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20
제20화
이곳은 방첩부대였지만 타군의 공안보다 아무래도 더 파워가 셌다. 그래서인지 보통 공안 3사라고 불리는 곳이 경찰 본청 공안부와 이곳 육공 그리고 국가정보국-NIA였다.
“육공이고 오공이고 새파란 게 어디서 반말이야? 니가 육아 로봇에게 쪼꼬렛 받아먹고 있을 때쯤 나는 레이션 씹으면서 깐웨 전쟁에서 굴렀는데.”
“이 새끼가.”
대위는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와아아, 좀 있으면 고문도 하겠네. 물과 전기의 시험. 짱개 놈들에게 풀코스로 돌렸다는 이야기는 마않이 들었지. 小李喝了水, 变成了水饺~~ 小王吃了电, 变成了锅贴~? (이아무개는 물먹다 팅팅 불어 물만두가 되었고요, 왕아무개는 전기 먹고 군만두가 되었다지?)”
간위예 전쟁에서 중국군 포로들이 정보를 캐내기 위해 고문을 일삼는 육군 공안을 비꼬면서 부르는 노래였다.
“캬아아아. 난 이왕이면 물로 해주쇼. 의수가 비싸서 전기고문 당하면 이거 직장보험으로 처리될지 잘 모르겠으니까.”
이진영은 얄밉게 오른손을 들어 보이면서 킥킥거렸다. 그는 상대방을 열받게 하는 데는 도가 튼 사람이었다.
“이 새끼가 진짜 돌았나. 당신 인천에서 지금 미사일을 쏜 공안 현행범으로 잡힌 거야. 상황 파악이 안 돼?”
“미사일을 먼저 쏜 게 누군데? 댁들 로봇이랑 공격 로봇 중대부터 조지고 나서 다음에 나한테 오는 게 도리 아니야?”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본데 당신, 지금 러다이트 테러리스트 혐의도 받고 있어.”
“정신 나갔어? 아니 어떤 러다이트 테러리스트가 로봇 등짝에 타고 레일건을 뿜뿜 쏴대나?”
“흥, 그러면 왜 요새 문제가 터질 때마다 당신이 그 자리에 있었을까? 이게 다 우연이라고?”
대위는 요리사 유명구 사진을 테이블 디스플레이에 좌르륵 띄워놓았다.
이진영은 심드렁하게 테이블을 바라보다가 알까기하듯 손가락으로 톡톡 디지털 사진들을 쳐버렸다.
“스케이프 고트. 이제야 알겠군. 딱 마침 뒤집어씌우기 좋은 길잃은 어린 양이 딱 그 자리에 있었네. 시나리오는 대충 미친 형사가 아선에서 고성능 로봇 프레임을 받아서 대충 미친 짓 좀 했다?”
대위의 표정이 움찔거렸다.
“신예 로봇 K-841이 사고를 치고 존나게 몰렸으니 그쪽으로 시선이 쏠리면 아아주 곤란하겠지. 게다가 EV-1은 시제기인데도 K-841을 압도했으니 우리 장군님들 지갑이랑 똥줄이 좀 타들어가시겠구먼.”
“…….”
“나중에 진실이 밝혀져도 국방부가 대애충 뭉개버릴 테니 다소 억울한 사람이 생겨도 지금 당장 여론을 무마할 카드가 필요하다? 그래서 지금 우리 회사 대빵 전화도 안 받고 있을 테고?”
이진영은 수갑에 찬 손으로 턱을 쓰다듬다가 해맑게 웃었다.
“이쯤에서 전화 찬스?”
“아, 변호사를 부르시겠다고? 소용없을걸? 이거 공안 사건이야. 보안 인가 안 받은 패러리걸 로봇 따위가 감히 육공에 들어올 수 있을 거 같아?”
“아니. 이럴 때 연락하라고 한 사람이 있거든.”
이진영은 검지와 새끼손가락으로 전화 모양을 만들어 얄밉게 흔들었다. 대위는 벽면 디스플레이 쪽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자신의 개인 폰을 턱하고 내밀었다.
이진영은 두 손으로 핸드폰을 잡고 일부러 혀로 디스플레이를 터치하고는 침이 묻은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 이 번호는……. 뭐야? 육공 김 대위?
“어이고오 우리 잘 생기신 기생오래비 양반. 제가 쪼오오금 곤란한 사정이 생겨버렸네? 와 주시죠.”
– 이진영 경위?
수화기 너머로 긴 한숨 소리가 들렸다.
– 나 참. 거 찬스 카드 한 번 끝내주게 잘 쓰시네?
“난요, 부루마불을 할 때도 우대권을 아끼지 않거든. 좋은 카드 이럴 때 써묵어야지요? 안 그릏습니까? 엔아이에이 신희정 요원니임?”
전화기 건너편에서 다시 한숨 소리가 들렸다.
– 가면 뭐 줄 겁니까?
“뭐, 청초육사(靑椒肉絲) 끝내주게 하는 집이 있습니다.”
– 청초육사면 좀 약헌데?
“공부가주. 곡부가 미군에게 궤도폭격 당하면서 더 이상 먹을 수 없게 된 그거요.”
– 아, 고거면 이야기가 다르지.
신희정은 가타부타 이야기도 하지 않고 전화를 뚝 끊었다.
이진영은 고개를 숙여 인사하듯 또 혀로 폰을 터치해서 통화를 종료하고 침이 잔뜩 묻은 폰을 머리로 밀어서 김 대위에게 돌려줬다.
김 대위는 침이 가득 묻은 폰을 보고 인상을 찌푸리면서 한 대 칠 기세였다.
“김 대위라고 했나? 당신 우리 회사 얕보지 않는 게 좋을걸? 국내 정보에 관한 한 경찰청 본청이 그쪽 회사보다 우위에 있으니까. 아마 당신 주차금지로 어마어마하게 로봇에게 시달릴지도 몰라.”
김 대위는 이를 갈면서 테이블을 주먹으로 치고 나갔다.
“워메, 이 비싼 걸 막 주먹으로 후려 까면 쓰나아. 국방부 돈 많아졌나 보네? 내가 제대할 때는 참전수당도 안 준다고 그르드마아안! 안 그래 이 개자식들아? 대령중령소령은 양주 처먹고~~, 대위중위소위는 맥주 처먹고오~~, 상사중사하사는 쏘주 처먹고, 불쌍하다 이등병은 소독제 처먹고.”
이진영이 유구한 역사를 가진 노래를 부르자 육공의 높으신 양반들도 바로 마이크 스위치를 내렸다.
* * *
불과 30분도 걸리지 않아 신희정이 육군 공안부 특별회의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여전히 잘생긴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이진영은 그를 보자마자 대뜸 수갑을 흔들면서 씩 웃었고 신희정은 전자식 키를 갖다 대서 수갑을 풀었다.
“담배?”
이진영은 손을 풀면서 담배를 권했고 신희정은 사양하지 않았다.
“여윽쉬 공안 3사 중 NIA가 더 끗발이 세구만. 우리 회사 부장님은 코빼기도 안 보이는데.”
“아오, 여기 들어오려고 내가 뭔 짓을 한지 아쇼?”
“육공 부장 밤시중이라도 든 거요? 와아, 육공 부장 취향 한 번 끝내주는군.”
신희정은 킥하고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당연히 도청과 녹음이 되고 있는데도 이진영은 거침이 없었다.
“아무튼, 요원 양반 밖은 지금 난리가 났겠군요.”
“뭐 그렇죠. 많이 죽었으니까.”
“국방부는 궁지에 몰렸고, 우리 회사는 나로 광 팔고 있겠고.”
신희정은 그의 말이 맞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영장은 군 검찰이 신청해도 증거조작할 시간이 없으니 기각될 테고. 그럼…… 육공 체면 생각하면 풀로 48시간 기다려야 하나요?”
“아뇨.”
신희정은 아날로그 시계를 보면서 숫자를 세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만하면 대충 육군 체면은 때워줬고. 일어나시죠. 현 시간부로 인천 고가도로 사건도 NIA 관할 사건입니다.”
신희정은 담배를 비싼 테이블 디스플레이에 비벼끄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진영 역시 담배를 바닥에 튕기면서 신희정을 따라나섰다.
디스플레이로 이 광경을 지켜보는 육공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질만한 일이었다.
회의실 바깥에는 김 대위를 비롯한 육군 공안부 관계자가 도끼눈을 뜨고 두 사람을 지켜봤다. 심지어 호위부대는 제식 레일건을 장비하고 있었고 뭐라도 터지면 바로 총을 쏠 기세였다.
이진영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면서 풍선껌을 꺼내 짝짝 씹었다.
육군 공안부 청사를 나오자마자 신희정과 이진영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다.
“거 참, 경위님 팔자 한번 드셉니다 그려. 어떻게 사고 터지는 곳마다 등장하십니까?”
“그러게나 말입니다. 안 그래도 점쟁이가 금년 팔자 사나울 거라더니만 옘병.”
두 사람은 일회용 라이터로 담뱃불을 붙이고 연기를 내뿜었다.
“제 장비는?”
“총과 수갑 등 장비는 중부서로 배달되었겠지요.”
“아니 로봇 말입니다.”
“아, 그건…….”
신희정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이마를 긁적였다.
“로봇은 육공이 감찰에 들어갔습니다.”
“정식으로 배치된 경찰자산인데도요?”
“뭐 거기까지는 빼 올 수는 없었습니다. 이해해 주시길.”
“로봇이 없으면 나는 수사할 수 없는데요? 경직법상 경관은 직무수행하려면 반드시 로봇이 있어야 합니다.”
“뭐……. 그거야 그쪽 회사에서 알아서 하겠지요. 로봇 재배치를 하든 카드로 된 전임을 배치하든.”
“아뇨, EV-1 그 녀석이 있어야 돼요. 기록도 녀석이 다 가지고 있으니까.”
신희정은 잘생긴 미간을 찡그리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리 NIA라지만 육공이 길길이 날뛰는 상황에서 미사일까지 쏜 로봇까지 빼 올 수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대신 공부가주로는 턱도 없을 것 같군요. 아무튼 왜 그 자리에 있었습니까?”
“취조입니까?”
“취조라면 취조고 그냥 개인적인 궁금증입니다.”
이진영은 더 걷자는 시늉을 했고 신희정은 뒤에 따라오는 NIA 소속 로봇을 검지로 가리켰다.
이 광경을 카메라로 지켜보고 있던 김 대위는 갑자기 귀를 움켜쥐면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뭐야! 시발! NIA 새끼들 감히 국방부에서 통신교란을!”
전쟁 때는 하늘의 새도 떨어뜨렸다는 육공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이진영은 고소하다는 표정으로 육군 공안부 청사를 바라보면서 운을 뗐다.
“암살이었습니다.”
“암살?”
신희정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진영을 쳐다봤다.
“육공 놈들이 정보를 공유 안 한 모양이군요. K-841은 트레일러에서 나오자마자 미사일을 나랑 깡통에게 조준했습니다. 요원님이 말한 그들 중에 하나가 나를 제거하려 한 겁니다. 비슷한 방법으로요.”
“똑같은 방법이라면…….”
“신흥동 연쇄 살인사건, 유명구 사건, 081호 사건. 거기에 청소로봇까지.”
로봇 살인. 이진영은 그 키워드를 꺼내지 않고 은근슬쩍 신희정에게 암시를 줬다.
“아마 국방부나 육군은 로봇 오류라며 아선에게 책임을 떠넘기겠지요. 아선은 프레임 오류는 없다면서 난리 칠 테고. 또 살인 로봇에 대한 여론이 들끓겠지요.”
신희정은 그 말을 잠시 곱씹다가 대답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AI 딥러닝 회사도 버몬트 오토고 프레임도 아선 인더스트리입니다. 호리코시-태성이라는 종전의 사례와는 다릅니다.”
“플랜B거나 아니면 국방부에 조력자가 있을 겁니다. 경찰청 내부에 진압 로봇을 심을 정도라면…….”
아마 EV-1이 들었다면 여전히 논리비약이라고 말할지도 몰랐다. 신희정도 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근거는요?”
“근거는 부족합니다. 하지만 뭔가 고약한 냄새가 나요.”
“흠……. 경위님은 뭔가 짚이는 게 있는가 보군요.”
“예. K-841은 무장연결기가 없었습니다. 근데도 발포할 수 있는 상황은 뭘까요?”
신희정은 금방 그 상황이 뭔지 알아챘다.
“로봇 3원칙! 설마 누군가 로봇 3원칙의 오류를 이용한 겁니까?”
“예, 로봇은 인간을 해치지 못한다. 그러나 만약 다른 로봇이 인간을 해치려는 모습을 본다면?”
“1원칙에 따라 2, 3 원칙이 무시 혹은 패스되고…….”
“즉시 공격명령이 떨어졌겠지요. 놈들은 EV-1을 인간을 해치는 로봇 혹은 그에 준하는 위협인자로 인식한 겁니다.”
신희정은 뜻밖의 결론에 침을 꿀꺽 삼키다가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군용 인공지능은 그 정도로 오류가 터지지 않습니다. 애초에 그 정도라면 군용으로 허가가 떨어지지 않아요. 버몬트 오토는 미군 군납업체기도 하고 그런 오류가 벌어진다는 건……. 흠, 아시겠죠? 경제적으로도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좀 더 확실한 근거가 필요합니다.”
인공지능의 오류가 있다는 걸 인정하면 주식이 왕창 떨어진다.
당장 태성과 호리코시의 주식은 청소 로봇 판결 이후로 와장창 떨어지고 있었고 만약 버몬트나 아선까지 난리가 난다면 세계 AI 업계의 주식은 요동칠 것이다.
“알고 있습니다.”
이진영은 미세하게 떨리는 오른손을 바라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