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268
제268화
사람들의 시선이 감미영 팀장에게 쏠렸다.
정보국의 시나리오는 웡꺼, 쎄잉꺼의 집안 싸움으로 인한 자중지란이 1단계였다.
그다음에 롱꺼가 직접 전면에 나서면 좌표 장입 미사일로 공격하거나 아니면 태스크포스 13을 통해 암살을 지시하려고 했다.
윤숙희가 수사관답게 날카롭게 진가구의 허점을 공격했다.
“롱꺼의 은신처를 안다면 왜 당신은 롱꺼를 저격하지 않은 거죠? 당신이죠? 아까 장례행렬에 총을 쏜 사람.”
진가구는 윤숙희의 눈썰미에 감탄했다.
“어떻게 안 거죠?”
“우리도 상황은 모니터로 보고 있었어요. 갑자기 날아온 총알. 쎄잉꺼가 아니라면 우리 팀인데. 우리 팀은 현장에서 그냥 대기만 했을 테고 결국 답은 하나죠. 어깨 위의 천사.”
진가구는 어깨 위의 천사라는 말을 듣고 거북한 표정이 되었다. 이 말은 심봉근이 자주 쓰는 말이었다.
“제가 천사라뇨. 죽인 사람만 두 자릿수 이상인데.”
진가구는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전 진짜로 롱꺼의 위치를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도와주신다면 모두 다 잡을 수 있어요.”
“그곳이 어딘데요?”
“구룡성채요.”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한숨을 쉬었다.
구룡성채의 악명은 이제 홍콩에 있던 원조 구룡성채를 뛰어넘었다.
나카토미 빌딩과 함께 난민들이 들어오며 폐허가 된 월미도를 상징하는 건물.
감미영은 물론이고 윤숙희도 이진영에게서 종종 구룡성채에 대해 들었다.
중화대루라면 몰라도 구룡성채까지 갔다 온 한국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곳은 햇빛이 들지 않는 마경(魔境)이었고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난민들의 텐트에서 살지언정 거기서 구룡성채에서 살려고 하지 않는다.
난민들조차도 꺼릴 정도로 치안이 굉장히 위험한 곳.
사람이 죽어 나가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곳.
“그곳에 롱꺼의 본진이 있습니다. 문제는 거기 보안이 보통이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저는…….”
“아, 이제 알겠어요. 그래서 쎄잉꺼와 웡꺼를 싸움 붙인 거군요. 놈들 중 누군가 이겨서 그곳에 쳐들어갈 때 분명 빈틈이 생길 테니까.”
윤숙희는 영리하게 진가구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진가구는 더 이상 경찰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조폭도 아니었다. 그는 아내 한하린을 잃고 이 세상에 혼자 남았고 그를 도와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가 태스크포스 13을 도운 것도 순전히 자신의 복수를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
적어도 체잉꺼만큼은 살려둘 수 없었다.
“하지만 쎄잉꺼도 롱꺼의 위치를 모를 텐데요?”
감미영이 예리하게 말했다.
“이합집산을 하는 건 웡꺼 조직만은 아닐 거에요. 아마 롱꺼의 부하들은 불만이 상당할 겁니다. 롱꺼는 정말로 무슨 대협이라도 된 듯이 부하들에게 협의 정신을 불어넣었으니까요.”
“협의요?”
“예, 무협지 할 때 그 협 말이죠. 그래서 그런지 부하들에게 사치도 못 부리게 했어요. 조직분위기가 그러니 웡꺼니 쎄잉꺼니 하는 조직원들이 비싼 명품을 걸친 걸 보면 울화가 터졌을 테고요.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는 분위기예요.”
이건 실제로 조직에 가담하지 않은 자라면 모를 정보였다.
롱꺼 조직원들은 챔피언거리나 거리 일부를 관리하긴 했지만 보호료나 세금 따위는 전혀 받지 않았다.
그런 주제에 각종 사건사고가 생기면 경찰마냥 파견되어 사건을 처리하거나 형제들 사이의 불만을 중재하기도 했다.
몇몇 롱꺼 패거리들은 그런 감투를 좋게 생각했지만, 탁일항 같은 놈들은 불만이 쌓이게 마련이었다.
“깡패새끼에 날도둑놈들이 협의를 말하다니 말도 안 되는 짓거리죠.”
감미영은 진가구를 미심쩍은 눈으로 쳐다봤다.
“당신은 그걸 어떻게 아는 거죠?”
“그야…… 그쪽은 대충 제 사정 알잖아요?”
진가구는 윤숙희 쪽을 바라봤다.
그녀는 동우엔지니어링으로 위장하고 있을 때 진가구를 몇 번 봤었고 그가 체잉꺼 조직의 부하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다.
“저, 그럼…….”
“아이 깜짝이야!”
진가구는 갑자기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리자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봤다.
전상영은 개를 쓰다듬으며 음침하게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진가구는 전상영의 얼굴 또한 알고 있었다.
“뭐예요.”
“날려버릴 수 있나? 구룡성채.”
빵끗. 진가구는 이 우울한 표정의 중년 남자가 처음으로 활짝 웃는 걸 볼 수 있었다.
“나, 날려버린다고요?”
“소드타워와 구룡성채. 히히. 최고의 트로피.”
전상영은 구룡성채 쪽을 바라보며 히죽 웃었고 진가구는 눈썹을 찡그렸다.
이 미친 폭탄마는 소드타워에 이어 구룡성채를 날려버리려고 하고 있었다.
“아무튼 저는 당신의 말을 완전히 믿을 수는 없습니다. 상부와 연락할 수 있으면 몰라도 우린 당신이 누군지 몰라요.”
진가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적어도 롱꺼와 그 세력에 대한 생각은 당신들과 같습니다. 놈들은 기생충이고 이 사태를 만든 것에 대해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합니다.”
진가구는 시계를 확인했다.
“자,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롱꺼를 잡으러 가시려면 절 따라오세요. 아니면 도망갈 길을 일러드리겠습니다. 웡꺼 놈들은 월미도 쪽이 방벽 경비가 약해요. 신인천항 근처의 배를 타고 도망칠 수 있을 거예요.”
감미영 팀장은 손톱을 오독오독 씹으며 초조하게 구룡성채를 바라봤다.
지금 있는 인원은 윤숙희까지 총 11명에 불과했다.
안전가옥과 베이스캠프에 있는 특전단 요원들이나 김대현, 유인환까지 가세하면 모르되 11명으로 구룡성채로 들어가는 건 자살행위였다.
구룡성채의 음험함은 정보국에서도 잘 알고 있었고 고작 11명으로 뭐가 있을지도 모르는 구룡성채 안으로 들어간다는 데 영 마음에 걸렸다.
윤숙희가 호탕하게 말했다.
“가죠. 놈들을 일망타진할 수 있는데 이 기회를 놓칠 수야 없죠. 이 지랄을 천년만년 할 수는 없잖아요?”
감미영은 김명중 중령을 쳐다봤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지원은 기대할 수 없겠지만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습니다.”
감미영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진가구라고 했죠? 당신을 다 믿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구룡성채까지 길 안내 잘 부탁드립니다.”
진가구까지 다들 비장한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이 중에서 딱 한 사람 전상영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기분이 한층 업된 거 같아 보였다.
* * *
같은 시각.
부천에서도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다. 청와대 정보수석과 정보국국장이 직접 부천으로 달려와 작전을 직접 지휘한다고 난리였다.
신희정은 진땀을 빼고 높으신 양반들을 뜯어말렸다.
핑계는 아미타여래의 침공이 예측된다는 것이었고 높으신 양반들은 바로 그 말에 수긍했다.
“나 참. 안 와주는 게 도와주는 걸 모르는 건지 원.”
이진영은 친구의 한숨 소리를 들으며 담배를 건넸다.
“군대랑 똑같죠. 높으신 양반이 현장에 오면 될 일도 안 되니까.”
신희정은 쓴웃음을 지으며 이진영이 군장을 정리하는 걸 바라봤다.
“저기로 또 들어가는 거예요?”
“예에, 팀원들이 아직 남아있어요.”
이진영은 담배를 문 채 레일건의 배터리를 체크했다.
“아직 작전 허가가 떨어지지 않았어요.”
“안 떨어져도 들어갈 겁니다. 내 새끼들이에요.”
신희정은 말려도 소용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탁자 위에는 온갖 무기들이 테이블 가득 쌓여 있었고 이진영과 함께 들어가려는 특전단 아저씨들도 무기를 점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중에서 가장 사람들의 이목을 잡아끄는 건 새로운 프레임의 EV-1이었다.
무사히 아미타여래의 영역을 빠져나온 뒤 어떻게 소식을 들었는지 아선 인더스트리의 영업부장을 비롯한 현장 정비팀이 각종 장비를 한아름 가지고 달려왔다.
마이크로웍스의 관계자들도 부천 상황실에 진작에 도착했고 그들은 F-1 레이스의 정비사들처럼 EV-1의 정비를 도와주고 있었다.
신희정은 이진영의 팔을 툭 치고는 턱으로 로봇을 가리켰다.
“저 녀석, 그 이브이 맞아요?”
EV-1은 엑소슈트 프레임으로 개장되면서 많은 부분이 달라졌고 전혀 다른 로봇처럼 보였다.
“예, 썰렁한 농담 솜씨는 여전하더군요.”
정비를 받다 말고 EV-1이 항변했다.
– 저를 딥러닝시킨 분은 이진영 팀장님이십니다.
“흐흐흐, 그래 널 아주 훌륭하게 딥러닝 시켜주셨지. 아무튼 이브이 괜찮냐?”
– 예, 지금 컨디션이면 부진에 빠진 엘지 타자들 대신 홈런도 빵빵 날릴 수 있겠습니다.
신희정이 낄낄 웃음을 터뜨렸다.
“여윽시. 똑똑한 로봇이라니까? 야구는 어디가 잘한다? 잠실의 주인은 누구?”
– 그건 제 입으로 말 못 하죠. 이진영 팀장님에 대한 의리가 있는데.
신희정도 오랜만에 씩 미소를 지었다. 인천이 함락당하며 신희정 역시 좀처럼 활짝 웃을 수 없었다. 신희정은 이진영과 마찬가지로 장비를 점검하는 육군 특전단 병사들을 바라봤다.
“저 친구들 말려도 안 듣겠군요.”
“자기 식구들 구하고 싶은 건 다들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자 우리 잘생긴 요원님은 어쩌실랍니까? 중지 명령을 내리실 겁니까?”
신희정은 태스크포스 13의 총책임자였다.
만약 이 팀이 문제가 생긴다면 신희정의 출셋길도 막히는 셈이었다.
“말린다고 말을 듣겠습니까? 부디 제 승진가도에 누만 끼치지 마시기를.”
“아무렴요.”
두 사람은 씩 웃으며 악수했다.
신희정의 승인이 떨어지고 태스크포스 13의 자체 구출 작전이 개시되었다.
아직 육군 특전단 병사들은 참수당하지 않았고, 이진영과 특전단 사람들은 현지에서 잡힌 사람들 구출이 최우선 과제로 잡았다.
청와대와 정보국에서 이 작전에 대한 승인이 떨어진 이유는 딱 하나였다.
EV-1.
이 로봇은 걸출한 성능을 보여주며 특별병과번호를 압도했다.
EV-1의 건카메라를 보고 육군은 물론이고 정보국에서도 깜짝 놀랐다.
말이 특별병과번호지 놈들의 능력은 초능력에 가까웠다.
그런 놈들을 혼자서 뿌리치고 심봉근과 이진영을 구출해낸 장면은 모든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또한 EV-1이 아미타여래의 영역에서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것도 한몫했다.
태스크포스 13은 EV-1이 적재할 수 있는 한계중량에 가까울 정도로 EV-1을 과무장시켰다.
그리고 보병용 엑소슈트를 입은 육군 병사들이 등에 짊어진 것은 전부 EV-1의 무기들이었다.
원래대로라면 공격 로봇이 온갖 무기를 싣고 인간을 보조해야 하지만 지금은 반대가 되었다.
이번 작전에서는 EV-1 자체가 멀티웨폰 플랫폼으로 활용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가자 이브이.”
육군 엑소슈트 랜서 A1 세 대가 EV-1과 나란히 섰고 EV-1은 그 가운데 척하고 걸었다.
이진영은 엑소슈트 프레임 안이 아니라 바깥에 있었다.
EV-1이 해킹을 당할 리가 없지만, 그는 보병지휘관석이라고 부르는 곳을 좋아했다.
로봇의 등 뒤에서 보는 풍경은 보통 때보다 눈높이가 높았고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먼 것을 볼 수 있었다면 그건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와 있기 때문이다.”
– 아이작 뉴턴의 말이로군요. 하하, 제가 철인 28호나 자이언트 로보처럼 더 거대한 프레임을 조종해야 맞는 말이지 싶은데요?
“넌 말이야. 무드가 없어서 탈이야.”
이진영은 타박을 주면서도 빙긋 웃었다.
전혀 웃을만한 상황이 아니지만 든든한 파트너가 되돌아온 것만으로도 절로 웃음이 나왔다.
태스크포스 13의 구출대는 잠입하러 들어갔을 때와 같은 경로로 들어갔다.
어차피 상공은 아미타여래로 인해 여전히 비행금지 구역이 설정되어 있었고 계기 이상으로 추락할 수도 있었다.
대신 잠입하러 들어갈 때처럼 은밀한 입구가 아니라 대놓고 부천역으로 향했다.
경계를 서고 있던 육군 병사들은 경외감이 담긴 눈으로 EV-1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