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231
제231화
– 오오오, 위대한 리바이어던이여. 그대에게 합법을 가장한 폭력과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드리오니 부디 우리의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대한민국과 우리가 다른 게 뭐지? 범죄? 우리가 범죄조직이라서 안 된다고? 간위예 전쟁에서 내가 본 전쟁범죄들은 뭐였지? 민간인 지구에 궤도폭격을 쏟아붓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행위는 범죄가 아니었나? 내가! 내 목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알아?
웡꺼는 자신의 목을 가리켰다.
– 너희들은 자유중국으로서 동맹이었던 우리들을 신간척지구라는 닭장 속에 가둬두고 찔끔찔끔 식량을 주면서 우리를 관광객의 재롱부리는 원숭이로 만들었다. 그게 소위 범죄조직이 아닌 멀쩡한 국가가 할 짓인가?
이세화는 웡꺼의 장광설에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여기서 법학개론이나 사회계약설 원오원(101) 강의를 할 생각은 없지만 이건 짚고 넘어가야겠군. 적어도 우리 공동체는 투표로서 우리 공동체를 대표하는 정부에 책임을 진다. 정부가 잘못하면 우리는 투표로 정부를 끌어내리고 정치적 책임을 지게 한다. 하지만 롱꺼, 웡꺼, 쎄잉꺼. 그 많은 따이꺼들이 난민 전체를 대표할 수 있나? 설마하니 웡꺼 당신의 자리도 여기 있는 수많은 조직원들의 투표로 딴 건가? 당신들 폭력조직이 소위 리바이어던이라면 나도 묻고 싶군.”
이세화는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난민들이 투표로 당신들더러 그 자리에서 꺼지라고 한다면, 롱꺼 조직 전체의 해체를 결정한다면 당신들은 순순히 물러날 건가?”
– 난민들이 우리를 버린다고? 헛소리. 당신은 난민을 위한다고 말만 하지 정작 난민지구 상황을 잘 모르는군. 우리는 단순한 폭력집단이 아니라 혈족으로 얽힌…….
“난민지구 폭력조직의 해체를 조건으로 난민 전원에게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한다면? 그걸 난민 전체에 투표로 붙인다면? 과연 조직원들 중 몇 명이나 당신들에게 붙어있을까?”
이세화의 말은 실시간으로 광동어로 통역되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웡꺼의 조직원에게 퍼져나갔다.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한다?
이건 단순히 230만 난민들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그들에게 ‘기본소득’을 부여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게다가 정부는 230만 명이나 되는 막대한 ‘투표권자’를 손에 넣게 되며 정치판에게는 말도 통하지 않는 최악의 캐스팅보터를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230만 표면 대통령 선거에서 대권의 향방을 결정할 수 있는 아주 유의미한 표 차이였다.
웡꺼는 다시 한번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 청와대랑 이야기나 된 건가? 당신 혼자 여기서 멋대로 나불거려도…….
감 팀장이나 육군 요원들은 전혀 미동도 없었다. 그걸 본 웡꺼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이세화의 파격적인 말은 난민지구를 독버섯처럼 잠식하고 있는 롱꺼에게는 치명타였다.
롱꺼 놈들이 거들먹거리며 돌아다니고 있는 것은 난민지구의 치안을 유지하고 외세로부터 지켜주겠다는 소위 일제강점기 시절 건달들의 논리하고 똑같았다.
만약 난민 전원에게 대한민국 국적이 부여되면 난민들을 대표하는 교섭단체도 필요 없었다.
도대체 이세화는 이 파격적인 제안을 어떻게 청와대에게 납득시켰을까?
모든 것은 링로드 구조물과 거기서 오는 막대한 돈이었다.
난민지구에서 롱꺼 조직이 와해되고 그 이익이 온전히 대한민국의 것이 된다면,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그 가치는 어마어마했다.
궤도 태양광 발전과 궤도 엘리베이터를 잇는 링로드는 아직 가개통 단계에 불과한데도 케냐가 중진국 반열에 오를 정도의 힘을 보여줬다.
반면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모처럼 만에 링로드를 유치하고 나서도 난민지구 때문에 그 이득을 온전히 회수하지 못하고 있다.
최종 완공까지 7년 남은 링로드.
신인천 개발공사를 정부가 다시 인수하고 쇠락한 난민지구를 개발할 수 있다면?
또 동양 삼국의 온갖 문화가 한데 뒤섞인 난민지구의 관광산업까지 정부가 세금을 거둘 수 있다면?
그렇게 월미도만 안정화시킬 수 있어도 달이나 화성 개발 계획에 참여할 수 있다.
달과 화성 등 우주개발에 궤도 엘리베이터 접근권으로 본격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면?
우주개발에 있어서는 후발주자인 대한민국이 케냐보다 더 급부상할 수도 있다.
이미 청와대와 정치권 일각에서는 계산이 끝났다.
어차피 난민방벽이 무너진 상황이었다.
심지어 이 파격적인 구상에 찬성하는 민족민생당 의원들도 몇 있었다.
이 모든 것은 페어차일드가 웡꺼 등과 손잡고 먹으려고 했던 먹음직스러운 파이를 난민 해방으로 오히려 되치기해서 가져온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아마 난민지구를 개발하는 와중에 많은 일자리도 생길 것이고, 세수 역시 폭증할 것이다.
이걸 일개 기업인 페어차일드에게 빼앗길 수는 없었다.
이세화는 대통령 특사로 청와대에 불려가면서 이 미친 구상을 생각해냈고 대통령에게 제안했다. 돈에는 장사 없다.
반면 이 구상을 듣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롱꺼 패거리였다.
론.
뜻밖에도 쏘인 건 웡꺼였다.
과연 롱꺼는 난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
그 답은 분명했다. 난민들은 그들을 대표할 수 있는 조직이 없으니 그저 울며 겨자먹기로 롱꺼를 따랐을 뿐이다.
이세화는 계속 주판알을 튕기고 있는 웡꺼를 향해 박수를 짝하고 쳤다.
“자, 그래서 휴전입니다.”
-뭐? 휴전?
웡꺼는 생각에 잠겨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휴전이에요. 그때까지 청와대는 단계적으로 난민들에게 대한민국 국적을 주겠다는 구상을 발표하지 않을 겁니다. 그쪽도 대한민국 정부의 조치에 대해 이런저런 대비를 할 시간이 필요하죠? 그래서 자비롭게 그 시간을 드리겠다는 겁니다. 7월까지요.”
웡꺼는 너무나 뜻밖의 제안이라 주먹을 꽉 쥐며 비서 로봇을 불렀다.
웡꺼는 더 이상 여유로운 표정이 아니었다.
이세화는 웡꺼의 장광설을 압도하며 특사로서 의견을 간결하게 전달했다.
웡꺼의 부하들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들 중에는 진가구처럼 먹고살 게 없어서 이 길을 택한 생계형 조폭들이 많았다.
만약 기본소득과 최저한의 의료보험이 주어지게 되면 사정은 달라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난민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건 2등 시민으로서의 ‘패배감’이었다.
그들은 늘 방벽 안의 1등 시민인 대한민국 국민에 비교당하는 삶이었고 늘 패배감을 가지고 살았다.
한국 국민끼리는 ‘라종인생’이라 비웃는 삶도 누군가에게는 꿈같은 인생이다.
자고 일어나서 정말 할 거 없이 구청에서 주는 식량을 먹다가 저녁때면 오락거리를 찾아 월미도에서 기웃거리는 인생.
너무나 무료해서 뭔가 자극적인 것을 찾아 떠도는 인생.
진가구의 말처럼 월미도 놀이공원 종업원인 난민들과 달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언제든 지치면 그 지루한 일상으로 되돌아가 갈 수 있다.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하고 기본소득을 준다는 유혹은 특히 주머니 사정이 좋지 못한 낮은 계급의 조직원부터 흔들 것이다.
이 사실이 점점 퍼져나간다면 롱꺼의 조직은 그 뿌리부터 뒤흔들릴 수도 있다.
웡꺼는 잠시 비서 로봇과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이세화에게 다가왔다. 이세화도 자리에서 일어서서 웡꺼에게 뚜벅뚜벅 걸어갔다.
회담의 양 당사자는 손을 붙잡았고 준비된 화동이 뛰어와서 꽃다발을 건네려던 순간이었다.
“李世華, 我要應該先前除根你. (이세화 역시 너를 제일 먼저 제거해야 했어.)”
“선배! 숙여어어어어!”
웡꺼의 말을 듣고 이진영이 고함을 질렀다.
이세화 역시 광동어를 알아들을 수 있었고 뭔가 일이 잘못되어간다는 걸 느꼈다.
이진영보다 EV-1이 애프터버너를 가동하며 이세화의 앞을 막아섰다.
지금 웡꺼와 이세화는 올드차이나의 창문 옆에 서 있었고 웡꺼는 이세화의 손을 놔주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이세화를 이 장소까지 끌어내기 위한 웡꺼의 계략이었다.
화동이 꽃을 주는 것이 신호였다.
“뭐지?”
웡꺼는 호텔 옆의 통신탑을 노려봤다.
화동이 꽃을 가지고 오고 웡꺼가 악수할 때 이세화를 노려라.
하지만 비장의 장소에 숨겨둔 자객이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
구룡의 눈 중 이세화를 찌르는 자객은 바로 진가구였다.
진가구는 어제 예행연습을 한 대로 화동이 들어오는 걸 보고 방아쇠를 당기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방아쇠를 당길 수 없었다.
그를 경찰로 인정한 이진영이 저기에 있어서?
혹은 난민정책에 온건파인 이세화가 정치가로 마음에 들어서?
둘 다 아니었다.
그는 망원조준경으로 올드차이나의 빠우쐥(包廂)이라 불리는 특실이 아니라 중화대루의 입구를 겨누고 있었다.
옆에서는 이만수가 쌍안경으로 상황을 보고 있다 성화를 했다.
“진가구! 뭐 하는 거야! 사인이 나왔잖아!”
진가구는 자신이 본 장면이 맞는지 오른손으로 눈을 비비고 조준경을 다시 한번 쳐다봤다.
“진가구! 어딜 보고 있는 거냐고!”
보다 못한 이만수가 진가구의 멱살을 잡았다.
딱 총알 한 발이면 이세화는 꼼짝 못 하고 저격총의 먹잇감이 된다.
“이것도 거짓말이었어. 흐흐흐흐. 하하하하하하.”
진가구는 아예 저격총을 들지도 않고 머리를 감싸 쥔 채 울음을 터뜨렸다.
이만수도 진가구가 어린애처럼 우는 걸 보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뭐, 뭐가 거짓말인데?”
진가구는 말없이 검지손가락으로 중화대루 구석을 가리켰다.
“만수, 다 거짓말이었어. 그것도 거짓말이었다고.”
“뭐, 뭐가!”
“저 아이. 서가영을 찌른 아이.”
이만수는 쌍안경으로 중화대루 입구 근처를 살피다가 아이들이 한데 모여있는 걸 발견했다.
서가영을 죽인 아이는 꽤 얼굴이 알려져 있었고 이만수는 아이를 발견하고 벌컥 화를 냈다.
“쟤가 뭘 어쨌길래!”
“우리가 죽인 췬헝마이의 동생이었어. 넌 못 봤겠지만 쟤 주변에 있는 애들이 걔네들이야. 통조림!”
이만수도 며칠 전 일을 떠올리고 눈알을 뒤룩뒤룩 굴렸다.
아까 이세화의 리무진이 들어올 때 서가영 암살범의 주위에는 가족 대표라는 명찰을 하고 아이들이 주루룩 앉아있었다.
“뭐, 뭐가 어떻게 된 건데?”
“아직도 모르겠냐! 뻥이라고! 병신아! 소문대로 사람 몸무게만 한 황금을 줬다면 쟤네 형이 통조림을 잔뜩 짊어지고 우리에게 죽었을 리가 없잖아!”
이만수는 그 말을 듣고 멍한 표정이 되었다.
“그, 그럼.”
“다 뻥이야! 거짓말이라고! 돈을 주지 않았던 거야! 한 푼도! 생각해봐! 조직에서 사람 죽였다고 따로 돈을 챙겨주는 거 봤어!”
이만수도 그 말에는 꽤나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분명 서가영의 저격 다음 날 아이 가족에게 아이 몸무게만 한 황금을 웡꺼가 직접 선물했다고 소문이 파다했다.
하지만 이만수와 진가구는 저 아이의 형인 전항매를 직접 죽이고 시체를 바다에 버렸다.
정말로 웡꺼가 황금을 줬다면 전항매의 행동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진가구는 저 아이들 중 한 명이 준 미니 초코바를 꺼내며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들이 형을 기다리며 배고픔에 참고 참다가 다 녹아버린 초코렛이었다.
체잉꺼가 ‘그걸 믿냐?’라고 했던 것도 경찰 신분이 문제가 아니라 50억의 돈 따윈 줄 리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 거짓말이었다.
체잉꺼도 경찰도 그에게 거짓말만 했다.
진가구는 어느 쪽에서든 이용해먹기 좋은 장기말이었고 필요가 없어지면 버려지는 역할이었다.
버림패.
마작에서 손패를 완성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냥 버려지는 패들.
그게 바로 진가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