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256
제256화
심지어 어떤 방송국은 무슨 코리안시리즈 중계하듯 각 조직의 전력에 대해 분석하기도 했다.
그 방송에 따르면 전체적인 병력의 숫자는 단연 웡꺼가 우세였다.
웡꺼는 3차 봉기 전에 마구잡이로 일반 난민들을 징집하면서 세를 불렸고 정보국 추정 7만에서 10만에 달하는 병력을 산하에 두고 있었다.
이들은 어중이떠중이가 많기는 했지만, 어중이떠중이에 머저리들이라도 소총 방아쇠는 당길 수 있다. 말이 최소 7만이지 현재 한국군 완편 기준으로 3개 사단급이었다.
육군이 대규모 전임 인공지능과 로봇의 도입으로 인원 감축이 이뤄진 걸 생각하면 순수 인간만으로 7만의 병력은 상대하기 쉬운 숫자는 아니다.
괜히 방벽에 주둔했던 육군 2개 사단이 녹아내리고 부천으로 패퇴한 게 아니었다.
반면 쎄잉꺼는 전력면에서 굉장히 열세였다.
성망개발공사 등이 주축이었고 반쯤은 폭력조직에서 일반회사로 탈바꿈했다.
조직원들도 성망개발공사 계열사의 PMC 자격으로 고용하고 인사관리까지 할 정도였다. 때문에 성망개발공사의 사원들 중 몇 명이 조직원인지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었다.
각종 비서나 영업사원 등 공사 회사원들까지 조직원으로 전부 쳐준다고 하더라도 숫자는 끽해야 8천여 명으로 한참 모자랐다.
그러나 쎄잉꺼의 특수부대 격인 사다우카의 전력만으로도 웡꺼와 호각세였다.
웡꺼의 부하들과 웡꺼 본인은 이 하얀 우주장갑복 녀석들만 봐도 경기를 일으킬 정도였다.
놈들은 웡꺼와의 항쟁에서 하얀 우주장갑복을 입고 진동 블레이드 등 냉병기로 웡꺼 패거리를 도살하며 사다우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피의 3일.
아직 사다우카라는 이명을 얻기 전 쎄잉꺼의 특수부대는 웡꺼의 본거지를 급습해 웡꺼를 거의 죽기 직전까지 몰아세웠다.
전원 무중력 전투 경험자들인 이들은 와이어 모듈을 이용해 천장에 매달리거나 보병용 엑소슈트를 이용해 벽을 달리는 등 기상천외한 공간 감각을 활용한 전투 방식으로 웡꺼로 가는 길을 열었다.
벽을 달리면서 도끼나 장검으로 사람을 도살하는 놈들을 무슨 수로 막는단 말인가?
게다가 냉병기에 찢긴 시체들은 웡꺼 놈들의 사기를 마구 떨어뜨렸다.
사다우카는 일부러 웡꺼 놈들을 치명상만 입혔을 뿐 신음과 비명을 토하게 그냥 내버려 뒀다.
웡꺼 놈들은 고통에 겨워 비명을 내질렀고 사다우카는 그 비명 소리를 음악 삼아 피의 춤을 췄다.
놈들의 하얀 우주장갑복이 붉게 물들고 놈들이 들고 있는 냉병기에는 검붉은 살점이 달라붙는다.
쎄잉꺼는 그 자리에 있었다.
당시 그는 매듭단추로 여미는 중국 전통복장 ‘당장(唐裝)’에 까만 바지를 입고 있었고 그 하얀 당장에 피 한 방울, 살점 하나 튀지 않았다.
선글라스를 쓴 쎄잉꺼는 접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훗날 사다우카로 불리는 특수부대 놈들이 웡꺼 놈들을 도살하는 걸 지켜봤다.
사다우카는 웡꺼의 정예부대 웡롱의 방어선까지 뚫고 웡꺼는 수염에 불이 붙는 추태까지 보이면서 뒷골목 쓰레기더미로 몸을 던지며 도망쳤다.
그때 웡꺼가 사다우카 손에 죽었다면 쎄잉꺼가 난민조직을 통일했을 것이고 롱꺼가 월미도 난민조직의 정점에 서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웡꺼가 간신히 도망치고 쎄잉꺼가 난민지구의 통일을 앞에 두고 의기양양했을 때 한 사건이 터졌다.
훗날 롱꺼로 부르게 되는 남자가 홀연히 나타나서 쎄잉꺼의 귀 일부분을 잘라갔다. 귀를 자른 건 네 목 따윈 언제든 칠 수 있다는 무언의 경고였다.
롱꺼가 나타났을 때는 분명 사다우카가 쎄잉꺼의 주변을 철통같이 경호했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무슨 그림자 속에서 나타난 것처럼 별안간에 모습을 드러내서 쎄잉꺼를 위협했다.
웡꺼도 마찬가지로 롱꺼 한 명에게 습격을 받았다.
그는 쓰레기더미에 몸을 던져 도망친 후 항구에서 다시 조직원들을 끌어모아 재기하려고 했다.
웡꺼 산하의 모든 조직원들이 집결한 그곳에 롱꺼가 나타났다. 웡꺼가 자리 잡은 곳은 캐논볼 레이스에서 체크포인트가 설치된 바로 그 등대였다.
당시에는 섬이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롱꺼가 그곳에 나타났는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그때 롱꺼는 중국식 식칼로 웡꺼의 새끼손가락 하나를 가져갔다. 롱꺼는 전쟁에서 목을 다쳤고 비명 대신 그릉그릉하는 비참한 소리를 냈다.
소문은 쉽게 퍼졌다.
두 명의 대보스가 각각 뜬금없이 목이 날아갈 뻔했다는 소식이 퍼져나가며 두 대보스는 체면이 깎였다.
그런 사건이 있은 직후, 롱꺼 조직의 눈부신 약진이 시작되었다.
롱꺼의 조직은 상대적으로 이후에 만들어졌음에도 협(俠)의 정신을 강조하며 난민사회에 깊게 뿌리내렸다.
폭력적인 웡꺼나 사업에만 관심 있는 쎄잉꺼와 달리 롱꺼의 조직은 난민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난민들에게는 보호비도 따로 받지 않았다.
롱꺼의 뜻에 감화된 웡꺼나 쎄잉꺼의 산하 단체들이 롱꺼의 밑으로 대거 들어오면서 세를 불리게 되었다.
롱꺼는 모택동의 삼대기율, 팔항주의를 고대로 표절해서 엄하게 조직원을 단속했다.
모든 행동은 지휘에 따른다. (一切行動廳指揮)
모든 동포들의 바늘 하나 실오라기 하나도 취하지 않는다. (唔拿同胞一針一線)
모든 것은 공동 분배한다. (一切收穫要歸共)
말할 때는 온화하게 한다. (講話和氣)
매매는 공평하게 한다. (賣買公平)
빌려온 것은 반드시 되돌려 준다. (借東西要還)
손해를 입혔을 경우 반드시 배상한다. (損壞東西要賠)
구타나 욕설을 하지 않는다. (唔打人嗎人)
상인들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다. (唔損壞商家)
부녀자를 희롱하지 않는다. (唔調戲婦女)
동포를 학대하지 않는다. (唔虐待同胞)
상인들에게 지나치게 갈취도 하지 않고 혼란스러운 난민지구의 치안을 유지하기 시작하면서 롱꺼는 점점 더 인기를 얻을 수밖에 없었다.
난민들은 중국공산당이 싫어서 저항했지만 어이없게도 공산당이 인기를 끌은 방식을 그대로 써먹으며 롱꺼는 인기를 끌었다.
웡꺼와의 회담에서 이세화는 ‘과연 투표를 하면 난민들이 조직을 지지할까?’라고 했지만 이는 난민사회에서 롱꺼의 위상을 모르고 한 말이었다.
롱꺼는 무력으로 웡꺼, 쎄잉꺼를 제압하고 현재의 월미도를 만들어낸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대부분의 난민들은 웡꺼나 쎄잉꺼는 싫어해도 롱꺼는 좋아했다.
그러나 롱꺼는 3대기율 8항주의 덕분에 인기를 얻었지만, 그 덕에 딱히 돈벌이가 될만한 사업을 하진 못했다.
롱꺼에게 최종적으로 굴복한 후 웡꺼가 무기밀매와 인신매매, 쎄잉꺼가 링로드를 통한 중개무역으로 크게 성장한 것과는 전혀 달랐다.
롱꺼 조직은 딱히 사업에 참여하지 않고 각 조직에게 얼마간의 상납금을 받아서 조직원에게 수당을 주며 운영하고 있었다.
점점 롱꺼 조직이 양복을 입고 각 조직을 관리하는 총무과처럼 변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유리창이 전부 깨져나간 웡꺼의 사무실에 롱꺼의 붉은 용 완장을 한 사람이 소파에 앉아있었다. 그의 옆에는 청소 로봇이 윙윙 소리를 내며 주변을 청소하고 웡꺼의 조직원들도 방 청소를 도왔다.
롱꺼의 완장을 한 사람은 롱꺼 조직의 2인자랄 수 있는 탁일항(卓一恒)이었다.
그는 말쑥한 수트나 안경을 낀 겉모습만 보면 조폭이라기보다는 어디 회사의 중역 같아보였다. 이제 나이도 40대 초반인 탁일항은 조직들 사이에서 꽤나 관록이 쌓인 존재였다.
그의 앞을 지나가는 몇몇 웡꺼 조직원들이 그를 알아보고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는 안경을 닦으며 난장판이 된 소드타워와 그걸 정리하는 조직원을 노려봤다.
이윽고 웡꺼의 로봇 비서가 나와서 그에게 말했다.
– 들어오시랍니다.
탁일항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웡꺼의 집무실은 폭탄의 직격을 받았다. 마치 공사 현장처럼 안의 내장재가 폭발에 무너지거나 날아가고 텅 빈 콘크리트 공간에 책상을 가져다 놓고 컴퓨터를 그 위에 올려놓았다.
탁일항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포권의 예를 취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무엇보다 웡꺼께서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웡꺼 역시 포권의 예로 인사를 받아줬다.
– 어제 다행히 여자 집에서 술을 마시느라 화를 피할 수 있었지. 운이 좋았어.
탁일항은 선물 겸 인사치레로 가져온 과일바구니와 술 한 병을 올려놓았다. 밀주가 아니라 전쟁 전에 담근 몇 안 되는 진짜 공부가주였다.
웡꺼는 항아리를 들고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씩 웃었다.
– 그래 롱꺼께서는 괜찮으신가? 혹시나 그쪽에도 폭탄 테러가 터지지는 않았나?
“어르신께서는 괜찮으십니다.”
– 그나저나 그러고 다니시면 좀 위험하지 않나? 그 ‘소일거리’는 그만두라고 전하는 게 좋을 거야.
“하하, 형님 말도 안 듣는데 저 같은 놈의 말인들 듣겠습니까?”
– 하하하, 그건 그렇군.
웡꺼는 탁일항에게 앉으라는 시늉을 하지 않았고 탁일항도 굳이 쇼파에 앉지 않았다.
웡꺼 앞에서는 누구도 앉을 수 없다.
지금 그 말을 한 덩치는 어제 저격에 처맞고 죽었지만, 그 규칙은 여전했다.
탁일항의 서열은 조직에서 꽤 높은 편이었지만 아직 체잉꺼나 잠꺼 같은 보스급은 아니었다. 심지어 그런 군소 보스들조차 웡꺼 앞에서는 감히 앉을 수 없었다.
“아무튼 어르신께서 웡꺼께서 무사한 걸 보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별고는 없으시죠?”
– 왜? 내가 무슨 일이라도 터졌으면 좋겠나?
“아뇨, 웡꺼, 잠시 가까이 다가가서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주변에는 웡꺼의 호위 병력이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자신들의 주인과 롱꺼 측 대리인의 회담이긴 했지만 웡롱 놈들은 전혀 방심 따윈 하지 않았다.
웡꺼는 중장기병 엑소슈트에게 손짓을 해서 괜찮다는 시늉을 하고 검지손가락을 까딱거려 탁일항더러 가까이 다가오라는 시늉을 했다.
탁일항은 약 1미터 옆에서 차려자세로 팔을 붙이고 허리를 숙였다. 굉장히 어색한 행동이었지만 암살할 의도가 없다는 걸 드러내려면 어쩔 수 없었다.
– 탁일항, 네가 무슨 말을 할지는 알고 있어. 형님께서 화(和)를 말씀하셨겠지. 쎄잉, 그놈에게 보복하지 말라고. 흥, 또 그 구닥다리 나뭇가지 세 자루도 말씀하시던가?
탁일항은 허리를 숙인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롱꺼 조직의 2인자인 탁일항이 급히 웡꺼에게 온 이유가 따로 있을 리 없었다.
“아직 증거가 없지 않습니까?”
– 하지만 그놈이 아니면 누가 이곳에서 그런 폭탄을 터뜨리겠어? 이미 나도 다 조사해봤다고. 링로드라면 각종 물자를 나 모르게 들여올 수 있으니까.
“저도 조사를 했습니다만. 이번에 쓰인 폭탄은 일반적인 플렉스 폭탄이 아닙니다.”
– 뭐? 플렉스 폭탄이 아니라고?
웡꺼는 경찰이 아니었고 감식 로봇이 있을 턱이 없었다.
그들은 그저 여래신장을 처맞은 듯한 폭파 흔적을 보고 막연히 군용 고성능 플라스틱 폭탄 플렉스가 터진 줄 착각했다.
“예, 질산암모늄 화합물 흔적과 기름이 탄 흔적이 폭심지에서 발견되었습니다.”
– 질산 뭐? 알아들을 수 있게 이야기해봐.
“비료의 재료입니다. 기름도 아직 항만에 남아있고요. 전부 이곳 인천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쎄잉꺼가 웡꺼를 해치려고 했다면 이런 번거로운 방법은 쓰지 않았겠지요. 플렉스나 아니면 흔적이 남지 않는 충격폭탄, 혹은 빵즈 놈들의 폭탄 흉내를 냈겠지요. 아니면 그 사다우카를 투입하거나.”
웡꺼의 표정이 변했다.
– 그 폭탄, 확실한 건가?
“예, 정리한 문서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웡꺼는 책상의 술병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설마 롱꺼 형님이 우리를 중재시키기 위해 꾸민 조작은 아니겠지? 네 말이 맞는지 나도 따로 알아볼 거야.
탁일항은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몇 발자국 더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