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237
제237화
육군이나 정보국 일각에서는 기껏해야 살인 로봇을 이용한 폭탄테러를 경계해 민수용 로봇들을 근처로 접근하지 못하게 막았을 뿐이다.
비행기의 전임 인공지능이 해킹당해 비행기가 납치될 거라 예상한 사람은 특별병과번호에 크게 데였던 신희정밖에 없었다.
급히 경기도권의 야전사단이 이동 준비를 했지만 실제적으로 전 병력이 이동하려면 적어도 하루 이상이 걸렸다.
지금 웡꺼의 공격부대 숫자는 거의 10만을 아우를 정도였다.
그렇게 일제히 방벽 안으로 병력이 쏟아져 나오면서 인천은 거의 무법지대가 되었다.
쾅쾅쾅!
난민에 섞여 방벽 안쪽으로 들어갔던 놈들이 사보타주를 하면서 중부서 정문에도 폭탄이 터졌다. 중부서 정문이 붕괴하면서 강력전담부 행어 쪽으로도 로켓이 쏟아졌다.
난민들은 지금껏 그들을 짓눌렀던 중부서 강력전담부를 무슨 일제 총독부처럼 여겼다.
“이한경 수석님! 피하셔야 합니다!”
중부서에 나와 있던 총책임자 이한경은 똥 씹은 얼굴이 되었다.
그의 작전은 모두 실패했고 청와대와 정보국장, 정보국 현장 수석지휘관은 오늘 작전의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
이한경은 정보국 요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급히 뒷문에 배치된 차량에 탑승하고 이민호도 경찰 장갑차에 올랐다.
중부서는 월미도와 굉장히 가까웠고 곧 웡꺼의 메뚜기 같은 병력이 들이닥치기 직전이었다.
“제기랄! 이진영! 부디 이세화를 부탁한다! 그리고 시발! 몸 성히 돌아와라!”
이민호는 담배를 튕기고 장갑차에 올랐다.
수동 운전으로 중부서와 인천시를 빠져나가는 요인들의 차량 행렬이 방송국 TV에 그대로 잡혔다.
치욕도 이런 치욕이 없었다. 난민들의 군대에 일개 국가의 정규군이 밀리는 것은 물론 주요 거점까지 빼앗기며 후퇴한다.
아미타여래는 혼란 상황을 유도하기 위해 방송국 헬기는 그냥 내버려 뒀다.
특별병과번호는 정보전에 통달한 놈들이었고 여론전에서도 놈들은 우위를 잡았다. 전 세계 모든 방송통신사들은 웡꺼의 병력이 인천 시내로 들어오는 걸 헤드라인 속보로 보도했다.
난민들의 3차 봉기는 뜻밖의 방법으로 성공했다.
웡꺼는 직접 모습을 드러내면서 병사들을 독려하며 각지에 고립된 육군을 밀어붙였다.
해킹을 염려한 전투기들이 공역에서 일제히 이탈했고 탑재한 미사일만 월미도 각지로 쏟아버렸다. 그러나 아미타여래는 미사일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공대지 미사일들이 하늘 높이 치솟더니 링로드 근처에서 터졌다.
링로드 공사는 진작 중단되었고 CNN 기자는 링로드 위에서 노란 깃발이 흩날리는 월미도 상황을 전했다.
무슨 황건적이 봉기를 일으킨 것처럼 곳곳에서 노란 깃발이 흩날렸다.
CNN은 이 상징적인 화면 밑에 ‘Yellow waves wiped out Inceon.’이라는 헤드라인을 붙였다.
노란 물결이 인천을 휩쓸어버리다.
이보다 더 상징적인 문구는 없었다.
CNN은 오래된 책 황화(黃禍)의 한 대목을 연상시키는 문구로 현재 월미도 사태를 설명했다.
이진영은 점점 혼란이 가속되는 월미도와 인천시를 바라보면서 담배를 바닥에 튕겼다.
제석천을 비롯한 특별병과변호 놈들은 아직도 이진영과 EV-1, 그리고 패잔병이 된 호위병력을 공격하지 않았다.
놈들은 마치 노란 깃발이 흩날리는 광경을 지켜보라는 듯 호텔 위의 이진영을 그냥 내버려 뒀다.
“너희들이 이겼다는 거냐?”
– 전술적으로는.
이진영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전술적으로는. 맞는 말이야.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어. 구룡의 눈 중 이세화 선배가 살아있다.”
– 아직은 말이지.
제석천은 점점 포위되기 시작하는 아래쪽을 쳐다봤다.
약 2천 명의 호위부대는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지만 랜드쉽과 공격 로봇이 다운되면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이세화가 윤숙희에게 바톤을 이어받아 진두지휘하고 있었지만 심각한 열세였다.
승리에 취하여 광신적으로 변한 웡꺼 패거리들은 점점 포위망을 좁히고 있었고 사상자가 늘어갔다.
이진영도 마냥 위에서 상황을 멍하니 바라볼 수만은 없었다.
“이브이. 방벽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다. ‘거기’에 연락을 넣어줘.”
– 거기요? 아, 거기요. 저 많은 인원이 대피하려면 비용이 어마어마할 텐데요?
“어차피 우리 돈도 아닌데 뭘. 자, 그러면 퇴로를 뚫기 위해 슬슬 우리도 일을 시작해야지? 어이 육군 아자씨! 움직일 수 있겠어?”
육군 랜서는 초월적인 능력의 특별병과번호를 보고 아예 얼이 빠졌다.
“예, 예? 잘못슴다.”
“아저씨! 정신 차려! 가능한 한 부상자를 싣고 건물 밑으로 내려가는 거다!”
과연 제석천 등 특별병과번호가 그걸 그냥 두고 볼지는 모르겠지만 건물 안에 있는 10여 명의 생존자들에게는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
부상자들이 랜서에 달라붙는 걸 보고 이진영은 미리 설치해둔 마지막 도폭색을 기폭시켰다.
전상영이 적이 아니라 아군이라 다행이었다.
짚라인을 타고 밑으로 강하하기 직전, 전상영이 설치해둔 도폭색이 쾅하고 터지며 이진영과 부상병들이 있는 층 전체가 내려앉았다.
아까는 바닥에 구멍을 내고 그 밑으로 도망친 거라면 지금은 마치 서핑하듯 이진영과 EV-1랜서 등이 타 있었다.
게다가 바닥 판이 넓게 기폭했기 때문에 그 무게만으로 연쇄적으로 붕괴가 일어났다.
마치 거대한 서핑보드를 타는 것처럼 EV-1과 랜서는 붕괴한 바닥 판 위에서 균형을 잡았다.
“으아아아! 미쳤어! 미쳤다고!”
랜서를 꼭 붙잡고 있는 누군가가 울음을 터뜨리며 절규했다. 건물을 일부러 붕괴시키고 내려가다니 제정신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EV-1과 이진영이 도망치는 걸 눈뜨고 바라볼 특별병과번호 놈들이 아니었다.
제석천이 도폭색으로 잘려 나간 철골에 기계팔을 갖다 대고 어마어마한 전류를 한순간에 흘려버렸다.
빌딩 전체의 조명이 순간 꺼질 듯 점멸하다가 하늘에서 번개가 떨어지는 것처럼 파드득 아래로 내리꽂혔다.
EV-1은 3층이 연달아 붕괴하는 와중에도 전격을 방어했다.
로봇은 올드차이나의 스테인레스 조리대를 위로 집어 던졌고 번개가 조리대에 맞아 방향이 꺾였다.
방전된 번개에 파드득 사방으로 쇼트가 일어나고 랜서의 유광 페인트 위에서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번쩍였다.
그사이 붕괴한 지반은 3층 아래 널따란 대연회장에서 멈추고 지반 위에 타 있던 사람들이 비틀거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들 앉아있을 사이 없어! 내려가! 엘리베이터 실을 확보해! 완강기가 있다!”
이진영은 중화대루가 협상장 소라는 소리를 듣고 건물에서 탈출해야 할 때를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해왔다.
그가 완강기 모듈을 전부 나눠줬을 때 탁탑천왕의 드론이 벌떼처럼 이진영과 EV-1을 덮쳤다.
EV-1은 이진영을 등에 태우고 연이어 롤러대시를 하면서 드론들을 피했다.
아까 헬기를 분해하는 걸 봤을 때도 오싹했지만 가까이서 위이잉하는 말벌 떼 소리를 내며 날아다니는 드론들은 굉장히 공포스러웠다.
드론은 막강한 공격력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상대방의 시야를 가리는 것과 동시에 아미타여래의 노드허브로서 기능했다.
아미타여래의 전자적 신호가 스웜(Sworm) 상태의 드론 사이에서 폭발하듯 쏟아져 나오면서 주변의 전등이나 각종 전자기기가 영향을 받았다.
객실의 주전자가 삐이하는 소리를 내면서 물이 부글부글 끓어 넘쳤고 룸서비스 로봇이 머리를 쿵쿵 벽에 박았다.
아미타여래는 어마어마한 정보량을 쏟아내서 접속되어있는 인공지능을 강제로 다운시켰다.
아미타여래의 능력은 해킹이라기보다는 거의 모든 로봇과 인공지능, 컴퓨터 콘솔에 디도스 공격을 거는 것에 가까웠다.
전투기의 레이더에 위협 항적이 1천 대 이상 나타나고, 운전 인공지능의 앞에 뜬금없이 아동 보호지역이라는 안내판이 수천 개가 뜬다.
EV-1조차도 로봇등록소에서 아미타여래의 ‘연산력’에 밀려 잠시 행동불능이 되었다.
“이브이! 해킹이냐!”
– 해킹이 아닙니다. 인공지능의 인식체계를 혼란시키는 공격입니다!
EV-1은 무선을 포함해 외부로 연결되는 모든 회선을 차단하고 완벽한 스탠드 얼론 방식으로 대응했다.
보통의 로봇이라면 있을 수 없는 방식이었다. 로봇들은 로봇 3원칙을 지키기 위해 외부 센서를 열어두고 외부의 정보를 늘 세심하게 살핀다.
그러나 EV-1은 언젠가 제이미 킴이 말한 것처럼 굉장히 독특한 로봇이었다.
이 로봇은 로봇 3원칙을 유연하게 해석할 수도 있고 외부의 정보조차도 차단한 채 완벽히 독립된 개체로서 움직였다.
독립된 생명체.
EV-1의 진짜 이름과 기원을 알고 있는 마이크로웍스의 일부 사람들을 제외하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저 로봇은 오직 자신만의 연산 능력으로 괴물 같은 탁탑천왕의 드론들을 요격했다.
타다다다다!
부시마스터포가 드론들을 떨구고 동시에 EV-1은 갑자기 팔의 매니퓰레이터 암을 벽에 대고 일부러 부수기 시작했다.
“갑자기 뭔 지랄이냐아아아!”
이진영은 갑자기 EV-1이 매니퓰레이터 암을 부수자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그의 고함소리는 곧 멈췄다.
EV-1은 부서진 매니퓰레이터 암을 앞으로 뻗으면서 전류를 부서진 팔의 전선으로 방출시켰다.
파드드득 하면서 마치 제석천이 번개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EV-1도 푸른 전류의 바리어를 만들어냈다.
회피기동을 하는 EV-1에 달라붙었던 드론들이 전압을 이기지 못하고 날파리처럼 후두둑 바닥으로 떨어졌다.
– 상대방의 기술로 상대방을 쳐라. 제리에게 배운 겁니다.
“이 미친놈아!”
EV-1은 배터리의 4분의 1을 소모해서 탁탑천왕의 드론들을 떨어뜨렸다.
그 짧은 시간 드론들의 파훼법을 생각해낸 EV-1이 또다시 특별병과번호에 한 방 먹인 것이다.
탁탑천왕은 급히 드론들을 자신의 근처로 불러들여 방어태세를 취했다.
“신희정 요원! 보고 있지! 쇼크 미사일을 쏴라! 탁탑천왕은 그걸 막지 못 한다아!”
제아무리 생체신호로 움직이는 드론이라지만 어차피 배터리로 구동되는 건 마찬가지였고 전기 쇼크에는 취약했다.
어쩌면 제석천이 함께 있지 않았다면 EV-1에게 약점이 들통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제석천과 탁탑천왕은 동시에 능력을 발휘하지 않았고 각각 약간의 타이밍을 두고 이진영 일행을 공격했다.
로봇 격투에서 글자 그대로 산전수전 다 겪은 EV-1에게는 너무나 큰 힌트였다.
탁탑천왕의 드론이 물러가고, 그 사이 김상현을 비롯한 부상자들이 속속 텅 빈 엘리베이터 통로에서 완강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갔다.
– 체크아웃 수속도 안 하고 멋대로 나가면 쓰나?
제석천이 전기를 방출시키면서 연회장 홀에 착지했다. 푸른 번개가 연회장에 있는 모든 도체를 타고 엘리베이터실로 방전된다.
이세화를 위해 준비한 케이크 받침대, 은수저, 샹들리에의 금속 장식, 관우상의 청룡도를 거쳐 엘리베이터까지 푸른 번개가 단숨에 내달린다.
마치 푸른 늑대가 사냥감을 잡기 위해 들판을 달리는 것 같았다.
– 팀장님 드라마에서 봤는데 김치 싸대기랑 이건 꼭 해보고 싶었습니다.
EV-1은 이 급박한 상황에서도 농담을 잊지 않았다.
로봇은 잘 차려진 밥상을 뒤엎어버렸다. 푸른 번개가 테이블의 철제프레임을 타고 아슬아슬하게 천장으로 방전되었다.
순간적으로 테이블에 올려져 있던 식기들과 음식들이 하늘로 치솟아 오르고 EV-1은 발로 테이블을 뻥하고 걷어찼다.
제석천 쪽으로 테이블이 표창처럼 빙글빙글 돌면서 날아가고 놈의 앞을 공진 블레이드를 든 부동명왕이 막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