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260
제260화
누군가 태스크포스 13의 일을 도와주고 있었고 대대장급 인선까지는 정보국도 자세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누군가’는 웡꺼의 대대장이 당하면 그 대대원들이 길길이 날뛴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런 건 내부사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면 모를 정보였다.
“열차 위의 낯선 자. 상황이지. 근데 그 영화 결말이 좋지 못했거든.”
심봉근은 이진영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이진영은 눈만 껌뻑이는 심봉근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EV-1이었다면 알프레드 히치콕의 다른 영화들을 언급하며 이진영을 웃게 만들었을 것이다.
“팀장님, 저거 보십쇼. 뭔가 일 터질 것 같은디요?”
심봉근이 오징어를 질겅거리면서 쌍안경을 내밀었다.
이진영은 쌍안경으로 놈들의 완장번호를 확인하고 수첩에서 대대의 번호도 확인했다.
“그놈들이군. 어제 죽었다는 대대장 부하. 장례행렬인데 쎄잉꺼 쪽으로 가려는 모양이군.”
“하하, 저놈들 어깨 위의 천사한테 잔뜩 독이 오른 모양이네요. 누군지도 모르면서.”
심봉근은 영화 록키의 열혈팬이었고 의문의 조력자에게 록키에 나오는 ‘어깨 위의 천사’라는 별명을 붙였다.
“넌 아냐? 그 놈이 누군지?”
“모르죠오?”
심봉근은 의문의 조력자에 대해 전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윤숙희에 따르면 심봉근은 ‘유인원 넘버2’였다. 아무리 봐도 이 녀석은 직업을 잘못 선택했다. 경찰이 아니라 프로레슬러나 픽업아티스트를 택했으면 어쩌면 대성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지 간에 상황이 심상치 않은걸?”
이진영은 쌍안경을 내리고 육안으로 놈들의 움직임을 확인했다.
장례행렬에는 점점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고 있었고 곳곳에서 지전을 뿌리면서 거리가 혼란스러웠다.
“팀장님 비둘기 날릴까요?”
이진영은 진심으로 하는 소리냐는 표정으로 심봉근을 쳐다봤다.
비둘기는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었다.
태스크포스 13은 작전지역으로 들어온 후 단 한 번도 비상회선도 사용하지 않았다.
비상회선이라 좀 거창하게 들리지만 실은 그냥 비둘기였다. 마치 1차대전의 보병들처럼 긴급연락방식으로 암호문이 적힌 비둘기를 날려 보내는 계획이었다.
아미타여래 때문에 작전 지역에 들어온 팀은 원시시대로 퇴화한 것 같았다.
어차피 일일이 보고하고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태스크포스 13에게는 작전 선택에 있어서 무한정에 가까운 권한이 부여되었고 어떤 목표를 어떻게 공격하느냐 역시 각 팀원들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으로 결정되었다.
그 결과도 굳이 보고할 필요는 없었다. 정보국은 위성, 전선통제기 등 모든 정보자산을 활용하여 이 잡듯이 인천 상황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진영도 비둘기라도 날려서 상부에 보고를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상황이 점점 안 좋아지고 있었다.
대대원들은 죽은 대대장의 관을 어깨에 들쳐메고 전진하고 있었고 사람들이 점점 더 몰려들고 있었다.
“우리는 복수를 원합니다! 웡꺼! 누가 죽였는지 뻔히 보이는 데 이대로 참을 수는 없습니다. 쎄잉꺼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
“우리 대대장을 죽인 놈들에 대한 정당한 처벌을 요구합니다!”
탕! 탕! 탕!
관 옆에 선 놈들이 하늘로 화약총을 쏘면서 점점 더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페어차일드의 회담이 연기된 것도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것에 한몫했다. 롱꺼는 회담을 이유로 전 조직에게 강간 살해 등을 자제할 것을 명령했다.
조직원들은 그동안 빅파이를 기다리면서 욕구를 억눌렀다.
롱꺼의 직속 조직은 마치 경찰이라도 되는 것처럼 시가지 곳곳을 다니면서 시체를 수습하고 불안한 치안을 억누르려고 했다.
하지만 인내심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롱꺼가 세운다던 새로운 개발 회사의 설립도 지지부진했고 롱꺼 패거리 전체가 불안감을 느꼈다.
자신들도 인천이라는 큰 도시를 다스리기엔 부족하다는 걸 그들도 스스로 느끼기 시작했다.
전에는 오물 하나 없던 인천시청 앞이 지금은 누군가 똥을 싸놓지 않나 들개가 잘린 사람 손을 들고 돌아다니기도 했다.
로봇에게 관리되어 기묘할 정도로 깨끗했던 거리는 난민지구처럼 더럽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곳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신들의 역량을 알게 된 것이 더더욱 불안 요소로 다가왔다.
사람들은 내면의 불안이 커지면 애꿎은 사람에게 분을 풀게 된다. 그리고 웡꺼 놈들에게는 쎄잉꺼야말로 좋은 분출구였다.
불안은 금방 전염병처럼 퍼져나갔고 쌓이고 쌓인 불안은 폭발 일보직전이었다.
거기에 잠입 첫날 제거했던 2인자의 세력까지 슬금슬금 장례행렬에 몰려들었다. 2인자는 인신매매 사업으로 웡꺼 내부에 굉장한 인맥을 갖고 있었고 사실상 웡꺼의 후계자였다.
아직까지 웡꺼는 2인자가 왜 죽었는지 또 그를 누가 죽였는지 발표하지 않았다.
추종자들은 시체를 냉동고에 넣어놓고 웡꺼에게 무언의 항의를 했다.
웡꺼는 장례 인력을 보내서 융숭하게 조직의 장례로 장례를 치러주겠노라 했지만, 놈들은 범인이 잡힐 때까지 절대로 장례를 치르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범인?
놈들은 어깨위의 천사는 물론이고 인천시에서 태스크포스 13이 물밑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걸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놈들은 본능적으로 범인이 쎄잉꺼라고 멋대로 단정했다.
쎄잉꺼와 웡꺼는 금년 춘절 때부터 계속해서 앙금이 쌓여 있었고 일촉즉발로 언제든 조직 간의 항쟁이 터져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쎄잉꺼는 봉기 때 어디 있었는가!”
“피를 흘리지 않고 달콤한 열매만 따 먹으려는 쎄잉꺼를 쳐야 한다!”
장례행렬은 금방 시위행렬로 바뀌었다. 장례식을 계기로 여러 불만 세력들이 서서히 뭉치면서 과격화되기 시작했다.
맨 앞에는 죽은 대대장의 관이 앞장서고 있었고 테크니컬 트럭과 엑소슈트 몇 대가 그 뒤를 따르면서 경적을 빠아아앙 울렸다.
아마 페어차일드의 가독이 입국해서 롱꺼와 빨리 회담을 진행했다면 이들이 이토록 불안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방벽 너머로 웡꺼의 부대가 넘어오면서 승리한 것까지는 완벽했지만 그 뒤는 별 진전 없이 감감무소식이었다.
“우리는 봉기에서 흘린 우리 형제의 지분을 원한다!”
“그래! 죽은 사람의 유족에게 더 많은 지분이 돌아가야 한다! 쎄잉꺼는 어디에 있었는가!”
쎄잉꺼삔떠(星哥邊度) 꽁쎄잉야우뢔이(攻星有理).
쎄잉꺼는 어디 있었는가? 쎄잉꺼를 치는 건 이유가 있다.
어느새 웡꺼 놈들은 일정한 리듬으로 발을 구르거나 박수를 치며 4, 4구로 된 시위 구호를 외쳤다.
쿵쿵쿵쿵 쿵쿵.
이유 따윈 아무래도 좋다. 이들은 그저 화풀이 상대가 필요했고, 개발이 진척되지 않는 것을 쎄잉꺼의 탓으로 돌리고 싶을 뿐이다.
사실 쎄잉꺼 입장에서도 할 말은 많았다.
그가 성망개발공사를 세우고 깡패로서의 색채를 희석하려고 한 것은 그 나름의 방식으로 난민지구 개발과 궤도 엘리베이터 접근권에 다다르려는 노력이었다.
딱히 봉기 따윈 하지 않아도 쎄잉꺼는 자신의 수완만으로 궤도 엘리베이터나 난민지구 개발에 다다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일단 봉기까지는 좋았지만, 그 뒤에 일이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며 쎄잉꺼도 조직원들도 슬슬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암살로 죽은 사람은 웡꺼의 부하들뿐만이 아니었다. 며칠 새 회사의 중역이 두 사람이나 죽으면서 쎄잉꺼 놈들도 잔뜩 격앙되어 있었다.
“우리 사장님이 뭐가 어쨌다고 감히 그분의 존함을 씨부리는 거냐!”
“너희 놈들이 우리 회사 간부를 쏜 거잖아! 왜 우리한테 떠넘기는 건데!”
“어! 이 새끼들 숫자만 믿고 한번 해보자는 거냐!”
쎄잉꺼의 조직원들이 포장마차에서 의자를 집어 던지면서 장례행렬 앞을 막아섰다.
그러나 쎄잉꺼의 조직 자체는 숫자가 웡꺼보다는 열세였다. 웡꺼 놈들은 노란 완장에 노란 깃발을 휘날리며 쎄잉꺼의 조직원들 쪽으로 다가간다.
포장마차에서 기세 좋게 나온 것까지는 좋았지만 쎄잉꺼 놈들은 웡꺼의 장례행렬이 생각보다 많은 걸 보고 주춤주춤 물러서다 냅다 북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진영은 쌍안경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다 동물의 왕국 성우 흉내를 냈다.
“도망치기 시작하면 쫓는 게 육식동물의 심리죠.”
11명의 쎄잉꺼 조직원들이 도망치자 기다렸다는 것처럼 웡꺼 놈들이 달렸다.
“저 새끼들 잡아아아!”
“전부 잡아 와!”
행렬 뒤편에 있덕 트럭들이 부아아앙 엔진소리를 내며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한다.
여기서 쎄잉꺼의 영역까지는 10킬로미터도 넘는 거리였다..
이진영은 저격 총으로 놈들을 쏘려다가 관뒀다. 그들은 지금 중심가의 옥상 위에 올라와 있었고 여기서 총을 함부로 쐈다간 아미타여래에게 들킬 것이다.
안 그래도 어제 정찰 나간 조원들은 웡꺼인지 아니면 아미타여래에게 들킨 건지 아예 바다로 빠져나가 월미도를 탈출했다.
“정말 비둘기를 날려야지 싶을 것 같은데. 저거 총알 한 발이면 제대로 전쟁이 터질 기세야.”
심봉근은 씩 웃으면서 비둘기 통을 열려고 했다.
“비둘기야 먹쟈. 구구구구구.”
그때, 이진영이 심봉근의 손을 잡았다.
이 건물 위에서 쎄잉꺼 놈들까지는 2킬로미터도 넘었고 격발 지점에서 총성이 도착하려면 최소 7초 이상이 걸린다.
이진영의 쌍안경에 관을 들고 있던 놈 한 명이 앞으로 풀썩 쓰러지는 게 보였다.
중국식 관이 크게 흔들리면서 한쪽으로 기울고 염을 하고 삼베를 둘둘 만 시체가 지전이 흩뿌려진 바닥에 떨어진다.
갈색 삼배가 바닥의 더러운 진흙탕물에 검게 물들고 웡꺼 놈들이 발광하는 모습이 보였다.
어떤 문화권이든 장례식을 모욕하는 건 용납하지 않는다.
게다가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시체는 아직 범인도 밝혀지지 않은 웡꺼의 대대장이었다.
누군가 고함을 질렀다.
“쎄잉꺼다! 쎄잉꺼가 쐈어어어!”
격앙된 군중은 합리적인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다.
마침 쎄잉꺼 놈들이 눈앞에서 도망치기도 했고 다들 쎄잉꺼가 웡꺼의 부하들을 공격하고 있다고 멋대로 생각하던 와중이었다.
“쎄잉꺼다! 쎄잉꺼가 비겁하게 저격했다아아! 이건 용서 못 해! 쎄잉꺼 놈들을 죽여어어!”
탕탕! 탕!
관짝을 들고 행진할 때만 해도 아직은 군중들에게 이성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관짝이 뒤집히고 시체가 뒹굴면서 웡꺼 놈들은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렸다.
이제 본격적으로 화기가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조직 간의 항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관짝을 든 놈들이 제일 앞으로 나아가면서 곳곳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
이곳 인천시청 근처는 쎄잉꺼와 웡꺼의 중립지대였고 이곳에는 쎄잉꺼의 조직원들도 많았다.
웡꺼 놈들은 쎄잉꺼의 하얀 완장을 달고 있는 놈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했다.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놈들이 끌려 나와서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지고 이쪽 대로변에서는 트럭을 사이에 두고 쎄잉꺼의 부대와 장례추모 행렬이 총격전을 벌였다.
아스팔트 바닥에 총알이 튀고 눈먼 총알에 근처를 지나가던 관광객이나 일반 난민들에게도 불똥이 튀었다.
심지어 웡꺼 놈들은 더워서 흰 셔츠를 걷은 관광객에게도 총을 쏴버렸다. 하얀 와이셔츠에 피가 튀어 붉게 변하고 남자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쎄잉꺼 놈들도 이제는 가만있을 게 아니었다.
빠르게 무전으로 상황이 전파되고 놈들은 반대로 노란 완장을 한 놈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했다.
거리에 시체들이 널브러지기 시작하고 피해도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다.
“팀장님. 이거 관람료 내고 봐야 하는 광경 아닙니까? 흐흐, 팝콘이라도 튀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