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229
제229화
이미 웡꺼는 링로드 작업자용 진입로를 열어놓았다.
어차피 링로드가 거의 완성되어 가면서 월미도 쪽에서 들어가는 링로드 공사 진입로는 유명무실했다.
작업자들은 위험하게 월미도가 아니라 과천이나 용인에서 링로드로 올라간다.
웡꺼의 노란색 완장을 찬 놈들이 경광봉을 들고 리무진을 안내했다.
엑소슈트들이 대전차 지뢰나 기타 공격무기가 없나 미리 앞으로 달려가며 도로 상황을 꼼꼼히 체크했다.
아직까지는 수상한 점은 없었다.
“이런 제기랄. 저 시체들은 뭐야.”
“세상에…… 저, 저렇게나 많이?”
월미도 상황을 처음 보는 군인들은 곳곳에 거꾸로 매달린 시체에 깜짝 놀랐다.
강시처럼 노란 부적을 이마에 달고 고가도로나 가로등에 매달려 있는 시체들.
저 시체들이야말로 이곳이 롱꺼의 영역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곳은 더 이상 대한민국의 법률과 치안력이 통하지 않는 곳이다.
이곳은 폭력조직 롱꺼 패거리가 지배하는 곳이다.
방벽 바깥에서는 기본소득자들의 지루한 일상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불과 1킬로미터 안쪽의 상황은 완전히 별세계였다.
거꾸로 매달린 시체뿐만이 아니다.
길가에는 난민들이 배치되어 꽃을 흔들고 있었다. 마치 북한의 환영 행사와 똑같았다.
웡꺼는 약에 취하지 않은 난민들을 강제로 길가에 배치하고 ‘평화’, ‘평화’를 외치게 했다.
이진영은 난민들을 바라보면서 진저리를 쳤다.
“시발, 차라리 북한 놈들은 양반이었군.”
난민들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하얀 꽃을 열광적으로 흔든다.
사람들이 쫄쫄 굶고 있는 판에 생화는 어디서 구했는지 사람들은 광신도처럼 꽃을 흔들고 있었다.
경호하던 경찰들이나 육군들조차도 난민들의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난민들의 숫자는 230만에 달했고 호위병들은 아무리 많이 잡아도 1천 명에 불과했다.
지금은 꽃을 들고 환호하고 있지만 저 많은 사람들이 총을 들고 달려든다면?
소설이나 게임에서야 몇 배 차이의 병력을 손쉽게 제압하겠지만, 실제로 압도적인 숫자를 눈으로 보고 나면 사람들은 머릿속에서 주판을 튕기기 마련이었다.
과연 무사히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
육군 병사들은 물론이고 44팀 팀원들도 왜 그리 이진영이 신신당부했는지 인파를 보고 나서야 이해했다.
난민들은 그 숫자가 가장 큰 무기였고 그중에 20만 명만 무장해도 20만 대군을 상대해야 했다. 그리고 웡꺼가 밀수한 재래식 무기들은 그 많은 숫자를 무장시키고도 남았다.
지금 난민들은 물과 식량 부족에 허덕이고 있었다.
하지만 일단 전쟁이 터지고 한 뼘이라도 방벽 안의 땅을 점령하고 막대한 물자들을 손에 넣게 되면 앞일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신희정은 계속해서 롱꺼 패거리의 인천점령을 청와대와 국방부에게 경고했다.
웡꺼는 무기 밀매로 최소 10만의 난민을 무장시킬 수 있었고 10만의 병력만 봉기해도 국방부가 상대하기엔 힘들었다.
거기에 신희정은 정 대령과 특별병과번호가 난민들의 봉기와 깊은 연관이 있다며 보고했지만, 청와대는 그의 보고를 묵살했다.
방벽이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무너지는 걸 보고도 청와대와 정부는 아직도 롱꺼 조직의 전투력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이브이, 배치된 병력 숫자는?”
– 재밍 때문에 확인하기 힘들지만, 최소 사단 단위입니다. 옥상의 움직임을 주시해 주십시오.
이진영은 글래스 모듈로 옥상에서 옥상으로 움직이는 웡꺼 놈들을 주시했다.
제아무리 공격 로봇이 줄줄이 서 있다곤 하지만 시가전이 벌어졌을 때 위에서 로켓을 날리거나 하면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제아무리 방탄차라도 대전차 미사일 두 발이면 종잇장처럼 찢겨질 것이다.
저 안에 탄 사람은 어떤 의미로는 대한민국의 미래였다.
롱꺼의 대통령 후보 참수 작전인 구룡의 눈 작전이 알려지고 많은 후보들이 사퇴하거나 아예 구석에 틀어박혔다.
웡꺼의 요리사 진일수의 장동천 암살 미수는 롱꺼의 작전과는 무관했지만, 어떻게든 연결 짓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연속된 사건이라 생각했다.
여당이건 야당이건 일단 나부터 살고 보자는 마음으로 벙커나 깊숙한 안전가옥에 숨었다.
후보 등록을 앞두고 다들 숨어버리니 지지율이 요동칠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이세화는 정부의 특사 요구를 받아들이고 당당하게 앞에 나섰다.
그 바람에 이세화는 지금도 TV에 생중계되고 있었다.
선거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대중에 많이 노출되는 놈이 이기는 게임이었다.
안 그래도 미모 덕분에 사람들의 이목을 많이 끌었던 이세화를 이제는 대놓고 TV에서 보여주고 있으니 지지율이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현재 여당은 장동천이 사퇴하고 박성훈이 암살되면서 후보가 없어서 전전긍긍했고 대안정당 격인 인간중심당의 후보조차 암살당한 상황이었다.
이대로 후보 등록이 이뤄지고 선거가 진행된다면 이세화는 차기 대통령이 된다.
괜히 정보국 경호부서나 경찰이 거의 대통령에 준하는, 아니 대통령보다 더 삼엄한 경호를 하는 게 아니다.
지금 이세화는 정계에 불어닥치는 돌풍의 핵이자 어쩌면 꼬일 대로 꼬여버린 난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결사였다.
안보문명당은 줄곧 난민 문제에 온건 노선을 택했고 이세화 역시 정계에 입문한 것이 류모성 사건이라 특사역할을 자처했다.
지금 TV 중계하는 방송국뿐만 아니라 수많은 유권자들도 이세화가 이 난관을 어떻게 해결할지 주목하고 있었다.
리무진은 이제 노점거리로 접어들었다.
이동식 바리케이드가 속속 열리고 AK 소총을 든 웡꺼의 조직원들이 경비를 서는 게 보였다.
– 아, 지금 리무진이 웡꺼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호위 병력과 웡꺼의 충돌은 없습니다만 양측의 신경전이 팽팽합니다!
방송국은 무슨 스포츠 중계라도 하듯 리무진이 웡꺼의 중화대루로 들어가는 걸 중계한다.
어쩌면 어제 이만수가 한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TV로 대통령 특사가 들어가는 장면은 대다수의 기본소득자들에게는 놀이공원 가장행렬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들은 늘 열광할 수 있는 무언가를 원했다.
그게 무엇이든.
난민들끼리 치고받는 것이든, 아니면 경찰이 죽어 나가는 것이든.
그들에게 난민지구는 온갖 이벤트들이 벌어지는 놀이공원이었고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별도의 공간이었다.
TV를 보는 사람들은 난민지구의 상황이 자신의 생존과 직결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의 피가 튀고 눈살 찌푸리게 하는 장면이 나오면 TV 채널을 돌리거나 핸드폰에서 다른 시시덕거릴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웃고 즐기면 그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난민들이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
영화나 소설을 만드는 인공지능들도 자극적인 배경으로 소모적으로 소비할 뿐 그들의 정체성이나 울분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는 팔리지 않으니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굳이’ 불편해지고 싶지 않았다.
난민 대책이 뭐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핵폭탄이나 궤도폭격을 떨어뜨려서 다 죽여버리자는 사람도 있었다.
왜 군부는 궤도폭격을 떨어뜨리지 않느냐고 따지는 사람도 많았다.
반면 어떤 난민들은 난민들의 지도자가 튀어나와서 마치 백마 탄 초인처럼 그들의 처지를 해결해 줄 거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 역시 헛꿈이었다.
조선의 백성들이 난세에 나타난다는 애기장수 혹은 정도령을 그리는 것과 똑같았다.
심지어 그걸 드라마로 만든 사례도 있었다.
기적적으로 난민들을 통일하고 대한민국에 당당히 독립국가를 선포하는.
웡꺼가 독립국 어쩌고 하는 것도 그런 황당한 영화에서 얻은 아이디어였는지도 모른다.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생각을 하는 사이 리무진은 어느새 바리케이드 여러 개를 넘어 중화대루에 다다랐다.
곳곳에는 차량이나 캐터필러 돌진을 막기 위한 스파이크가 박혀 있었고 리무진도 여러 번 코너를 돌고 나서야 중화대루 앞 메인도로로 나왔다.
중화대루는 링로드 근처였고 호텔 위에는 대공포나 미사일이 설치되어 있었다.
헬기나 틸트로터들은 안전을 위해 좀 더 고도를 높여 링로드 공사 현장 근처에서 선회했다.
육군의 엑소슈트 랜서가 제일 먼저 레드카펫에 올라섰다.
웡꺼의 엑소슈트 부대와 잠시 신경전이 벌어지긴 했지만, 공격 로봇도 리무진의 주변에 일일이 멈춰 섰다. 줄곧 서행하는 리무진과 함께 달렸던 44팀의 로봇들은 레드카펫 근처에서 사주경계하고 있었다.
완전무장한 44팀 팀원들이 리무진으로 다가가 문을 열어줬다.
“선배, 준비되셨습니까”
“후후, 무적의 보디가드가 옆에 있으면 좋겠는데, 이번에도 작전 코치 역할인가 봐요?”
“흐흐, 플레이어로는 영 시원찮은 친구라, 그거라도 맡겨야지요?”
이세화와 이진영은 어딘가에서 이 상황을 주시하고 있을 신희정을 약 올렸다.
이진영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봤다.
“아무튼 코치님께서 제대로 이곳을 지켜보고 있기를 바라야지요.”
이세화는 비장의 무기로 가져온 서류 가방을 툭툭 쳤다.
“자, 그럼 신사분들 내리실까요?”
마침내 단정한 흑백 바지정장 차림의 이세화가 리무진에서 내렸다.
그녀의 단아하고 단호한 모습은 웡꺼 조직원들까지 압도하는 것 같았다.
이진영과 김상현은 뒤로 바짝 따라붙고 EV-1이 이세화의 옆에 붙었다.
“귀, 귀신 로봇!”
웡꺼의 조직원들은 검은 프레임의 EV-1을 한눈에 알아봤다.
그동안 여러 번 프레임이 업그레이드되면서 모습이 조금 달라졌지만 롱꺼 산하의 모든 조직원들에게 이 로봇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당장 작년에는 이진영이 웡꺼의 중화대루에 쳐들어왔을 때도 이 로봇이 함께였고 쎄잉꺼의 업장이던 폐선지구를 쑥대밭으로 만든 것도 이 로봇이었다.
EV-1은 전술방패를 들고 주변의 모든 위협요소들을 실시간으로 스캐닝했다. 공군 전자전기의 지랄 맞은 재밍 속에서도 EV-1만은 대책본부에 현재 상황과 웡꺼의 배치 등을 전달하고 있었다.
– 경위님, 이곳을 노리고 있는 저격수만 8명입니다.
“그렇겠지. 선배는 이제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니까.”
이세화는 오늘 아침에 발표된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처음으로 1위를 거머쥐었다.
물론 같은 당의 후보인 서가영이 사퇴했을 때의 여론조사 결과였지만 이제 대통령 이세화도 그리 먼일은 아니었다.
이세화는 레드카펫이 깔린 중화대루의 계단을 천천히 오른다.
“제기랄, 저 로봇이 문제야.”
중화대루의 옥상과 각 건물에 배치된 웡꺼의 저격수들은 EV-1의 위치에 이를 갈았다.
EV-1은 거의 모든 저격 각도를 틀어막고 있었다.
EV-1의 반응속도를 봤을 때 총알이 격발되어도 자체 레이더로 탄속을 측정하고 총알이 날아온 곳에 반격까지 가할 수 있었다.
주변의 철통같은 경호 덕에 이세화는 안전하게 중화대루 안의 회의장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 예전 이진영 팀장님이랑 방문할 때 생각이 나는군요.
“이브이. 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어지간히 미친 사람들이라 미안하게 됐네.”
– 이세화 님 같은 아름다운 분이라면 아무리 미쳐도 환영합니다.
“너도 너스레가 너무 는 것 같아. 하여튼 주변에 있는 아저씨들이라곤 다 능글맞은 너구리 같은 아저씨들 뿐이니.”
이세화는 EV-1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이진영과 신희정의 뒷담화를 했다.
정작 두 사람은 각각 현장과 지휘부에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터라 EV-1의 농담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웡꺼가 중화대루 근처에 배치한 무장병력만 7천 명이 넘었고 곳곳마다 저격수에 보병중대들이 공격을 위해 건물 안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웡꺼의 명령만 떨어지면 수많은 보병들이 물밀듯이 밀려 나와 총을 쏘게 될 것이다.
이세화는 이 삼엄한 상황 속에서도 여유롭게 중화대루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