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241
제241화
7부 난민번호 0000042
간위예(赣粤) 전쟁 난민에 관한 특별법.
제 1조(목적) 이 법은 [난민 지위에 관한 1951년 협약] 및 [난민의 지위에 관한 20XX년 바젤 특별 의정서] 등에 따라 간위예 전쟁으로 비롯된 난민의 지위와 처우에 관한 사항을 정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 24조(난민번호) ① 간위예 전쟁의 모든 난민은 난민번호가 부여되며 난민번호로 외국인 거소등록 및 인도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다.
② 난민번호의 등록, 절차 및 민간위탁에 관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제 45조(난민 지원시설의 운영 등) ① 법무부장관은 제 24조, 제 39조에서 정하는 업무 등을 효율적으로 설치하기 위하여 난민지원시설을 설치하여 운영할 수 있다.
② 법무부 장관은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1항의 업무를 민간에게 위탁할 수 있다.
x프롤로그 마지막 바늘
삼화구급의 사설 구급선은 월미도를 빠져나와 제부도까지 도망쳤다.
대한민국 국회의원 후보 이세화가 중화대루를 무사히 빠져나오는 모습이 그대로 TV에 생중계되고 있었다.
그러나 방벽이 무너지는 바람에 그쪽으로 모든 관심이 쏠렸다.
지금 세계 모든 뉴스는 화물항공기에 방벽이 무너지는 걸 타전하고 있었고, 노란 완장을 찬 웡꺼의 공격부대가 인천으로 물밀듯이 밀려오는 장면이 쉴 새 없이 나왔다.
육군은 인천 각지에서 저항하고 있었지만, 아미타 여래의 메인허브가 인천 전역을 총괄하면서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C5I 전술 정보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하고 육군은 연락수단을 상실했다.
그렇게 각지에 고립된 육군이 속속 웡꺼에게 항복하는 모습은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이세화는 이동하는 정보국 차량에서 그 모습을 침통하게 바라봤다.
그녀는 대통령 특사로서 롱꺼와 회담을 하려고 했지만, 결국 그녀의 노력도 허사로 돌아가고 난민들의 3차 봉기가 성공했다.
“기자회견을 해야 해요.”
신희정이 이세화의 손을 꽉 잡았다.
“지금 당신은 마지막 남은 구룡의 눈입니다.”
“알고 있어요. 그러니 더더욱 기자회견을 해야 해요. 적어도 난민에 대한 무차별 폭격이나 난민들의 학살극은 막아야 해요.”
이세화는 슬픈 눈으로 뉴스 화면을 뚫어져라 노려봤다.
“기자회견에서 대체 무슨 말을 할 건데요?”
“러브 앤드 피스.”
신희정은 이 여자친구가 가끔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세화는 유할 것 같은 겉모습과 달리 굉장한 고집쟁이였다.
“내가 건재하다는 걸 알려야 해요. 그래야 난민에 대한 증오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어요. 걱정 말아요. 당신 회사 곤란하게 난민에 대한 포용 이런 거 말 안 할 테니까. 당장은 우리 당 지지율도 문제고요.”
이세화는 부드럽게 신희정의 뺨을 톡톡 두드렸다.
이 제스쳐에 신희정은 그녀를 당해낼 수가 없었다.
“알겠어요. 그럼 나도 기자회견장 바로 옆에 있을 거예요.”
“아이고…. 괜찮겠어요? 정보국 현장지위 차석 지휘관은 그 자체로 신분이 비밀이라면서요?”
“내 여자는 내가 지킵니다. 아까도 배웅만 하는 게 아니라 따라갔어야 했어요.”
“워얼.”
이세화는 마치 대견한 행동을 하는 어린애를 쓰다듬듯 신희정의 머리를 쓰다듬었지만 신희정은 그녀의 팔을 잡고 키스했다.
차량 안에는 두 사람밖에 없었다.
짧지만 격렬한 키스가 끝나고 이세화는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신희정을 바라봤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남자였다.
신희정은 뒤따라오는 44팀에게도 이세화가 기자회견을 할 거라고 알렸다.
지금 가장 믿을 수 있는 건 중화대루에서 이세화를 안전하게 대피시킨 44팀밖에는 없었다.
“뭐야, 이진영 팀장은 어디 갔어요?”
– 아, 지금 팀장님은 제정신이 아니라…….
무전을 받은 건 선임수사관 김상현이었다.
신희정과 이세화는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그녀가 무사히 월미도를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건 EV-1의 희생 덕분이었다. 그 로봇이 마지막까지 웡꺼 놈들을 막아주지 않았다면 구급선이 침몰했을지도 모른다.
두 사람은 EV-1이 이진영에게 있어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지 그동안의 사건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그럼 김상현 경사님, 잘 부탁드립니다.”
– 예…….
김상현의 기운 없는 대답과 함께 무전이 끊겼다.
* * *
이세화의 기자회견은 그녀가 중화대루에서 빠져나온 지 2시간 만에 잡혔다. 이세화는 헬기로 김포공항까지 이동했고 공항 라운지에서 바로 기자회견을 했다.
44팀 인원들은 이민호의 배려로 이세화의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그녀를 호위하며 회견장으로 향했다.
소총을 쏘는 모습이 그대로 방영되며 이세화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AK 소총을 전술장전하며 빈 탄창을 날리는 모습이나 현역 시절처럼 병사들에게 고함을 지르며 방어선을 유지하는 모습이나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오늘 충격적인 패전에서 위안 삼을 뭔가를 찾았고 그것이 바로 이세화였다. 이세화 역시 사람들의 심리를 읽고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자신의 건재를 알리고 난민들에 대한 피의 보복을 막는 것뿐이었다.
이세화는 더러워진 하얀 블라우스 차림으로 김포공항 라운지에 등장했다. 이 또한 의도한 것이다. 먼지가 묻고 피가 튄 옷을 입고 있는 이세화에게 감히 이의를 제기할 로봇 기자들은 없었다.
여기저기서 펑펑 플래시가 터지고 이세화는 화장도 고치지 않은 채 단상 위에 섰다.
“저는 무사합니다. 웡꺼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대통령의 특사로 당신을 만나러 갔고 그 자리에서 제게 총을 겨눈 것이 어떤 의미인지 당신에게 확실히 해두고 싶습니다. 당신은 폭력조직의 수장으로서 제게 총을 쐈고 그에 상응하는 보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세화는 프롬프터나 원고를 보지도 않고 담담하게 연설을 계속했다.
신희정에게 말한 것처럼 그녀는 난민을 옹호하지 않았고 웡꺼와 그 세력의 무단도발을 강력하게 비난했다. 그러나 이세화가 쓰는 단어들을 잘 보면 ‘웡꺼’ 혹은 월미도 ‘조폭’과 난민을 철저히 구분하고 있었다.
기자들은 그녀가 말을 할 때마다 플래시를 터뜨리며 사진을 찍어댔다.
그러는 동안 플래시 사이로 어색하게 안경을 쓴 사람이 걸어왔다.
치수가 맞지 않은 양복에 땅딸막한 키.
하지만 몸이 다부져서 전체적으로 조약돌을 보는 것만 같다.
안경을 쓴 놈은 주문을 외듯 광동어로 중얼거렸다.
“나는 10미터 안에서는 누구든 죽일 수 있어.”
놈은 기자 목걸이를 하고 천천히 이세화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기자수첩에서 예리한 나이프를 꺼내더니 볼링공을 던질 때처럼 손을 아래로 하고 아래에서 위로 휙하고 스냅을 줘서 던졌다.
이세화는 주먹을 쥐고 열변을 토하고 있었고 조명 때문에 하얀 칼날이 날아오는 걸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일까? 그녀가 신희정을 보려고 옆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그녀의 뺨 위쪽을 스치고 나이프가 날았다.
부르르르.
이세화의 등 뒤에 나이프가 박히고 기자회견장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윤숙희눈 나이프를 보자마자 고함을 질렀다.
“킬러다아아아아아!”
탕탕탕!
배치된 저격수가 칼을 던진 놈을 쏴버렸다.
퍽!
킬러 이만수의 가슴에서 피가 튀었지만, 놈은 기어코 두 번째 나이프를 집어 던졌다.
이번에는 유인환이 진압방패를 들고 나이프를 튕겨버렸다.
튕겨 나온 나이프가 바닥에 꽂히고 이만수는 앞으로 풀썩 쓰러졌다.
“혀, 형제. 자, 잘 보라고. 나, 나는…… 역사에 이름을 남길…… 미안…… 10미터 안이지만…… 실패…….”
이만수는 가슴에서 피가 강물처럼 흘러나오는데도 세 번째 나이프를 집어 들었다.
탱그랑.
그러나 나이프는 맥없이 놈의 앞에 떨어졌다. 뒤늦게 저격수가 이만수의 머리를 날려버리면서 피와 뇌수가 줄줄 나이프로 흘러내렸다.
만약 이만수가 나이프가 아니라 총을 썼다면 이세화는 죽었으리라.
여기저기서 스와트팀의 클리어소리가 들리고 블랙스와트와 정보국 요원들이 쏟아져 나왔다.
설마 김포공항에까지 웡꺼의 자객이 나타났을 줄이야?
엄밀히 말하면 이만수는 체잉꺼의 자객이었지만 사람들은 웡꺼에 대해 끝없는 공포를 느꼈다.
44팀은 총을 뽑아 들고 이세화의 주변을 막아섰다. 그리고 누군가의 전화기가 삐링하고 울렸다.
문자 메시지였다.
바늘은 대한민국 경찰만 난민사회에 심은 게 아니었다. 웡꺼는 돈으로 각종 약점으로 곳곳에 바늘을 심어놓았다.
그리고 지금.
웡꺼가 심어놓은 마지막 바늘이 움직였다.
이진영과 44팀은 격전을 치르고 온 터라 정신이 없는데도 이세화를 감싸면서 라운지를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리고 44팀 중에 한 명의 총구가 바깥이 아닌 안쪽으로 향한다.
탕! 탕! 탕!
세 발의 총성이 울리고 이세화 곁에 있던 신희정이 그녀를 감싸며 몸을 날렸다.
방탄복에 구멍이 뚫리며 바닥에 쓰러지는 신희정.
놀란 사람들이 이세화에게 총을 쏜 사람으로 고개를 돌린다.
총을 쏜 웡꺼의 마지막 암살자는 바로…….
x1 따이꺼(大哥)
구 인천항.
이곳은 여름이면 굉장히 냄새가 지독했다.
난민 어부들은 인천 앞바다에서 잡히는 물고기들을 손질하고 내장을 그냥 바닥이나 바다에 버렸다. 그러면 곳곳에서 생선 대가리나 내장이 썩어가는 냄새가 올라와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였다.
거기에 땀으로 범벅된 난민들의 체취나 향신료가 잔뜩 들어간 동남아 요리의 향기까지 뒤섞이면 식당 근처를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이미 고문 수준이었다.
가뜩이나 배수 상태가 좋지 못해 콘크리트 포장 도로 위에도 진흙탕이 많았고 진흙 구정물 속에서는 구더기가 허옇게 들끓고 있었다.
어부들은 그래도 좋다고 더러운 흙탕물 옆에서 생선구이를 뜯으며 맥주를 기울이고 있었다.
차가운 이슬이 맺힌 아사히 맥주?
난민방벽이 완전히 붕괴되고 인천시의 3분의 2가 웡꺼의 공격부대에 함락되어 점령된 후 난민지구에는 시원한 맥주도 들어오고, 신선한 야채들도 들어왔다.
대한민국 해군은 아미타 여래의 영역을 피해서 인천항을 느슨하게 감시 중이었고 웡꺼의 밀수선이나, 다른 나라의 배 역시 대놓고 인천 앞바다에 왔다 갔다 했다.
돈에는 장사가 없었다.
특히 일본은 얄밉게도 난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한답시고 상선을 보냈고 육로로도 일장기가 박혀 있는 트럭이 왔다 갔다 했다.
한반도에서 뭔가 일이 터지면 일본이나 주변국들에게는 호재였고, 두 번이나 그 맛을 본 일본이 이런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일 평화의 라인에서는 각종 물자들이 열차를 통해 난민지구로 향하고 있었다. 맥주, 양배추, 밀가루나 쌀 따위의 먹을 것은 물론 생리대, 콘돔, 휴지, 샴푸 따위의 생필품도 밀려 들어온다.
덕분에 난민지구는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흥청망청 전의 퇴폐스럽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심지어 롱꺼와 웡꺼는 외국인 등록소를 만들어 여권을 받는 방식으로 월미도에 관광객들을 받기도 했다.
기본소득자들에게 있어서 말초적인 쾌락은 생명의 위협보다 더 대단한 것일까?
마약, 매춘, 폭력, 도박. 전 세계에서 각종 쾌락을 즐기려고 월미도에 입국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웡꺼 놈들은 약에 취한 외국인들이 길거리에 널브러진 모습을 영상으로 만들어 동영상 사이트에 올리고는 이곳은 안전하다고 선전을 해댔다.
이에 한국 정부는 엄격하게 자국민들이 난민지구로 들어가면 기본소득을 박탈하겠다는 등 엄포를 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