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214
제214화
봉기 전에 먼저 폭동이 터졌다.
패닉바이.
이상한 낌새를 느낀 사람들이 아침부터 시장과 각종 가게에 몰려들어 식량과 물을 사재기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임계점에 다다른 것이다.
사람들은 총을 꺼내 서로를 쏘면서 물건을 빼앗기 시작했고 그걸 진압하기 위해 웡꺼와 롱꺼의 부대가 시장과 노점 거리로 몰려들었다.
진가구는 어제 얼마나 한가하게 요우티아오나 처먹었는지 생각하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전항매의 죽음이 아니었다면 자신도 저 총격전 한가운데 있었을지도 모른다.
진가구는 수레를 계단에서 끌어올려 방안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총소리에 잠에서 깬 주민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주변을 둘러보긴 했지만, 그는 들키지 않고 식량을 집안으로 들일 수 있었다.
“오, 오빠 무슨 일이야? 그건 또 뭐고?”
“쉿, 쉿.”
이 임시가건물은 벽이 굉장히 얇았다. 진가구는 한하린에게 다가와 조그많게 속삭였다.
“먹을 거랑 물이야. 숨겨놔야 해.”
“그, 그걸 왜 숨기는데?”
“지금 사람들이 사재기하다가 서로 총을 쏘고 난리야. 먹을 걸 구하려고 동포들을 죽이고 있다고.”
한하린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안 그래도 그녀는 며칠 전부터 과일안주 재료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걸 이상하게 생각했었다.
이제 해안봉쇄까지 걸리면서 230만 난민지구의 식량 공급은 완전히 끊겼다.
대한민국 정부는 백색테러 위협에 글자 그대로 난민들을 말려 죽이는 ‘고사작전(枯死作戰)’으로 응수했다.
굶어 죽기 싫으면 대통령 선거가 끝나기 전까지 얌전히 있으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조직원이 아닌 난민들은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롱꺼가 무차별 암살을 하는 책임이 난민에게 있단 말인가?
롱꺼는 난민들이 투표로 뽑은 지도자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무슨 왕족 혈통을 가진 것도 아니다.
놈들은 그저 난민수용소에서 세력을 키우고 식량 배분 등 질서를 유지한답시고 폭력을 휘두르며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후려 패고 죽여가며 지금의 위치에 이르렀을 뿐이다.
난민들 중 누가 롱꺼나 그 휘하 조폭들에게 대표성을 줬단 말인가?
롱꺼와 그 산하 조직폭력배들은 전혀 난민 전체를 대표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롱꺼와 난민을 구분하지 않았고 구분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롱꺼 패거리들은 1차 봉기 이후 난민지구를 멋대로 통제하고 링로드 건설 지구를 인질로 그 어떤 대한민국의 공권력도 미치지 못하게 막았다.
대한민국에게 난민이란 그저 간위에 전쟁의 부산물이자 잊고 싶은 과거일 뿐이다.
“둘 다 잘 못 되었어. 롱꺼도, 한국도 미쳤어.”
진가구는 한하린을 품에 안고 이를 부드득 갈았다. 특히 그는 어제 전항매 사건을 겪은 후 롱꺼에 대해 증오심이 샘솟았다.
내부단속을 위해 경찰을 사냥한다? 명목은 좋았지만 결과는 어땠는가?
무고한 동포들이 죽지 않았는가?
또한 순차적인 암살로 대한민국 정치가들을 하얗게 질리게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진가구는 알 수 없었다.
죽는 것은 무고한 난민들이다.
괴롭힘을 당하는 건 전항매의 동생들 같은 어린아이들이었다.
진가구는 이를 부드득 갈았다.
“단단히 잘 못 되었어. 단단히.”
한하린도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고 진가구를 꽉 끌어안았다.
탕탕탕!
총소리는 이곳 거주구 근처에서도 들렸다.
조직원들이 경찰이나 끄나풀들을 살해할 때와는 빈도가 달랐다.
난민지구에 풀린 총기의 숫자는 이곳의 인구보다도 더 많았다.
롱꺼와 산하단체 조직원들이 이곳저곳을 오고 가며 질서를 유지하고는 있었지만, 불안에 빠진 사람들이 권총을 들고 강도질을 하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혼란은 더욱더 가중되었다.
대한민국은 해상봉쇄에 이어 전자봉쇄를 걸었고 GPS를 사용하는 기기들은 먹통이 되었다.
전화도 유선전화라면 몰라도 무선전화나 무전기는 그냥 무용지물이 되었다.
하늘에는 공군 전자전기가 호버링 중이었다.
쐐애애액! 쐐애애액!
초계근무를 하는 공군 제트기 소리가 스산하게 신간척지 안에 울려 퍼진다.
난민들에게는 그 소리가 심판의 날을 알린다는 천사의 날갯짓 소리처럼 들렸다.
그들은 식량을 확보하고 안전한 곳을 찾느라 난리였다.
전에는 링로드에서 가까운 곳이 어두워서 집값이 쌌지만 지금은 반대였다.
사람들은 거대 구조물 링로드의 그늘 밑으로 도망쳐 들어왔다.
간위예 전쟁을 경험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궤도폭격이야말로 가장 끔찍하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미국은 일단은 대한민국의 영역인 난민지구에 개입하지 않았지만, 혹시 또 모를 일이었다.
난민지구에 궤도폭격이 떨어진다면 수많은 탄자들이 떨어져 물리적으로 폭발하면서 난민지구는 그야말로 갈아엎어진다.
지금까지 미국이나 한국이 난민지구를 폭격하지 못한 건 바로 링로드 때문이었다.
링로드에 조금이라도 손상이 간다면 그 막대한 경제적인 가치는 도루묵이 된다.
이제 링로드는 최종 완공까지 불과 7년 정도 남았고 동아시아를 통과하는 인천 이 구간은 막대한 부를 가져다줄 것이었다.
결국 롱꺼와 그 산하조직은 링로드에 생긴 암 덩어리였고, 제때 해결을 하지 못해 지금 상황에 이르렀다.
난민들은 거주구를 포기하고 하나둘 링로드 밑에 다다랐다.
난민들도 미국이 제 팔다리를 찍어내는 거나 다를 바 없는 링로드 공격을 실행하지는 못할 거라는 걸 잘 알았다.
페어차일드가 신인천개발 공사를 인수하고 자사의 용병들을 들이밀려고 했던 것도 그 이유 때문이고, 정 대령을 매개체로 롱꺼와 손을 잡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진가구는 오돌오돌 떠는 한하린의 손을 잡고 오전 내내 불안에 떨었다.
그는 싱크대 밑에 숨겨둔 산탄총을 꺼내 옆에 세워놓았고 집 주변으로 몰려오는 사람들을 커튼 너머로 노려봤다.
“차라리 월미도역 근처에 몰려들었다면 오히려 들어오지 못할 텐데. 자청해서 소개(疏開)한 거나 다름없어.”
“오빠, 소개라니 무슨 소리야?”
“저 앞쪽 월미도역 쪽에 민간인들이 비워졌으니 한국 놈들이 밀고 들어오기 좋아졌다는 거야. 국제적인 비난을 들을 일은 없으니까.”
한하린은 그 말을 듣고 더더욱 불안에 몸을 떨었다.
그녀 역시 어릴 때였지만 간위예 전쟁을 똑똑히 기억했다.
불타는 집.
끝을 모르고 떨어지는 궤도폭격.
특히 궤도폭격은 일부러 찔끔찔끔 24시간 떨어졌다.
항공폭탄이라면 조종사의 소티 스케쥴 때문에 불가능하지만, 미군은 궤도 스테이션의 쓰레기를 캐니스터에 담아 돌입각도로 쏘아버리기도 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우 같은 궤도폭격 탄자들이 지면을 두들기면 별다른 화학적 폭발이 없어도 크레이터가 만들어질 때처럼 폭발한다.
작은 크레이터들마다 형체도 없이 산화한 수많은 사람들의 원혼이 서려 있었다.
한하린도 바로 그렇게 바뀐 도시에서 도망 나왔다.
“하린아, 절대로, 절대로 식량이 있는 걸 들켜선 안 돼. 아무도 믿어선 안 되고.”
한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점점 링로드 안쪽으로 사람이 몰리는 걸 보면 롱꺼 패거리와 대한민국 육군의 충돌은 피할 수 없었다.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고 끝날지는 모르지만, 그때까지는 이곳 임시거주구에서 버티고 또 버텨야 했다.
그러나 진가구는 일반 난민이 아니었다.
똑똑똑.
“진가구 형님, 체잉꺼 형님이 찾으십니다!”
진가구는 피로 얼룩진 완장을 꽉 틀어쥐었다.
이제 각 조직별로 병력 소집이 될 터였고 체잉꺼의 조직원인 진가구는 이 부름을 피할 수 없었다.
응하지 않으면 짭새.
그 뒤는 불보듯 뻔했다.
진가구는 한하린더러 커튼 뒤에 있으라고 말하고는 산탄총을 들고 일어섰다.
문앞에 있는 놈은 중고등학생 정도 되는 심부름꾼이었다.
녀석은 아직 ‘향불’을 들지 못한, 말하자면 견습 사원이었고 전화가 먹통이 되면서 일일이 전령이 되어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형님이 찾으셔요.”
“알아.”
녀석은 괜히 진가구의 방안이 궁금한지 안을 기웃거리다가 그에게 뒤통수를 맞았다.
“왜? 뭐라도 꿍쳐놨을까 봐?”
“아, 아뇨. 좀 방이 예쁘다 싶어서.”
“지랄.”
진가구는 소년과 함께 계단을 내려왔다.
불과 며칠 전 까지만 해도 이웃들이 밖에 나와서 하릴없이 노닥거리며 진가구에게 농담을 걸었지만 이젠 전혀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왜 여기다 텐트를 못 치게 하는데!”
“창문이 가려지잖아!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내가 이 방 월세를 얼마나 내는지나 알아!”
“흥! 같은 동포끼리 너무 야박하네!”
월미도역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죄 이쪽으로 몰려와서 원래 살고 있던 주민들과 부딪쳐 말썽이 생겼다.
전에 진가구에게 오리를 주던 아주머니도 그녀의 집 바로 앞에 텐트를 치려는 사람과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문도 못 열겠네!”
“손바닥만 한 방에 살면서 무슨 유세야?”
이들 중에는 월미도역 근처의 ‘희망빌라’나 콘크리트 건물 안에 살았던 사람도 있었지만, 당분간은 다시 텐트를 치고 푸른 방수포 밑에서 지내야 하는 처지였다.
진가구는 저 푸른 방수포가 싫었다.
관광객들은 번체자로 쓰인 간판과 저 푸른 방수포를 찍으러 전세계에서 몰려들었다. 하지만 그 밑에 살아본 적이 있는 진가구로서는 저 방수포는 빈곤과 추위의 상징이었다.
대한민국 추위를 처음 경험한 그해, 난민지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독감과 추위로 죽어 나갔다.
파란 방수포 밑에서 탁한 공기를 마시며 추위를 버텨냈던 사람들이라면 저 방수포를 좋아할 수가 없었다.
“마치 처음 왔을 때랑 똑같군.”
산동반도와 광저우에서 출발한 탈출선들이 일단 신인천 간척지구로 향했다.
원래는 일본이나 호주 그리고 남중국이 난민들을 분배하기로 했지만, 그 어떤 나라도 이 골칫거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한국도 방벽을 세워서 난민들을 월미도 신간척지에 가둬놓고 이 문제를 잊으려고만 했다.
국제난민기구나 구호단체들이 많은 도움을 주긴 했지만 첫해 겨울에만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구호품 역시 무장해제 되지 않은 광동자유군 병사들이 독점하면서 분쟁이 발생했다.
그 질서유지를 한답시고 나온 놈들이 롱꺼니 웡꺼니 하는 놈들이었다.
과연 그때도 질서유지가 되기나 한 걸까?
지금은 조직을 그때보다 정비했을 텐데도 난민들은 혼란을 겪고 있었다.
진가구가 사람들을 헤치고 임시거주구를 막 빠져나왔을 때 웡꺼의 트럭 몇 대가 거주구 앞에 섰다.
“웡꺼께서 식량을 배급한다고 하십니다아아!”
난민들이 그 말을 듣자마자 앞다퉈서 트럭에 몰려들었다. 트럭에는 그동안 비축한 전투식량이나 캔 음식들이 가득 실려 있었다.
이놈들이 식량을 비축했기에 식량난이 벌어졌지만 그걸 눈치챈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웡꺼! 웡꺼!’를 외치면서 트럭으로 몰려들었다.
타다다다!
공격부대의 지휘관은 허공으로 총을 쏘면서 사람들의 질서를 유지했다.
제아무리 괄괄한 난민이라도 웡꺼의 공격부대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되었다.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각 트럭 앞에 줄을 서고 스팸이나 파인애플 깡통 혹은 미군 MRE를 받아 갔다.
웡꺼의 이름을 내세운 것만으로 식량 배급은 순조로웠다.
진가구는 담배를 입에 물고 웡꺼 놈들을 노려봤다.
딱히 심 부장에게 보고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그냥 담배 피우는 김에 보는 것뿐이었다.
웡꺼놈들이 그냥 자선행사를 하는 건 아니었다.
“너, 너, 너. 이리로 나와.”
길게 늘어선 줄에서 공격부대 지휘관이 허우대가 멀쩡한 남자들을 하나, 둘 줄 밖으로 끌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