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154
제154화
이진영과 44팀은 해군 헬기와 경찰청 블랙스와트 차량의 호위를 받으며 중부서로 되돌아왔다.
중부서 앞마당에는 아직 드레스 차림에 코트만 걸친 구자연과 검은 바지정장차림의 이효진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신들 경찰 맞아?”
내사팀 헬기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본 구자현은 혀를 내둘렀다.
본청 내사 11팀의 지원과 이민호 국장 그리고 자칭 ‘괴도 미남자(?)’의 도움으로 수사 1팀의 위치를 알아내긴 했지만, 44팀은 사실상 단독으로 레드 아리마를 따돌리고 펜트하우스에서 용의자를 체포해냈다.
이들은 배짱도 배짱이거니와 죽이 척척 잘 맞았다. 전상영을 제외한 여섯 사람은 장현권을 앞세워 중부서 강력전담부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마 평소 같았으면 이진영에게 ‘슈퍼캅’ 운운하며 농담을 거는 형사들도 있고, 임은혜를 놀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강력전담부 행어는 야간이라는 걸 감안해도 쥐 죽은 듯 조용하기만 했다.
입구에는 서장과 1팀이 버티고 서서 이진영을 노려보고 있었고, 당직을 서고 있던 다른 팀 형사들은 서장과 이진영의 대치를 침을 꼴깍 삼키며 바라본다.
x7 개, 개, 개.
서장은 주눅이 든 장현권을 보고 가운뎃손가락으로 안경을 치켜세웠다.
“넘겨.”
“아뇨오오. 이거 이미 긴급체포되고 영장까지 신청했습니다. 검사도 인지했구요.”
서장은 정문 옆에 기대어 서 있는 구자연 부장검사와 그녀의 휘하 수사관들을 힐끔 바라봤다.
“넘겨. 너 입증 못 한다.”
“뭘요?”
“뭐든지.”
“아 서장님, 자신 있으신가 보네요?”
“없잖아? 증거.”
이진영은 서장을 똑바로 쳐다봤다.
“무슨 증거요?”
“뭐든지.”
서장은 책잡힐 만한 말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김민지 피살사건, 사체 유기, 진소홍 실종.
현 시점에서 장현권과 이 세 가지 주요 혐의점을 입증할 증거는 서장의 말대로 애매하긴 했다.
람보르기니에서 나온 핸드백은 김민지가 그곳에 있었다는 걸 증명할 뿐이지 살해되었다는 걸 입증하는 증거는 아니었다. 또한 찌그러진 람보르기니 차체에서 따로 나온 DNA나 피는 무궁화호로 옮겨 싣는 과정에서 바닷물로 세척되어 감식에 실패했다.
이진영은 서장의 뒤에 줄지어 서 있는 ‘패러리걸 로봇’들을 뒤늦게 발견하고 휘파람을 불었다.
“G&C라 오랜만이네?”
일전에 연쇄살인범 백헌강을 변호했던 로펌 G&C 변호사가 하얀 눈썹을 꿈틀거리며 이진영을 바라봤다. 저 중에 인간 변호사는 이 노인 한 명뿐이고 나머지는 다 패러리걸 로봇들이었다.
– 명백히 도주의 우려가 없습니다. 저희 의뢰인의 수갑을 풀어주시죠?
“오케이, 앞으로도 한창 싸워야 하니 이 정도는 양보해주지. 유인환 풀어줘.”
이진영은 유인환더러 포승줄과 수갑을 풀어줄 것을 지시하고 서장을 노려봤다.
“장동천이 보냈나요?”
“피의자도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있지. 필요적 변호 사건은 아니지만 말이야.”
서장은 스토커 강간범 이명훈 사건에서 이진영의 취조녹화를 본 게 분명했다.
“이대로 무사히 넘어갈 것 같습니까?”
“자신 있으면 해보라니까?”
“예, 한번 해보죠. 빡세겠지만.”
이진영은 강적인 로펌의 패러리걸 로봇들을 바라봤고, 서장은 이진영을 쏘아보다가 그에게 길을 비켜줬다.
이진영과 44팀은 김민지 살해사건의 피의자 장현권을 앞세우고 취조실로 향했다. 늘 활기찼던 강력전담부 안의 분위기가 싸늘하다.
다른 팀 형사들은 경계와 두려움 그리고 걱정이 뒤섞인 표정으로 ‘역린’을 건드린 44팀을 그냥 바라보고 있었다. 서장은 빙글 돌아서 이진영에게 고함을 질렀다.
“생각 잘해라? 딸린 식구도 많은데 옷 벗으면 여러모로 곤란하지 않나?”
이진영은 썩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원하시면 지금도 풀몬티로 가드릴 수도 있습니다.”
풀몬티는 스트립쇼에서 팬티까지 벗는 걸 말했다. 이진영은 스카잔 점퍼를 벗어서 빙글빙글 흔들며 약 올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진영이 취조실로 사라진 후, 구자연와 검찰 사무관들을 선두로 이효진의 내사 11팀이 서장의 양옆으로 뚜벅뚜벅 걸어들어왔다. 구자연은 일부러 서장 옆을 지나갈 때 어깨로 서장의 어깨를 쳤다.
“구자연 검사님. 이런 불확실한 일에 올인하실 줄 몰랐는데요? 야망이 있으신 분 아니었나요?”
“맛난 먹이에는 언제나 리스크가 있는 법.”
이효진은 구자연의 말에 씹는 담배를 질겅질겅 씹다가 퉤하고 서장의 구두 옆에 뱉었다. 서장은 금테 안경을 손가락으로 치켜올렸고 관자놀이에 혈관이 툭 도드라졌다.
취조실 안팎으로 싸한 긴장감이 흘렀다. 마치 국가대표 축구 경기를 보는 것처럼 수많은 세력들이 이 취조를 지켜보고 있었다.
경찰 상부, 정보국, 육군공안부, 정치계.
이들은 유출된 영상으로 이진영과 장현권 그리고 패러리걸 로봇들이 들어오는 걸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언론에는 엠바고가 걸려 있었지만, 만약 이진영이 장현권의 혐의를 입증해 낸다면 다시 한번 파란이 일어나리라.
장동천은 지금 여론조사에서 40% 가까이 지지율이 올랐고 사실상 오는 7월에 있을 선거에서 당선이 유력했다.
상대인 안보문명당은 특별 단독 사건 스캔들 이후 타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까지도 경선이 끝나지 않고 지지부진한데다 국민들은 장동천의 기본소득제 재검토 정책을 지지했다.
이 상황에서 장동천이 외아들 장현권이 사고에 휘말렸다. 하필 장현권이 자수한 것은 자동차량의 감독 혐의였고 그 결과에 따라 장동천의 정치생명은 물론 인공지능 업계에서 난리가 날 터였다.
관계자들이 착석하고 다비드 조각상 같은 외모의 패러리걸 로봇이 바로 말했다.
– 서로 시간 낭비는 그만하죠. 이 사건의 쟁점은 람보르기니 차량의 제동입니다. 저희 의뢰인은 그저 불행한 사고를 당했을 뿐입니다. 저희 의뢰인은 대응1팀에 차량손괴죄 및 과실상해죄로 자수를 했고 분명 경찰관의 판단에 의거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고 귀가했습니다.
이진영은 담배를 물고 씩 미소를 지었다.
“아이고 귀가라? 호텔 펜트하우스로?”
– 문언적인 의미에 집착하지 마시죠? 그리고 담배 끊으시죠. 저희 의뢰인은 아직 미성년자입니다.
“아직 불 붙이지도 않았다?”
이진영은 담배를 만지작거리면서 장현권을 쏘아봤다. 정신이 든 장현권은 패러리걸 로봇을 양옆에 줄지어 앉혀두자 완전히 평상심을 되찾았다. 그는 이죽거리는 표정으로 이진영을 쏘아봤다.
“장현권, 김민지 어떻게 했어?”
“김민지가 누군…….”
패러리걸 로봇이 바로 손을 뻗어 장현권의 발언을 제지했다.
“호오 그렇게 나오시겠다?”
– 체포 당시에 미란다 고지도 안 알려주셨나요? 저희 의뢰인은 불리한 진술을 고지하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람보르기니에서 김민지의 핸드백이 나왔다. DNA도 나왔고. 또한 김민지의 최종 사망 시간과 람보르기니가 발견된 구급선 무궁화호의 항적 시간을 보면 말이야. 그럼 김민지에 관련된 것이 댁의 의뢰인에게 존나게 불리한 건가? 인공지능 판사가 그 부분 재미있게 여기겠는데?”
– 저희 의뢰인은 현저히 유명세를 가진 대통령 후보의 아드님이십니다. 어떤 식으로든 진술했다가 불이익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다시 쟁점으로 돌아오시죠. 차량손괴죄와 과실상해죄부분. 그리고 과실상해죄 역시 중부서 강력부 대응1팀의 판단으로는 무혐의라 판단했습니다.
이진영의 앞에는 1팀에서 먼저 올린 내사 보고서가 놓여 있었다. 그는 그걸 대충 파라락 넘기는 시늉을 하며 장현권을 노려봤다.
“우리랑 람보르기니를 싸움 붙이시겠다? 다음에는 람보르기니의 패러리걸 로봇이 아예 대대급으로 몰려오시겠군?”
– 그건 이진영 팀장님이 알아서 하셔야지요. 더 할 말 없으시면 의뢰인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도 될까요?
“아아아니. 간신히 입건시켰고 체포영장도 받았어.”
– 뭘로요?
“김민지 살해 방조 내지 살해 혐의.”
이진영은 장현권의 오른손을 가리켰다.
– 피의자 장현권의 오른손에는 마찰에 의한 화상 흔적이 있습니다. 장현권은 오른손잡이고 김민지는 오른손잡이에 의해 뒤에서 섬유질의 천으로 목 졸라 죽였습니다.
EV-1이 바로 끼어들었다. 패러리걸 로봇은 EV-1을 쳐다보며 반박했다.
– 전 세계의 오른손잡이 비율을 말씀드려야 하나요? 그리고 독수의 과실 모르십니까? 불법체포로 인한 증거는 법정에서 효력을 얻지 못합니다. 설사 같은 섬유질이 의뢰인의 손에서 발견되었다 한들 무슨 소용입니까?
– 불법체포라는 겁니까?
– 예, 현재 팰리셰이드 호텔 측에서 주거침입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 체포영장을 집행한 것뿐입니다.
– 그 영장을 발행한 사람과 담당 검사 역시 책임을 묻게 될 겁니다.
장현권의 손의 열상만으로 김민지 살해를 입증할 수는 없다. 장현권은 비열한 놈이었지만 멍청한 놈은 아니었다. 놈은 돌아가는 사정을 보고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빙긋 웃었다.
“형사님, 그 호텔 얼마나 비싼 건지 알아요? 유리창에 계단까지 박살 냈으니 보험도 안 될 텐데 형사 월급으로 감당 가능하겠어요?”
패러리걸 로봇은 의뢰인이 이진영의 신경을 건드리는 걸 그냥 내버려 뒀다. 이진영이 평정심을 잃으면 의뢰인을 빨리 빼내는 데 도움이 된다.
“근데 하나 물어봅시다? 왜 과실상해죄로 자수한 거지?”
– 의뢰인과 동승한 인원이 부상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의뢰인은 차량의 인공지능 오류로 사고가 나자 바로 운전자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구급차에 신고했습니다. 팀장님도 아시다시피 전임 인공지능에 의한 운전이라도 차량 명의자 혹은 운전자는 그 부상에 있어서 유기죄 요부조 책임을 지게 됩니다.
“운전자 요부조 책임이라.”
운전자의 요부조 책임은 비록 자신의 고의나 책임으로 사고가 발생하지 않아도 동승자를 구조해야 하는 의무가 발생한다는 뜻이다.
“그럼 부상을 당했다는 건데. 그 의료기록 좀 볼 수 있을까?
– 사설 구급에 있을 겁니다. 그곳은 공공 앰뷸런스를 불러도 오지 않았고 자세한 의료 처치기록은 고려 이머전시에 문의해 주십시오.
서장이 아무 증거도 없을 거라고 한 말은 사실이었다. 이렇게 되면 김민지 변사체 사건은 고려 이머전시 사장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게 된다.
– 이건 고려 이머전시 원장 이동우의 전과기록입니다. 성추행 전과가 있습니다. 저희 의뢰인께서는 이 기록을 보시고 고려 이머전시 사장이 김민지를 성폭행 후 목을 졸라 죽인 거라 추측하셨습니다.
“이동우 원장한테 모든 걸 뒤집어씌우시겠다?”
– 그걸 확인하시는 게 팀장님의 업무입니다.
그때 임은혜가 자료를 가지고 앞으로 나왔다.
“이건 마이크로웍스 도은주 과장의 조언을 받아 람보르기니에 남겨진 인공지능 논리구조를 파악한 결과입니다.”
– 이제 본안으로 돌아오셨군요. 이거이거 저도 빨리 퇴근할 수 있어서 다행이네요,
임은혜는 재수 없게 팔을 양옆으로 벌리는 패러리걸 로봇을 쏘아봤다. 이 로봇들은 이런 태도로 법정에서 검사들의 화를 돋우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