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235
제235화
육군 서펜트 헬기는 대 드론 공격에 방어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지만 탁탑천왕의 공격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손가락 크기만 한 드론들에는 작은 팔다리와 공구 따위가 달려 있었고 헬기에 달려들어 로터와 엔진 부위의 나사를 전부 분리해버렸다.
보통의 드론이 들어가지 못하는 좁은 틈새도 파고들어서 기어이 안의 부속을 작은 드릴로 뚫어버리거나 톱으로 잘라 버렸다.
탁탑천왕의 드론들은 한 마디로 모든 것을 분해하는 벌떼나 마찬가지였다.
기관포 역시 분해되어 포성이 멈추고 개틀링 포열이 하나둘 땅으로 떨어진다.
엔진은 진작에 멈춰버렸고 로터도 빙글빙글 돌아가다가 지멋대로 분리되어 호텔 벽에 대형 수리검처럼 박혔다.
쾅!
로터와 엔진을 잃은 헬기는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그대로 밑에 있던 랜드쉽 옆에 처박혔다.
“서펜트 다운! 서펜트 다운! 모든 편대는 상승하라!”
헬기들은 기괴한 드론의 공격에 깜짝 놀라 허겁지겁 링로드 위로 대피하기 시작했다.
탁탑천왕은 굳이 도망가는 헬기를 쫓지 않았다.
호텔에 남겨진 병력은 공포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육군 공격 헬기마저 장난감처럼 분해하고 로터를 분해한다. 그렇다면 사람은 저 드론 공격에 어떻게 될까?
굳이 상상할 필요도 없었다.
탁탑천왕은 손을 육군 엑소슈트 쪽으로 돌려서 엑소슈트를 분해했다. 롤러대시가 잘려 나가고 장갑판이 분해되어 앞으로 달리는 관성으로 후두둑 바닥에 장갑판을 뱉어낸다.
“으아아아아악!”
안에 타 있는 중장기병 파일럿은 그들이 자조적으로 말하는 ‘관짝’안에 갇혀 산채로 벌레들에게 뜯어먹히기 직전이었다.
중장기병은 공포에 질려 뻥 뚫린 허공으로 몸을 내던졌다.
랜서에는 슬라스터 노즐이 있었지만, 낙하산은 따로 달려 있지 않았다. 랜서의 머리통이 부서진 철골에 부딪히고는 퍽하고 땅바닥에 처박혔다.
아직 분해되지 않은 랜서의 장갑 사이로 살점과 뻘건 핏물이 질질 흘러나왔고 그걸 보는 모든 사람을 움츠러들게 했다.
특별병과번호의 소유자들이 최강의 병대라는 말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정 대령은 전설이나 괴담으로 여겨졌던 특별병과번호를 전부 소집해서 일당백의 아니, 그 이상을 상대할 수 있는 위협적인 사이보그 병기들을 부활시켰다.
제석천의 번개 능력, 탁탑천왕의 드론 조종 능력. 이 모든 것들은 전부 인간과 기계가 결합된 사이보그만이 할 수 있는 기괴한 능력들이었고 어찌 보면 만화나 영화에 나오는 초능력에 가까웠다.
“이브이. 아무래도 곱게는 못 내려갈 것 같다.”
– 최선은 다해야지요. 엘지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지는 못해도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말이죠.
“넌 말이야. 고게 문제야. 이토록 훌륭한 팀장 밑에서 딥러닝을 했으면 엘지를 응원해야지.”
– 후후후, 제 합리적인 판단은 이 팀은 솔직히 지구가 멸망…….
“너 한 마디만 더 해라잉.”
이진영은 헬멧을 벗어서 등 뒤의 수통 마개에 걸었다.
이세화가 탈출하고 난 후 세 놈의 특별병과번호 놈들은 더더욱 여유로워졌다. 놈들은 하나하나 자신의 능력을 EV-1과 이진영에게 과시하듯 보여줬다.
이진영은 담배를 입에 물고 부서진 건물 잔해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특별병과번호를 노려봤다.
육군의 엑소슈트는 이제 한 대만 남아 이진영의 뒤에서 벌벌 떨었고 곁에는 김상현과 3명의 육군 요원만이 남아 있었다.
호텔 곳곳에서 고립된 육군 병사들과 웡꺼 조직원들이 치열하게 교전을 벌이고 있었고 간간히 총성이 울려 퍼졌다.
김상현은 팔에 부상을 당했고 옅은 신음소리와 함께 고통을 참으며 말했다.
“혀, 형님. 하, 항복하는 게 낫지 않아요?”
“쌍현아. 저놈들 우리를 살려주지 않을 거야.”
EV-1은 단독 강하 능력이 있지만, 건물 밖으로 몸을 던졌다간 드론에 이진영이나 김상현의 온몸이 먼저 분해될 것이다.
쐐애애애액!
이번에는 해군의 순항미사일이 특별병과번호 놈들을 노리고 날아왔다.
신희정의 지원이었다.
그러나 헬기도 분해했는데 까짓 순항미사일이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탁탑천왕은 손을 휘돌려 순항미사일의 궤적에 방어막을 만들었고 미사일이 폭파하기 전 기수에 달린 전자 장비와 인공지능을 분해하고 파괴해 버렸다.
미사일 두 발은 불발탄처럼 날아오는 속도 그대로 호텔 외벽에 처박혔다.
탁탑천왕의 드론은 공격, 방어가 완전히 일체였고 약점이 쉽게 보이지 않았다.
전에 부동명왕은 EV-1과 유인환에게 호된 꼴을 당했지만,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었다.
거기에 탁탑천왕까지 가세한 상황.
제석천은 고개를 삐딱하게 하며 EV-1을 노려봤고 탁탑천왕은 드론을 펠리컨 박스에 회수하고 허리를 굽혔다.
히트 블레이드와 공진 블레이드를 양손에 든 부동명왕도 EV-1을 노려보고 있었다.
놈들은 진작 공격할 수 있었지만 EV-1과 이진영을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전부 우주용 헤드모듈을 쓰고 있어서 표정을 알아볼 수 없었지만, 놈들은 EV-1을 경계하면서도 뭔가 궁금한 게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진영은 놈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세화를 반드시 사로잡거나 죽여야 하는 저들로서는 전력을 투입해도 모자랐다. 하지만 이곳에는 천수관음과 아미타여래, 그리고 나머지 두 명의 특별병과번호가 보이지 않았다.
– 팀장님, 이것 좀 보십시오.
“뭔데?”
– 나머지 구룡의 눈이 전부 죽었습니다.
이진영과 김상현은 깜짝 놀라서 EV-1을 돌아봤다. EV-1은 이진영의 팔목에 달린 전술 디스플레이에 뉴스 속보를 띄웠다.
1 .민족민생당 대통령 후보 장동천.
2. 안보문명당 대통령 후보 서가영.
3. 민족민생당 3선 국회의원 박성훈.
4. 인간중심당 대통령 후보 박성민.
5. 안보문명당 국회의원 후보 이세화.
6. 청와대 정무수석비서 출신 무소속 한영훈.
7. 해직 노조출신 러다이트 계 노동당의 당수 이상진.
8. 안보문명당 통합 선대위원장 강산명.
9. 민족민생당 원내대표 천일원.
방송 자막은 피습순서대로 아홉 명의 피해자를 정렬했고 이중 이세화부터 아래 다섯 명은 오늘 동시다발적으로 피습당해 이세화를 뺀 나머지 네 명은 전부 죽었다.
사인도 제각각이다.
총격, 칼, 독살부터 교살까지 살인 방법도 다양했고 암살자 역시 난민부터 대한민국 국민, 미국인까지 천차만별이었다.
아홉 명의 잠룡 중 살아남은 건 장동천, 서가영, 이세화뿐이었고 장동천은 폐인이 된 후 사퇴.
서가영은 아직도 병원에 입원해 있다.
그리고 그 이세화도 아직은 살아 있었지만, 난민지구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상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이진영은 뉴스 속보를 보면서 혀를 내두르며 앞에 있는 놈들을 노려봤다.
이세화가 중화대루에서 일단 탈출하자 급박해진 롱꺼 놈들은 다른 계획대로 나머지 구룡의 눈을 전부 죽였다.
“나머지는 너희 특별병과번호의 나머지 놈들이 한 거군. 그래서 너희 세 놈만 여기 있는 거고.”
오늘 벌어진 다섯 건의 암살들 중 몇 건은 저격이었고 대구경 저격총을 사용했다고 벌써 발표가 나왔다. 이진영은 직감적으로 몇 건은 천수관음이 개입했다는 걸 알아챘다.
이진영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특별병과번호를 노려봤다. 정 대령으로부터 지긋지긋하게 이어진 악연이었다.
“정 대령은 어떻게 됐지?”
제석천이 대답했다.
– 죽었어.
“죽었다고? 그 끈질긴 놈이?”
이진영은 도저히 믿기 힘들었다. 정 대령은 바로 이 중화대루의 지하실에서 심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끝끝내 살아남아 이 거대한 혼돈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줬다.
– 뭐 죽었다고 봐야지. 껍데기만 남았으니까.
제석천은 옆에 있는 동료들을 보면서 킬킬댔다.
– 놈은 이진영, 너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우리들을 하나하나 봉인에서 풀어냈지만 흐흐흐흐, 결과적으로 정 대령 역시 롱꺼의 손에서 놀아난 셈이지. 놈은 껍데기만 남은 인형이 되었다.
“롱꺼…….”
오늘 이 모든 암살을 지휘하고 아홉 명의 잠룡 중 8명을 실각시키거나 죽여버린 건 정 대령이 아니라 전부 롱꺼의 구상이었다.
이진영도 이번 구룡의 눈 작전의 신속함과 과감성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롱꺼는 특별병과번호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거의 자력으로 대통령 선거에 개입해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다.
이제 이세화를 죽이거나 포로로 잡으면 전략적으로는 롱꺼의 승리였다.
“하지만 롱꺼의 병력으로는 이길 수 없다는 건 잘 알 텐데? 육군이 이미 난민지구로 들어왔다. 전투는 삽시간에 끝나게 될 거야.”
– 우리는 소수로 싸우는 데 익숙하다. 그리고 우리의 작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무슨 작전?”
– 전쟁.
“전쟁 같은 소리 하네. 간위예 전쟁은 이미 끝났어.”
– 아니, 전쟁은 끝나지 않아. 인간이 존재하는 한.
이진영은 기시감을 느꼈다. 제석천은 예전에 천수관음이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을 했다.
이 특별병과번호 사이보그들은 전쟁이라는 상황을 먹고 사는 기형적인 생물이었다.
이들은 평화 시에는 전혀 필요 없었고 그저 육군의 기밀번호로만 남아 폐기처분을 기다리는 신세였다.
롱꺼와 페어차일드의 탐욕이 그냥 잊혔어야 할 전쟁의 망령들을 부활시켰다.
이진영은 천수관음도 그렇고 이놈들이 인간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놈들과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 해 본 적도 없어서 더 그랬다.
“전쟁은 끝났다. 너희들은 전쟁과 함께 사라져야 할 망령들이야.”
– 아니, 인간의 역사가 지속되는 한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인간이 호모 사피엔스라고 불리우던 시절부터 우리는 전쟁이 본능이었다.
“전쟁이 본능이었다고?”
– 인간은 빼앗고 죽이는 걸 즐거워한다. 그것이 인간의 생명체로서의 본능이다. 그걸 도덕이라는 얄팍한 껍데기로 감추고 문명이라고 부를 뿐이다. 수많은 오락과 영화들이 그러하지 않은가? 너 역시 누군가를 죽이는 컨텐츠를 보고 신나 하지 않았었나? 지금도 TV로 이곳을 지켜보고 있는 수많은 놈들 역시 낮부터 술에 취해 멍해진 얼굴로 이곳을 보고 있을 거다.
“개소리 하지 마. 나는…….”
이진영은 제석천이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지 눈치챘다.
제석천은 EV-1과 군경의 부상자를 앞에 두고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천수관음이나 제석천이나 이진영에게 결정타를 날릴 수 있는데도 그때도, 지금도 전쟁에 대해 이진영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너희는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은 거로군.”
– …….
“너희들은 개조된 인간, 사이보그라고 들었다. 전쟁이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면 너희들은 사람으로서 의미가 없으니까. 레종데트르. 존재의 이유. 그거 하나 인정받자고 이 깽판을 친 거냐? 어?”
이진영의 등 뒤에서는 육군이 전진하며 서서히 난민지구가 불바다가 되어간다.
“시팔, 사랑 못 받고 자란 어린애도 아니고. 이게 무슨 개지랄이야. 그 좆같은 에고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죽이고, 죽이고, 또 죽여야 속이 시원하다 그걸 말하고 싶은 거지? 다른 사람들도 너희와 똑같은 수준으로 끌어내려서 말이야?”
사이보그들의 상당수는 신경괴사증으로 고통을 받는다.
당장 이진영의 수양딸만 해도 성장기 의체를 따라가다가 신경괴사증이 발병했다.
아무리 신경 접합 수술이 발달한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발달된 촉각 센서와 실제 인간의 근육 신경계가 충돌을 일으킨다.
뇌만 남겨두고 전신을 의체화해도 환지통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면서 사람들을 미치게 만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