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258
제258화
배덕환의 명령으로 웡꺼의 개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놈들은 ‘소드타워 공격팀’의 흔적을 쫓아 사방을 들쑤셨다.
제일 먼저 털린 곳은 비료공장이었다.
비료공장을 관리하던 놈들 전부가 끌려 나와서 배덕환에게 빠따를 맞았다.
수상한 놈들을 못 봤냐고 다그쳐 물었지만, 놈들은 마약과 술에 취해 대충 근무를 서느라 시체가 실린 트럭이 들어오는 것조차 생각해내지 못했다.
마침 공장에는 출입 관리용 인공지능이 있었지만 뒤늦게 확인해 보니 인공지능은 다운되어 있었다.
어차피 비료공장에 올 놈들은 없었고 차가 지나갈 때마다 삑삑 스캐닝하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아예 꺼버린 것이었다.
정유 공장은 그래도 근무를 제대로 섰지만, 놈들은 차에 탄 사람들을 일일이 기억하지 못했다.
점령된 인천에서 사람들은 완장의 색으로 구분하지, 얼굴을 일일이 기억하지 않는다.
같은 중대에 소속된 사람도 얼굴을 모르는 판에 다른 중대나 다른 조직 사람들을 기억할 리 없었다.
“빌어먹을! 뭐 이렇게 많아!”
정유공장의 감시체계는 멀쩡했지만 드나드는 차량이 너무 많아서 문제였다.
정유공장에는 기름이 제법 많았고 테크니컬 차량들은 거의 다 기름차라 공장에서 기름을 넣는다. 게다가 테크니컬 트럭은 번호판도 없었고 모양이 다 엇비슷하게 생겨서 그놈이 그놈 같았다.
트럭에 탄 놈들도 한국 군경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반다나나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거나 요란한 복장을 해서 누가 누군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배덕환은 감시 카메라 화면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며 때려치웠다.
조금만 머리를 굴린다면 의심차량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었지만, 배덕환에게 그런 일머리는 없었다.
아무나 경찰을 하는 게 아니었다. 이들은 깡패지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은 형사가 아니었고 범인을 찾아내는 건 배덕환의 능력 밖이었다.
“어쩔 수 없지. 증거를 만들어내는 수밖에.”
배덕환은 웡꺼가 한 말을 아무렇게나 내뱉었다.
이 역시 문제였다. 웡꺼 놈들은 보안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모르고 있었다.
배덕환과 웡롱이 벌떼처럼 정유공장에서 빠져나가고 공장의 책임자였던 위병조장이 야구모자를 바닥에 내팽개치고 화를 냈다.
“개새끼! 지가 웡롱 대장이면 단가! 시팔! 뭘 봐! 구경났어! 일이나 하라고!”
애먼 사람들에게 화풀이였다.
놈이 괜히 주변의 아사히 맥주 깡통을 발로 걷어찼고 근처에 있던 사람의 발치에 캔이 부딪쳐 맥주 거품이 위로 팍 치솟아 올랐다.
안경을 낀 사람은 맥주 거품이 셔츠에 튀겼지만 사과할 리 없었다.
조장 놈은 괜히 안경 쓴 놈을 노려보다가 사무실 바깥으로 나갔다.
안경 낀 사람은 안경을 고쳐 쓰고 배덕환이 앉아있던 컴퓨터 콘솔 앞에 앉았다.
마침 조장도 바깥에 나갔고 그가 콘솔 앞에 앉아있어도 뭐랄 사람은 없었다. 놈은 웡꺼의 완장을 끼고 있었고 경비조원들도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주의를 끌면 들킨다.
그는 주변 눈치를 살피며 아까 그 보안 감시 카메라 화면을 돌려봤다.
“븅신 같은 놈들. 눈앞에 두고도 모르는군.”
안경을 쓴 사람은 진가구였다.
그는 ‘아웃소싱 언더커버’중 경찰학교에서 최고점을 받은 유망주였고 수사와 증거수집 방법을 교육받은 ‘경찰’이었다.
그는 아까 배덕환이 대충 넘어간 사진 중에서 한 장의 사진에서 손이 멈췄다. 이미 배덕환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한 말에 모든 단서들이 있었다.
누군가가 비료공장을 먼저 털었다.
그리고 바로 이곳 정유공장에도 왔다.
건물에 여래신장 같은 구멍을 만들 정도라면 질산암모늄의 양도 어마어마할 테고 트럭이 제동하는 모습과 타이어만 보면 범인은 금방 잡을 수 있다.
정유공장에 기름을 받으러 오는 차들은 적재함에 무거운 물건이 실려 있을 리 없었다.
진가구는 처음부터 감시 카메라 화면에서 부자연스럽게 제동하는 차량을 발견했다.
그리고 아무도 발견 못 한 또 하나의 ‘증거’가 있었다.
진가구는 날카롭게 차량의 어딘가를 확인하고 바로 이 차량이 소드타워 폭파에 쓰인 차량이라는 걸 알아냈다.
“어디 누군지 한 번 얼굴이나 볼까?”
그는 눈치를 살피면서 마스크를 쓴 사람을 노려봤다.
어딘지 눈매가 낯이 익었다.
진가구는 마스크 위에 손을 올렸다 내렸다 하다가 갑자기 흡하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운전석에 있는 사람은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이진영 팀장? 왜 이 사람이 여기 있는 거지?’
진가구는 눈을 가늘게 떴다.
‘소드타워를 폭파한 사람이 그 사람이라고?’
진가구는 일련의 사태가 어떤 거대한 작전의 일부임을 바로 꿰뚫어 봤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슬쩍 사진을 프린터로 인쇄했다.
x4 광기의 폭탄마. 업적달성(?)
“뭐야 이건? 누가 멋대로 프린트하래?”
진가구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위병조장이 다시 들어오면서 프린터에서 뽑히는 종이를 홱 나꿔챘다. 차량과 운전자의 사진을 인쇄하는 건 아무리 바보라도 이상하다는 걸 눈치챌 것이다.
“뭐야 너. 이런 거 보냐?”
“아, 그…….”
“븅신, 너 게이냐?”
운이 좋았다.
누군가 먼저 프린터에 인쇄 명령을 내렸고 게이 포르노의 표지사진이 먼저 인쇄되었다.
“아, 제 거 아니에요.”
“븅신, 퍽도 아니겠다. 근데 너 여기 근무조였나?”
“아뇨? 저는 그…… 배덕환 대장 부하입니다. 저더러 계속 이거 보라고 말씀하셔서요.”
위병조장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진가구를 훑었다.
그는 어제 한국 여자를 구해낼 때 입었던 평상복차림이었고 야구 배트를 들고 있는 것도 똑같았다.
웡롱은 유니폼만으로 구분된다.
비용 문제 때문에 잡스러운 부대까지 유니폼을 전부 맞출 수는 없었고 웡롱만이 제대로 된 군복과 군용 방탄복, 체스트리그 등 정규군 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저는 행정직원입니다. 컴퓨터 다루는 거요.”
진가구는 웡롱 조직원을 죽이고 빼앗은 요란하게 오바로크 된 완장을 들어 보였다.
각종 계급장이나 소속이 오바로크 된 완장은 롱꺼 점령지구에서 신분증으로 통했다.
“그럼 네 대대장하고 중대장은 누구지?”
여전히 위병조장은 의심스럽다는 듯 물었다. 가끔 완장만으로 조직원 행세를 하는 놈들도 있어서 방심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2년 넘게 잠입경찰 노릇을 했던 진가구에게 이딴 시험쯤 아무것도 아니었다.
진가구는 바로 직속상관의 이름을 다다다 댔고 위병조장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이미 그는 완장을 빼앗기 전에 완장의 주인에게 필요한 정보들을 알아낸 상태였다.
웡롱 부대원이 있는데 대장인 배덕환의 뒷담화를 했으니 두려울 만도 했다.
“그, 아무튼 주세요.”
진가구는 냅다 위병조장의 손에서 게이 포르노 사진을 빼앗고 프린터의 이진영 사진을 포개서 둘둘 말았다. 잠시 얼떨떨해진 위병조장은 ‘요놈 봐라’하는 투로 씩 웃었다.
“이해해. 뭐 남자가 남자 좋아할 수도 있는 거지.”
“아, 제 거 아니라니까요.”
진가구는 아닌 척 너스레를 떨면서 감시카메라의 이진영 화상 부분 앞뒤로 10여 분을 다운받고 아예 삭제 명령을 내렸다.
“대장님한테는 비밀입니다.”
위병조장은 대단한 꼬투리라도 잡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놈은 진가구의 비밀을 알아냈으니 진가구도 배덕환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을 거라 멋대로 생각했다.
진가구는 놈의 야릇한 시선을 등 뒤로 느끼면서 정유공장 바깥으로 나왔다.
공장에는 계속 기름을 받기 위해 차량이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공장설비는 롱꺼의 지시로 계속 돌아가고 있었고 호리코시나 하츠이치 상사 같은 일본계 기업들이 원유를 공급하고 있었다.
어차피 정유공장도 사람의 손이 아니라 로봇이나 인공지능의 손으로 돌아가니 버튼을 누르는 건 원숭이라도 할 수 있었다.
진가구는 웡롱의 완장을 빼고 골목길로 빠졌다.
어제 2인자와 소드타워가 동시에 공격당했으니 웡롱 부대원들이 곳곳에서 눈을 부라리며 검문 검색을 강화하고 있었다.
놈들에게 웡롱의 완장을 대면 놈들끼리는 좁은 인간관계라 바로 덜미가 잡힐 위험이 있다.
진가구는 허리 가방에 완장을 집어넣고 담배를 입에 물었다.
“웡꺼의 2인자가 뒈졌고 소드타워도 폭발했어. 그리고 이진영 팀장이 둘 중 하나에 관여했고. 아마 폭발 쪽이겠지.”
진가구는 힐끔 골목길 사이로 소드타워를 노려봤다. 아직도 붉은 용 걸개 그림은 복구되지 않았다.
“왜 소드타워를 친 거지?”
진가구는 혼란스럽긴 했다.
만약 받침돌을 하나둘 빼듯 2인자나 실력자부터 제거해서 피라미드를 무너뜨리는 작전으로 갔다면, 아마 진가구나 저 멍청한 배덕환이라도 금방 의도를 알아차렸을 것이다.
태스크포스13의 소드타워 공격은 현지에서 즉흥적으로 결정된 사안이었고 웡꺼의 본거지를 타격한 것이 의외의 효과를 가져왔다.
영리한 진가구조차도 이진영의 의도를 정확히 읽어낼 수 없었으니.
더군다나 이진영은 광역 특경이나 특수부대도 아니고 그냥 현장 경찰이라 진가구는 더더욱 혼란스러웠다.
“이진영 팀장이라. 웡꺼를 암살하려고 한 건가? 뭘 노리는지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이용할 수는 있겠어.”
진가구는 소드타워 폭파에 놀라서 원인을 찾기 위해 조사에 나섰다.
뜻밖에도 폭파 범인은 이진영이었고 어쩌면 이진영의 행보가 그에게도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 사람이 어쨌건, 뭘 노리건 난 나대로 움직이면 된다. 아무튼 이진영 팀장이 소드타워를 폭파하며 한 가지는 확실해졌어. 이놈들은 그리 오래가지 못할 거야.”
이진영이 보고 느꼈던 것처럼, 진가구 역시 놈들에게 점령된 인천 곳곳에서 징후들을 여럿 볼 수 있었다.
당장 정유공장만 해도 그랬다. 경찰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조사원만 몇 있었어도 놈들은 진가구가 했던 것처럼 금방 범인을 찾을 수 있었으리라.
“놈들은 그냥 폭력배에 범죄자 놈들이야. 이딴 놈들에게 난민들이 휘둘렸다는 게 어이가 없군.”
롱꺼 패거리는 모든 것이 주먹구구였고 인천이라는 거대도시를 점령하고도 뭐 제대로 돌아가는 게 하나도 없었다.
원래 인천시에 있었던 공공 로봇이 아니었다면 매일 배출되는 어마어마한 쓰레기를 처리하는 방법도 모른다.
원래 조직폭력단이 하는 짓이라곤 보호비 명목으로 선량한 시민들의 돈을 뜯거나 아니면 각종 이권 사업에 끼어들어 폭력을 행사하며 돈을 버는 것뿐이다.
“놈들은 기생충이야. 기생충처럼 보통 사람들의, 난민들의 피와 살을 빨아먹으면서 몸집을 불린 개자식들이지. 이놈들은 한 도시는커녕 한 동네도 다스릴 수 없어. 흥, 기생충에 불과한 놈들이 ‘협(俠)’을 운운한다니 그것도 웃기는 거지.”
진가구는 신랄하게 롱꺼 조직에 대해 평했다.
롱꺼는 특이하게도 공평함과 ‘협’ 정신을 바탕으로 모든 조직들을 찍어눌렀다.
협이라는 건 난민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일종의 독특한 민족정신이었고 딱히 선악을 가리지 않았다.
협은 선악과도 무관하고 의리라는 말과도 거리가 있었다. 러시아 마피아의 남자다움을 강조하는 부분과도 비슷하긴 했지만 좀 달랐다.
오히려 조로나 홍길동처럼 의적(義賊)이라는 개념과 통하는 데가 많았다.
롱꺼가 새로 정한 3대기율도 따지고 보면 동포끼리만 적용되는 ‘침묵의 서약-오메르타’였다.
핍박받는 동포를 돕는 의적이라면서 롱꺼는 조직원들의 정신을 고양시켰다.
그러나 중세시대 기사도나 일본 에도시대의 무사도가 그러했듯 현실은 언제나 시궁창이었다.
아무리 협이니 뭐니해도 놈들의 실체는 진가구의 말대로 난민 전체에 기대 그들의 골수를 빨아먹는 기생충이었다.
문제는 그 기생충이 난민 전체를 대표하고 어이없게도 인천을 집어삼켰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