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150
제150화
“운전사. 그래애애. 맞아. 장동천 저 양반, 장거리 운전을 제외하고 관광 업종이나 일부 비필수 대중교통에 인간 운전자를 고용하는 법률을 제안했지.”
– 이효진 팀장님 말대로 만약 인공지능이 아니라 인간이 사고의 원인이라는 게 재조명된다면, 그리고 그 계기가 장동천 자신의 가족이 되어버리면 대통령 후보로서는 뼈아픈 정치적 타격이겠군요.
이효진은 EV-1의 깔끔한 정리에 가식적으로 박수를 치는 시늉을 했다.
장동천 아들의 수동운전 사고.
이것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순간, 거의 다 승기를 잡았던 민족민생당으로서는 악재도 이런 악재가 없으리라.
특별 단독 사건으로 인공지능에 회의적으로 기울었던 분위기가 일거에 뒤집히면서 안보문명당에 표심이 쏠릴 수도 있었다.
관광 안내 버스 등 일부 직종에 한해 인간 운전자를 고용할 수 있다는 정책도 시궁창에 처박히고 사람들은 안전한 인공지능 운전을 택할 것이다.
당장 유력 대선후보의 아들이 그것도 최고의 인공지능을 가진 최고급 스포츠카로 수동운전을 하다 사고를 친 마당에 굳이 수동운전을 고집할 사람은 없었다.
“이브이, 팀원들 대기시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사진 속의 놈을 찾아야 해. 네가 말했지? 신병을 확보하고 체포하면?”
– 서장의 지휘 없이 입건이 가능합니다.
그때 이효진이 일어나려는 이진영의 어깨를 잡았다.
“감당할 수 있겠어? 그리고 장동천이 거꾸러진다 한들 이진영 경위 당신한테 무슨 이익이지?”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진실은 감출 수 없는 법입니다.”
“하지만 그 진실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더 많고 이진영 너도 죽을 수도 있어?”
이진영은 진소홍의 반지 케이스를 꽉 틀어쥐었다.
“진실에 다다르면, 적어도 실종된 자식의 아버지에게 할 말은 생길 거니까요.”
이효진은 씩 한 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한껏 썩은 미소를 지었다.
“너 갈수록 마음에 드는데?”
“아이고, 정말 죄송하지만 저는 더 이상 연애나 결혼은 안 할 거라서요. 지긋지긋하거든요.”
이효진은 술잔을 들고 어서 꺼지라는 시늉을 했다. 포장마차를 나서는 이진영에게 이효진이 말했다.
“이번만큼은 기꺼이 도와주지.”
“거 3류 소년만화 악역 같은 소리는 좀…….”
이효진은 들고 있던 술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이진영은 이효진과 헤어지고 나서 중부서로 되돌아가지 않았다.
“이브이, 놈의 인적 사항은?”
– 선거관리위원회 전임 인공지능과 연결하여 알아냈습니다. 18세, 아직 미성년입니다.
“그거였군! 미성년이면 내사기록은 일단 가정법원에 인도되기까지 봉인되니까! 이름은?”
– 예, 이름은 장현권.
“장현권?”
– 그 반지의 주인공이었군요.
진소홍이 가지고 있던 반지의 이니셜의 주인은 바로 장동천의 외아들 장현권이었고, 이효진의 내사팀이 찍은 사진 속의 인물 역시 장현권이었다.
이진영과 EV-1은 장현권에 대한 자료를 검색하며 신간척지가 생기고 새로 만든 신 인천항으로 향했다.
인천항으로 가는 도중 최상훈이 문자를 보내왔다.
– 야, 뭔가 찾았다! 근데 이거 맞아?
증거는 람보르기니에서만 발견된 것이 아니다. 해안에 파견 나가 있던 돌돌이와 최상훈이 가드레일 근처에서 뭔가를 발견하고 이진영에게 사진을 보냈다.
이진영은 최상훈이 해안도로에서 직접 보내준 사진을 바라보며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이건…….”
– 팀장님. 사건의 진상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봐야겠군요.
“그래, 누군진 모르겠지만 이것도 사고가 아니라 살인이야. 그놈, 장현권이 운전석에 타 있다는 걸 입증할 수 있다면…….”
이진영은 이제 거의 모든 무기를 손에 넣었고 그다음은 그 무기를 휘두를 ‘칼잡이’를 수배하는 것이었다.
같은 항구였지만 이곳은 고려 이머전시나 불법조업 어선들이 늘어선 있는 구질구질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새하얀 돛을 단 요트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고 오가는 사람들이 입은 옷도 드레스나 가벼운 린넨 정장 차림이다. 아직 날씨가 추울 텐데도 여기저기 떠 있는 요트 위에서는 선상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다.
– 저 초대장이 없으시면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경찰이다. 잠깐 얘기만 하고 나올 거야.”
– 경찰이라도 영장이 없으시면…….
“얘기만 한다니까?”
휴머노이드 웨이터는 깐깐하게 이진영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런 프라이빗 선상 파티는 굉장히 보안이 중요했고 아무나 들어올 수 없었다.
“아, 검사님! 부장검사님! 저예요. 이진영!”
그때 저쪽에서 드레스를 입은 누군가가 한숨을 쉬며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모습이 보였다.
부장검사 구자연.
그녀는 늘 입던 칙칙한 정장은 어디로 내던지고 오늘은 화사한 하얀 드레스 차림이었다.
그녀는 두 손을 휘저으며 아는 체하는 이진영을 차마 못 본 척할 수가 없었다. 구자연은 드레스 자락을 두 손으로 잡고 도도도 뛰어와서 잡아먹을 듯 이진영을 바라봤다.
“이진영 경위. 나 지금 맞선 보는 중인데 이 뭔 개지랄이야? 진짜 한번 뒈져볼래요?”
“앗, 아…….”
이진영은 아까 그녀와 함께 있던 말쑥한 수트차림의 남자를 힐끔 바라봤다.
“아, 부장검사님, 미혼이셨어요? 왠지 초등학생 아이가 있을 것 같은 분위기…….”
구자연 부장검사는 하이힐로 이진영의 발을 지그시 밟았고 이진영은 제자리에서 방정맞게 뛰면서 아픔을 참았다. 이진영을 향한 어지간한 공격은 다 방어하는 EV-1이라도 이번만큼은 구자연의 공격(?)을 막지 않았다.
“저, 그. 전에. 그 말씀하셨잖아요? 쓰읍, 아직 자신 있으세요?”
“아니 시발. 뭔 갑자기.”
구자연은 늘 하는 것처럼 욕을 퍼부으려다가 뒤에 있는 맞선남을 바라보며 호호호 가식적으로 웃었다.
“아오, 조직이 사람을 이렇게 만드는 건지 아니면 이런 사람만 조직에서 살아남는 건지 원.”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따라와요. 딱 5분 줄게.”
구자연은 이진영의 멱살을 잡고 요트 밑으로 끌고 내려왔다.
“자 5분.”
“5분 더 걸릴 것 같은데……?”
“싫으면 관두든가?”
“에헤이이. 검사님. 장동천입니다.”
손목을 안쪽으로 하고 아날로그 시계를 노려보던 구자연이 이진영을 쏘아봤다.
“뜬금없이 뭔 소리래?”
“지금, 중부서에 장동천의 외아들 장현권이 자수했습니다.”
구자연은 시계의 타이머를 해제시켰다.
“그게 나랑 뭔 상관인데요?”
“그놈 기소할 배짱을 가진 분은 우리 구 검사님밖에 없지…… 싶습니다?”
“뭘로?”
“김민지 살해 혹은 살해교사 및 구급선을 이용한 적극적 증거인멸.”
이진영은 조사한 김민지 살해사건의 검시보고서와 김민지의 인적사항이 담긴 자료를 구자연에게 넘겼다.
“김민지? 아아, 이거 전에 본 그거네? 그리고 증거인멸은 범인의 기대불가능성으로 불처벌되는 거 몰라요?”
“아뇨, 증거인멸은 최대 장동천까지 엮을 수 있습니다.”
“장동천까지?”
“운전면허 기록 보니 장현권은 18살 미성년자예요. 그놈이 사설 구급을 이용한 증거인멸에 대해 빠삭할 수 없어요. 장동천이거나 아니면 장동천의 부하라거나, 누가 도와준 겁니다.”
“증거는.”
“지금 중부서에 계류 중입니다. 하지만 장현권이 자수하면서 서장은 내사사건으로 다른 팀이 봉인했습니다.”
구자연은 이진영이 만들어온 증거목록과 감식결과를 대충 훑어봤다.
“차량이군요. 결국 요지는 장현권이라는 놈이 누군가를 차량으로 타격하여 사망에 이르게 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숨기려고 김민지를 살해했다.”
“예, 제가 생각한 사건의 진상은 그겁니다.”
“판례가 있어요. 이 경우에는 자신이 운전하지 않았다고 주장할 텐데. 시체 유기는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고.”
“예, 검사님과 저를 영전시켰던 그 백헌강 판례가 부메랑처럼 돌아오겠군요. 절대로 람보르기니 회사 측에서는 인공지능 오류를 주장하지 않을 테니 그 회사 패러리걸 로봇들이 야구팀처럼 증인 출석하겠네요.”
“이후 벌어지는 공판은 지루하게 이어질 게 뻔하고 장동천의 아들이 무죄를 받지 않아도, 그 사이에 대선이 끝나겠지요. 적어도 앞으로 서너 달만 내사로 뻐기기만 해도 장동천은 대통령이 될 거고.”
“아들의 범죄는 흐지부지. 아버지 쪽이 청와대에 입성하면 늘 그렇듯 All quiet at CheongWaDae. (청와대는 이상없다.)”
구자연 부장검사는 오래된 소설의 제목을 비틀어서 비아냥거리고는 요트 난간에 기대서 이진영에게 손가락으로 V자를 그렸다. 이겼다는 뜻이 아니다. 이진영은 그녀의 손가락에 냉큼 담배를 끼워 넣었다.
맞선을 보느라 하루종일 꾹꾹 참았던 담배를 문 그녀는 증기기관차처럼 연기를 뻑뻑 뿜어냈다.
“오케이. 근데 이 건 나한테 왜 가져 온 거예요?”
“저는 구 검사님의 정의감보다 불타오르는 야망을 더 신뢰합니다.”
구자연은 마지막으로 담배 연기를 푸하 뿜어내고 구취제거제를 칙칙 뿌렸다.
“오케이. 준비되면 말해요. 서포트해줄게. 혹시 검찰 병력 필요합니까?”
“아니오, 제겐 최고의 팀이 있습니다.
”
구자연이 뭐라고 한 마디 더하려고 할 때 웨이터 로봇이 그녀를 불렀다.
“아, 검사님. 그리고 저 국수 먹을 일 생기면 저한테도 청첩장…….”
구자연은 드레스 자락을 들고 고개를 돌려 그를 노려봤다. 방해나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곧 무시무시한 부장검사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나긋나긋한 꽃처녀처럼 하하 호호 웃으면서 맞선남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저 꼴을 그때 쪼인트 까이던 그 검사양반이 봐야 하는데.”
이진영은 실실 쪼개면서 요트를 내려갔다.
– 저 팀장님. 이제 어떻게 하실 거지요? 팀원분들이 계속 연락하고 있습니다.
“습격.”
– 습격이요?
“놈들은 피의자를 존나게 숨겨주고 있어. 우리는 그걸 털어야지. 이브이, 내사과에 찔러. 중부서 강력부 제1 대응팀이 검사가 인지한 사건 용의자와 함께 도주 중. 그리고 중부서 44팀이 용의자 확보를 하기 위해 돌입하다. 이브이, 다음 주 경찰 24시 타이틀 화면 딱 나오지 않겠냐?”
EV-1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이진영은 강력전담부의 팀끼리 붙어보자는 뜻이었다.
* * *
인천 팰리셰이드 호텔. 이 호텔은 인천에서는 꽤 드문 5성급 호텔이었고 5성급이라는 말에 걸맞게 보안 절차가 꽤나 까다로웠다.
지금 이 호텔의 최상층 펜트하우스는 누군가가 전세로 빌렸고 보안요원들이 오가고 있었다.
보안요원들은 전원이 PMC, 사설군사회사 레드 아리마 소속으로 전원 간위예 전쟁 참전자들이었다.
심지어 엑소슈트 랜서가 문 앞에 두 대 배치되어 있고 그 뒤에는 중화기로 무장한 용병들이 가득했다. 호텔 측에서는 명백히 불법인 군용 중장기병 엑소슈트 배치에 난색을 표했지만, 돈 앞에는 장사 없었다.
펜트하우스 가장 깊숙한 곳에는 중부서 형사들과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어슬렁거렸다.
“시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낸들 아나? 우리야. 서장님 말대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되는 거지.”
사실 이곳의 경비 상황을 보면 중부서 1팀, 팀장 이하 형사들 9명은 딱히 쓸모가 없었다.
이들은 어디까지나 아직까지는 중요참고인에 불과한 ‘장현권’을 이곳에 숨기기 위한 핑곗거리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