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250
제250화
“자, 다들 서둘러! 집합 시간에 늦으면 또 육공이 지랄할 거야!”
이진영은 장갑차 옆면을 두들기며 팀원들을 재촉했다.
무장불출 로봇의 도움으로 탄약과 배터리팩이 장갑차에 가득 차고 팀원들도 전원 방탄복과 전투복으로 갈아입었다.
늘상 평상복을 입고 다니던 팀원들이 제식 방탄헬멧을 쓰고 다니는 모습은 굉장히 어색해 보였다.
이진영은 운전석에 타고 조수석에는 심봉근이 선탑했다.
심봉근은 엑소슈트는 잘 다뤄도 수동운전은 못 한다. 그리고 지금 이 장갑차는 아미타 여래가 지배하는 영역으로 들어가는지라 그 어떠한 인공지능도 탑재되어 있지 않았다.
아마 EV-1이 있었다면 전날 숙취 후 알콜이 남아 있다며 수동운전을 하지 말라고 권했을 것이다. 곳곳에서 EV-1의 빈자리를 느껴졌다.
이진영은 배웅을 나온 강력부장에게 거수경례를 하고 집결지로 차를 몰았다.
축구경기장 밖 부천도 인천과 상황이 그리 다르지 않았다.
웡꺼의 무장열차가 부천역까지 쳐들어온 이후 민간인들의 소개가 결정되었고 아파트촌마다 피난 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장갑차는 피난 가는 사람들과 정반대로 부천역 쪽으로 달렸다.
부천역으로 다가갈수록 점점 더 폐허가 많아졌다.
무장열차가 들어오면서 사방으로 미사일과 로켓을 날리느라 곳곳이 폐허가 되어버렸다.
정부는 복구를 하려다가 그냥 사태가 완전히 일단락되기까지 손을 놓고 있는 상태였다.
부서진 빌딩에는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상점들도 전부 셔터를 내리고 문을 닫았다.
다만 부천역 주변의 노점상들은 여전히 군인 상대로 장사를 하며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군인들은 앉으나 서나 배가 고팠고 병사들은 총을 찬 채 오뎅이나 핫도그, 떡볶이를 사 먹었다.
그 옆에는 외신 기자들이 뭐라뭐라 영어로 떠들면서 병사들을 찍고 있었다.
부천역 노점은 지금 일상과 비일상이 교차하는 지점이었고 뉴스꼭지로는 딱 좋은 그림이었다.
이진영은 전보다 더 복잡해진 노점거리를 가로질러 옛 ‘소신여객’ 종점으로 천천히 차를 몰았다.
집결지는 소신여객 터미널이었다.
부천을 상징하는 소신여객 터미널은 각종 군용병기 주기장으로 쓰였다. 지금 주기장 한쪽에는 육군 쪽의 태스크포스13 요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진영은 미리 정한 주차 칸에 장갑차를 세우고 운전석에서 내렸다. 저쪽에 배낭을 메고 누워있는 놈들이 경찰마크를 보고 야유를 쏟아냈다.
“짭새새끼들, 빨리빨리 좀 다니지.”
“그러게. 야, 근데 여자도 있다. 어이 아가씨이 이쪽 좀 바라봐줘요오오.”
각종 기장을 보면 육군 특수전 지원단 놈들이었다.
정 대령부터 시작해서 단추가 잘못 끼워졌는지 어째 이진영과 육군 특전단은 사이가 좋아질래야 좋아질 수 없었다.
44팀은 특전단을 노려보면서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에는 떡대 좋은 특전단 병사가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다.
“보안상 나머지는 다른 곳에서 대기하시고 팀장님만 들어가십시오.”
이진영은 팀원들과 떨어져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무실에는 미리 나온 정보국 요원 감미영과 육군공안부 요원들 그리고 낯익은 얼굴 하나가 보였다.
“오우, 검사장님. 아직도 인천 계셨어요?”
중부서의 담당검사였던 구자연 검사였다. 그녀는 장현권 사건을 기소하는 데까지 성공하고 바로 이례적으로 진급 시기가 아닌데도 검사장 진급 물망에 올랐다.
원래대로라면 그녀의 꿈인 목동 서울 남부지청으로 전출을 가야 할 테지만 장현권이 웡꺼의 요리사에게 저격당하면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 버렸다.
결국 그녀는 인천에서 검사장을 달았다.
“하여튼 이진영 팀장 당신이랑 엮이면 좋은 꼴을 못 본다니까?”
“어허, 섭한 말씀을. 영전에 영전을 거듭하시게 견마지로의 노력을 다했건만 이리 박대하십니까?”
“시끄럽고요. 댁 덕분에 혼삿길 막힐 뻔한 거 생각하면 아직도 덜덜 떨려요.”
이진영은 장현권 사건 때문에 찾아갔던 때를 생각하며 ‘아아’하는 소리를 냈다. 그 당시 구자연은 맞선 중이었다.
그녀의 약지에는 놀랍게도 약혼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오, 영전에 겹경사로구만요.”
“과거형으로 표현해 주세요. 적어도 인천이 깡패 새끼들한테 떨어지기 전까지는 잘 풀리는가 싶었죠. 덕분에 결혼식이 연기되었거든요.”
“오호, 그것 참…….”
‘시집 못 간 검사장님의 원한이 인천에 서려 있겠군요.’
이진영은 그 말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다. 그는 관자놀이를 검지로 긁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검사님이 왜 여기 계시죠?”
감미영이 대신 대답했다.
“출구전략이죠.”
“음……. 그때 신희정 ‘차석’님께 듣기로는 참수작전이 출구전략이라고 들었는데 말이죠.”
“최종적으로는 체포가 목적입니다.”
이진영은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누구요?”
“롱꺼, 웡꺼, 쎄잉꺼 세 명 중 하나 혹은 정 대령.”
정 대령이라는 말을 듣고 이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음…….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적어도 한 명은 내란수괴로 재판대에 세워서 욕받이를 만들겠다는 거군요.”
“예, 바로 그겁니다.”
감미영 팀장은 사람 좋게 웃었다.
그 밑작업을 위해서는 검찰의 도움이 필요했고 구자연 검사장이 이곳에 있는 이유였다. 안 그래도 그녀는 결혼이 연기되고 중부지청도 점령당하면서 간신히 피신했다.
처녀가 한을 품으면 무서운데 결혼식이 연기된 노처녀가 한을 품으면 더더욱 무서웠다.
“하지만 기소하는 건 힘들 겁니다. 네 명의 타겟 중 하나를 잡는 것만 해도…….”
“그건! 우리 육군이 알아서 합니다. 경찰은 들러리니까, 함부로 우리 애들한테 총을 겨누거나 하지나 마쇼.”
육군 측 작전책임자인 김명중 중령이 테이블을 치며 호언장담을 했다.
“아이구, 그렇게 잘하실 거면서 부천까지 밀리셨쎄요? 아미타 여래의 영역 밖인데도?”
“뭐요? 당신 지금 뭐라고 했어.”
원래 중령이면 나이가 50줄이지만 특수부대 특성상 김 중령은 이진영보다 많아야 한두 살 많았다.
“자자, 진정들 하시죠. 지금 작전 들어가기도 전에 이 난리랍니까?”
감미영 팀장은 부상당한 신희정을 대신해서 이 자리에 왔고 작전 총지휘는 정보국이었다. 그녀는 흠흠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해공군 연합 편대가 미사일 샤워를 할 겁니다. 이곳 부천역에서 지하 간선도로를 타고 인천으로 잠입합니다. 병력 숫자는 정보국 저 포함해서 3명, 육군 특전단 81명, 그리고 경찰 경호인력과 중부서 현장 44팀을 포함해 21명입니다. 주요 작전 목표는 소드타워의 웡롱지휘소, 성망개발공사 등이며 자세한 작전 목표는 현장에 들어간 후 제가 정하겠습니다.”
감미영 팀장은 신희정의 부하이니만큼 굉장히 유능했다. 그녀는 청사진과 지도를 여러 장 펼쳐놓으며 각각의 공격 목표에 대해 설명했다.
“무장은 가능한 한 북한제 무장을 쓸 거고 페이즈 원 목표는 다들 아시다시피 쎄잉꺼와 웡꺼의 분란 조장입니다. 페이즈 투의 목표는 분쟁 해결을 위해 모습을 드러낼 롱꺼. 그리고 부가적인 목표는 아미타 여래의 무력화입니다.”
이진영은 아미타 여래라는 말이 나오자 한숨을 쉬었다.
도대체 무슨 수로 아미타 여래가 있는 곳을 찾아내고 무력화시킨단 말인가?
감미영 팀장은 이진영의 표정을 보자마자 말했다.
“그건 이진영 팀장님께서 도와주셔야 할 겁니다. 여기서 특별병과번호와 맞상대를 한 건 이진영 팀장님 밖에는 없으니까요.”
“흐음. 대충 알겠어요. 메인 디쉬는 놈들의 대보스 혹은 정 대령이고 그 와중에 특별병과번호 놈들이 나오면 놈들 중에 하나를 잡아서 조진 다음에 정보를 알아내겠다?”
“후후, 사람 조지는 거라면 저희 회사가 둘째가라면 서럽죠.”
이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인천을 들쑤신다면 분명 특별병과번호 놈들이 등장할 것이다. 이진영은 놈들과 세 번이나 마주쳐서 살아남았고 심지어 세 번 다 놈들에게 판정승을 거뒀다.
천수관음은 이진영에게 총을 맞아 거의 죽을 뻔했고, 로봇 등록소에서 부동명왕은 EV-1의 진동 블레이드에 목숨을 잃을 뻔했다.
중화대루에서 제석척, 탑탁천왕, 부동명왕 세 명과의 전투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EV-1은 당시 세 놈 중 한 명의 숨통을 끊어놓을 수 있는데도 퇴각을 우선시하며 놈들을 살려줬다.
이진영은 왜 44팀이 태스크포스에 들어왔는지 비로소 이해했다.
육군조차도 특별병과번호에 대해 전혀 정보가 없었고 그 부분은 이진영과 팀원들의 정보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돌입 전 회의는 이것으로 끝이었다.
특전단 지휘관 김 중령은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이진영은 깔끔하게 무시하고 바깥으로 나왔다.
“이게 또 뭔 개판이야.”
바깥에서는 벌써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웃통을 벗은 유인환이 육군 특전단 놈들을 마구 후려 패고 있었고 김대현도 주먹으로 근육질 사내를 쓰러뜨렸다. 거기에 오늘 배속받은 심봉근은 박치기로 두 명을 연달아 쓰러뜨리며 이소룡처럼 ‘끼요오옷’하는 괴성을 터뜨렸다.
발단은 윤숙희에 대한 희롱이었다.
특전단 놈들은 윤숙희에게 다가와 그녀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치근덕댔고 놈들의 음담패설을 참다못한 유인환이 놈들에게 냅다 드롭킥을 날렸다.
그 결과가 이 난장판이었다. 육군 특전단 놈들이 몰려오고 김대현과 전상영까지 가담하면서 패싸움으로 번졌다.
44팀의 전투력은 막강했다.
일단 탈 인간급 피지컬을 가진 유인환은 말할 필요도 없었고 제일 비리비리해 보이는 전상영도 실은 유도의 달인이었다.
전상영은 펀치를 잡고 쉽게 휙하고 덩치를 패대기쳤다. 그 사이 유인환은 천장으로 점프해서 조명을 잡았다가 떨어지면서 레슬링 기술로 두 놈을 깔아뭉개 버렸다.
이곳은 특전단 주둔지였고 육군의 숫자가 더 많은데도 전상영, 유인환이 전황을 압도하고 있었다.
감미영 팀장이 급히 달려와서 이진영에게 말했다.
“팀장님, 말려야 되는 거 아닙니까?”
“연합작전에서 만난 특수부대원들은 상대의 실력을 확인하러 싸우게 마련이죠.”
이진영은 비장하게 말을 이었다.
“그 싸움에서 죽을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죠.”
‘이 뭔 병신같은 소리를 다 듣겠네.’
감미영 팀장은 그런 표정으로 이진영을 노려봤다.
실은 이진영도 진지하게 하는 말이 아니라 그냥 농담이었다. 그는 메롱하고 혀를 내밀면서 씩 웃었다.
“우리 애들이 이기는데 뭐 하러요? 이런 싸움은 쫄리는 놈이 말리는 거지요.”
유인환은 한 놈을 일으켜 세운 뒤 심봉근더러 달려오라는 시늉을 했다.
두 사람은 만난 지 겨우 몇 시간 만에 오랫동안 태그매치를 먹은 프로레슬러들처럼 멋지게 크로스 라인을 성공시켰다.
심봉근의 팔에 목이 휘감긴 육군 병사가 바닥에 널브러지고 두 괴인은 팔꿈치를 부딪치며 포효했다.
그 사이 전상영에게 붙잡힌 덩치 한 명이 유리창을 박살 내며 날아간다.
“웃차.”
전상영은 자기 몸보다 큰 병사들을 아주 가볍게 집어던졌다.
탕탕탕!
결국 이진영의 말이 맞았다.
명색이 특수전 지원단 병사들이 일개 경찰들에게 깨지고 있자 보다 못한 육군 장교가 허공에 총을 쏘며 싸움을 말렸다.
“이 새끼들 뭐 하는 거야! 다들 그만!”
이진영은 감미영에게 거보라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 팀원들에게 다가갔다.
심봉근과 유인환은 무슨 우승한 프로레슬러 팀처럼 검지를 허공에 올리며 괴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이진영은 유인환과 심봉근의 뒤통수를 살짝 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