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233
제233화
저공비행을 하던 전폭기들이 일제히 기수를 하늘로 올리고 대공미사일을 피하기 위해 인공지능 기만체를 좌라라락 뿌렸다.
하늘 위로 제트전투기들이 수직상승 하는가 하면 지상에서는 처절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경호를 위해 배치된 KF-37 공격 로봇들이 일제히 대전차 미사일을 발사하며 산개기동을 했다.
웡꺼의 공격부대는 건물 사이에서 일제히 부식액이 든 화염병을 집어 던졌고 공격 로봇이 부식액에 불타 쓰러졌다.
중장기병들은 대전차 미사일 디코이를 발사하면서 사방으로 레일건을 긁어버렸다.
중화대루까지 들어온 병력은 정말로 한 줌에 불과했고 웡꺼의 병력은 신희정이 계속 주장한 대로 생각보다 훨씬 더 많았다.
어느 정도 높이가 있는 건물이면 전부 웡꺼의 부대가 배치되었고 기관총과 각종 로켓들을 육군 쪽으로 발사했다.
아까 열렬한 환호성을 내지르던 난민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노란 완장을 두른 웡꺼의 공격부대가 서서히 중화대루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다.
중장기병들과 로봇을 운용하는 기계보병들은 원형으로 둘러서서 간이 방공망을 만들고 안쪽으로 들어오는 미사일들을 요격했다.
그러나 지상전이 완전히 적의 손에 넘어간 건 아니었다.
육군은 혹시나 싶어 랜드쉽 두 대를 배정했고 지상전의 왕자 랜드쉽이 사방으로 포탄을 쏴대면서 웡꺼 놈들이 머리를 들지 못하게 만들었다.
중화대루 거리의 간판들이 기관포와 전차 주포에 맞아 박살 나고 그 밑에 있던 웡꺼의 공격부대가 피떡이 되어 사방으로 핏방울과 살점을 흩뿌린다.
오늘 이세화는 휴전을 제의하러 이곳까지 들어왔지만 어이없게도 웡꺼는 휴전 따윈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난민들에게 대한민국 국적을 주겠다는 실로 대담한 정책은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한국과 난민들은 돌아올 수 없는 선을 넘었다.
웡꺼의 공격부대가 속속 죽어가면서 난민들은 전쟁을 실감했다.
난민들은 드디어 한국 정부가 그들을 쓸어버리려고 진압한 게 아닌가 착각했다.
이제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선택을 해야 했다.
때를 맞춰 웡꺼의 조직원들이 무기를 가득 싣고 난민지구로 와서 무기와 빵, 즉석밥 따위를 나눠줬다.
“한국 놈들이 우리를 이곳에서 전부 죽이려고 한다! 우리는 봉기해야 한다!”
이세화를 특사로 받아들인 것 자체가 꼬투리를 잡아 봉기를 일으키기 위함이었다.
분명 이세화를 호위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육군 병력이 진입할 것이 뻔했다.
그리고 누가 방아쇠를 당겼든 전쟁만 시작하면 팔꿈치는 안으로 굽기 마련이니 난민들은 롱꺼의 편을 들어줄 것이라는 판단.
놈들의 의도는 적절하게 맞아떨어졌다.
안 그래도 공군의 재밍으로 통신이 먹통이 된 상황에서는 유언비어가 나돌기 딱 좋았고 롱꺼 패거리들은 마침내 난민들을 앞세워 3차 봉기를 일으켰다.
난민들은 빵을 으적거리며 하늘에 대고 총을 쐈다.
미사일을 피해 올라간 전투기들이 마침내 웡꺼 놈들의 밀집 지역에 폭탄을 떨궜다.
스마트 집속 폭탄의 캐니스터가 열리고 자탄들이 와르르 쏟아지는 모습은 난민들의 트라우마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궤도폭격이다! 놈들이 궤도폭격을 떨어뜨렸다아아!”
지금 미국은 궤도 스테이션 테러 뒷수습을 하느라 이곳까지 신경 쓸 수 없었고 궤도폭격이 떨어질 리가 없었다.
그러나 빈자의 궤도폭격이라 불리는 스마트 집속 폭격을 당하는 입장에서는 별 차이가 없었다.
실제로 무차별한 폭격에 전방위적으로 타격당하고 건물이 박살 나고 있었다.
“놈들이 궤도폭격을 떨어뜨렸다! 살기 위해서라도 입대하라!”
지금까지 요리조리 징병을 피해 도망 다니던 사람들도 그 말에 혹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하나둘 집 안에서 걸어 나와 총과 빵을 받고 웡꺼의 노란 완장을 스스로 찼다.
웡꺼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상황을 세팅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그 장단에 맞춰 춤을 추게 만들었다.
난민들은 그간의 울분을 이번 봉기를 통해 푸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허공으로 총을 쏘면서 광동어로 자신들은 노예가 아니라고 외쳐댔다.
건물 곳곳에서 미사일과 대전차 로켓이 멋대로 발사되었다.
몇몇 대공미사일은 몇 세대 전의 열추적 미사일이었고 공군과 해군 전투기들은 열추적 미사일을 피해 플레어까지 터뜨렸다.
이제 난민들의 봉기는 전방위적으로 퍼져나갔고 누구도 그 불길을 막을 수 없었다.
마치 축하쇼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플레어가 중화대루 근처에서 퍼버벙 터지고 밝은 불빛에 순간적으로 올드 차이나에 있던 모든 사람이 눈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걸 신호탄으로 이진영과 EV-1이 움직였다.
이진영은 처음부터 이세화와 팀원들의 무사 탈출이 목표였고 다른 건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바닥에 지뢰개척용 도폭색이 원형으로 깔리고 이진영이 격발장치를 누르자마자 도폭색을 따라서 올드차이나의 바닥이 주저앉았다.
“다들 밑으로! DOWN! DOWN! DOWN HILL!”
이진영은 다운을 외치면서 먼저 구멍 아래로 내려갔다. 밑에는 호텔 객실이 늘어서 있었고 이진영은 이세화를 엄호하며 건물 밑으로 내려갔다.
“내 총은!”
“아니! 선배, 무슨 총이요!”
이세화는 이진영의 허락도 받지 않고 그의 허리춤에 있는 G57 자동권총을 뽑아서 약실을 확인했다.
국회의원 후보가 되어도 여전히 그녀는 현역 해병 시절처럼 민첩한 움직임을 보였다.
슬라이드를 당겨 약실을 확인하는 것과 조준한 뒤 방아쇠를 당기는 건 거의 동시였다.
호텔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웡꺼의 조직원이 권총에 맞고 쓰러졌고 이세화는 놈의 AK-99 소총과 탄창을 빼앗았다.
이세화는 약실 확인을 하지 않고 복도에 소총을 눕혀서 내밀더니 그대로 갈겨버렸다. 전쟁 때 시가전에서 쓰던 그녀만의 길 개척 방식이었다.
그들이 방 밖으로 나오기만을 기다렸던 웡꺼의 병사들이 눈먼 총알에 맞고 쓰러졌다.
이세화는 소총을 회수하고 탄창멈치를 눌러서 새 탄창으로 교체했다. 아마 이 장면이 TV에 방영된다면 이세화의 인기는 더 올라갈 것이다.
“선배! 앞으로 나가지 마세요! EV-1 바짝 붙어!”
이제 중화대루의 전투는 이세화가 이곳에서 탈출하느냐 못하느냐가 걸린 혈투가 되었다.
웡꺼 놈들로서는 대통령에게 총부리를 들이댄 이상 이세화 특사를 인질로 잡거나 적어도 사살해야 했기에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반면 44팀을 비롯한 호위 병력으로서는 대한민국의 위신을 위해서라도 이세화를 희생시킬 수 없었다.
늘 이진영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육군도 이 상황을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육군의 서펜트 중형헬기가 중화대루에 접근해서 이세화가 있는 층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무유도 로켓이 인정사정없이 중화대루에 들이박히고 계단으로 올라오던 웡꺼 조직원들이 몰살당했다.
헬기의 무차별 사격에 계단까지 길이 뚫리자마자 이진영과 EV-1, 그리고 이세화는 몸을 일으켰다.
“저, 팀장. 다 박살내도 되지?”
“아이 깜짝이야!”
어느새 다가온 건지 전상영은 기폭 스위치를 들고 있었다.
“그게 뭔데요!”
“폭탄.”
전술방탄조끼 안에서 포메라니안이 고개를 드는 걸 보고 이진영은 어이가 없어졌다.
정말이지…… 팀장 말은 드럽게 안 듣는 팀원들이었다.
“무슨 폭탄인지는 모르겠지만 다 터뜨려요!”
빵끗. 전상영은 정말 오랜만에 환하게 웃었다.
이진영이 꿍쳐놓은 마오타이를 훔쳐 마셨을 때보다 더 환한 웃음이었다.
폭탄마(?) 전상영의 진가가 확인되는 건 지금부터였다.
전상영은 EV-1과 협력해서 중화대루 곳곳에 폭탄 로봇을 심어두었다. 전에 방벽을 무너뜨린 그 방법을 그대로 중화대루에 돌려준 것이다.
콰앙!
올드차이나에서 다시 한번 폭발이 터지면서 ‘중화대루’라는 거대한 간판이 옥상에서 천천히 떨어진다.
아래에서는 육군 병력과 웡꺼의 공격부대가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고 있었고 개떼처럼 달려드는 웡꺼의 테크니컬 트럭과 엑소슈트 부대 위로 중화대루 간판이 떨어졌다.
쾅!
사방으로 네온사인의 전기 쇼트 불꽃이 튀고 테크니컬 트럭 한 대가 중화대루 간판에 깔려 산산조각 났다.
곧이어 위층에서 연쇄폭발이 일어나면서 이세화를 생포하려던 웡꺼의 조직원들이 폭발에 휘말렸다.
아까 멋진 경치를 보여준 엘리베이터도 폭발에 휩쓸리더니 엘리베이터 구조물이 옆으로 스르륵 쓰러지기 시작했다.
30층짜리 고층 빌딩의 엘리베이터는 그 자체가 거대 구조물이었다.
브레이크마저 폭발에 날아간 엘리베이터실이 웡꺼의 자살폭탄 부대를 태우고 1층 로비에 처박혔다.
1층에 장식된 중국풍의 큰 징도 커다란 관우상도 엘리베이터실이 1층에 쳐박히며 큰 폭발과 함께 전부 사라져 버렸다.
“오빠아아아아!”
임은혜와 윤숙희, 유인환은 밑에 남아있었다. 임은혜는 남자친구가 걱정되어 위를 올려다봤다.
그러자 윤숙희가 임은혜의 뒤통수를 때리고 자동소총으로 공격부대를 쐈다.
“임은혜! 정신 차려! 눈앞의 적만 보라고!”
임은혜는 지금까지 든든한 동료들에게 둘러싸여 굴다리의 진면목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다.
성범죄 수사대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윤숙희와 달리 임은혜는 경찰 24시라는 프로로 굴다리를 간접 체험해 본 게 전부였다.
임은혜에게는 모든 것이 쇼크였다.
약에 취해 달려드는 공격부대도 주변에서 정신없이 터지는 폭발음도. 설마 오늘 회담이 이렇게까지 엉망진창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햇다.
굴다리 경험이 있는 유인환도 겁을 집어먹은 건 마찬가지였다.
하늘에 공격헬기가 돌아다니면서 개틀링건으로 웡꺼 놈들을 죽이고 있었지만 웡꺼의 공격부대는 정말 밑도 끝도 없이 몰려들고 있었다.
“유인환! 너도 정신차려 이 새끼야! 아까는 신난다고 콧노래까지 부르더니!”
임은혜나 유인환이나 아직 20대에 불과했고 아수라장 그 자체인 굴다리는 그들에게 너무나도 낯설었다.
윤숙희는 그들의 선임으로서 그들을 갈구면서 정신을 차리게 만들었다.
“빅베어를 조종해! 팀장님이 내려오실 때까지 다른 팀과, 육군과 버티는 거다!”
윤숙희는 군 경험이 없는 ‘공채시험출신’ 경찰이었지만 경찰 짬밥은 짬밥이라고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44팀 팀원들을 이끌었다.
오히려 육군 장교들이 어리버리하게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시발! 군바리 새끼들아! 정신 못 차리겠으면 내가 지휘한다! 전원 사각 방진을 유지해! 좀비 영화라고 생각해! 저건 좀비다! 절대로 이 사각 안에 들이면 안 돼!”
윤숙희도 이세화 못지않은 여걸이었다. 그녀는 선임 수사관인 김상현과 팀장인 이진영의 부재뿐만 아니라 얼타고 있는 육군 지휘관들까지 압도하며 무너지기 일보직전이었던 호위부대를 구해냈다.
여자든 남자든 난세에 영웅은 나타나기 마련이었다.
좀비 영화를 생각하라고 말한 그녀의 외침은 도움이 되었다. 아닌 게 아니라 웡꺼의 공격부대중 상당수는 마약이나 술에 취해 인해전술 전법으로 마구잡이로 돌진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좀비가 따로 없었다.
윤숙희는 메가폰을 잡고 고함을 내지르며 무너지기 직전의 호위열을 다잡았다.
병사들도 그녀가 짭새건 뭐건 용감하게 진두지휘하는 모습에 큰 감명을 받고 앞으로 미친 듯이 총을 쏴댔다.
그러나 아무리 윤숙희의 분전이 있다고 하더라도 상공의 헬기 지원이 없었다면 이세화의 호위부대는 진작에 함락당해 죽었을 것이다.
육군의 헬기조종사들은 빌딩이란 빌딩마다 대공미사일이 치솟아 오르는데도 용감하게 저공비행하며 호위병력을 엄호했다.
그리고 그 헬기가 뭔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고 일제히 중화대루 건물에서 물러섰다.
“어! 또 폭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