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204
제204화
당해룡은 제법 풍채가 좋은 사람이었고 얼굴도 험상궂게 생겨 딱 ‘나 깡패요’하고 써 붙이고 다니는 것 같았다.
그는 거들먹거리면서 사무실을 나와 조직원들의 인사를 받았다.
그가 걸치고 있는 양복은 밀수로 얻은 고급품이었고 생김새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놈은 거들먹거리며 차로 향했다.
부두는 워낙 좁고 복잡한 곳이라 차가 안쪽까지 들어오지는 않았고 놈은 차를 수산공판장 근처에 세워놓았다.
딱 마침 공판장 옥상에 있는 진가구가 노리기 좋은 위치였다.
당해룡은 운전사인 부하 한 명만 데리고 차로 다가갔다.
당해룡은 맞은편 건물의 콘크리트 차양막 아래를 걸었고 머리가 보이지 않았다.
퓩.
레일건에서 작은 소리와 함께 총알이 날아가더니 당해룡의 가슴을 때렸다.
당해룡이 으윽하는 소리를 내면서 앞으로 쓰러지고 쿵하는 소리에 운전사가 뒤를 돌아봤다.
퓩.
그 순간, 운전사의 가슴도 관통되었다.
“야? 당해룡은 살려둬야지? 고문해야 하잖아?”
“시발, 고문은 죽이고 흔적만 남겨 놓자고.”
이만수는 불만이라는 듯 투덜거렸지만 사건은 의외의 사태로 이어졌다.
“저격이다아아아아!”
당해룡이 권총을 뽑아 마구잡이로 쏘기 시작했다.
놈이 입은 고급 양복이 문제였다. 그 양복은 그냥 양복이 아니라 방탄복이었고 당해룡은 충격에 피를 토하긴 했지만 용케도 살아남았다.
총소리와 고함 소리를 듣고 해룡상회의 조직원들이 보스를 보호하러 튀어나왔다.
당해룡은 비틀거리며 맞은편 공판장 건물로 기어들어갔다.
“제기랄! 죽일 거였으면 왜 머리를 안 때린 거야!”
“쉿, 조용히, 아직 우리 위치가 발각되진 않았어.”
진가구는 이만수를 조용히 시키고 조준경으로 이쪽으로 달려오는 조직원들을 겨눴다.
퓩.
이번에는 머리가 터지면서 조직원 한 명이 앞으로 풀썩 쓰러진다.
EBR-14E는 레일건이었고 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또 진가구가 총구에 티셔츠를 덮어두었는지라 푸른 전류가 총구 앞으로 튀는 장면도 보이지 않았다.
해룡상회의 조직원들이 하나둘 쓰러지고 뒤늦게 저격임을 알아챈 놈들이 엄폐물 뒤로 숨었다.
진가구는 놈들에게 위협사격을 가하면서 이만수에게 말했다.
“내가 엄호할 테니. 가서 당해룡을 죽여.”
“내가 미쳤어? 난 감독관이라고.”
“지랄, 일 그르치면 둘 다 싸대기로는 안 끝날걸?”
체잉꺼는 잔인한 놈이었다.
임무에 실패한 두 사람에게 어떤 벌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만수는 진가구를 노려보다가 다람쥐처럼 공판장 아래로 내려왔다.
체구가 작은 이만수는 암살자로서 딱 제격이었다.
놈은 자세를 낮추고 그림자 속에 숨어서 건너편 공판장으로 달릴 준비를 했다.
그 사이 진가구는 노점의 프로판 가스통을 노렸다.
쾅!
가스통이 폭발하고 해룡상회의 조직원들은 일제히 바닥에 엎드렸다.
그 사이 이만수가 후다닥 옆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저기 있다아아!”
이만수를 발견한 놈이 총을 쏘려고 했지만 진가구가 더 빨랐다.
퓩.
저격총이 놈의 이마에 박히면서 절명했고 죽은 후에도 방아쇠를 잡아당겨서 AK-99 소총이 지멋대로 춤을 추며 사방으로 총알을 내뱉었다.
“진가구! 됐어!”
저쪽 건물 창문으로 이만수가 잘린 당해룡의 목을 들어 보였다.
체잉꺼는 귀만 가져오라고 했는데도 이만수는 머리카락을 허리춤에 묶고는 냅다 바깥으로 달렸다.
이제는 철수할 때였다.
진가구는 위협 사격을 몇 번 하고 옥상에서 내려왔다.
“목은 왜 잘라 왔어!”
“우리도 매달아야 할 거 아니야! 웡꺼 애들처럼!”
이만수는 천진난만하게 웃어서 더욱 섬뜩했다.
진가구는 혀를 빼물고 죽은 당해룡의 얼굴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오늘 죽인 사람만 네 명이었다.
그는 간위예 전쟁 때부터 줄곧 PTSD에 시달리고 있었고 늘 죽은 사람들의 얼굴이 꿈속에 나왔다.
아마 오늘 죽인 당해룡의 조직원들이나 저 혀를 빼물고 죽인 당해룡의 모습도 언젠가는 그의 꿈속에서 나올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한가하게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화가 잔뜩 난 해룡상회의 조직원들이 총을 쏴대며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이만수는 앞으로 달리면서 뒤로 고함을 질렀다.
“시발! 니네 보스가 바늘이었다고!”
“웃기지 마! 우리 보스가 왜 짭새야!”
타다다다다!
바다 쪽에서 밀수선이 움직이면서 중기관총탄이 쏟아졌다.
진가구의 말대로 인사기록 카드를 앞세우고 정면으로 잡으러 갔다면 그와 이만수는 총알로 환대를 받았을 것이다.
진가구와 이만수는 공판장 뒤로 피했지만 벌써 주변은 잠꺼와 웡꺼의 조직원들이 슬슬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곳 구 인천항의 밀수업체는 당해룡의 해룡상회만 있는 게 아니었고 웡꺼의 수산회사나 잠꺼의 ‘양탄자 회사’도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진가구나 이만수는 잠입경찰 사냥을 하러 왔다가 되레 웡꺼에게 당해 항구에 거꾸로 매달릴 판이었다.
진가구의 눈에 문득 당해룡의 고급 세단이 눈에 들어왔다.
“만수! 너 기름차! 운전 잘하냐!”
“아니! 난 전기차 면허도 없어!”
운전 전임 인공지능이 도입되면서 수동운전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많지 않았다.
“내가 운전할 테니까! 네가 엄호해!”
“난 총은 싫어! 어릴 때 실수로 엄마를 쏴서 트라우마가 생겼거든!”
“지랄! 생긴 것답지 않게 개 같은 트라우마가 다 있네! 그냥 뒤로 쏘기나 해!”
진가구는 쓰러진 운전사의 손에서 스마트키를 빼앗고는 차 문을 열었다.
차 안에는 브래지어와 술병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평소에 당해룡이 차를 어떤 용도로 쓰는지 알 수 있었다.
진가구는 시동 버튼을 누르고 운전석에 앉았다.
타앙!
마침 그를 노리고 앞에서 총알이 날아왔지만 이 고급 세단은 방탄차였다.
총알이 피융하고 튕겨 나가는 와중에 진가구는 클러치를 밟아 기어 1단을 넣고 엑셀러레이터를 눌렀다.
이 세단은 가솔린 차량이었고 전임인공지능이 없었다.
전기차가 처음 도입되었을 때는 부자들이 전기차를 탔지만 이제 재벌들이나 조폭 보스들은 되레 힘을 과시하려고 내연기관 차량을 타곤 했다.
당해룡도 전자부품 밀수로 벼락부자가 되었고 체면을 중시하는 조폭답게 내연기관 세단을 굴렸다.
타다다다!
마약에 취해있다 뛰쳐나온 웡꺼의 조직원들이 벌써 벌떼처럼 달려 나왔고 진가구는 눈 딱 감고 놈들을 차로 받아버렸다.
고급 승용차라 그런지 사람을 치어도 진동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웡꺼의 조직원이 차량 위로 올라갔다가 뒤로 떨어지면서 어이쿠하는 소리가 들렸다.
차량이 폭주하기 시작하자 제아무리 웡꺼의 조직원들이라도 그 앞을 가로막지 못했다.
차량은 물고기가 담긴 통을 들이받고 횟집의 간판을 깔아뭉개고 앞으로 나아갔다.
와장창!
유리조각과 물고기가 길바닥에 나뒹굴고 고급 세단은 부아앙하는 소리를 내면서 진흙과 물고기 내장이 널브러져 있는 도로를 달린다.
진가구는 2단에서 5단까지 스무스하게 기어를 조작했다.
이만수는 조수석에서 손잡이를 잡고 진가구의 운전 솜씨에 혀를 내둘렀다.
“야! 너 기름차 운전 잘하는데! 언제부터 한 거냐!”
대답하기가 뭐 했다.
진가구가 운전을 배운 건 경찰학교에서였다.
경찰이나 소방관들은 긴급상황에서 내연기관을 다뤄야 할 때가 있었고 경찰학교에서 실무로 운전을 배웠다.
진가구는 총 솜씨만큼이나 운전 솜씨도 뛰어났다. 그는 항구의 비좁은 골목길을 요리조리 빠져나오면서 웡꺼의 추격을 따돌리려고 했다.
그러나 웡꺼 놈들에게는 테크니컬 트럭이 있었고 곧바로 트럭 몇 대와 장갑차까지 세단을 쫓아오기 시작했다.
피융피융 방탄 차량 뒷유리에 총알이 튕기고 서서히 방탄유리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웡꺼의 테크니컬 트럭에 실린 기관총은 M2 중기관총이었고 50구경의 총탄이 퍽퍽 들이박히면서 차량에도 진동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만수! 시발! 뒤로 총을 쏘라고!”
“트라우마 있다고 말했잖아!”
“아 거 시발! 누군 트라우마 없나! 그럼 닌자처럼 나가서 썰던지 뭘 좀 어떻게 해봐!”
이만수는 투덜거리며 창문을 연 후 뒤쪽으로 나이프를 던져버렸다.
놈의 나이프 투척 실력은 꽤 쓸만했다.
트럭의 기관총 사수가 어이없게도 나이프에 맞아 쓰러졌고 트럭 바퀴에도 나이프가 박혔다.
타이어가 터지면서 그 트럭은 곧바로 옆에 있는 허름한 튀김집에 들이박혔다.
일본식 창살문이 산산조각 나고 카운터에 있는 횟감들이 폭죽처럼 하늘로 날아오른다.
그 안에 있던 손님들은 졸지에 들이닥친 차량 덕에 접시와 젓가락만 들고 멍하니 차량 추격전을 바라봤다.
그러나 세단을 추격하는 트럭은 한두 대가 아니었다.
진가구는 백미러로 트럭들이 점점 불어나는 걸 보고 기어를 내린 후 좁은 골목길로 핸들을 꺾어버렸다.
“뭐 하는 거야 진가구!”
사람 두 명이 간신히 통과할 수 있는 골목길이다.
백미러가 퍽하고 뜯겨 나가고 세단 양옆이 벽에 갈갈 갈리기 시작했다.
세단이 그리 크지 않아 다행이었다.
픽업트럭을 개조한 테크니컬 트럭은 세단의 뒤를 쫓아올 수 없었다.
진가구는 핸들을 옆으로 틀어 우회로를 찾았다.
놈들은 추격을 포기하지 않았다.
위잉하는 스산한 소리가 들리면서 오토바이 두 대가 세단의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놈들은 맥텐 기관단총을 앞으로 난사했다.
맥텐은 워낙 총열이 짧아서 분무기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분무기에서 쏟아져 나오는 건 경찰살해자(Cop Killer) 탄환이었다.
탄두 앞에는 철갑탄 탄심이 박혀 있고 그 뒤에는 부식액이 들어있었다.
어지간한 방탄복이라도 부식액으로 약해진 곳을 계속 때리면 철갑탄이 관통하게 된다.
제아무리 방탄차량이라도 경찰살해자 탄환에는 답이 없었다.
뒷유리가 하얀 본드를 들이부은 것처럼 부식액으로 물들더니 퉁퉁퉁하는 소리와 함께 마침내 총알이 차량 안으로 들어왔다.
“이만수! 시발 좀 어떻게 해 보라고!”
“시발 왜 나한테 지랄이야!”
“그럼 잠깐 운전대를 잡고 있어!”
“뭐! 난 운전할 줄 모른다니까!”
“게임 컨트롤러랑 똑같아! 그냥 잡고만 있어!”
이만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조수석에서 핸들을 잡았고 진가구는 뒤로 몸을 돌리며 저격총으로 오토바이를 겨눴다.
하필 이만수는 뒷좌석에 당해룡의 모가지를 갖다놨고 진가구는 구역질을 간신히 참았다.
원래는 오토바이 탑승자의 머리를 노리려고 했지만 당해룡의 머리 때문에 차마 머리를 쏘지 못했다.
오토바이 바퀴에 진가구가 쏜 총알이 적중하고 오토바이가 비틀거리다가 옆에 있는 오토바이와 뒤엉켜 벽에 부딪혔다.
뒤따라오던 다른 오토바이 한 대도 같이 충돌하고 쓰레기통에 부딪혀 음식물 쓰레기나 온갖 오물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진가구! 시발 이거 이제 어떻게 하냐!”
진가구는 여전히 엑셀러레이터를 밟고 있었고 이만수는 핸들을 그냥 똑바로 잡기만 한 채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이대로 가다간 맞은 편 대기상회에 아까 트럭처럼 처박힐 판이었다.
진가구는 핸들을 이어받아 다가닥하고 순식간에 기어를 내린 후 핸들을 꺾었다.
촤르르륵.
좁은 골목에서 빠져나온 차량은 축축한 진흙 바닥에서 멋지게 관성 드리프트를 했다.
이만수는 할머니처럼 조수석 손잡이를 잡고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아아! 나 죽어! 으아아아아아!”
“거 새끼! 존나 시끄럽네!”
세단은 멋지게 드리프트로 미끄러지면서 큰길로 나왔다.
그러나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 갔다.
드론으로 세단의 위치를 쫓던 트럭이 다른 길로 우회하며 바짝 세단을 따라붙었다.
쐐액!
대전차 로켓이 세단의 옆으로 날아오다가 바다에 처박혔다.
콰앙!
애꿎은 어선 하나가 로켓에 맞아 박살이 나고 물고기가 분수처럼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