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232
제232화
사실 잘 생각해보면 롱꺼와 페어차일드 측에는 롱꺼 산하 조직 안에서 굳이 트라이아웃까지 해서 굳이 킬러들을 모을 필요가 없었다.
그들에게는 최강의 킬러 집단인 특별병과번호와 페어차일드의 사설군사회사인 PMC 레드 아리마가 있었다.
7명의 특별 병과 번호는 삼엄한 경계를 뚫고 마이크로웍스 본사를 공격하거나 중앙 로봇 등록소까지 쳐들어가면서 살인 로봇 시나리오를 성공시켰다.
이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한날한시에 각 대선 후보들을 탕탕탕 처리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구룡의 눈과 그 자객들을 뭐 하러 뽑고 이들에게 암살을 맡겼을까?
돈에 쪼들리는 난민, 기본소득에 불만을 가진 한국인.
이들은 신분도 제각각이고 사용하는 무기들도 다채로웠다.
무엇보다 이 암살 작전은 너무나 복잡해서 전부 다 성공하리라곤 기대할 수 없다.
실제로 난민 아이를 이용한 서가영 암살은 실패했다.
진가구만 해도 암살자엔 어울리지 않았다.
진가구는 생각보다 저격 솜씨가 좋다고 해도 간위예 전쟁의 전설적 저격수인 천수관음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이번 일도 이세화가 리무진에서 내리는 순간 천수관음이 저격하면 그만이었다.
이들이 전문 저격수를 사용하지 않고 진가구와 이만수를 뽑은 건 자객들의 정보와 그 신병 자체를 협상카드로 이용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단계에서든 한국 정부가 롱꺼에게 자객들의 정보를 물어 올 테고 그걸 협상카드 삼아 몇 명의 정보와 신병을 넘기면서 한국 정부와 이야기할 시간을 벌 수 있다.
대한민국으로서는 자국의 대통령 후보들을 연쇄적으로 죽인 사건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고 반드시 실행범은 잡아야 했다.
바로 그 상황을 위해 롱꺼는 처음부터 구룡의 눈을 찌를 자객들을 전부 살려둘 의사는 없었다.
처음부터 암살을 실행한 자들을 전부 죽이고 협상 상황에 따라 그들이 사용한 흉기와 함께 한국 정부에 보낸다.
이것이 아홉 용의 눈에 대응하는 아홉 개의 칼 작전이었다.
쓸모없어진 칼은 협상 재료가 되어 한국 정부로 넘어간다.
진가구는 조직이 시체 가방에 자신을 담아 한국 정부에 넘길 거라는 것까지는 몰랐지만, 췬헝마이의 동생들을 통해 조직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건 눈치챘다.
“그…… 왜. 그…….”
이만수도 말을 더듬으면서 꾀죄죄한 행색의 아이들을 바라봤다.
진가구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면 서가영을 쏜 아이와 함께 있는 애들은 사람 몸무게만 한 황금을 받았다는 사람들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조직에서 명령한 건데 명령은 따라야지?”
황금의 진실을 알게 되어도 진가구와 이만수는 처지가 달랐다.
이만수는 롱꺼 조직의 열렬한 추종자였지만 진가구는 아니었다.
진가구가 이세화를 저격하려고 한 건 오직 체잉꺼가 약속한 어마어마한 돈 때문이었다.
한화로 50억 원 크레딧이나 달러화로 500만 달러.
그 돈만 있다면 기조야든 아니면 다른 위조상이든 신분을 살 수 있을 거라 막연한 기대를 했었다.
그런데 진실을 알게 된 지금.
진가구는 이세화를 쏴도 아무런 이득이 없었다.
오히려 경찰이라는 그의 신분마저 날아가고 한국 정부에 암살범으로 지구 끝까지 쫓기게 될 것이다.
“진가구! 총을 들라고! 체잉꺼 형님의 명령이야!”
“체잉꺼가 뭐라고! 다들 날 속였어! 이놈이고 저놈이고! 지들 하고 싶은 대로 날 실컷 부려 먹고는 날 속였다고!”
진가구는 저격총을 놓고 일어섰다.
약속된 황금이 가짜라는 걸 안 이상 그는 저격을 포기했다.
“진가구! 넌 쏴야 해!”
“아니 안 쏴. 죽이려면 너 혼자 죽여. 난 하린이에게 돌아갈 거야!”
지금 둘이 실랑이를 하는 와중에 올드차이나에서는 본격적으로 총격전이 벌어졌다.
창문 너머로 이세화가 웡꺼의 팔에 총을 쏘고 놈의 손아귀에서 달아나는 모습이 보였다.
EV-1이 그녀를 감싸면서 자동소총탄이 파바박 튀기고 올드차이나의 유리창이 와장창 깨져나간다.
결과적으로 진가구에 의한 저격은 실패했다.
순간, 이만수의 표정이 달라졌다.
“너 짭새냐?”
“무슨 개소리야?”
“체잉꺼 형님이 그러셨다. 만약 네가 총을 쏘기 전에 이상한 짓을 한다면 널 죽이라고.”
진가구는 급히 겨드랑이의 권총 홀스터에 손을 갖다 댔다.
“역시나. 넌 짭새였구나?”
진가구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좍 돋았다.
통신탑 위는 굉장히 좁았고 이런 좁은 공간에서 이만수는 굉장히 강했다. 놈의 나이프가 진가구의 배, 가슴 어디를 찌르건 진가구는 치명상을 입고 죽을 것이다.
하지만 이만수는 칼을 쥔 채로 뜻밖의 말을 건넸다.
“진가구. 네 여자친구에게 가라.”
“뭐?”
“저격이 실패한 이상 체잉꺼 형님의 자객이 그쪽으로도 갔을지 몰라.”
뜻밖에도 이만수는 진가구를 공격하지 않았다.
“걱정 마. 계단 내려갈 때 공격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야. 죽이려고 마음먹었다면 넌 벌써 죽었어.”
진가구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이만수를 멍하니 바라봤다. 이만수는 씩 웃었다.
“목숨에는 목숨. 네가 내 목숨을 한 번 구했잖냐? 나도 네 목숨을 한 번 구한 거다.”
“만수…….”
“가, 다음에 볼 때는 니 배때기에 구멍 내고 니 여자친구를 내가 가질 거야.”
이만수는 잔인하게 씨익 웃었지만 진가구는 그 표정이 전혀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다.
가장 의협심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이만수가 진가구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걱정 마라. 이 형님이 저 여자는 반드시 죽인다. 아마 체잉꺼가 그걸로 너를 쫓아오지는 않게 도와줄게. 내가 노린 목표는 잊지 않아.”
진가구는 망설이다가 통신탑을 후다닥 내려갔다.
이만수는 단검을 든 채 머리를 긁적이며 진가구가 허둥지둥 내려가는 모습을 바라봤다.
“에이. 나는 사람이 너무 좋아서 탈이라니까?”
진가구의 저격이 실패하면서 올드차이나는 완전히 아수라장이 되었다.
EV-1이 이세화를 감싸면서 사방의 모든 적들을 락온했다.
곧이어 로봇의 등 뒤에서 트리거모듈이 사출되고 코리안 시리즈에 첫 출장한 바짝 군기든 신인처럼 이진영이 냉큼 트리거를 잡았다.
파바바바바바바!
신형 부시마스터 20밀리미터 주포가 엑소슈트 한 대를 걸레짝으로 만들어 놓았다.
웡꺼의 중장기병용 엑소슈트는 근거리에서 쏜 기관포탄을 얻어맞다가 다리 부분이 으스러지고 그대로 앞으로 나자빠졌다.
EV-1은 주포를 갈기는 한편 식스팩에 들어 있던 대인 미사일 역시 발포했다. 이미 웡꺼를 포함해 올드차이나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락온해둔 상태였다.
펑펑펑.
식스팩에서 여섯 발의 미사일이 사출되고 곧바로 캐니스터가 분리되면서 스마트 유도되는 탄자들이 천장에서 사방으로 발사되었다.
스마트 대인탄은 일종의 간이 미사일 기지나 다를 바 없었다. 통조림처럼 생긴 캐니스터가 각각 허공에서 12발의 스마트 탄자를 쏟아내고는 밑으로 툭하고 떨어졌다.
캐니스터 통이 떨어지기 전에 인형줄이 끊어진 것처럼 후두둑 웡꺼의 조직원들이 쓰러졌다.
여전히 EV-1의 힘은 압도적이었다.
이 자리에는 육군의 엑소슈트도 있었지만, 오히려 엑소슈트들은 급작스러운 상황변화에 대처하지 못하고 ‘자돌폭뢰’를 맞고 박살 나고 있었다.
웡꺼는 성형작약탄을 막대 끝에 매단 자돌폭뢰병들을 대량으로 운용했다. 놈들이 하나둘 벌떼처럼 엑소슈트에 달라붙으면서 연쇄적으로 폭발이 일어났다.
이세화 호위를 위해 올드 차이나에 따라온 육군 엑소슈트들은 하나둘 자돌폭뢰에 쓰러지거나 대전차 화기를 피하지 못했다.
웡꺼의 공격부대는 EV-1에게도 마구잡이로 대전차 미사일을 날렸다.
그러나 이 검은 프레임의 로봇은 캐논볼 레이스에서 저 전설적인 로봇 제리와 함께 달렸었고 근접전투에 한해서는 무적이었다.
EV-1은 흉부 장갑을 열고 어빈 프레임을 분리했다.
유도 무기는 본체가 해킹하고 동시에 어빈 프레임이 날아오는 로켓들을 태극권 기술 비스무리한 동작으로 튕겨냈다. 기묘한 능동요격 시스템이었다.
어마어마한 속도의 로켓이 EV-1와 이세화를 건드리지도 못하고 사방으로 튕겨 나가고 어빈 프레임은 로켓의 옆구리를 잡아 쏜 놈에게 되돌려 주는 묘기도 선보였다.
쾅! 쾅쾅! 쾅!
웡꺼가 오랜 시간 공들여 쌓은 올드차이나의 명성은 오늘로 종지부를 찍었다.
EV-1의 기관포와 대인 미사일에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는 갈가리 찢겨나갔고 여기저기서 폭발이 터지면서 비싼 테이블이나 식기 따위가 파편으로 날아다녔다.
“이브이! 나카토미 빌딩 때처럼 건물 아래로 강하해!”
이미 경호팀은 유사시에는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걸로 경호계획을 세워놓았다.
EV-1은 이세화를 태우고 바로 깨진 유리창을 통해 강하하려고 했다. 그러나 EV-1은 한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이세화를 막아섰다.
천장에서 갑자기 히트 블레이드가 붉게 번쩍이더니 EV-1 역시 단분자 진동 블레이드를 뽑았다.
환도를 닮은 외형의 블레이드와 히트 블레이드가 부딪쳤다.
캐논볼 레이스에 잠입수사를 하느라 각종 로봇 격투 딥러닝을 마친 건 헛일이 아니었다.
이세화의 머리카락 몇 가닥이 히트 블레이드에 말려 파라락 열기에 녹아 사라졌다.
까앙!
EV-1은 칼날을 위로 올려서 히트 블레이드를 위로 들어냈고 천장에 매달린 적을 향해 부시마스터 주포를 발사했다.
바바바바!
크리스탈 샹들리에가 주포에 맞아 박살이 나면서 아래로 후두둑 떨어지고 숨겨져 있던 적이 모습을 드러냈다.
캐논볼 레이스 이후 오랜만에 이진영과 EV-1의 숙적이 모습을 드러냈다.
관우처럼 청룡도 모양의 히트블레이드를 들고 있는 부동명왕과 육군 정복에 판초우의를 받쳐입은 새로운 놈과 그리고 또 한 명.
보병용 엑소슈트를 장착한 건 부동명왕과 똑같았다.
하지만 놈은 등 뒤에 펠리컨 사(社)의 군용 수송 박스를 탑처럼 4미터 높이로 쌓아놓았다.
얼핏 보면 아파트 단지에서 택배배송하는 택배 로봇처럼 보이기도 했다.
세 놈이 모습을 드러내자 올드차이나의 분위기는 급속도로 냉각되었다.
웡꺼의 조직원들은 정 대령의 부하에게 뒤를 맡기고 아래층으로 내려갔고 세 명의 특별병과번호 놈들은 각자 천장에 거꾸로 매달리거나 탁자에 기대앉아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진영은 부동명왕과는 구면이었지만 다른 두 놈은 겉모습만으로는 뭐 하는 놈들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 한 놈은 탁탑천왕…….
이진영은 이어피스를 검지손가락으로 누르며 신희정의 말에 귀를 기울였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펠리컨 군용 박스를 잔뜩 짊어지고 있는 놈은 탁탑천왕(托塔天王)이라는 코드네임이 아주 잘 어울렸다.
저 육군 정복 놈하고, 탁탑천왕이 과연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미지수였다.
특별병과번호만 세 놈.
당장 이곳에서 EV-1이 세 놈을 동시에 상대하기 힘들다는 건 분명했다.
“어이, 나머지 놈들은 어딨지? 정 대령하고도 인사를 하고 싶은데? 그러고 보니 이세화 선배에 EV-1까지! 비 내리는 호남선에서 이렇게 신나게 놀지 않았나?”
이진영은 ‘정조준 금지구역’이라 쓰인 헬멧을 탕탕 두드리면서 세 놈들을 도발했다.
하지만 놈들은 아무 말 없이 이쪽을 바라보면서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젠장, 시간 끌기군. 시간만 끌면 나갈 수 없다 그런가?”
이진영은 곁눈질로 호텔 아래 상황을 살폈다.
드디어 물 만난 고기처럼 웡꺼의 공격부대가 교전을 개시했다.
쐐액쐐액!
중화대루의 옥상과 수많은 옥상에서 대공미사일이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하늘로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