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221
제221화
테러 조직은 국제적으로 연계되었고 이번에 반 궤도 엘리 테러 조직을 도운 것은 바로 인민해방전선 쪽이었다.
반 궤도 엘리베이터 테러 조직은 로봇과 인공지능 도입을 반대하는 러다이트 계열 테러리스트들은 아니었다.
중동권에서는 진작부터 궤도 태양광이 도입되면서 산유국들이 몰락하고 있었다.
페어차일드 등 와스프 기업들은 궤도 엘리베이터 컨소시엄에 중동 쪽 자본이 개입할 수 없게 만들었고 그들의 영향력을 제거해버렸다.
결국 전기차가 대량 도입되고 그 전기차를 굴릴 수 있는 전기도 궤도 엘리베이터의 송전망을 통해 내려오면서 산유국은 몰락했다.
어이없게도 링로드가 통과하는 케냐 같은 나라들이 부강해진 것도 같은 이유였다.
기본소득으로 몰락한 각국의 시민들이 러다이트 테러의 주축이 된 것처럼, 반 궤도 엘리베이터 테러 역시 몰락한 산유국의 국민들이 주축이 되었다.
전에는 사우디 아라비아나 아랍 에미레트 같은 국가가 석유 하나만으로 세계 물가를 좌지우지 할 수 있었지만 이제 그런 영향력은 전혀 없었다.
결국 그 박탈감이 테러의 원인으로 직결되었고 지금 사상 초유의 궤도 스테이션 테러로 궤도 엘리베이터는 마비 상태였다.
“이브이, 궤도 스테이션 테러도 어쩌면 정 대령이 노린 거 아닐까? 미국이나 페어차일드가 개입할 수 없게 만들어서 월미도 사태를 키우는 거 말이야.”
– 글쎄요. 하지만 그자는 페어차일드의 앞잡이잖아요? 그런데도 이 사태를 키우기 위해 궤도 엘리베이터를 공격한다고요?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하긴 그렇군. 난민지구 문제도, 궤도 엘리베이터도 다 돈이 걸린 거니까.”
이진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이진영과 로봇은 두런두런 현재 상황을 이야기하며 난민지구 깊숙이 들어왔다.
노점거리도 이진영이 알던 모습이 아니었다.
곳곳에 온갖 잡동사니로 만든 바리케이드가 세워져 있고 옥상에는 웡꺼의 감시병들이 적외선 카메라로 경계를 서고 있었다.
활기찼던 난민지구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고 음울한 분위기만 가득했다.
– 이대로 시가전이 벌어지면 육군 측도 피해가 상당하겠군요.
“제대로 준비를 했어.”
정 대령이 풀려났을 때부터 웡꺼는 바로 이런 식의 봉기를 준비해왔었다.
서가영의 암살 시도 이후 구룡의 눈 작전이 실행되면서 착착착 계획대로 월미도가 요새화된 것이었다.
“내일 경호를 위해서라도 미리 들어오길 잘했군. 당장 내일 맨땅에 헤딩하려고 했다면 굉장히 당황했을 거야.”
웡꺼등 무장조직들은 물고기 비늘처럼 촘촘하게 방어망을 구성했다.
각 건물들을 따라 쐐기꼴로 이뤄진 방어초소들이 늘어서 있고 항공폭격을 동원한다고 하더라도 하수구나 반지하 건물 밑에 배치한 대전차포를 막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이들의 지휘관들은 광동자유군 출신으로 시가전 경험이 있었고 어떻게 하면 상대방의 피를 빨아먹을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웡꺼 놈들은 난민지구에서 마구잡이로 징병한 병사들로 병력을 수급했고 제아무리 육군이라도 이 방어라인을 돌파하는 건 쉽지 않아 보였다.
이진영과 EV-1도 본격적으로 바리케이드와 방어라인이 늘어선 곳까지 접근할 수는 없었다.
차르르륵.
웡꺼의 엑소슈트 부대가 주기적으로 순찰을 돌고 있었고 테크니컬 트럭이나 장갑차가 왔다 갔다 하는 모습도 보였다.
“북중국 놈들 아주 알뜰하게 장사했구만?”
장갑차나 엑소슈트들은 러시아나 중국 쪽의 제식병기들이었다.
붉은 별이 박혀있는 중국의 엑소슈트가 롤러대시를 하는 모습은 간위예 전쟁 참전자들에게는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킬 만한 장면이었다.
그러나 넘쳐나는 건 북중국의 무기만이 아니다. 랜서나 K-841 같은 한국군의 제식병기들도 있었고 몇몇 웡꺼의 부대원들은 M-5E 계열 레일건으로 무장했다.
한마디로 동구권, 서구권의 무기들이 한데 뒤섞인 잡탕이었다.
이진영은 웡꺼 놈들의 무장 상태를 보고 이 사태가 장기화되지 않을 거라는 걸 꿰뚫어 봤다.
지금 대한민국 해군이 월미도를 완전히 봉쇄하고 있었고 더 이상 탄약이나 식량 등의 추가보급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전상영과 김대현이 당해룡의 해룡상회에 접근한 것도 정보국과 공조로 밀수루트를 박멸하기 위해서였다.
두 형사의 활약으로 속속 놈들의 밀수루트는 해군 경비정에게 틀어막혔다.
결국 간간이 반잠수정이나 야간에 드론으로 물자들을 들여올 수는 있어도 저 많은 사람들의 탄약을 끊임없이 공급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봉기는 봉기에 불과하다.
이것이 정보국과 공안 3사들의 일치된 견해였다.
이한경 등 청와대에서도 롱꺼 놈들의 이번 봉기 역시 전에도 벌어졌던 무장봉기의 연장선상에서 보고 있었다.
내일 이세화가 가지고 갈 협상문안도 롱꺼 측에서 무장을 해제하면 해안봉쇄를 푼다는 식의 안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아. 롱꺼가 과연 해안봉쇄 한 방이면 말라죽을 걸 모르고 이런 짓을 벌이지는 않았을 것 같단 말이지.”
– 다른 노림수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음……. 이럴 때 친구 찬스를 쓰면 좋겠지만 제기랄. 그 양반 대체 어디서 뭐 하는 건지. 여자친구만 우리한테 떠넘겨 놓고선 말이야.”
이진영은 담배 한 대가 절실했다.
신희정은 며칠 전부터 연락이 되지 않았고 그것도 뭔가 쌔한 기분이 들었다.
정보국이 바빠진다는 건 그리 좋은 조짐이 아니었다.
이진영은 조심스럽게 노점거리 근처로 접근했다. 란 아주머니의 가게 근처가 류모성과 정한 랑데부 포인트였다.
노점거리 구석에 도착하자마자 이진영은 텐트의 폴대 끝에 하얀 손수건을 걸었다.
밤이었지만 하얀 손수건은 잘 보였다.
가끔 웡꺼 놈들이 제논탐조등으로 주변을 비추긴 했지만, 이진영과 로봇은 사람들이 다 떠난 방수포 밑에 잘 숨어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에도 EV-1은 그냥 놀고만 있지 않았다.
로봇은 주변의 모든 상황을 감청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웡꺼 부대의 경비태세, 엑소슈트의 순찰 간격, 각종 레이더 신호의 해석 및 대전차포나 미사일 포트의 위치 등등.
몇몇 껄끄러운 감청장비와 대전차포좌 등은 EV-1이 진작 해킹해버렸고 주변 1백 미터 반경은 EV-1이 통제하고 있었다.
– 사람의 움직임이 관측되었습니다. 근데 예상보다 많군요.
“몇 명이지?”
– 13명입니다.
“뭐 이리 많아? 적인가?”
이진영은 레일건을 꽉 틀어쥐었다.
만약 전투가 일어난다고 해도 옆에 EV-1이 있으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그가 쏜 총알 한 발이 거대한 참극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게 문제였다.
아직 내일 협상도 있고 대한민국 정부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사태를 조기 수습할 수도 있었다.
아직 정보국과 경찰은 잠룡에 대한 테러가 롱꺼의 책임이라는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
일련의 사건들은 전부 다 교묘하게도 범인 중에 대한민국 국민이 끼어 있어서 롱꺼의 책임으로 돌리기엔 애매했다.
이진영은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다가오는 13명의 사람들을 겨눴다.
13명은 웡꺼의 순찰 병력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순찰을 도는 엑소슈트를 피해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다가 이쪽으로 포복으로 기어 왔다.
– 류모성 소년입니다. 확인했습니다.
이진영은 긴장을 풀지 않았다. 그와 류모성의 관계를 알고 있는 웡꺼가 함정을 팠을 수도 있다.
내일 협상에 앞서 현직 중부서 경관이 월미도에서 잡힌다면 협상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
– 무장한 사람은 한 명뿐입니다. 락온 하겠습니다.
EV-1은 어두운 밤에도 마치 대낮처럼 훤히 다가오는 사람들을 조준하고 있었다.
이 로봇은 이진영의 명령만 떨어지면 저 13명을 앗하는 사이에 죽여버릴 수 있다.
그러나 이진영이 우려하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무기를 든 사람이 무기를 옆에 내려놓더니 손을 들고 천천히 일어섰다.
“전원 대한민국 국적자들입니다. 쏘지 마십시오.”
젊은 남자의 목소리였다. 남자는 두 손을 들고 걸어왔고 류모성이 냉큼 앞으로 나와서 속삭이듯 말했다.
“아저씨. 저예요.”
13명 중 총이나 무기를 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진영은 그제야 어둠 속에서 스르륵 EV-1과 케이블로 연결된 광학위장복을 벗었다.
류모성은 이진영의 모습을 확인하고 다다다 달려와서 안겼다.
“아저씨.”
“그래, 괜찮니? 어머니는?”
란 아주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이진영에게 다가왔다.
아직 완전히 안전한 상황이 아니지만 란 아주머니는 눈물을 줄줄 흘렸다.
“佢係邊個啊? (저 사람들은 누구죠?)”
란 아주머니는 괜히 이진영의 눈치를 봤고 아까 그 청년이 유창한 한국어로 대답했다.
“저, 전원 한국인과 그 가족입니다.”
남자는 떨리는 손으로 여권과 주민증을 건넸다. 이진영은 주민증을 붉은 라이트로 확인하고는 EV-1에게 건넸다.
남자는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EV-1을 보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귀, 귀신 로봇.”
EV-1은 폐선지구의 격투전 이후 난민들 사이에서 꽤 유명했다. 랜드쉽을 단독으로 박살 냈으니 사람들이 잊을래야 잊을 수 없었다.
그 후로도 EV-1은 두 번의 보수를 거쳐 좀 더 위압적인 프레임이 되었다.
공격 로봇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EV-1은 경찰 로봇이었고 지금도 경찰망에 접속되어 있었다.
– 류모성 님과 아란 님의 서류는 문제 없습니다. 하지만 나머지는 다 가짜입니다. 여권과 주민증 사진의 홀로그램이 훼손된 흔적이 있고 전자패스도 법무부나 행정부 망에 등록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이진영은 바로 레일건을 남자에게 겨눴고 남자는 멈칫하다가 두 손을 들었다.
남자는 설마하니 류모성이 말한 경찰이 로봇, 그것도 EV-1과 함께 나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EV-1은 롱꺼, 육군 양측의 재밍 속에서도 경찰 틸트로터와 접속하여 행정망을 확인했다.
“당신들 뭐야? 이 가짜 여권은 어디서 손에 넣었지?”
비록 사진이나 전자패스가 어설프긴 했지만 여권이나 주민증 양식 자체는 진짜였다.
아마 EV-1 없이 이진영 혼자 왔다면 속아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남자는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기조야요.”
“기조야? 아, 거기.”
이진영은 한승우 사건 때 두꺼비 상가의 일본인 위조상 기조야에게 신세를 진 적 있었고 바로 쓴웃음을 지었다.
“이건 기조야 솜씨 같진 않은데? 기조야의 신분증은 행정망과 병원, 보험사까지 속여넘겼어.”
접수번호 라종 9669030.
지금은 이진영의 수양딸이 된 한승아는 기조야가 위조한 신분증으로 긴급수술까지 받았다.
교묘한 위조로 보건부, 보험사, 국가 행정망까지 전부 속여넘긴 이가 만든 것이라고 하기엔 조악한 수준이었다.
“제, 제가 만든 겁니다.”
“당신이?”
이진영은 붉은 라이트로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오며 가며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얼굴 같았다.
남자는 용기를 낸 듯 말했다.
“저, 저는 경찰입니다.”
이진영은 EV-1이 건네주는 남자의 신분증을 노려봤다.
남자의 신분증에 적힌 주소는 울산이었지만 경상도 사투리가 전혀 묻어나지 않는다.
“당신이 경찰이라고? 경찰인데 왜 신분증을 위조한 거지? 이거 공문서 위조라는 거 몰라?”
남자는 머뭇거리는 듯하더니 뜻밖의 말을 꺼냈다.
“과, 관리번호 3304012. 경찰번호 23347447. 검색해 보십시오. 저는 잠입경찰입니다.”
이진영은 EV-1을 쳐다 봤지만 로봇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지, 진짜예요. 관리관의 이름은 심계민. 저는 난민출신 잠입경찰. 이름은 진가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