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259
제259화
롱꺼 조직은 아미타여래의 힘으로 잘도 인천을 점령했지만, 현 상황을 오래 유지할 능력은 없었다.
기생충이 먹기에 인천은 너무나 큰 도시였고 놈들의 조직은 도시를 다스리기엔 형편없었다.
폭력만을 일삼던 놈들 보고 갑자기 통치를 하라는 판이니, 잘 돌아가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어찌 되었든 난 나대로 움직이면 돼.”
목적은 같다?
진가구는 피 묻은 야구 배트를 어깨에 걸치고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그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 * *
저녁이 되자 정보국의 안전가옥에서 2개의 정찰조가 빠져나왔다.
소드타워 폭파의 결과를 확인하고 다음 시나리오를 실행하기 위해 정보가 필요했고 이들은 쎄잉꺼와 웡꺼의 영역으로 파견되어 놈들의 움직임을 감시했다.
첫 정찰조가 되돌아왔을 때 깜짝 놀랄만한 소식을 가지고 왔다.
“쎄잉꺼의 성망개발공사 링로드 담당 부장이 죽었습니다. 놈들이 근처에 벌떼처럼 달려드느라 간신히 빠져나왔습니다.”
정찰조 조장이 사진을 모니터에 띄우며 자세한 상황을 브리핑했다.
이번에 죽은 부장은 우주개발과 링로드 밀수에 깊이 관여하고 있던 회사원이지만 그 실체는 쎄잉꺼가 신임하는 부하였다.
감미영은 화이트보드의 피라미드에서 죽은 부장의 사진에 가위표를 했다. 죽은 놈은 신희정의 시나리오에도 올라가 있었고 제거목표이기도 했다.
“어떻게 죽은 거죠?”
“통역기로 알아낸 결과는 화장실에서 목이 졸려 죽었다고 합니다.”
“자살인가요? 타살인가요?”
“모르겠습니다. 더 가까이 접근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진영은 정찰조가 녹음해 온 현장의 소리를 가만히 듣다가 화이트보드로 다가왔다.
광동어 실력도 이진영이 태스크포스 13에 뽑히는 데 한몫했다.
“변기 칸에서 목을 매달았답니다. 살해가 아니라 자살이라는 이야기도 들리는군요.”
“팀장님 우연일까요?”
이진영은 감미영 팀장을 힐끔 쳐다봤다.
EV-1이 있었다면 ‘우연은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치고 들어올 타이밍이었다.
“우연이 아닌 것 같습니다.”
마침 김대현이 이야기에 끼어들었고 이진영은 김대현쪽으로 빙글 몸을 돌렸다.
“왜지?”
“그냥요. 하필 목표에 있는 중역이 죽었다는 게 이상하잖아요. 게다가 쎄잉꺼 입장에서는 딱 웡꺼가 보복했다고 생각하기 좋잖아요? 전날에는 소드타워에 웡꺼의 2인자가 날아갔으니 동기도 딱 있고요.”
“이그젝틀리, 냥식아.”
“냥식이는 또 뭐예요?”
“그냥 들어, 냥식아.”
이진영은 김대현을 EV-1의 대용품으로 써먹을 모양이었다.
“우리랑 같은 목적을 가진 놈이 있다면 어떨까? 그놈들이 멋대로 움직이고 있는 거라면? 냥식아 네 말대로 딱 우리 가려운 곳을 긁어줬잖아.”
양 측의 2인자 격인 사람들이 이유야 어찌 되었든 죽었으니 웡꺼, 쎄잉꺼 사이의 감정이 훨씬 더 나빠졌을 것이다.
이제 태스크포스 13이 적당한 표적을 더 공격하면 언제 양측 병력이 충돌할지 모른다.
“태스크포스 13이랑 같은 목적이면 롱꺼 조직의 붕괴요? 아, 다른 기관이 또 잠입한 걸까요? 육공이라던가? 아니면 해군 쪽 씰 팀이라던가.”
“아니, 바보야. 정보국이 바보도 아니고 괜히 오인사격이 발생할 수도 있는데 별도의 조직을 이곳에 들여보냈을 리는 없잖아.”
옆에서 듣고 있던 감미영 팀장이 웃으며 말했다.
“인천 함락도 못 막은 바보천치 회사라서 일단 죄송하군요. 하지만 저희 회사 쪽에서 태스크포스 13 외에 다른 팀을 잠입시키지는 않았습니다. 그럴 여력도 없고요.”
이진영은 거보란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흥미가 생겼는지 유인환이 끼어들었다.
“팀장님 그럼 뭐죠? 같은 목적을 가진 집단이란 게.”
이진영은 진가구 이야기를 해야 할지 망설였다.
쎄잉꺼의 부장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진영이 제일 먼저 떠올린 건 바로 진가구였다.
진가구는 체잉꺼의 조직원이기도 했고 체잉꺼는 원래 쎄잉꺼의 부대원이라 성망개발공사를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아직까지는 근거가 빈약한 막연한 상상에 불과했기에 그 이상은 말할 수 없었다.
“글쎄다. 그런 게 있을 수도 있다는 거지. 마침, 그 사람, 아니 그 세력이 우리랑 같은 뜻으로 움직인다면 말이지. 롱꺼 세력의 붕괴 말이야.”
감미영은 현장 경험이 많은 사람이었고 이진영이 순간 말을 바꾸는 걸 놓치지 않았다.
“그 사람? 팀장님. 뭔가 알고 있는 게 있으면 정보 공유하시죠.”
“그게, 지금 단계에서는 제 생각이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직 이렇다 할 증거가 없어서.”
진가구는 심 부장 살해혐의를 받는 것도 그렇고, 아직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가 좀 있었다.
이진영은 진가구가 ‘살수’로서 조직에게 어떤 식으로 버림받았는지 또한 그의 아내 한하린이 어떻게 비참하게 죽었는지 전혀 모른다.
조직에 대한 ‘원한’ 부분을 이진영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 고리가 없으니 이진영도 진가구가 정말로 쎄잉꺼의 부하를 쳤는지 확신할 수는 없었다.
감미영은 날카로운 눈으로 이진영을 바라만 봤다. 그녀의 상사인 신희정은 이진영의 ‘형사로서의 감’을 주의 깊게 지켜보라고 그녀에게 말했었다.
이진영은 특단사건부터 수많은 사건들을 형사의 감만으로 사건의 본질을 직감적으로 꿰뚫어 봤다.
태스크포스 13이 작전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난민들 사이에서 갈고닦은 이진영의 현장경험과 그 감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정찰팀도 되돌아왔다.
이들은 웡꺼의 영역에 파견되었고 웡꺼가 병력을 늘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인천 구월동 북부를 경계로 서서히 전선이 형성되고 있었다.
웡꺼의 정예부대 웡롱이 곳곳을 들쑤시면서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관광객들이 놀란 눈으로 테크니컬트럭에 탄 웡꺼 부대가 부산하게 움직이는 걸 바라봤다.
이진영은 웡꺼 놈들이 침 맞은 지네처럼 발광하는 모습을 보며 말했다.
“한 수를 벌었네요. 마치 나 대신 장기말을 한 번 더 놓아주는 놈이 있는 것 같군요.”
“그러게요.”
감미영은 시나리오를 정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은신처에서 대기했던 김대현이 좀이 쑤셨는지 물었다.
“다음 수는 뭡니까?”
“당분간은 놈들의 동향을 체크하고 기다리는 거죠. 후후, 사실 저격수도 그렇고 정보국 일은 기다리는 게 대부분이거든요. 경찰도 그렇지 않던가요?”
김대현은 한숨을 쉬었다.
경찰 역시 범인이 잡힐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려야 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 * *
지루한 안전가옥 안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위에서는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웡꺼는 5분대기를 걸었고 곳곳에 무장병력이 모래주머니로 방어선을 만들더니 탄약까지 분배되고 있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웡꺼에게 선전용으로 방송 허가를 받은 방송국들이 이 광경을 보도하며 정보국이나 대책본부에서도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며칠간은 태스크포스 13이나 대책본부에서 목 빠지게 기다리는 사태는 좀처럼 벌어지지 않았다.
웡꺼 놈들은 그저 트럭에 타고 빙글빙글 자기 영역을 돌면서 요란하게 왔다 갔다 할 뿐이었고, 성망개발공사도 내부적으로야 어떻든 외부적으로는 그냥 수출입업무를 계속하고 있었다.
아직 밥은 다 지어지지 않았다.
페어차일드.
최종적으로 개발을 담당하는 건 페어차일드 개발이 될 것이다. 조폭이 아무리 유능해봤자 국가 단위의 개발사업에 무작정 뛰어들 수는 없었다.
웡꺼니 쎄잉꺼니 하는 놈들은 진가구가 말한 대로 기생충에 불과했다. 그들은 단지 링로드 주변지역 개발을 양분을 쭉쭉 빨아먹으려 하는 것뿐이었다.
누구에게 왕관을 씌워줄지는 페어차일드에게 달려 있었다.
그러나 페어차일드의 움직임도 아직 시원치 않았다.
금방이라도 한국으로 넘어와 롱꺼 패거리와 협상을 진행을 진행하나 싶었더니 궤도 스테이션의 보수공사로 인해 미뤄지고 있었다.
롱꺼 패거리에겐 이보다 더한 악재는 없었다.
중동계 러다이트 테러리스트들이 3차 봉기 직전 궤도 스테이션을 공격했다. 그 피해는 생각보다 심각했고 화성으로 가는 정기 연락선이 끊길 정도였다.
당장 화성 시험 개발 식민지는 자립이 불가능했고 연락선에 실려 오는 식량 등 보급물자가 절실했다.
또한 궤도 엘리베이터는 그 자체가 미국의 전략공격 무기였다.
궤도폭격. 말하자면 방사능이 전혀 남지 않는 핵폭탄.
궤도 엘리베이터를 가진 자만이 쓸 수 있는 신의 징벌이었다.
1980년대 엘리베이터가 없을 때 SDI 계획은 궤도권에 투사체를 올려놓는 막대한 비용 때문에 취소되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지금 궤도 스테이션 우주 관광은 70킬로그램 인간을 기준으로 약 5백만 원이면 가능하다.
이 비용은 각종 세제 혜택과 보조금으로 할인된 가격이긴 하지만 그게 없더라도 대략 1천만 원에서 2천만 원이면 70킬로그램의 물체를 궤도권에 올려놓을 수 있다는 뜻이다.
각종 군사병기 가격에 비교해보면 1, 2천만 원은 돈도 아니었다.
사리사 대전차 미사일 같은 경우는 1억 원을 호가했고, 각종 전투기용 정밀폭격 혹은 공대공 무장은 2억 원은 우스웠다.
2천만 원 가량에 70킬로그램짜리 탄자를 궤도에 올리면 궤도산정 비용을 따로 감안해도 그 위력은 일반 멍텅구리 폭탄이나 미사일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겨우 랜드쉽 하나 박살 내려고 사리사 대전차 미사일 여러 발 쓰느니 그 지역에 궤도폭격 탄자 다섯 개만 뿌려도 전차 대대 하나가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박살 날 수도 있다.
물론 궤도 돌입을 감안해야 하느라 궤도폭격도 무한정 지구 전역에 떨어뜨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비용과 뒤처리 면에서 재래식 병기를 압도적으로 초월했다.
방사능 오염도 없고 집단으로 투하하면 원자폭탄의 위력과 비슷한 꿈의 병기.
현재 여전히 최강국인 미국이 앞으로도 별일이 없다면, 우주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 후에도 계속 G1의 자리를 유지하리라는 전망이 가능한 것 역시 궤도 엘리베이터의 힘이었다.
결국 미국은 궤도폭격 수행 능력을 복구하기 위해서라도 궤도 스테이션의 수리가 절실했다.
미국 국회에서는 벌써 궤도 스테이션을 위한 추경예산이 통과되었고 컨소시엄 기업들은 다시 환호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페어차일드와 같은 거대 기업들이 겨우 링로드 구간에 불과한 월미도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궤도 스테이션은 무중력, 혹은 저중력이라는 작업 특성상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고 인간의 고용도 일시적이나마 많아진다.
당장 미국 내 러다이트 계열은 좋아라 날뛰면서 ‘로봇은 악마의 기계다’라는 피켓을 내던지고 일터로 달려갔다.
아랍계 러다이트 테러리스트가 던진 폭탄이 나비효과를 일으켜서 인천 월미도에서는 폭풍이 되었다.
이렇게 되고 나니 점점 애타는 입장이 된 건 롱꺼 패거리 측이었다.
페어차일드의 협상방문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었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웡꺼와 쎄잉꺼는 서로 감정의 골이 깊어져 갔다.
태스크포스 13은 잠입 3일차에 또 다른 쎄잉꺼의 주요 조직원을 저격했다.
놈은 돈을 관리하는 부장이었고 육군 특전단은 인천 북부의 쓰레기장에서 1백 미터 오물을 기어간 후 끝내 건물에서 나오는 회계책임자를 저격했다.
그 후 기다렸다는 것처럼 웡꺼의 대대장 또 한 명이 길거리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다.
죽은 놈은 웡롱 대장급은 아니어도 나름 웡꺼의 후계자로 대권을 노리고 있었다.
쎄잉꺼와 웡꺼 진영의 간부들이 번갈아 죽어 나가면서 보복에 대한 또 맞보복 상황이 그럴듯하게 연출되었다.
이진영의 가설이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