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248
제248화
이진영은 경찰 24시의 단골 소재였고 이제는 너무 유명해져서 언더커버로 들어갔다간 바로 들킨다.
그리고 롱꺼니 웡꺼니 하는 조폭들은 철저히 홍콩이나 광동, 강서성 사람만을 조폭으로 받아들였다. 난민지구에서 조폭들이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도 난민들만의 끈끈한 인간관계 덕분이었다.
신희정은 그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삼각형 모양의 자석을 화이트보드에 붙여 놓았다.
“태스크포스 13. 놈들의 놈들의 점령지구에서 활동할 군경 정보국 복합팀입니다.”
신희정은 삼각형 모양의 자석을 정확히 웡꺼와 쎄잉꺼의 중간에 놓았다.
“태스크포스의 목표는 ‘쐐기작전’으로 웡꺼와 쎄잉꺼의 분쟁을 격화시키는 것입니다. 전술목표는 각 조직 사업장의 타겟. 무기 및 밀수창고. 쎄잉꺼의 성망개발공사. 휘하조직 등등등. 정보국의 자산을 총동원하여 놈들을 괴롭힐 겁니다.”
“아, 이제 알겠어요. 웡꺼, 쎄잉꺼 등은 각자 주요 사업망이 공격당하면 서로를 의심할 테고.”
“알아서 서로를 공격하게 되겠지요. 지금 군소조직 보스들은 두 대보스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아마 한 쪽 세력이 크게 기울어지면.”
“한쪽으로 군소보스들이 가담하며 집안이 무너지게 되겠지요. ‘로마제국은 내부부터 붕괴되었다.’였던가요? 결국은 롱꺼가 중재를 하기 위해서라도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을 거고요.”
감미영 팀장은 신희정과 이진영이 말을 주고 받는 걸 보고 눈을 끔뻑였다.
그녀는 ‘차석님. 혹시 이 팀장님이랑 술 마시면서 그런 거 연습하시나요?’라고 묻고 싶은 표정이었다.
이진영은 화이트보드의 태스크포스 13을 톡톡 두드렸다.
“차암, 사람들 숫자 고르는 거 하고는. 재수 없는 숫자만 일부러 고르는 겁니까?”
“옛날 사람들은 아이더러 오래 살라고 일부러 개똥이, 말똥이니 안 좋은 이름을 붙였다잖아요?”
“이런 태스크포스가 오래 살아도 문제 아닙니까?”
“에헤이. 그래도 팀장님이 이끄는 위대한 44팀의 사례를 보고 붙였다고요. 행운의 화신이신 팀장님 기운도 받을까 하고요.”
“거 명색이 최첨단 정보국이라는 곳이 미신도 존나게 좋아하시네들.”
“흐흐흐, 안 그래도 이거 출범 때 돼지머리 놓고 고사 지낸다는 거 간신히 막았습니다. 우리 동네가 좀 그래요.”
이진영도 슬며시 미소를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아무튼 그래서, 그 개코 스트리퍼가 빽이 얼마나 좋은 건지 물은 거구만요. 생각할수록 고약한 여자라니까. 미리 말해주면 좀 좋아?”
이진영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내사건은 신경 안 써도 되겠군요.”
신희정은 양 팔을 벌리며 과장되고 근사한 포즈로 화답했다.
“요원님, 나중에 술 한잔 사지요. 요건 맡기고 갑니다.”
이진영은 마시다 만 위스키 병을 턱하고 놓았다. 그는 밴을 나가려다 뒤늦게 생각난 듯 말했다.
“아, 그리고 아무리 구색 맞추기라곤 하지만…… EV-1이 사라지면서 저희 팀 전력이 급감한 건 아시죠?”
44팀은 EV-1 덕분에 수많은 사건을 훌륭하게 해결했다. 수사력이면 수사력, 전투력이면 전투력, EV-1을 대체할 경찰 로봇은 없었다.
신희정은 그 말이 나올 줄 알고 있었다.
“그냥 구색 맞추기는 아니죠. 저는 국장님한테 중부서 형사들의 경험과 수사력이 롱꺼 조직을 분쇄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미 경찰 쪽에서도 44팀의 전력보강을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고요. 그리고…….”
“그리고 또 뭐요.”
“확실한 건 아닌데요. 이거 보세요.”
신희정은 경비행기가 찍힌 사진을 한 장 화이트보드에 자석으로 붙였다.
“3주 전에 인천 앞바다에 경비행기가 떴어요.”
“3주 전이라면 롱꺼 놈들이 인천 점령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군요. 근데 경비행기라니…….”
“이 비행기는 구식 레시프로 방식이고 전자 장비라곤 계기판 일부하고 무전기밖에는 없는 레저용이에요. 그리고 이건 비행기를 빌린 사람.”
뒤이어 신희정은 뚱뚱한 백인 사진을 화이트보드에 붙였다. 이진영은 뚱한 표정으로 사진을 바라보다 고개를 갸웃했다.
“마이크로웍스의 부장급이라고요?”
“예, 그 사람이 탄 경비행기가 부표를 떨어뜨렸어요.”
이진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마이크로웍스는 EV-1에 관련된 일이라면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들었고 특히 부사장 제이미 킴은 이진영에게도 따귀를 날릴 정도로 감정적으로 나왔다.
“어쩌면 이브이를 회수하려고 한 걸 수도 있어요.”
“괜히 쓸데없는 기대는 안 할랍니다.”
“에헤이. 쓸데없는 기대라니요. 엘지가 우승을 하는 걸 매년 기대하는 양반이. 그거보다 쓸데없는 기대는 없겠네요.”
안 그래도 여름이 되자 엘지는 귀신같이 죽을 쑤고 있었다.
이진영은 쓴웃음과 함께 가운뎃손가락으로 화답하고 밴에서 내렸다.
“자, 이제 슬슬 퇴근이나 해보실까.”
정보국이 뒤에 있는 이상 내사 9팀도 끝까지 44팀을 잡아놓고 수사할 수는 없었다. 44팀 인원들은 롱꺼 세력의 참수작전을 위해 태스크포스 13에 합류할 예정이었다.
이진영은 밴을 나와서 바로 축구장으로 되돌아갔다.
“이게 노숙자야 좀비야 뭐야.”
팀원들은 정말 불쌍하게 관중석에서 잠이 들어 있었다.
텐트 속에서 잠이 든 전상영은 양반이고 유인환은 신문지를 깔고 바닥에서, 김대현은 이마를 앞 의자에 대고 침을 바닥에 질질 흘리고 있었다. 윤숙희도 신문지를 덮고 아기처럼 웅크린 채 옆으로 누워 있었다.
다들 낮부터 술을 얼큰하게 먹기도 했고 매일매일 같은 심문을 듣고 똑같은 진술서를 작성하느라 지치기도 했으리라.
“자아, 퇴근입니다아아. 술 먹으러 갑시다아.”
제일 먼저 전상영의 강아지가 귀를 쫑긋하더니 앙앙 짖고 팀원들이 부스스 관중석에서 하나둘 일어섰다. 정말 좀비가 따로 없었다.
“술? 어디요?”
“팀장님, 부천 실비집 잘하는 데 있어요. 거기로 가시죠. 어차피 회식비도 지원 안 될 텐데.”
“하아암. 오늘은 뭐로 달릴까요? 막걸리 어때요?”
팀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퇴근 때면 쾌활하게 변했다. 하지만 이진영만큼은 이들이 ‘역적’으로 몰려서 얼마나 울화를 참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윤숙희는 일어나서 시계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팀장님, 아직 퇴근까지는 2시간이나 더 남았어요.”
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시계가 고장난 건 아니었다. 아직 축구장 잔디밭에는 여름 햇빛이 짱짱하게 비치고 아무리 봐도 퇴근 시간은 아니었다.
내사 중이라도 퇴근 시간까지는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이효진이 왔다 간 이후로 한 명도 내사 9팀에 불려간 적이 없었다.
44팀 팀원들은 눈치 하나는 죽여줬고 이진영의 표정만 보고도 뭔가 이변이 생겼다는 걸 눈치챘다.
“하아암. 팀장님 뭡니까? 결국 다 짤리는 걸로 결론이 났나요?”
“하여튼 유인원 이 시끼는 만날 재수 없는 소리만 한다니까.”
“아니 대현이 형님, 고 별명으로는 부르시지 말라니까요? 저도 집안에선 사랑받는 막내아들이라 이겁니다. 그리고 팀장님. 팀장님 때문에 다들 유인원이라고 부르는 거 아닙니까? 책임지셔야 합니다. 이거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요.”
이진영은 항의하는 유인환의 이마에 살짝 꿀밤을 놨다.
“시끄럽고. 다들 짤릴 일은 없어졌으니 안심하도록. 내사도 이제 끝이야.”
“지, 진짜요?”
“도대체 무슨 수를 쓰신 건가요?”
“설마 윗선에 뇌물이라도 바치신 건가요?”
“설마 몸 로비라도?”
“에이, 숙희 누님, 몸 로비라뇨. 이진영 팀장님이 뭐가 봐줄 게 있다고.”
“아니아니. 아까 이효진 그 사람이랑 팀장님 분위기가 좀 심상치 않았어.”
“흠. 몸 로비라. 후후후 우리 팀장님이 이효진 그 개코 스트리퍼 앞에서 옷을 벗어 던지고 몸을 던져서…….”
이진영은 박수를 쳐서 점점 이상하게 변해가는 분위기를 막았다.
“뭔 기레기 로봇도 아니고 억측이야? 자세한 건 밥이나 먹으면서 말해줄 테니까 준비된 사수는…….”
이진영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팀원들은 후다닥 퇴근 준비를 시작했다.
여전히 미스테리였던 건 전상영의 집이었다.
비상경계령이 떨어질 때부터 이 기인은 경찰서에서 먹고 자고 아주 호텔처럼 살았고 집이 어딘지, 또 결혼은 했는지도 전혀 알 수 없었다.
“저 양반은 대체 어디서 사는 건지.”
이진영과 44팀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대뜸 내사 9팀 놈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어디 가는 겁니까?”
“퇴애근이요.”
“퇴근?”
내사팀원은 경기장의 시계를 힐끔 바라봤다.
“미쳤어?”
“어? 말이 좀 짧다? 지금 대놓고 말까고 놀자는 거? 험하게 노는 건 우리 애들도 어디 가서 안 빠지는디?”
내사팀원은 대놓고 표정을 구기면서 비아냥거렸다.
“아니, 이 팀장님 정신 좀 차리세요. 그쪽 지금 내사 중이에요. 근무시간에는 조사받으셔야지? 아니꼬우면 경찰 때려치우시던가. 그럼 내사 중지시켜 줄 테니까요.”
유인환이 화를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섰고 이진영은 유인환을 말리며 비아냥에 비아냥으로 응수했다.
“이봐라 이봐. 이거이거 그런 정보력으로 무슨 내사수사를 한다고 그러는지.”
“뭐요?”
“내사 끝났어요, 아저씨들. 꼬우면 청장님에게 일러바치시던가.”
이진영은 툭하고 내사팀원을 밀치며 씩 웃었다.
“우리 ‘때스끄뽀쓰’ 팀원들은 이만 퇴근 할랍니다. 자세한 건 그쪽 팀장님한테 물어보쇼.”
막무가내였다.
44팀 팀원들은 무슨 암행어사 행차라도 하듯 내사팀 팀원들을 어깨로 툭툭 밀치고 바깥으로 나갔다.
놈들은 급히 상부에 무전으로 보고했고 당황한 내사팀원의 목소리가 44팀의 뒤로 들려왔다.
“예? 팀장님? 뭐라구요? 케이스 종결이라고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청장님 명령이라니!”
김대현과 윤숙희는 뒤를 돌아봤다. 그들에게는 무슨 마법이라도 부린 것처럼 보였다.
“여윽시 이진영 팀장님은 인천의 태양이시며 이 부천에서도 위대한 영도력을…….”
“시끄러 김대현. 밴이나 하나 갖고 와. 공식 업무 시작이다.”
이 흉악한(?) 팀원들은 슬슬 미소를 지었다.
* * *
술자리는 운동장 근처에 있는 무허가 포장마차였다.
44팀 팀원들은 좋은 술집 찾는 레이더라도 있는 건지 내사를 받는 와중에도 맛집을 찾아냈다.
소주가 한 순배 돌고 파란 플라스틱 테이블에 우동과 계란말이가 놓였다. 서빙을 하는 사람은 인간 아주머니였다.
이진영은 소주를 한 잔 더 마시고 말했다.
“오케이, 본론부터 말하지. 정보국에서 힘을 써서 우리를 빼줬어. 하지만 그냥 빼준 건 아니야.”
“아까 개코 스트리퍼도 그렇고 뭐가 있군요.”
“그래, 아마 꽤나 힘든 일이 될 거야. 빠지고 싶으면 전출 명령을 써 줄게. 인사평점도 후하게 줄 거고.”
제일 먼저 윤숙희가 소주를 들이켜더니 탕하고 테이블에 놓았다.
“뭘 하든 내사 조사를 받는 것보다는 낫죠. 매일 운동장 뙤약볕 밑에서 이건 뭐 간을 독수리에게 쪼이는 프로메테우스 신세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불평을 늘어놓았다.
“다른 곳으로 전출가도 딱지가 붙겠죠. 차라리 이곳에서 공을 세우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유인환의 말에 김대현이 옆에서 약 올렸다.
“워얼, 유인환이 야심만만한 남자.”
“예, 형님, 저 야심 많아요. 형님은 해군 참모총장, 저는 경찰청장. 부모님이 제가 경찰대 들어간 이후로 친구분들에게 그러고 다니십니다.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이대로 떨려날 수는 없지요.”
유인환은 굉장히 진지했다. 김대현은 더 놀리려다가 쓴웃음을 지으며 소주를 털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