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240
제240화
x에필로그1 관리번호 33040121.
“제발 하린아. 무사해라. 제발.”
진가구는 미친 듯이 집으로 달렸다.
웡꺼의 공격부대는 벌써 난민방벽을 넘어서 인천시가지를 점령할 기세였고 난민지구에는 웡꺼의 공격부대가 별로 없었다.
미친 듯이 뛰는 진가구를 보고 웡꺼의 지휘관이 고개를 갸웃했지만 푸른 완장을 보고 그를 내버려 뒀다.
진가구는 한달음에 임시거주구까지 달려왔다.
오늘 아침까지 집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던 사람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웡꺼가 방벽을 무너뜨리고 인천시를 공략하자 노란 깃발을 들고 다들 뛰쳐나간 것이다.
진가구는 버려진 방수포를 밟고 2층으로 올라갔다.
방문이 열려있다. 진가구는 열려있는 방문을 보고 섬뜩한 기분을 느꼈다.
“하린아아아!”
그는 무턱대고 방 안으로 들어 오려다가 시체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어? 아저씨? 아저씨가 왜…….”
두 사람의 교성 때문에 늘 푸념을 했던 옆집 아저씨였다.
죽은 아저씨 앞에는 쌀 포대가 뜯어져 하얀 쌀알이 흩뿌려져 있었고 스팸 깡통이 피에 절여져 떨어져 있었다.
피가 꽤 오래전에 말라붙은 것으로 보아, 웡꺼의 봉기가 일어나기 전에 죽은 게 분명했다.
진가구는 방 안의 상황을 보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깨달았다.
“하린아! 하린아아아!”
한하린이 창가 밑에 몸을 기댄 채 색색 숨을 쉬며 진가구에게 총을 겨눴다.
탕!
진가구의 뺨을 스치고 총알이 날아가고 진가구는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한하린은 가슴에 산탄총을 맞았는지 티셔츠에 징그럽게 구멍이 뽕뽕 뚫려 있었다.
입에서도 피를 흘리고 있는 그녀는 진가구가 준 권총을 들어 올리려고 했다.
“하린아. 나야. 진가구. 오빠야!”
한하린은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진가구를 간신히 알아봤다.
“오, 오빠. 왜, 왜 이렇게 늦었…… 무, 물 한 컵만 달라고. 사람들이…… 마구…….”
진가구가 가져온 식량이 화근이었다.
옆집 아저씨는 이미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고 물 한 컵을 구실로 방안에 들이닥쳐 진가구의 식량을 빼앗아갔다.
웡꺼가 마구잡이로 총을 뿌린 것도 문제였다.
아저씨는 산탄총으로 한하린을 위협했고 그녀는 진가구가 준 권총으로 아저씨와 다른 사람들을 쏴버렸다.
그 결과 한하린은 가슴에 산탄을 맞고 나뒹굴었고, 그 사이 사람들은 진가구가 가져온 식량들을 들고 날랐다.
“오빠. 우리 애기. 나, 낳을 수. 있을까?”
“어! 물론이야! 너, 너처럼 예쁜 딸을 낳을 수 있을 거야! 하, 하린아. 일어서 벼, 병원에 가자.”
“벼, 병원?”
“오, 오빠 경찰이라고 그랬잖아? 경찰과 가족은 가종보험으로 나을 수 있어. 병원에 가기만 하면. 아이도 하린이 너도 무사할 거야.”
“그, 그래. 다, 다행이다. 오, 오빠가 경찰이라서.”
“그래 다행이지 뭐야. 그, 금방 나을 거니까.”
진가구는 그녀를 안아서 일으키려고 했지만, 그녀는 한사코 거부했다.
그녀가 지금까지 살아있던 건 오빠를 만나고 죽겠다는 일념으로 버텼기 때문이다.
“난, 오빠가 지, 진짜 깡패일까 봐 무서웠어. 내 아이의 아버지가…… 차, 참 다행이야. 오빠가 경찰이라. 경찰이라…….”
한하린의 목소리는 점점 더 약해졌다.
“하린아. 정신 차려. 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오빠, 오빠…… 그때 오빠가 맥주병으로 외국이 목을 찌를까 봐 무서웠어. 정말로 사람을 죽이는 깡패일까 봐 나는 무서웠어. 오빠가 경찰이라면…… 내 아이는……. 한국에서 경찰의 아이로 살아갈 수 있는 거지?”
“어! 물론이지! 그렇고 말고! 난 경찰이야!”
“그래…… 다행…… 다행이다……. 오빠. 나는…….”
한하린의 말이 멈췄다. 진가구는 아내의 뺨을 톡톡 두드렸다.
피를 빨아먹던 파리가 그녀의 눈에 앉았지만, 그녀의 눈꺼풀은 움직이지 않았다.
“하린. 하린아…….”
진가구 인생의 모든 것이었던 한하린이 죽었다.
자신이 가져온 식량이 화근이 되어, 두고 간 총이 화근이 되어.
진가구는 죽은 한하린의 시체를 가슴에 안고 오열했다. 울음이 튀어나오지만 끅끅하는 소리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가 잠입경찰이 된 것도, 체잉꺼 밑에서 고민하며 돈에 휘둘렸던 이유도. 모든 것이 사라졌다.
“뭐야, 진가구 여기 있었냐? 잘됐네? 너 시발 총을 안 쐈다메?”
진가구는 한하린의 손에서 권총을 빼앗아 들었다.
“어, 그래. 못 쐈다. 이세화를 쏘지 못했지. 그래서 나랑 하린이 죽이러 온 거냐?”
“돌아서. 체잉꺼가 가장 고통스럽게 죽이고 모가지를 잘라 오라고 했다.”
“왜, 쫄았냐?”
체잉꺼의 조직원 두 명은 낄낄대며 진가구를 조롱했다.
팡! 팡!
진가구는 천천히 일어나다가 번개같이 방아쇠를 당겼다.
뜻밖의 공격에 두 명의 조직원은 가슴과 다리에 총을 얻어맞고 바닥에 나자빠졌다.
“이젠 의미가 없어. 아무런 의미가 없어.”
팡! 팡! 팡!
진가구는 쓰러진 조직원의 다리와 발가락을 총알로 쏘고 나서 여유롭게 재장전했다.
놈들은 반격할 생각조차 못 하고 피바다에서 몸을 뒹굴었다.
“그래, 체잉꺼의 말이 맞아. 난 진작 선택했어야 했어. 경찰이냐, 조직이냐 이도 저도 결정하지 못하다가 난 결국 다 잃었다.”
팡!
한 놈의 이마에 총알이 박히고 진가구는 다른 한 놈의 이마에 총을 겨눴다.
“걱정 마. 안 죽어. 체잉꺼에게 전해라. 반드시 그 새끼 머리에 총알을 박아줄 거라고. 아니지. 그놈이 그랬지? 가능한 한 더럽게 죽여주겠어.”
“뭐, 뭐 이 새끼? 미쳤어?”
“어, 미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세상 아닌가? 내 아이도, 아내도 다 잃었는데 미치지 않으면 그것도 이상하지? 안 그래?”
진가구는 낄낄낄 웃음을 터뜨렸다.
시원했다.
아내가 죽었는데 이렇게 시원한 기분을 느껴도 되나 할 만큼 시원했다.
“다 죽일 거야. 다. 용서 안 해. 심 부장, 경찰, 롱꺼, 체잉꺼. 날 가지고 논 놈들은 다 죽일 거야. 내 인생을! 나랑 내 아내를! 이 피웅덩이에 처박은 놈들은 다 죽여버릴 거다. 그렇게 전해. 반드시 죽인다. 몇 년이 걸리든 그놈들이 어디로 숨든 반드시.”
진가구는 그렇게 말하고는 살아남은 놈의 양 귀에 총을 쏴버렸다.
극심한 고통에 체잉꺼의 조직원이 몸을 가누지 못하고 나뒹굴고 진가구는 아내 한하린의 시체를 가슴에 품었다.
어차피 월미도 전체가 총소리가 펑펑 울려 퍼지는 와중이라 아무도 이곳의 총소리는 신경 쓰지 않았다.
진가구는 아내의 시체를 가슴에 품고 천천히 임시거주지를 나왔다.
그 핏발선 눈에 불타오르는 인천시가지와 저 멀리 링로드 밑의 구룡성채가 비췄다.
그는 아내의 시체를 안은 채 어디론가 터벅터벅 사라졌다.
x에필로그2 분실물 회수
‘동명 특급 운송’이라는 마크가 찍힌 프로펠러 경비행기 한 대가 월미도 상공에서 저공비행을 했다.
“빌어먹을! 미사일이에요! 기수를 좀 더 내려!”
“아니 이건 특별 요금을 더 주셔야 합니다!”
“닥치고 기수나 내려요!”
월미도 상공은 현재 롱꺼의 천하가 되었다.
심지어 대한민국은 신인천공항과 신인천항을 포기하고 여객기와 여객선들을 강화도나 서울 김포공항으로 대피시켰다.
버뮤다 삼각지대처럼 월미도 영역에 들어온 모든 배와 비행기는 아미타 여래의 조종을 받거나 조종능력을 상실한다.
벌써 여러 대의 화물편이나 여객기가 인천공항에 착륙하려다가 실패했다.
이 경비행기는 구형 프로펠러 비행기라 전자 장비라 할 만한 게 거의 없었다.
이 비행기는 뭐하러 월미도에 들어온 것일까?
미군 호위 전투기는 이미 월미도 공역에 들어오기 훨씬 전에 내뺐다.
경비행기는 방공망이 갖춰진 월미도를 아슬아슬 저공 비행했다.
거의 수면에 닿을 듯이 비행하며 레이더를 피한 경비행기.
그 안에 탄 뚱뚱한 백인은 땀을 닦으며 오실로스코프 같은 장비를 바라봤다.
“대체 뭘 찾는 건지나 압시다!”
“보물!”
“보물? 헛소리하네. ‘롱꺼 제국’에 보물이 파묻혀 있다는 건 처음 듣는 소리요!”
“하하, 말해줘도 모를 거요! 현대판 엘도라도의 보물이랄까! 아! 있다! 찾았다!”
백인 남자는 조종사에게 뽀뽀를 하면서 스페인어로 뭐라뭐라 말했다.
조종사는 한숨을 쉬면서도 다시 한 번 저공 비행했다.
“이러다 미사일 맞는 거 아닐지 참…….”
“걱정 마쇼! 아무 원한 관계도 없는 우리 회사를 쏠 만큼 롱꺼는 어리석지 않으니까! 저거다!”
검붉은 바다 위에는 하얀 부표가 하나 떠 있었다.
마침 밀물 때라 바닷물이 폐선지구까지 가득 차 있었고 경비행기는 부표 위에 뭔가를 떨어뜨렸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나 압시다!”
“분실물 회수요! 한국 경찰이 잃어버린 걸 회수하는 겁니다! 이제 USS 몬테주마가 접근하고 저 화물을 회수할 거예요!”
USS 몬테주마는 미해군의 소형 잠수함이었다.
넓적한 가오리 모양의 잠수함은 연근해까지 침투가 가능했고 인공지능 관제를 끈 채 오직 항해사의 감만으로 인천 해변에 접근했다.
해수면의 깊이는 불과 5미터.
까딱 잘못했다간 아미타 여래가 순항미사일을 발사해 잠수함이 박살 날 수도 있었다.
다행히 오늘은 해무가 가득 끼어 시정이 좋지 못했고 경비행기도 월미도를 벗어나면서 큰 문제는 없었다.
몬테주마의 앞부분이 열리고 마이크로웍스가 고용한 잠수사들이 뻘밭으로 헤엄쳤다.
안 그래도 인천 앞바다의 물은 뻘 때문에 굉장히 더러웠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경비행기가 무리하게 부표를 탐색한 것도 잠수함 쪽에서는 분실물 위치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잠수사들은 비행기가 떨어뜨린 신호부표 쪽으로 다가가 물 위로 고개를 내밀고 분실물이 쏘아올린 부표를 확인했다.
잠수사들은 부표줄을 잡고 잠수한 후 마침내 뻘밭에 반쯤 잠겨있는 검은 프레임을 발견했다.
잠수사들끼리 수신호를 한 후 USS 몬테주마에서 가져온 후크를 프레임에 연결했다.
나머지 작업은 일사천리였다.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몸통만 남은 로봇 프레임 하나쯤이야 회수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몬테주마는 잠수사들과 로봇을 회수한 후 서서히 월미도를 빠져나왔다.
경비행기에 탄 뚱뚱한 백인은 작업완료 보고를 받고 다시 땀을 닦았다.
“부사장님이 여간 무서워야 말이지.”
그는 땀을 닦다 말고 곳곳에 노란 깃발이 펄럭이는 인천시가지를 바라봤다.
“나 참. 한국은 저 꼴을 언제까지 두고 볼 거래?”
롱꺼는 인천시가지의 반을 점령했다.
현재는 부평에서 육군과 웡꺼 부대의 교전이 간간이 벌어지고 있었고 이러다 웡꺼가 서울까지 진출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거기에 러다이트 학생 운동가들까지 끼어들면서 상황은 점점 기묘하게 변했다.
“하여튼 여러 사람 힘들게 하는 나라라니까. 아무튼 기장 양반. 빨리 김포로 도망갑시다. 거기서 내 맥주 한잔 살게요.”
“거 좋죠.”
비행기 조종사는 씩 웃으며 김포공항으로 기수를 돌렸다.
그는 사실 아직도 왜 마이크로웍스가 비싼 돈을 주고 자신을 고용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USS 몬테주마가 회수한 검은 로봇의 가치를 안다면 아마 보수를 더 달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 검은 로봇은 바로…….
넘버즈
6부 관리번호 33040121,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