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148
제148화
김상현은 탄도레이더를 총구에서 분리해서 뽕 뚫린 무궁화호의 구멍에 끼워 넣었다. 군용통신기에는 탄도레이더와 연결되는 케이블을 꽂을 수 있고 김상현은 뚫린 구멍 위에 탄도레이더를 달았다.
“부두에 있어. 머리 함부로 내밀지 마.”
김대현도 마냥 초짜는 아니었다. 그는 부서진 거울을 들고 허름한 부두를 확인했다.
지금은 간조 때라 물이 빠져 간이부두들이 약간 기울어져 있었다. 하지만 김상현이 분석한 위치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형님, 광학위장 같은데요? 아무것도 안 보여…….”
피융.
거울 조각이 박살 나며 김대현의 손가락에 유리 파편이 박혔다.
“으윽.”
김대현은 왼손을 감싸 쥐며 뒤로 물러섰다. 거울이 아니라 머리를 내밀었다면 아마 김대현은 지금 순직해서 1계급 특진했을지도 모른다.
레일건으로 소리 없이 저격이 이어지고 얼큰하게 술이 취한 사람들이 총에 맞아 쓰러진다.
사채업자가 쓰러지는 걸 보고도 그저 그런 일이겠거니 생각하던 사람들이 그제서야 비명을 지르면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퍽퍽퍽퍽.
의문의 습격자는 인정사정없이 부두 근처에 있는 사람들을 쏴 재꼈다.
“이놈들 대체 뭐죠?”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프로야.”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고 무궁화호가 정박한 부두는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퐁퐁퐁퐁.
나무로 된 외벽이 뚫리며 김상현과 김대현을 정확히 노리고 탄자가 날아왔다.
놈들은 꽤 정확하게 사격했지만 한 발이 배의 흘수선 아래를 때리면서 바닷물이 콸콸콸 쏟아져 들어왔다.
레일건 총격 때문에 바깥으로 나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여기 있자니 수장될 판이었다.
“형님, 크윽. 이제 어쩌죠?”
“걱정하지 마라. 니 여자친구한테 몸 성히 돌려 보내줄 테니까.”
김상현의 잔머리는 이진영 못지않았다.
“사채업자님들 죄송합니다만. 어밴돈 쉽, 어밴돈 쉽! 여자와 애들부터 대피시켜어어!”
김대현은 깝깝한 표정으로 김상현을 바라봤다. 김상현은 그놈의 저질 개그 본능도 이진영 못지않았다.
그는 자침용 펌프를 작동시켰다. 밀수선에는 혹시나 해군이나 해경에게 들켰을 때를 대비해서 자침시키는 기능이 있었다. 어디건 배를 인양하는 건 꽤나 까다로웠고 특히나 마약은 비닐포장에 구멍을 내 바닷물에 수장시키면 증거가 다 사라진다.
무궁화호도 그렇고 그런 밀수사업에 사용되던 배였고 자침 펌프를 작동시키자 단숨에 람보르기니가 담긴 선미가 뽀그르르르 가라앉기 시작했다.
“오 마이 갓!”
총알이 날아오는 와중에도 한 사채업자가 구수한 한국어로 소리쳤다.
“안 돼애애! 내 람보르기니!”
헛된 꿈을 꾼 무궁화호 선장도 있었다.
* * *
1시간 뒤. 중부서에 차량 트레일러 한 대가 들어왔다. 트레일러 위에는 미역을 머리에 붙이고 덜덜 떠는 김상현과 김대현이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그들은 혹시나 누가 람보르기니를 폭파하거나 빼앗아 갈까 봐 위에서 담배를 피우며 버텼다.
구 인천항에서 중부서까지 꽤 추울 텐데도 그들은 덜덜 떨면서 누가 근처에 다가오기라도 하면 총을 쏠 기세였다. 진작에 23팀을 비롯한 다른 팀이 지원을 나와 차량 트레일러를 호위했고 김상현과 김대현은 물에 빠진 생쥐 꼴로 트레일러에서 내렸다.
이진영은 이미 주차장에 나와 두 사람을 기다리다 담배를 끄고 그들을 바라봤다.
“어떻게 된 거야?”
“배, 배, 배랑 차, 차, 차는 찾았는데, 그, 그, 누, 누가 총을, 이, 이민호, 구, 국장. 뒤, 뒤는…….”
“됐다. 안에 들어가서 뜨끈하게 커피라도 마셔.”
두 사람은 이진영에게 장난스레 경례를 붙였지만 두 사람 다 손을 부르르 떨면서 이진영을 놀리는 것처럼 보였다.
“시끼들아, 쳐들어가기나 해.”
봄 날씨치고는 어찌나 추웠는지 두 사람은 피난민처럼 서로 부둥켜안고 중부서 안으로 들어갔다.
이진영은 EV-1과 함께 람보르기니 앞에 서서 박살 난 자동차를 바라봤다.
“누구 거야? 어떤 개자식이길래 감히 겁도 없이 우리 애들을 공격한 거지?”
– 공안의 정보공유입니다. 사용된 총기류는 XDR-01입니다.
XDR-01 엑소슈트용 저격모듈. 이진영과는 천도영 사건 때 악연이 있는 무기였다.
“천수관음일까?”
– 글쎄요. 천수관음이라면 그 올레인지 공격으로 김상현, 김대현 경사가 당했을 것 같습니다.
EV-1은 이진영과 이야기하면서도 부두에서 습격 당시의 교전 상황을 복기하고 있었다.
– 바다에서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해안침투로군. 아까 상현이 말로는 광학위장을 하고 있다고 했어. 웡꺼의 공격부대는 아니야. 그놈들은 대놓고 공격하지. 아무튼 이 대단한 슈퍼카의 주인은 누구야?”
– 리스사입니다.
“리스?”
– 정보요구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지랄하네. 내가 영장 들고 찾아가서 박살 내기 전에 정보 내놓으라고 해. 지금 이거 경관살해 미수 사건이고 이건 중요 증거물이야. 그리고.”
– 해당 차량의 운행기록 및 해안도로의 CCTV 영상을 확인하겠습니다.
굳이 시시콜콜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EV-1은 이진영과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도 이미 해당 차량의 소유주를 쫓고 있었다.
중부서의 중장비 로봇이 차량을 정비행어로 돌리고 돌돌이를 비롯해 수많은 감식 로봇들이 달라붙었다. 안쪽에 이동우 원장의 지문이 찍힌 압착 비닐이 벗겨지고 몇 달 동안 어선 선창 속에 숨겨져 있던 증거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진영 팀장님! 김민지 핸드백 발견되었습니다!”
김민지의 핸드백은 람보르기니의 뒷좌석에서 발견되었다. 또한 아까 탕후루가 1차 감식한 사고 부위 외벽에서도 사람의 핏자국 흔적이 발견되고 44대응팀은 속속 그 증거들을 보전 절차를 밟으려고 했다.
하지만 뜻밖의 곳에서 제동이 걸렸다. 람보르기니의 감식 자료는 전부 봉인되고 중부서 다른 팀의 수사원들이 이진영의 44팀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
x6 JHK 그리고 피내사자
“아니 이거 왜 이래? 아무리 강호의 도리가 땅에 떨어졌어도 이건 아니지!”
무궁화호를 자침시키고 덜덜덜 떨며 람보르기니를 가져온 김상현이 제일 강하게 반발했다.
“그래! 시발!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김대현도 인형옷을 입은 채 난리를 피웠지만 다른 팀 형사가 양옆에서 뜯어말렸다.
“야, 우린들 어쩌라고? 서장이 직접 명령했어.”
“서장님이요?”
김대현과 김상현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이진영을 바라봤고 이진영은 그들이 뭐라고 말하기 전에 바람처럼 서장실로 올라갔다.
또다시 서장의 로봇 비서가 이진영을 막아섰지만 성난 그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오, 이진영 경위? 개를 찾아온 건가?”
서장은 서장실로 들어가자마자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이진영의 발치를 바라봤다.
이진영은 잘못 데려온 포메라니안을 들고 턱턱턱 서장의 탁자로 걸어갔다. 개는 그 와중에 허공에 들리자 네 발을 허우적거리면서 헤엄치는 흉내를 냈다. 살벌한 분위기와 개의 해맑은 표정은 영 어울리지 않았다.
형사부장은 결재를 맡기 위해 서장실에 있었고 이진영과 서장의 충돌을 지켜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이 개는 서장님이 찾고 있는 개는 아닙니다.”
서장은 금테 안경을 치켜올리며 싸늘하게 말했다.
“그럼 찾아와.”
“왜요? 서장님 개도 아니잖아요?”
서장은 여전히 표정 변화가 없었다.
“그리고 왜 우리 애들이 가져온 증거물을 멋대로 다른 팀에 넘기시는 거죠?”
“자네들 44팀의 관할이 아니니까.”
“우리 팀 관할이 아니라고요?”
“소유주가 이미 자수했어.”
서장은 아날로그 시계를 힐끔 보고 이진영에게 이어 말했다.
“44팀 증거 찾은 건 수고했는데, 그 사건은 이미 1팀 관할이야.”
“이, 이런 법이 어딨습니까? 3일 동안 개처럼 구르고 우리 애들 저체온증까지 걸리면서 얻은 증겁니다. 그걸 고스란히 1팀한테 갖다 바치라고요?”
이진영은 책상을 부술 듯이 주먹으로 두드리고는 서장을 노려봤다.
강력부장은 이진영을 뒤에서 말렸지만 워낙 이진영이 힘이 세다 보니 질질 끌려갔다. 성난 이진영 앞에서도 서장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중부서 서장은 딱 봐도 현장 경찰이라기보다는 관료 경찰이었다. 금테 안경에 마른 체형 그리고 파르라니 깎은 수염이 꽤나 까다로운 남자라는 인상이었다.
“지금 항명하는 건가? 그럼 정식절차를 밟지 그래?”
“서장님, 서장님이 이 사건 묻으려는 거 다 알아요. 진소홍 사건부터 시작해 우리 사사팀에 사건 떠넘기면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려고 했잖아요!”
“지금 내 판단과 행정 재량에 이의를 제기하는 건가? 그거 내 재량이라는 거 잘 알 텐데?”
이진영은 다시 책상을 두드렸다.
“리스한 놈 누구예요!”
“자넨 경찰이면서도 그걸 모르나? 아직 1팀에 배당된 사건은 아직 내사사건이야.”
서장은 가운뎃손가락으로 금테 안경을 치켜올리며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경찰 내사 처리규칙 2조 제 3항. 내사혐의 및 내사관련자 등의 정보가 외부로 유출되거나 공표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피내사자의 신분과 관련자 일체는 공표금지 되어 있지. 그걸 어기면 피의사실 공표죄가 된다고?”
“그걸 누가 몰라요? 지금 묻으시려는 겁니까? 또 내사종결로 처리하시려고요? 김민지를 죽인 그 새끼 누구냐고요!”
“동법, 제 15조 1항 내사에 있어서는 내사제보자에 대한 보복 등을 방지하기 위하여 내사제보자에 대한 인적사항을 알 수 있을 정도의 사실이나 사진을 첨부해서는 아니된다.”
“지금, 그 자수했다는 놈을 풀어주는 것도 모자라 어둠 속에 묻어버리겠다는 겁니까?”
“듣기 거슬리는군. 난 법률에 따라 내사제보자를 보호하려는 것뿐이야.”
이진영은 서장을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댔지만 별수 없었다. 수사배당은 서장의 고유권한이었고 수사를 어떤 팀에 배당하는지는 행정소송의 대상도 아니었다.
“내사번호 인천중부 057399. 이 사건도 그 의문의 내사제보자랑 관련 있는 거죠.”
형사부장은 여전히 멍한 얼굴이었지만 서장의 표정이 달라졌다. 서장은 신경질적으로 안경을 치켜올리고 이진영을 쏘아봤다.
“그건 어디서 들었지?”
“딥쓰로트.”
이진영은 그 말만을 남기고 서장실을 빠져나왔다. 강력부장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장의 눈치만 살피다 냉큼 이진영을 쫓아왔다.
“이진영이 너 미쳤어?”
부장은 철없는 자식의 등짝을 때리듯 이진영의 등을 때렸다.
“부장님, 이건 부장님에게도 중요한 분기점입니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정말로 줄 잘 서셔야 할 겁니다.”
“줄이라니?”
“아까 본청 내사과 애들이 괜히 온 것 같아요? 서장님은 지금 누군가를 ‘비호’하고 있습니다. 저 람보르기니 관련 사건도 내사사건으로 종결시켜서 묻으려고 하고 있어요.”
“그건…….”
이진영은 교활하게 웃었다.
“부장님은 알고 계시죠? 피내사자?”
“아니, 잘은 몰라. 그리고 1팀 애들도 전부 책상을 싹 비우고 어디로 갔어.”
“부장님도 모르는 인원이동이랍니까?”
“그, 수사 비밀을 요할 때 팀들끼리 막 합숙하고 그러잖아? 난 그런 건 줄 알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