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249
제249화
“전상영 선배. 선배는 다른 곳으로 전출 가도 괜찮잖아요? 안 그래도 러다이트 계열 테러가 부쩍 늘어서 EOD 인원을 보충한다고 공고 났더만.”
전상영은 홀짝홀짝 소주를 마시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한층 더 우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딴 곳 폭탄…… 못 터뜨려.”
“…….”
이진영도 이 사람이 가끔 경찰인지 진짜 폭탄마인지 헷갈렸다.
윤숙희는 자기 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팀장님은 괜찮겠어요?”
“글쎄다. 아이 엄마가 난리 지랄병을 하긴 했는데. 휴…….”
아직도 이유진은 이진영의 집에 있었고 요새는 내사 조사를 마치면 제꺼덕 집으로 들어와서 두 아이들은 굉장히 행복해했다.
만약 태스크포스에 참여하면 집에 꼬박꼬박 못 돌아가는 건 둘째치고 목숨이 위험했다.
말이 군경, 정보국 복합팀이지 적진에서 활동하는 특수부대였으니.
“어쩔 수 없지. 나도 내사를 받는 건 질색이니까. 대현이 너는 괜찮냐?”
김대현은 어깨를 으쓱했다.
“저도 집 살라면 경찰에 붙어있어야 해서요. 은행 대출이 내근직으로 밀려나도 영…….”
“형님, 임은혜랑 벌써 보금자리를 꾸미시게요? 와아, 국수 언제 먹는 거예요?”
다시 분위기가 느슨해지자 이진영은 테이블을 노크하며 팀원들을 집중시켰다.
“선배, 재머.”
전상영은 미리 준비한 재머를 가동시켰다.
그러자 옆에서 술 마시고 전여친과 통화하던 사람이 절규하며 바깥으로 튀어 나가고 가게 주인도 TV가 지직거리자 괜히 기계를 퉁퉁 때린다.
그 사이에 이진영은 짧게 태스크포스13에 대해 이야기했다.
팀원들은 이야기를 듣고 하나같이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이진영은 재머를 손수 끄고 말했다.
“다시 말해. 나 혼자 가도 상관없어. 어차피 그쪽 회사가 바운더리 안에서 일하려고 요구한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니까. 자, 다시 묻는다. 참여 안 할 사람은 다른 곳으로 전출 보내줄게.”
팀원들은 말없이 소주잔에 술을 따라 입에 털어 넣었다.
“시발, 뭔 도원결의하는 것도 아니고.”
이진영도 그러면서 술잔을 기울였다.
이로써 44팀 전원은 태스크포스 13에 가담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진지한 이야기가 끝나고 터져 나오는 건 신희정과 이세화의 스캔들이었다.
팀원들은 왁자지껄 두 사람 뒷담화를 하다가 야구 이야기, 여자 이야기 온갖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이 배속된 지는 겨우 반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수많은 사건을 해쳐나오면서 이들은 서로를 가족처럼 느끼고 있었다.
이진영은 빙긋 웃었지만 여전히 EV-1의 빈자리가 허전했다. 아까 신희정이 경비행기가 어쩌고 한 탓이다. 그는 소주를 한 잔 따라 검은 프레임의 로봇을 생각하며 소주를 털어 넣었다.
* * *
다음 날. 어제는 낮부터 위스키에 보드카까지 마시고 다들 3차까지 갔으니 멀쩡할 리 없었다.
44팀 팀원들은 좀비영화의 한 장면처럼 어기적거리면서 관중석으로 하나둘 기어 나왔다.
아무리 여름이라도 축구장은 굉장히 싸늘했다. 그들은 괜히 일찍부터 운동장에 나와서 관중석에서 오돌오돌 떨고 있었다.
중부서 강력부장은 관중석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하, 저 44팀 새끼들 경찰 근속 훈장 노린대냐? 뭔 아침 일찍부터 기어 나오고 지랄들이야 지랄은. 하이고오. 텐트에 술판에 아주 캠핑을…….”
강력부장은 캠핑이라도 나온 듯한 44팀을 보며 할 말을 잊었다.
어느새 텐트를 열고 나온 전상영이 캠핑 난로에 매시멜로우를 구워먹고 있었다. 냄새에 이끌린 44팀 팀원들이 옹기종기 모여 해장라면을 끓이거나 나뭇가지를 꺾어와서 양말을 끼워 말린다.
거의 노숙자가 되다시피 한 44팀의 모습은 불쌍하다 못해 애잔했다.
강력부장은 이마에 손을 올리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한량경위 이진영이 팀장으로 승진하고 골칫거리가 하나 줄었다고 생각했더니 더한 놈들이 세트로 들어왔다.
“부장님 44팀이 저 친구들입니까?”
“…….”
강력부장은 더플백을 들고 옆에 선 남자를 바라봤다. 이놈 역시 딱 봐도 정상적인 경찰은 아니었다.
멀쩡한 전투경찰복 소매를 뜯어서 무슨 나시처럼 입고 있었고 곱슬머리를 길게 길러 고무줄로 묶었다. 얼굴은 잘생겼다고 할 수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느끼한 이탈리아 남자를 보는 것 같았다.
제일 이상한 건 오래된 청춘만화 캐릭터처럼 입에 풀잎을 물고 있다는 점이었다.
강력부장은 한숨을 쉬고 더플백을 멘 남자와 함께 관중석으로 향했다.
유인환은 끓이던 라면 면발을 들어 보이며 강력부장에게 말했다.
“오우 부장님. 잘 오셨네. 라면 좀 드시죠?”
“됐어, 임마. 니들 꼬라지 보는 것만으로도 신물이 날 지경인데. 라면까지 먹으면 속 버릴 거 같아.”
“저, 부장.”
“아이, 깜짝이야! 전상영. 시발 좀!”
전상영은 어느 틈에 마시멜로우를 들고 강력부장의 뒤에서 먹으라고 권했다. 강력부장은 질색팔색을 하며 한사코 거부하며 뒤에 있는 남자를 소개하려고 했다.
그러나 더플백을 맨 남자는 어느새 44팀 옆에 쪼그리고 앉아 해물라면을 후루룩 맛보고 있었다.
“와, 라면 진짜 잘 끓이네. 최고.”
“근데 누구…….”
김대현은 라면을 먹으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아, 반갑습니다. 저는 블랙스와트에서 온 엑소슈트 파일럿 심봉근입니다. 오늘부터 44팀에 배속되었습니다.”
구수하고도 뭔가 야릇한 이름이었다. 심봉근은 앞머리를 휙하고 걷어 올리고는 씨익 느끼한 웃음을 지었다. 마침 그 앞에 앉아있던 윤숙희는 대놓고 싫은 표정을 지었다.
김대현은 흥미가 생겼는지 심봉근에게 말을 걸었다.
“잠깐요. 블랙스와트에 엑소슈트라고요?”
“예, 그쪽은 경찰대학 기수가…….”
“아, 저는 일반 시험경찰.”
경찰끼리 만나면 서열을 위해 은근히 탐색전을 벌였다.
심봉근의 계급은 경위였고 짬밥으로 따지면 윤숙희와 엇비슷했다. 졸지에 상전 하나가 늘어난 김대현은 눈썹을 찡그렸다.
“오우, 미인이신데요. 이런 미인이 인천 중부서에 있을 줄 전혀 몰랐습니다.”
심봉근은 윤숙희에게 대놓고 작업을 걸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심봉근은 윤숙희의 타입은 아니었다.
김대현은 그래도 사람 좋게 심봉근에게 말을 걸었다.
“아무튼, 엑소슈트 파일럿이면?”
“아, 내 엑소슈트는 곧 올 거야.”
“아, 예……. 근데 어쩌다가…….”
심봉근은 대단한 비밀이라도 말해준다는 듯 김대현에게 속삭였다.
“내가 쫌 엑소슈트를 잘 몰거든. 아 근데 하필 그날 출동할 때 어쩔 수 없이. 진짜 어쩔 수 없었어. 비상이었거든. 음주운전을 하고 대대장님 차에 꼬라박는 바람에. 헤헤헤헤.”
또다시 길 잃은 어린양이었다.
심봉근은 묘하게 44팀과 잘 어울렸다.
그는 전상영에게 마시멜로우를 받아먹더니 맛나다며 극찬했고 심지어 전상영의 개 프랑소와즈 역시 앙앙대며 심봉근에게 꼬리를 흔들었다.
“아이구, 귀여워라. 경찰견치고는 너무 귀여운데에? 아무튼 다들 잘 부탁드립니다. 헤헤헤. 근데 그 전설적인 팀장님은 어디 계십니까? 아, 저분이시구나?”
심봉근은 껄렁할 것 같은 겉모습과 달리 굉장히 상사에게는 싹싹했다.
“이진영 팀장님. 경찰 24시에서 많이 뵀습니다. 이야아아! 실물이 훨씬 더 멋지신데요? 그리고 이 점퍼. 이게 물건이라니까. 이거 경찰 24시 팬들 사이에서 레플리카도 만들어지는 거 아세요?”
“누구…….”
이진영은 강력부장의 눈치를 살폈다.
“새로 배속받은 니네 식구. 아무튼 인계했으니 난 간다잉? 그리고 쓸데없이 사고 치지 말고.”
“에이, 부장님. 새식구 앞에서 무슨 소리를. 누가 보면 만날 사고만 치는 줄 알겠네.”
“하이고오. 그러셨어요? 이진영이께서어? 너 임마 처음 경찰 들어왔을 때 사고부터 읊어주랴? 수동운전하다가 서장님 차에 꼬라박지를 않나…….”
“아 거참. 알았어. 알았어. 부장님 바쁘시다니까 내 안 잡을게. 어서 일하러 가세요. 어서.”
심봉근은 이진영도 서장 차를 들이받았다는 걸 듣고 동질감을 느꼈는지 ‘크아으으’를 연발하며 양손 엄지를 들었다.
이놈도 정신이 제대로 나간 놈이었다.
강력부장이 진저리를 치며 돌아가고, 이진영은 상부에서 받아온 작전 명령서와 각종 인사이동 서류를 파라락 넘겼다.
“오늘부로 우리는 태스크포스 13에 참여하게 된다. 지하무기고에 들러서 무장 불출받고 육군측의 집결지에서 회의를 하게 될 거야. 질문 있는 사람.”
심봉근이 제일 먼저 손을 들었다.
“팀장님, 사인 한 장 받아도 될까요?”
“…….”
EV-1이 있다면 옆에서 대충 정리해줬을 테지만 잠시 정적이 흘렀다.
“하여튼 경찰 24시 내가 언젠가는 폭파하고 말 거다.”
폭파라는 말에 전상영이 미소를 지었다.
이진영은 다시 한숨을 쉬고 말했다.
“다들 확실히 장비 챙기고. 아, 그리고 선임수사관은 윤숙희가 될 거야. 이건 인사명령서.”
육군으로 치면 행보관 격인 선임수사관이라는 말이 나오자 팀원들의 표정이 우울해졌다.
44팀의 전 선임수사관은 김상현이었고 그는 웡꺼의 사주로 암살을 시도한 후 자살했다.
사실 계급상으로 따져도 심봉근이 선임수사관 역할을 해야 했지만, 아직 경사인 윤숙희가 선임수사관이 되었다.
심봉근은 고개를 갸웃하긴 했지만 별 불만은 없었다. 그는 엑소슈트 스페셜리스트로 섭외된 객원가수 역할이었다.
어차피 선임수사관은 할 일은 많고 수당은 쥐꼬리만큼 나오는 일이었다. 한량경위 시절에도 이진영은 선임수사관 꼬리표를 피하기 위해 갖은 짓을 다 했다.
심봉근까지 가세한 44팀은 바로 축구경기장 지하로 내려갔다.
예전에는 만화박물관이었던 곳이 지금은 인천 중부서, 북부서의 무기고 겸 취조실이 되었다.
마침 지하에 있던 내사 9팀이 44팀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봤다.
그들은 다 잡은 먹이를 태스크포스 13에게 빼앗겼고 44팀 팀원들은 제각각 그들을 약 올리며 무기고로 향했다.
무기고에는 내사 때문에 봉인되어 있던 빅베어, RR-04등 44팀의 로봇들과 장비들이 있었다. 구속에서 풀려난 돌돌이가 이진영의 주위를 빙글빙글 맴돌았다.
아마 EV-1이 있었다면 돌돌이의 말을 통역해줬을 테지만 로봇은 없었다.
팀원들은 무기고에서 각종 탄약과 무기를 불출받았다. 태스크포스 13은 임무 특성상 보급을 받을 수 없었고 탄약부터 식량까지 전부 가지고 가야 했다.
탄박스가 착착착 쌓이고 김대현은 손수 장갑차를 운전해서 로더로 각종 물자를 실었다.
장갑차는 차륜형 12인승 장갑차였고 대형 로봇 두 대를 실을 수 있는 적재함도 딸려 있었다.
“오, 이게 경위님 엑소슈트에요?”
“예압. 경찰마크는 지워야 하겠지만.”
심봉근은 장갑차 옆면 적재함에 자신의 엑소슈트를 손수 실었다.
그의 엑소슈트는 흔히 볼 수 있는 호리코시, 제너럴 에어로믹스의 랜서나 파이크맨 계열은 아니었다.
랜서보다 한 세대 전의 물건인 ‘채피(Chaffee)’, 이 엑소슈트는 경량급이라 장갑방호 능력도 약했다.
“뭐야 이 고물은?”
“팀장님 고물이라니요. 제 아인헤자르는 무적입니다.”
“무적 같은 소리한다. 그리고 이 킬마크는 또 뭐야?”
“전쟁 때 것까지 합쳐서 그려놨습죠.”
“전쟁 때? 깐웨 전쟁 때는 어디 있었는데?”
“1기병 정찰대요.”
1기병이라는 말에 이진영은 한승우를 떠올렸다. 한승우는 1기병 출신이 얼마나 무서운지 실력으로 보여줬다.
이 껄렁한 심봉근도 1기병인데다가 본청 무장타격대 출신이라면 실력은 확실했고 10개가 넘는 킬마크가 그의 솜씨를 증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진영은 솜씨 좋은 중장기병을 보고 오히려 더 불안해졌다. 어지간히 힘든 임무가 아니라면 본청의 블랙스와트인 심봉근을 차출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