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264
제264화
폭발은 연쇄적으로 이어졌고 여기저기서 웡꺼 놈들이 속절없이 쓰러졌다.
쾅!
또다시 불길이 치솟아 오르고 이진영의 뒤를 쫓아온 위타천과 부동명왕이 멈칫했다.
– 저놈들 뭐 하는 거지?
심봉근과 이진영은 열차 위에 냅다 뛰어올랐고 포탑 하나를 또 박살 냈다.
위타천은 급히 놈들을 쫓아 열차 위에 올라탔다. 아미타여래는 예언하듯 말했다.
– 저놈들 열차를 움직이려고 하고 있어. 저걸로 탈출할 셈이다. 막아야 한다.
부동명왕과 위타천도 그 말을 듣자마자 열차 위로 뛰어올랐다.
열차에 실린 무기들은 막상 열차 위에 올라타자 아무 쓸모 없었다.
웡꺼 놈들은 급기야 열차 위로 기어올랐지만, 그 모습을 본 이진영이 레일건을 쏘자 위로 올라오던 놈들이 인형처럼 후두둑 떨어졌다.
“팀장님! 이거 이용할 수 있겠습니다!”
“뭐를!”
“포탑이요! 여긴 제가 맡겠습니다! 기관실로 가세요!”
포탑은 미국의 제식야포를 밀수한 거라 숙자씨와 케이블로 연결할 수 있었다.
마지막 남은 포탑을 이용할 수 있다면 특별병과번호 놈들에게 일격을 먹여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진영은 ‘여기는 제가 맡겠습니다.’에 깊은 트라우마가 생겼다.
중화대루에서 탈출할 때 EV-1은 그 말을 남기고 적진으로 달려갔고 이진영, 이세화 등에게 혈로를 열어줬다.
“심봉근! 하지 마!”
“훗, 방법이 없어요! 팀장님은 기관실이나 쓸어버리세요!”
심봉근은 벌써 상부해치를 열고 나와서 케이블을 숙자씨에게 연결하려고 했다.
바로 그때.
타다다다다!
포탑 뚜껑이 열리더니 웡꺼의 병사가 심봉근에게 총을 갈겼다.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말은 안 했지만 김상현이 자살하는 장면도 그에게 큰 충격을 줬다.
김상현의 대타 비슷하게 배치된 심봉근이 죽는다면?
알고 지낸 건 일주일밖에 안 되지만 심봉근의 유쾌한 행동은 이진영의 상처를 꽤 아물게 했다.
이진영은 지독한 무력감에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또.
그러나 심봉근은 운이 억세게도 좋은 녀석이었다.
“시발놈들이! 바나나 껍질을 여기다 버리고 지랄이야!”
심봉근은 노란 바나나 껍질을 밟고 뒤로 자빠졌고 그 덕분에 총알을 피할 수 있었다.
이진영은 한숨 쉴 사이도 없이 포탑에서 나온 놈을 쏴버렸다.
“심봉근 빚은 갚은 거다! 뭐 사달라고 하지 마라!”
“예압!”
그놈의 ‘여어’하는 몹쓸 인사는 여러 사람에게 전파되었다.
심봉근은 느끼하게 감사 표시를 하고 케이블을 엑소슈트 외부 슬롯에 연결했다. 그는 카라비나로 달아놓은 게임 컨트롤러로 포탑을 즉석에서 포탑을 조작했다.
둥둥둥둥!
30밀리미터 고속레일포가 시원하게 탄알을 쏟아내며 부동명왕 쪽으로 날아갔다.
놈은 급히 위타천에게서 뛰어내리며 포탄을 피했다.
제아무리 위타천이라고 하더라도 고속레일포까지 막아낼 수는 없었다. 관절이나 접합 부위에 포탄이 맞는다면 전투력을 잃게 된다.
놈들이 열차 옆면으로 엄폐한 사이, 심봉근은 엑소슈트로 되돌아갔다.
엑소슈트와 포탑은 유선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심봉근은 케이블을 단 채 기관차 쪽으로 달렸다.
둥둥둥둥!
포탑은 마구잡이로 포탄을 쏟아냈다.
위에서 내려오던 제석천도 발이 묶였고 포탑 뒤에 있는 모든 칸이 공격당하면서 사방에서 불꽃이 치솟아 올랐다.
포탄은 바깥에만 야적된 게 아니라 열차 안에도 가득 쌓여 있었다.
쾅쾅쾅!
화약식 포탄이 충격을 받으며 유폭됐다.
열차 옆으로 피했던 부동명왕과 위타천도 폭발에 휩쓸려 벽에 부딪혔다.
부동명왕은 순간적으로 검으로 옆을 베면서 피했고 위타천은 방열판 하나가 당하긴 했지만, 여전히 그 자체가 전차처럼 단단한 몸이었다.
아까 이진영이 놈의 방열판 하나를 박살 내둔 게 다행이었다.
과열 때문에 위타천은 아까처럼 어마어마한 속도로 이동할 수는 없었다. 아마 놈이 멀쩡했다면 이진영과 심봉근은 벌써 잡히고도 남았다.
그리고 열차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진영은 정보국에게 무장열차에 대해서도 브리핑을 받았고 정보국은 부천역 교전 영상을 분석하여 이 열차가 인공지능이 아닌 인간이 조종하고 있다는 걸 알아냈다.
“심봉근! 기관차 뒤에 분리해 버려!”
“하지만 팔이 없습니다!”
지금도 포탑은 열차 뒤를 박살 내놓고 있었고 바퀴축이 뒤틀리면서 이대로 가다간 구월역을 빠져나갈 수 없었다. 그때 뜻밖의 물건이 심봉근의 눈에 들어왔다.
“팀장님! 여기! 여기! 포탑 조종기 받으세요!”
놈들이 지하철역에 쌓아놓은 건 탄약뿐만이 아니었다. 심봉근은 야적장에 쌓여 있는 매니퓰레이터 암을 가리켰다.
미국과 나토의 엑소슈트는 부품이 호환될 수 있도록 철저히 모듈화시켰다.
숙자씨도 제너럴 에어로믹스가 제조한 엑소슈트였고 마침 호환되는 팔이 폭발에 열차 위로 날아왔다.
“후루얍! 얍얍얍! 뭐 이렇게 무거워! 이거! 우라랍!”
유인원 투라는 별명이 그냥 붙은 게 아니었다.
심봉근은 웃기는 기합을 넣으며 거의 백 킬로그램에 달하는 엑소슈트 팔을 들어서 접합부에 꽂아 넣었다.
이 팔은 랜서 같은 중형 엑소슈트의 팔이었고 경량형인 채피 프레임에 붙여 놓으니 게처럼 한쪽 팔이 괜히 커 보였다.
모양이야 어찌 되었든 심봉근은 새로 붙은 팔로 단숨에 열차 결합구를 뜯어버렸다. 유압이 퍽하고 터지면서 검은 기름이 뿜어져 나오고 열차는 속력이 붙기 시작했다.
“팀장님! 케이블이 끊어지면 어떡하죠! 그놈들 그냥 도망치게 내버려 둘 것 같지는 않았어요!”
“몰라! 비둘기를 날렸고 우리가 도망치는 걸 봤으니 누가 어떻게든 구하러 오겠지! 제기랄!”
그때 비상용 무전기에서 소리가 들렸다.
– 저…… 팀장. 어디야?
“엥?”
전상영이었다.
이진영은 이번에도 깜짝 놀랐다.
지하인데도 비상용 무전기 소리가 잘 들렸고 무엇보다 아미타여래가 이곳을 통과하고 있을 텐데도 어떻게 한 건지 전상영은 잘도 무전을 쳤다.
“아저씨! 지금 학교 끝나고 PC방 지나고 있어요! 마라탕 한 그릇 배달해 주세요!”
전부 비상 무전에 쓰는 암호였다.
– 오케이.
무전이지만 이진영은 전상영이 빵끗 웃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이곳 지하철 선로는 태스크포스 13이 사전에 정한 퇴각로 중 하나였고 전상영이라면 열차가 어디 있는지 금방 알아낼 것이다.
이윽고 포탑과 연결된 케이블이 분리되고 특별병과번호 놈들이 본격적으로 열차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방열판 하나가 망가졌어도 위타천은 이깟 무장열차쯤 따라잡는 건 아무 일도 아니었다.
이진영은 또 레일건의 출력을 높여서 놈의 관절을 노리려고 했다.
그러나 놈은 심봉근이 했던 것처럼 턴픽 기술을 써서 가볍게 레일건을 피하고 한 바퀴 빙글 도는 탄력으로 부동명왕을 집어 던졌다.
부동명왕이 허공을 가르고 달아와 열차에 칼을 꽂으려고 했다.
심봉근은 겁도 없이 부동명왕의 앞을 막아서면서 새로 붙인 팔을 앞으로 내질렀다.
사실 이 팔은 사연이 많은 물건이었다.
캐논볼 레이스가 끝나고 많은 로봇 부품들이 스크랩처리 되었고 그중에는 R-1 리그의 전 챔피언인 ‘짜르’의 부품도 있었다. 결승점에서 제리에게 박살 난 짜르의 부품은 흘러흘러 찹샵(ChopShop)이라 부르는 로봇 개조공장으로 흘러 들어갔다.
무게가 백 킬로그램이나 나가는 데는 다 이유가 있게 마련이고 바로 숙자씨가 장비한 팔은 짜르의 팔이었다.
“뭐? 고주파?”
펀치를 내지른 심봉근도 깜짝 놀랐다.
계기판에 ‘고주파’라는 표시가 뜬 뒤 L2 버튼을 누르면 고주파를 사용 가능하다는 안내가 떴다. 심봉근은 조종간의 L2 버튼을 의심하지도 않고 바로 눌러버렸다.
공진과 고주파.
어찌 보면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상반된 능력이 부딪쳤다.
고주파 펀치가 칼날 끝을 때리면서 손가락 일부가 칼날에 잘려 나갔다.
그러나 부동명왕 쪽이 더 큰 타격을 받았다.
일전에 EV-1이 칼날을 부러뜨렸을 때처럼 고주파 전류가 칼날을 진동시키고 부동명왕의 팔을 덜덜 떨게 만들었다.
놈은 열차에 발을 올리기도 전에 바닥에 처박혀 데굴데굴 선로에 나뒹굴었다.
“이거 짜르의 펀치잖아! 하하하하! 팀장님! 저 지금 짜르의 펀치로 날려버렸어요!”
이진영도 잠시 얼이 빠졌다.
짜르의 팔이 왜 여기에 있단 말인가?
“뽕근아! 뒤! 뒤뒤뒤!”
오늘 이진영은 이 골칫거리 유인원 투 때문에 유독 ‘뒤’라는 말을 많이 했다.
어느새 위타천이 열차에 올랐고 어마어마한 스피드로 숙자씨의 가슴팍을 찍어버렸다.
두부를 손가락으로 찌르는 것처럼 대번에 주먹이 숙자씨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놈의 주먹은 아슬아슬하게 심봉근의 머리 1센티미터 옆에 처박혔다. 그 바람에 너트가 심봉근의 볼에 박혔지만, 그 고통을 느낄 사이도 없었다.
위타천은 경량급인 숙자씨를 그대로 들어 올렸다.
이진영의 눈에는 심봉근이 죽은 것처럼 보였다. 또다시 간위예전쟁 때부터 그의 트라우마가 되살아나며 그는 심봉근의 이름을 외쳤다.
“봉근아아아아!”
그때 심봉근이 더 큰 목소리로 외쳤다.
“나의 손이 너를 쓰러트리라고 외치고 있다. 폭렬 샤이닝 핑거어어어!”
헤드모듈 속 이진영은 깝깝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심봉근은 90년대 G건담의 대사를 외치면서 짜르의 손을 내뻗었다.
위타천의 약점은 방열판뿐만이 아니었다. 놈은 공진 능력이나 고주파처럼 외부에서 안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에 굉장히 취약했다.
생각해보면 특별병과번호의 ‘능력’들은 서로를 견제할 수 있었다.
제석천의 번개는 탁탑천왕 드론들의 천적이고, 부동명왕의 공진 블레이드는 위타천의 장갑 안을 공격할 수 있다.
하필 고주파 공격 역시 위타천에게는 쥐약이었다.
내부장갑판이 고주파에 덜덜거리며 분해되고 위타천은 발로 숙자씨를 걷어차면서 떨어졌다. 위타천에게는 미사일 등 다른 공격무기가 없었다.
“끼요오오옵! 얼마든지 와 봐라…….”
심봉근은 그놈의 주둥이가 문제였다.
그가 의기양양하게 말하기도 전에 탁탑천왕의 드론이 날아왔다. 좁은 지하선로 구간을 꽉 채우고 날아오는 드론들의 모습은 공포를 넘어 기괴하게 느껴졌다.
“봉근아! 받아아!”
이진영은 갖고 있던 충격기를 심봉근에게 집어 던졌다.
심봉근은 드론에 휩싸여 벌에 쏘이는 사람처럼 팔다리를 허우적거렸고, 그 사이 쇼크 충격기는 드론 놈들이 가로채서 마구잡이로 분해했다.
이제 심봉근과 이진영은 드론의 공격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구원은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다.
갑자기 폭발과 함께 천장이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열차는 아슬아슬하게 폭발을 피해 앞으로 달렸고 바로 뒤에 있는 통로를 잔해들이 메워버렸다.
“그렇지! 잘한다! 전상영!”
타 부서로 전출가면 폭탄을 못 터뜨려서 싫다는 전상영의 말은 진짜였다.
또다시 인천시가지에 폭탄마의 전설이 화려하게 펼쳐졌다.
전상영은 열차가 지나가는 길목에 남은 폭탄을 모두 설치했고 내시경 카메라로 열차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폭발이 어찌나 대단했는지 지하철 선로는 물론이고 지반까지 흔들흔들거리더니 주변의 빌딩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빵끗.
옥상에서 개 프랑소와즈를 쓰다듬으며 웃는 전상영의 모습은 누가 봐도 경찰이 아니라 훌륭한 폭탄마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