혜나 아직 팔팔한 20대였고 김대현은 꽤 잘생긴 편이었다.
“워어어. 너 진영이 형님이 직장 내 연애 얼마나 싫어하는 모르는구나. 니들 막 따로 떼어놓을 거다. 막.”
“아니, 아직 둘이서 밥만 먹었어요. 밥만. 아 팀장님도 그렇고 왜 이렇게 사람을 몰아가세요?”
“오호라. 요 새끼 요거 딱 걸렸어? 아지이익? 두울이서어어? 둘이서 둘이서어어~”
명색이 장래가 촉망받는 협상가가 김상현의 유도신문에 딱 걸렸고. 김상현은 노래를 부르며 김대현을 놀렸다. 두 사람은 이름도 거의 비슷했고 나이도 작은 형과 동생뻘이라 얼핏 보면 형제 같은 느낌이었다.
“아, 임은혜가 무궁화호 항적을 알려줬습니다. EV-1 이야기로는 어선들과 함께 들어온 것 같다네요?”
“워어얼. 여친한테 문자 온 거예염? 근데 어선? 어선이 한두 개야?”
“예, 그리고 이건 인환이가 해군에서 받아온 항적도에요. 해군 것이 더 정확하네요.”
김대현은 능숙하게 두 개의 항적도를 겹쳐 보였다. 전에 이진영이 발견한 무궁화호의 이상한 항적은 인천 북부 바다로 향했다가 불법조업 어선들과 함께 뒤섞였다.
“대놓고 빼돌리려고 했군. 이걸 어떻게 찾아?”
“형님, 우리에게는 만능 로봇 이브이가 있잖아요? 이브이가 단서를 찾아냈대요.”
“아, 낚싯배구나?”
어선이라면 몰라도 낚시꾼들이 타는 배는 반드시 기록이 남게 마련이다. 낚시꾼들은 그날 잡은 물고기들을 들어 올려 인증샷을 찍었고 하필 그 인증샷들 중에 하나에 무궁화호로 추정되는 구급선의 모습이 비쳤다.
그때 사채업자 하나가 김상현과 김대현에게 다가왔다.
“어이 그쪽은 뭐 소득 있어요?”
사채업자들은 두 사람이 경찰이라는 걸 알고도 괜히 두 사람이 무궁화호를 찾았을까 봐 두 사람에게 기웃거렸다. 김상현은 씩 미소를 지으면서 구급선과 낚싯배의 사진을 보여줬다.
“이 배 본 적 있어요? 이 배 주인이 알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