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251
제251화
“아주 프로레슬링으로 데뷔하지 그러냐? 그리고 사람을 이렇게 다치게 하면 어뜩하냐? 육군 아자씨들 자존심 좀 상하겠다아아. 그리고 선배는 그 막 사람을 날리고 그러면 됩니까아?”
유인환, 심봉근, 전상영 세 사람의 활약에 가려져서 그렇지 윤숙희는 암바를 걸어 한 명의 팔을 부러뜨렸고 김대현도 두 명을 피떡으로 만들어 놨다.
이진영은 ‘미안함다, 미안함다.’를 연발하면서 대충 팀원들을 꾸짖는 척만 했다.
44팀 팀원들이 장갑차로 되돌아가고 육군 장교는 혀를 내둘렀다.
바닥에는 그들이 패대기치고 작살 낸 인원들이 아직도 끙끙 신음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도대체 경찰에서는 어떤 놈들을 보낸 거야? 저놈들 대체 뭐야? 뭐 하는 놈들이야?”
‘정말 뭐하는 놈들이야?’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 * *
출발은 해가 질 무렵이었다. 출발 시각이 다가왔다는 걸 알리듯 쐐애액하고 해공군 연합작전팀이 새빨갛게 노을 진 부천 상공에 나타났다.
“출발 10분 저어언! 출발 10분 저어어언!”
특전단 놈들이 반창고를 덕지덕지 붙인 채 장갑차에 오르고 44팀과 본청 블랙스와트 한 팀도 차량에 올랐다.
인천은 아미타여래의 영역이었고 이들은 핸드폰은 물론 각종 인공지능 장비까지 전부 내려놓았다. 마치 2천 년대 초반의 군대처럼 전자 장비라고는 비상용 무전기를 제외하면 야간투시경 정도가 다였다.
차량은 소신여객을 빠져나와 미리 폭파해놓은 지하도로 향했다. 15대의 차량이 줄줄이 서울 방면으로 이동한다.
이곳에도 난민들의 스파이가 좍 깔려 있었고 병력 이동 따위는 웡꺼에게 실시간으로 보고되고 있을 터였다.
이진영은 장갑차 관측창 너머로 난민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며 어디론가 전화를 하는 모습을 노려봤다.
이제 경기도 서부지역에서 난민들을 통제할 방법이 없었다. 방벽이 완전히 무너지고 난민들은 인천은 물론이고 충남이나 전라도까지 흩어졌다.
역이나 터미널 곳곳마다 신분증 검색이 강화되었지만 걷거나 헤엄쳐서 이동하는 난민들을 무슨 수로 막을 수 있을까?
심지어 부산에서 일본으로 평화의 라인을 타고 넘어가려다 잡힌 난민들도 더러 있었다.
이래서야 비밀작전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정보가 새지 않는 게 더 이상했다.
오늘 작전에 참여한 자들은 모두 정보국에서 신원보증이 된 사람들이었지만 혹시 또 모르는 일이었다.
까딱 잘못하면 쐐기는커녕 웡꺼 놈들에게 붙잡혀 전원 다 사살당할 수도 있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이진영은 어마어마한 압박감을 느꼈다. 괜히 팀원들을 사지로 끌고 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김상현의 죽음도 견디기 힘들었는데 젊은 김대현이나 유인환이 죽게 된다면 그는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았다.
어느새 선두차량은 역곡역에 있는 지하통로에 다다랐다.
지하통로는 원래 부천이 재개발되면서 새로 인천까지 연결되려던 통로였다. 이 역시 간위예 전쟁으로 예산이 부족해지면서 철회되었다.
전쟁 전의 통로이기에 롱꺼도 이 통로가 존재한다는 걸 모를 테고 인천 근교까지는 안전하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차량은 미리 설치해둔 경사로를 따라 텅 빈 선로로 내려왔다.
폐선된 통로는 굉장히 을씨년스러웠고 곰팡이의 쿰쿰한 냄새가 장갑차 안에까지 들어왔다.
태스크포스 13은 어두운 통로를 지나 천천히 인천시가지로 접근했다.
부천에서 인천까지는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지하로 접근하다 보니 장갑차 헤드라이트 불빛에 흙먼지가 일렁이며 마치 불빛 하나 없는 심해를 탐사하는 것만 같았다.
얼마를 달렸을까?
갑자기 위에서 진동이 쿠궁하는 소리가 들리며 흙먼지가 정신없이 일렁였다. 해공군의 미사일 샤워가 인천 곳곳을 타격하는 소리였다.
아마 대부분의 유도 미사일은 아미타여래에게 해킹되어 불발되거나 자폭되었지만, 몇몇 멍텅구리 레이저 폭탄들이 웡꺼의 초소에 떨어지며 폭발이 터진 것으로 보였다.
이 폭격은 어디까지나 웡꺼 놈들의 시선을 돌려놓고 태스크포스 13이 인천 시내로 들어오는 걸 숨기기 위한 것이었다.
차량들은 폭격이 떨어지거나 말거나 줄지어서 지하도를 달렸고 아직 미완성된 역에서 선두차량이 멈춰 섰다.
이곳은 인천 부평역 근처의 버려진 역이었다.
통로는 딱 여기까지만 건설되어 있었고 이곳이 바로 태스크포스 13의 베이스캠프였다. 여기까지는 지하통로를 통해 보급이 가능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이 위쪽은 전부 웡꺼 패거리들이 득실거리는 곳이었고 태스크포스 13은 육로로 만수산을 통해 인천으로 들어갈 계획이었다.
인천에는 정보국의 안전가옥 등 은신처가 몇 곳 있었고 정찰로 확실한 상황을 파악할 때까지 베이스캠프에서 대기해야 한다.
“자, 유인환, 김대현. 너희 둘 아까 팔팔하게 날아다니는 걸 보니 첫 정찰이다. 날 따라와. 나머지 인원은 베이스 대기.”
윤숙희가 손을 들었다.
“제가 먼저 갈게요.”
“아니, 댁은 선임수사관이야. 나랑 교대로 간다. 심봉근, 윤숙희를 보좌해.”
“예이, 팀장님.”
윤숙희는 소위 시험경찰 출신이라 전장의 경험이 부족했고 이진영은 심봉근을 그녀에게 붙여줬다. 윤숙희는 대놓고 인상을 찌푸렸지만, 심봉근은 빗으로 앞머리를 넘기며 느끼하게 웃었다.
이진영을 비롯한 세 명은 소총과 방탄복으로 완전무장하고 장갑차에서 내렸다.
블랙스와트 두 명이 그들과 합류하고 감미영은 육군 특전단 병사들과 함께 이진영을 기다렸다.
“어이, 정보국 아가씨. 총이나 쏴본 적 있어?”
특전단 놈들은 아까 44팀에게 호된 맛을 보고도 감미영에게 수작을 걸었다.
그녀는 별 반응 없이 철컥철컥 화약식 권총을 점검하고 카빈형 레일건을 잡았다.
“목적은 어디까지나 정찰입니다. 안전가옥에 있는 현지 요원들과 접촉하고 이동계획을 잡겠습니다. 조용히 들어갔다가 조용히 나옵니다.”
감미영은 가설되는 케이블을 바라봤다.
본부와 베이스 캠프는 유선으로 연결되었고 맨 뒤에 있던 장갑차는 케이블을 풀면서 여기까지 왔다. 베이스 캠프의 상황실은 단촐하게 기초적인 유선전화 몇 대만 놓여 있었다.
육군 병사 하나가 손을 들었다.
“근데 그 특별병과번호가 나왔을 때는 어떡합니까?”
“교전은 회피합니다. 다시 한번 말합니다. 이번은 정찰에 불과합니다. 최우선 목표는 안전가옥에 접선, 그곳에 전선기지를 만드는 것입니다.”
감미영은 간결하게 작전목표를 이야기했다.
병사는 수첩에 교전규칙을 적어놓고 팀원들에게 전파했다. 껄렁거리기는 해도 이들은 육군의 최정예 병사들이었다.
이윽고 준비를 마친 15명 2개 분대 가량이 역 밖으로 나왔다.
역은 아예 입구가 콘크리트로 봉해져 있었고 이들은 환기구에 줄사다리를 걸고 바깥으로 나왔다.
정찰대는 밖으로 나가기 전 광학위장복을 가동시켰다. 희뿌옇게 광학왜곡이 되자 어스름한 저녁에는 거의 구분이 되지 않았다.
폐선된 역 바깥에는 아무도 없었다. 난민들이 봉기하기 전에도 이 근처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정찰대는 빠른 속도로 숲으로 들어간 후 만월산으로 올라갔다. 이곳은 그리 높지 않은 산이었지만 주변이 평지라 관찰하기 딱 좋았다.
특전단 병사들이 능숙하게 주변을 사주경계하고 감시장비들을 헤드레스트에 끼웠다.
카메라는 인터넷에 연결되지 않았고 끽해야 전자식 쌍안경 정도가 다였다.
감미영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소드타워와 성망개발공사를 망원경으로 확인했다. 두 건물은 마치 쌍둥이 탑처럼 서로 번쩍이며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롱꺼의 상징 붉은 용 걸개그림이 걸려진 소드타워.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적인 회사처럼 보이는 성망개발공사.
“좀 더 가까이 접근해야겠어요.”
어차피 이 정도 거리에서 사진을 찍어봤자 부천에 뜬 정찰기에서 찍은 화면이 더 생생하고 자세하다.
지휘관 김명중 중령은 고개를 끄덕이고 이동한다는 시늉을 했다.
밤이 내려앉은 시가지를 소리 없는 유령들이 이동한다.
부평 근처의 집들도 민간인들은 거의 다 대피했다.
곳곳에 육군과 웡꺼의 공격부대가 남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전투가 얼마나 처절했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개자식들…….”
병사 중에 한 명이 이를 부드득 갈았다.
웡꺼는 교전한 육군 병사들의 시체도 곳곳에 내걸었다. 더운 여름 날씨에 시체가 썩으며 고약한 냄새가 밀폐형 헤드모듈을 썼는데도 느껴질 정도였다.
놈들이 접경지역에 시체들을 걸어놓는 건 육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막상 그걸 보는 병사들은 사기가 떨어지기는커녕 오히려 핏발선 눈으로 시체를 보며 결의를 다졌다.
이진영도 시체를 보면서 혀를 찼다.
“어리석군요. 최소한 시체를 매장하거나 하면 여론이 조금은 좋아질 텐데.”
“그러니까 조폭이죠.”
감미영은 당연하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그들은 점점 더 인천시 안쪽으로 깊숙하게 들어갔다. 사실 차로 오면 금방인 거리였지만 사주경계를 하며 전진하려니 앞으로 나아가는 게 더뎠다.
감미영은 1호선 라인을 타고 각종 참상들을 사진으로 남겼다. 웡꺼가 선전물에서 보여주지 않은 놈들의 적나라한 악행이 곳곳에 남아있었다.
웡꺼 놈들은 잡히는 족족 한국인을 강간하거나 살해했고 그 시체를 그냥 거리에 버려뒀다.
안 그래도 여름이라 음식물 쓰레기만 버려도 냄새가 지독한데 사람시체가 곳곳에서 썩어가니 그 냄새는 말할 것도 없었다.
“오래 못 가겠군.”
이진영은 방치된 시체들을 보고 롱꺼 패거리의 점령이 그리 오래가지 못할 거라 내다봤다.
웡꺼 놈들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한국인에 대해 보복을 하고 있었고 정상적인 조직이라면 그 보복을 막아야 했다.
지금까지는 국제적인 여론이 난민 차별, 인도적 지원도 거부한 한국 정부 등등의 언더독 프레임이었지만 이런 식이라면 언제 여론이 뒤바뀔지 모른다.
롱꺼 놈들은 더 이상 언더독이 아니었고 인천을 점거한 반군이었다.
미군이 점령지에서 각종 물자를 뿌리거나 하면서 선무 작업에 공을 들이는 걸 생각해보면 어이없는 일이다.
웡꺼가 부하들을 통제 못 하는 건 꽤나 치명적인 이미지 타격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안 그래도 몇몇 양심 있는 종군기자들이 현장에 뛰어들어 웡꺼 놈들이 벌인 만행을 필름카메라로 찍어 보도하고 있었다.
여론이 바뀌는 건 한순간이다.
“계속 가죠. 시간이 없습니다.”
감미영은 붉은 손전등 불빛으로 지도를 확인한 후 정찰팀을 재촉했다.
그때, 찢어지는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웡꺼의 노란 완장을 단 두 놈이 여자의 머리채를 잡고 하필 이들이 잠복하고 있는 골목 쪽으로 끌고 왔다.
전원 광학위장을 하고 있지만 움직이면 들킨다. 김명중 중령은 손을 슬며시 들어 다들 가만히 있으라는 동작을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