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151
제151화
김민지 살인사건은 서장 선에서 정리되고 있고 23팀에게 배당이 넘어갔다. 서장은 44팀이 맡고 있던 사건들을 전부 갈가리 찢어서 다른 곳으로 넘겼고, 동시에 44팀 자체를 해체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진영은 본청에 파견.
김상현은 인천 동부서로 전출.
이렇게 이진영과 44팀에 대한 인사발령을 벌써 이틀 전에 상신해둔 상태였다.
그러나 아직 44팀은 와해되지 않았다.
용의자인 장현권이 긴급체포 되고 검사의 승인을 얻는다면 서장의 동의 없이 이진영은 수사를 진행할 수 있다.
그걸 막기 위해 중부서 강력부 1팀이 이곳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는 것이었다.
장현권은 호텔 가운을 입은 채 왕처럼 펜트하우스 쇼파에 앉아있었다. 놈은 아버지 장동천과 꽤나 닮았지만 노련한 국회의원이었던 장동천과는 달리 뭔가 음울한 구석이 있었다.
놈은 합성마약이 섞인 담배를 피우며 형사들을 수족처럼 부렸다.
“이봐요. 여자 하나 데려오라니까?”
“아, 거 새끼 시끄럽네. 너 지금 보호해주려고 이러고 있는 거 몰라? 여자는 뭔 여자야? 여자 들여보냈다간 난리가 날걸?”
“아, 시발 짭새새끼들 되게 깐깐하네. 시발, 우리 아버지가 대통령되면 니들 무사할 것 같아?”
중부서 형사가 화를 벌컥내며 일어섰지만 1팀장이 말렸다. 이들은 한배를 탄 사람들이었다.
“어이, 언니야. 나랑 한 판 할래? 하룻밤에 1천까지는 줄 수 있어.”
언니야라고 불린 여자는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언니야는 경찰도 아니고 그렇다고 PMC도 아니었다. 이 펜트하우스에는 언니야를 제외하고도 수트를 입은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정장 차림의 사람들은 완전무장한 레드 아리마 전투부대와 뭐라 뭐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이, 언니야도 예쁜데? 어때? 내가 장동천의 아들 장현권이라 이거야아.”
장현권은 오늘 오후 자수한 이후 근처에 있는 여자란 여자에게 모두 추파를 던졌다. 하지만 이 언니야는 만만치 않은 여자였다.
“장현권, 넌 좀 시발 닥쳐.”
“뭐? 너 시발 뭐라 그랬냐? 어디 이쒸.”
짝!
여자는 장현권의 뺨을 올려붙이며 그의 가슴을 발로 걷어찼다. 장현권은 뜻밖의 발차기에 컥컥 제대로 숨도 못 쉬고 쇼파 위에서 벌레처럼 기었다. ‘언니야’는 장현권의 목을 무릎으로 누르면서 놈의 머리카락을 틀어쥐었다.
여자는 허리를 살짝 숙여 장현권의 귀에 속삭였다.
“니 아빠가 장동천이라서 지금까지 살아있는 줄 알아. 안 그랬으면 넌 벌써 고기 분쇄기 속으로 들어갔을 거야.”
저녁 내내 놈에게 시달리던 형사들은 장현권이 꼴사납게 당하는 걸 보고 저마다 피식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여자의 말은 거짓이 아니다. 아마 일반적인 범죄자였다면 장현권은 벌써 1심 판결에서 사형을 받아야 했다.
이런 버러지 같은 놈이 아버지가 대통령 후보라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세력에게 비호를 받고 있었다.
장현권은 여자에게서 풀려나자마자 씩씩대며 고함을 질렀다.
“이 개년이 날 쳤어! 너 우리 아버지가 대통령이 되면 무사할 줄 알아!”
“너야말로 무사할 것 같아? 너 때문에 니 아버지가 선거에서 질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냐?”
장현권은 ‘우리 아버지가 대통령이 되면’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녔다.
리스회사에서 빌려준 고급 승용차와 ‘대통령 후보의 아들’이라는 간판만 있으면 너도나도 굽신거렸다.
“흥, 나도 정치는 좀 안다고. 난민 새끼들이 사고 쳐서 아버지 지지율이 오르고 있잖아. 어지간해서는 떨어지지 않을걸?”
그 이야기를 듣는 1팀 형사들이 한숨을 쉬었다. 장현권 스캔들이 발각되는 순간 그 알량한 지지율은 언제 뒤집힐지 모른다.
“시발, 줄을 잘 선 건지 모르겠다.”
1대응팀 팀장은 담배만 뻑뻑 피우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장현권이 자수하기 전 그는 서장실에 불려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장동천이 지금 추세대로 7월에 대통령만 된다면, 1팀 전원은 청와대 경호실로 전출된다. 서장 역시 비서로 차출되고 정권 후반기에는 사법 쪽에 끗발 날리는 민정수석이 되기로 장동천에게 약속받았다.
계획대로 잘만 진행된다면 구질구질한 월미도와는 안녕이고 중앙정부에서 ‘나 청와대 직원이오!’하고 거들먹거릴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장현권의 꼬라지를 보면 장밋빛 꿈은 여지없이 쪼그라든다. 몇 달은커녕, 겨우 몇 시간도 버티지 못해 놈은 여자를 불러달라, 전화 통화를 하게 해 달라,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 난리였다.
장현권에 진절머리난 형사가 1팀장에게 물었다.
“팀장님, 근데 이진영이 정말로 쳐들어올까요? 서장님이 커트하셨다면서요?”
1팀장은 초조하게 줄담배를 피우면서 펜트하우스 창밖을 노려봤다.
“넌 시발 이진영이를 몰라서 그래. 그 새끼가 얼마나 집요한지 알아?”
“아니, 그 친구도 청와대 그거 이야기 꺼내면 흔들리지 않을까요? 시발 이 좆같은 월미도 떠난다는 데 누가 마다하겠어요? 그것도 청와대로.”
1팀장은 아직 장초인 담배를 재떨이에 끄고는 기가 차다는 듯 말했다.
“넌 아직 이진영이 얼마나 또라인지 모르는구나?”
1팀장은 다시 담뱃불을 붙이며 하아하고 한숨을 쉬듯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이 월미도 난민지구에서 웡꺼 돈 안 받는 새끼가 있어? 너도, 나도 돌잔치 부조금이나 하다못해 점심값, 담뱃값이라도 여기저기 세탁한 돈 받았잖아?”
“그, 그야 그렇죠. 저도 결혼기념일 선물이라고 시계를 받았는데 나중에야 웡꺼가 보낸 건 줄 알았네요.”
웡꺼는 온갖 방법으로 중부서 형사들의 신상정보를 알아내고 뇌물을 먹인다.
“딱 한 명이야. 이진영 딱 하나라고. 그 새끼는 돈도 안 통하고 명예도 안 통해. 완전 또라이지. 천도영 사건에서 그 새끼가 한 짓을 생각해봐. 난민 꼬마 하나 구하겠다고 중화대루에 찾아갔어. 미친 새끼.”
그 미친 짓은 중부서 형사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다.
“그 또라이가 저 새끼를 잡으려고 눈에 핏발이 섰어. 이진영은 절대로, 절대로 포기 안 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레드 아리마 병사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 이진영이 얼마나 대단한진 몰라도. 끽해야 경찰이 뭘 할 수 있는데? 우리 몰라?”
레드 아리마 병사들은 고전게임 마계촌에 나오는 붉은 악마 패치를 으쓱거리며 보여줬다. 레드 아리마는 페어차일드 개발의 계열 회사에 소속된 용병이자 페어차일드의 사병이었다.
이들은 간위예 전쟁 때도 온갖 전쟁 범죄를 저지르며 악명을 쌓았다. 화염방사기로 중국군을 지져버리거나 페어차일드의 자산을 점거한 중국인들을 백린탄으로 쓸어버리기도 했다.
이들의 전투력은 한국군 특수전 지원단보다 우위였고 각국의 특수부대 전역자들이 주로 채용된다.
“당신 아직 모르는구만? 이진영 옆에는…….”
갑자기 펜트하우스의 전원이 구웅하는 소리와 함께 꺼졌다. 곧바로 독립된 비상 전원이 가동되면서 조명이 들어왔다.
레드 아리마 병사들은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경계 대형으로 섰다.
아까 장현권에게 호된 맛을 보여줬던 ‘언니야’가 이어피스에 손을 올리고 레드 아리마에게 다가왔다.
“Someone breakthrough our ‘Frontline’. Hacked entire fucking building. (누가 우리 ‘프론트라인’을 돌파했다. 시발 건물 전체를 해킹했어.)”
“Ten four. Hey guys! We have some guests! (알았다. 다들 손님 맞을 준비를 하자고!)”
언니야는 유창한 영어로 레드 아리마에게 상황을 전파했고 레드 아리마 병사들은 제각각 맡은 자리로 이동했다.
문 앞의 엑소슈트 두 대는 광학위장을 작동시켰다.
일촉즉발의 순간.
덜덜덜덜.
호텔 벨보이 복장의 오픈프레임 로봇 하나가 천천히 펜트하우스로 걸어왔다. 언니야는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CCTV를 노려봤다.
“뭐야 저건?”
“호텔 벨보이 로봇 같은데요?”
“아니, 나도 아는데 왜 벨보이 로봇이?”
벨보이 로봇은 천천히 엑소슈트 앞에 다가오더니 은색 요리쟁반 뚜껑을 천천히 열었다.
문 앞에 있던 랜서가 바로 레일건으로 로봇을 긁어버렸다. 레드 아리마 병사들은 로봇을 사용한 테러에 익숙했고 수상쩍은 로봇을 고용주 근처에 접근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엑소슈트의 레일건 총구가 로봇을 가리키기 직전.
퍽!
저속폭탄이 폭발하면서 펜트하우스 앞에 있던 화분이 쓰러지고 흙가루가 정신없이 흩날린다. 팬지커터류의 저속폭탄으로 랜서급의 엑소슈트를 쓰러뜨릴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 폭탄은 단순 테러 목적이 아니었다. 랜서의 조준이 튀면서 호화로운 호텔 천장을 긁어놓았다.
“빌어먹을 정보폭탄? 설마 펜트하우스를 범종처럼 쓴 건가?”
로봇은 외부의 조종을 받는 깡통 인형이었고 저속폭탄은 정보폭탄 공진을 일으키기 위한 트리거였다. 펜트하우스 전체는 VIP 투숙객들에 대한 도청을 막기 위해 마치 범종처럼 전파 차단막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곳 안에 미사일 유도에 쓰는 작은 캡슐에 든 소형 인공지능 컴퓨터를 분무기로 뿌리듯 뿌리면 어떻게 될까? 저속폭탄은 바로 그 소형 단말기들을 펜트하우스 안에 흩뿌렸다.
날씨 뉴스, 시시한 연예인들의 이혼소식, 포르노 영상, 영화소개 정보, 신상 소개.
수많은 정보들이 한정 공간에서 터져 나오면서 EMP 쇼크를 일으킨 것처럼 각종 전자 장비들을 오작동시켰다.
폭발을 일으키자마자 옆으로 풀썩 쓰러졌다. 언니야는 지휘를 위해 혼자만 쓰고 있던 글래스 모듈을 옆으로 패대기치며 고함을 질렀다.
“헤드모듈을 페쇄회로 모드로! 이건 정보국 전술이다!”
그 순간.
월미도 난민지구 어딘가에서 오뎅 국물을 마시던 누군가가 혀를 낼름 내밀었다.
“메롱.”
그는 베어스 모자를 푹 눌러쓰면서 펠리셰이드 호텔 쪽을 바라봤다.
“이제 복직을 위한 위대한 한 걸음이라. 아무튼, 팀장님? 요번만큼은 라이벌팀이지만 아낌없이 응원해드리죠. 자, 승리하라 엘지~~~!”
* * *
정보폭탄이 터지면서 레드 아리마 병사들은 속속 글라스 모듈 벗어던지거나 유선 케이블로 헤드모듈과 소총을 연결했다.
“폐쇄회로 케이블을 써라! 정보침식을 막아!”
이렇게 되면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는 사격통제체계를 쓸 수 없다. 그렇다고 우루사 캡슐만 한 소형 단말기들을 일일이 찾아서 박살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적’은 도대체 어떤 방법을 쓴 건지 호텔 전체를 해킹하고 안에 있는 방어병력에게 ‘유시계’ 전투를 걸었다.
레일식 소총의 전자식 조준기가 퍽퍽 튀는 바람에 아예 화약식 AK-99 소총을 레드 아리마의 병사들도 있었다. 레일식 소총은 대형 ECM 재머나 한정된 장소에서의 정보폭탄에 약했고 베테랑들은 종종 화약식총기를 선호했다.
“시발, 뭐야. 뭐냐고?”
구우웅. 다시 펜트하우스의 불이 꺼졌다.
“비상전원까지 해킹했다고? 미친 말이 돼?”
언니야는 불안해하는 병사들과 형사들에게 고함을 질렀다.
“병신아! 놈들이 여기 있는 거야! 물리적으로 호텔로 들어와 직접 전원을 끊은 거라고!”
언니야는 이를 갈면서 천장을 노려봤다. 처음 정전이 되었을 때 해킹은 비상전원이 어딨는지 알아보기 위한 해킹이었다.
* * *
김상현은 정비복을 입은 채 비상축전기의 차단스위치를 내렸다.
“임은혜! 엘리베이터는!”
– 예, 가둬 놨어요! 하지만 시간을 오래 끌 수는 없어요! 호텔 본사의 전임 인공지능이 우회로를 찾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