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271
제271화
“뭐야, 오늘도 불꽃놀이 하는 건가?”
불꽃놀이치고는 너무나 소리가 요란했다.
“서두르자, 벌써 교전이 벌어진 모양이다.”
이진영은 김대현과 유인환을 재촉했다.
김대현과 유인환은 간신히 찾았지만, 윤숙희나 전상영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이진영은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았다.
구룡성채, 이 오래된 건물은 불빛도 거의 없었다. 지금 건물에서 번쩍이는 건 불빛이 아니라 폭발광과 예광탄 불빛이었다.
– 병력이 너무 많습니다.
쎄잉꺼는 웡꺼 진압병력 일부를 다른 우회로로 이 구룡성채에 불렀다.
구룡성채 바깥에는 온갖 완장을 단 놈들이 뭐라뭐라 고함을 지르며 구룡성채를 올라가고 있었다.
롱꺼가 이곳에 있다는 소식은 빠른 속도로 웡꺼의 잔당들에게도 퍼져나갔다. 구월동 번화가에서도 크고 작은 교전이 벌어졌고 슬슬 이곳 구룡성채에도 불길이 번질 조짐이 보였다.
“롱꺼를 수호해야 한다! 쎄잉꺼가 웡꺼를 죽이고 롱꺼까지 죽이려고 하고 있어!”
“가자! 롱꺼를 위해!”
쎄잉꺼가 본진정비를 위해 돌입 시간이 늦어진 게 너무나 치명적이었다.
웡꺼 대대장들 일부가 병력을 롱꺼 조직으로 돌렸다.
롱꺼는 진가구 역시 함부로 말하길 꺼릴 정도로 난민들 사이에 인기가 많았다.
1차 봉기 후 혼란을 수습하고 폭력 사태를 그친 신화적인 인물이었다.
무엇보다 롱꺼는 신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돈이나 재물에 초탈한 모습을 보였고 그게 조직원들에게 꽤나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몇몇 난민들은 관우상 옆에 롱꺼의 조각상을 놓고 그를 신 삼아 숭배하기도 했다.
웡꺼 조직 내부에도 롱꺼를 숭배하는 자들이 많았다.
바로 그런 웡꺼 놈들이 체잉꺼 놈들과 치열하게 건물 입구에서 교전을 벌이는 중이었다.
체잉꺼와 쎄잉꺼 병력은 구룡성채로 들어가는 메인 통로를 막고 있었고 벌써 시체가 곳곳에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쾅! 쾅! 쾅!
쎄잉꺼 놈들은 우주 함대용 레일건을 설치하고 마구잡이로 쏘고 있었다.
한 방에 아파트 50세대가 하루에 쓸 수 있는 전기가 소모되면서 테크니컬 트럭이 뒤집히고 장갑차에 구멍이 뚫렸다.
– 아무래도 정면으로 돌파하는 건 힘들 것 같습니다. 나카토미 빌딩 기억나시죠?
EV-1은 레이더로 구룡성채 주변을 스캐닝하고 근처에 있는 빌딩으로 쏜살같이 이동했다.
그리고 캐논볼 레이스 때 나카토미 빌딩에 올라갔던 것처럼 위로 와이어 케이블을 발사했다.
웡꺼의 잔당과 입구의 쎄잉꺼 패거리들은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고 광학위장을 작동한 EV-1이 구룡성채의 옆에 매달리는 걸 아무도 못 봤다.
“으윽, 팀장님은 이런 걸 만날 하시는 건가요?”
로봇 등에 탄 채로 벽에 매달리는 게 처음인 김대현이 두려움을 잊기 위해 투덜거렸다.
“쉿, 김대현. 누가 있다.”
총알이 오고 가는 와중에도 구룡성채에 사는 사람들은 대피하지 않았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꿈도 희망도 없는 노인들이나 마약중독자들 뿐이었다. 이미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은 전부 인천으로 넘어가 버렸다.
노인들은 마작을 치다 말고 창밖에서 넘어온 검은 로봇과 수상한 사람을 힐끔 쳐다봤다.
“껑(槓)”
노인들은 마작에 다시 열중했다.
이곳 구룡성채에 살다 보면 무장한 젊은이들이 오고 가는 건 그야말로 밥 먹듯이 벌어지는 일이었고 이 노인들에게는 지금 손패가 더 중요했다.
이진영과 44팀 동료들은 작탁 옆을 스쳐 지나가면서 기이한 표정으로 노인들을 바라봤다.
구룡성채는 가운데 중공정원이 있는 사각형으로 뻥 뚫린 형태였고 위로는 링로드 구조물이 보였다.
난민지구를 아미타 여래가 장악하면서 링로드 공사는 중단되었다.
어차피 링로드가 완공되어도 궤도 스테이션 수리가 끝나고 제 기능을 발휘하기 전까지는 반쪽짜리에 불과했다.
김대현, 유인환은 물론이고 이진영도 구룡성채에 들어온 것은 처음이었다.
세 사람은 건물 안에도 난잡하게 판자로 만든 가건물이 마구잡이로 세워져 있는 걸 보고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이래서야 롱꺼가 어디 숨어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이곳은 마치 월미도 난민지구를 엑기스로 축소해 놓은 곳 같았다.
곳곳에는 점집이나 매춘부들의 싸구려 네온사인이 깜빡이고 새벽에 밥을 짓는 꼬마의 모습도 보였다.
웡꺼와 쎄잉꺼의 충돌은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아무 관심 없는 일이었다.
이들은 아직도 구호단체가 뿌린 식량으로 연명하고 있었고 난민이 되었을 때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진영은 이 모든 광경이 불합리하게 느껴졌다.
햇빛도 들지 않아 곰팡이 냄새가 퀴퀴한 곳에서 잘도 어린아이들이 뛰놀고 살고 있었다.
이진영이 보아온 난민지구조차도 그나마 다듬어진 모습일 뿐이다.
이곳은 모든 난민들의 출발점이었다.
이진영도 차마 볼 수 없었던 현실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굶어 죽은 마약중독자의 시체 위에 파리가 윙윙 돌아다니고 있었고 근처에는 누군가 토해놓은 토사물이 썩어가고 있었다.
헤드모듈을 쓰고 있어서 망정이지 이곳에서 나는 악취를 맡았다간 이진영도 토했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어떻게 이런 곳에서…….”
이곳은 텐트 하나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이 기어 들어와 살았다.
이곳에 하루라도 머물렀다간 없던 병이 생길 것만 같았다.
김대현과 유인환은 옷으로 입을 가리고 구토를 참았다.
이곳은 모기가 굉장히 많았다.
구룡성채 중앙정원에는 썩어 가는 호수가 있었다. 원래는 인테리어용으로 잘 꾸며진 호수였겠지만 천장이 링로드에 가려지면서 물이 썩어버렸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온갖 오물을 호수에 집어 던졌고 거기서 온갖 더러운 벌레들이 성장했다.
거대한 쓰레기통.
이진영이 구룡성채의 현실을 처음 보고 든 생각이었다.
그리고 저 위에서도 탕탕하는 화약소총 소리와 폭약이 터지는 둔중한 소리가 들렸다.
이 거대한 쓰레기통 안에서도 교전이 시작되었다.
– 팀장님, 아마도 19층인 것 같군요. 사다우카와 롱꺼의 친위부대가 교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진영은 난간에서 고개를 빼고 위쪽을 쳐다봤다.
마침 위에서 으아악하는 소리와 함께 롱꺼의 병사가 떨어졌다.
열화상 영상으로 보면 전투는 꽤나 치열했다.
천하의 사다우카도 19층으로 올라가는 길을 뚫지 못해 사상자가 늘어갔다.
강화방패를 든 사다우카가 계단에서 버티고는 있었지만, 19층은 좀 독특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
19층은 중공정원으로 통하는 난간이 모두 콘크리트로 막혀 있었고 침입자는 아무것도 없는 약 20미터의 콘크리트 통로를 걸어가야 롱꺼가 있는 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롱꺼의 심복 조직원들은 그곳에 중기관총과 대형레일건을 설치하여 침입자들을 막았다.
쎄잉꺼는 여전히 흰 당의를 입고 접의자에 앉아 사다우카가 쓰러지는 걸 근처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정예인 사다우카가 벌써 10명이나 쓰러졌고 체잉꺼의 병력도 많이 시체로 널브러졌다.
20여 미터의 통로는 공격자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대재앙이 따로 없었다.
“체잉, 옆을 딴다.”
체잉꺼는 숫제 쎄잉꺼의 휘하 지휘관으로 되돌아온 것 같았다. 그는 허리를 숙여 쎄잉꺼의 명령을 듣고 부하들에게 콘크리트 옆을 공격할 것을 지시했다.
쾅쾅쾅!
20미터 통로의 옆을 로켓과 폭약으로 두들겼지만 콘크리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롱꺼는 이미 오래전에 이곳을 요새화하면서 대한민국 육군이 폭격하는 상황도 생각했다.
탁일항은 쎄잉꺼의 옆에서 턱을 쓰다듬었다.
놈도 롱꺼의 은신처에 몇 번 온 적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강력하게 저항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롱꺼는 이미 탁일항이 배신했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가 협상에 나서도 안쪽에 있는 놈들은 협상에 응하지 않았다.
“별수 없지. 그럼 건물을 통째로 날려버릴 수밖에.”
쎄잉꺼의 병력들이 미리 준비한 플렉스 폭탄을 곳곳에 설치하기 시작했다.
“쎄잉꺼. 하지만 이곳을 무너뜨렸다간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될 겁니다.”
그때 쎄잉꺼가 턱을 쓰다듬는 탁일항의 손을 틀어쥐었다. 쎄잉꺼는 웡꺼 못지않게 힘이 좋았고 탁일항은 식은땀을 흘렸다.
쎄잉꺼는 굳은살 하나 없는 탁일항의 손을 바라보면서 픽 썩은 웃음을 지었다.
“탁일항. 이왕 손에 더러운 피를 묻혔으면 끝까지 묻혀야지.”
“하, 하지만 쎄잉꺼. 이곳에는 노인들과…….”
“노인이 뭐. 언젠간 사람은 죽어. 아이도 죽는다고. 그딴 시답잖은 감상은 버려. 미래지향적이고 인건비는 벌겠다는 생각으로 만사를 바라봐야지. 안 그러면 일이 진행이 되지 않는다고.”
쎄잉꺼는 탁일항의 손을 비틀 듯이 꽉 틀어쥐었고 탁일항은 끄응하는 신음소리를 냈다.
쎄잉꺼가 놈의 팔을 아래로 잡아당기자 탁일항은 고통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의자 옆에 무릎을 꿇은 탁일항에게 쎄잉꺼가 속삭였다.
“탁일항. 잘 들어. 우린 깡패새끼들이야. 이미 선을 넘었어. 괜히 착한 척하지 마. 게다가 넌 모시던 분까지 버린 배신 자 아니던가?”
탁일항은 송글송글 땀을 흘리면서 고개를 푹 수그렸다.
“페어차일드는 어제 나에게 연락했다. 롱꺼와 웡꺼를 치우면 나와 계약을 한다는군.”
탁일항의 눈이 크게 떠졌다. 쎄잉꺼가 하필 오늘을 거사날로 잡은 것이 그 때문일까?
“하지만 난 그거 안 믿어. 그거 아냐? 레드 아리마가 이미 인천 앞바다에 들어왔어.”
“레, 레드 아리마요?”
“놈들은 우리를 제끼고 여기를 집어삼킬 셈이야. 내가 오늘 괜히 칼춤을 춘 것 같아? 빵즈 새끼들도 그렇고 퀴퀴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어.”
쎄잉꺼는 링로드 사업으로 이곳저곳에 대해 인맥이 있었고 케냐의 마약 상인에게 레드 아리마에 대해 들었다.
“시간이 중요해. 시간이. 롱꺼를 죽이고 내가 이곳을 차지해야 네 말대로 무고한 사람이 덜 죽는다. 알겠어? 페어차일드도 계산기를 굴리겠지. 누구랑 손을 잡아야 가장 싸게 먹히는지.”
탁일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터무니없는 놈과 손을 잡았다.
쎄잉꺼는 사업이 합법적인 것처럼 보여서 그렇지 흉폭함과 잔인함에 있어서는 웡꺼는 상대도 되지 않았다. 놈은 잔인했다.
이윽고 플렉스 폭탄이 설치되고 쎄잉꺼는 손을 털어 기폭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쾅!
어마어마한 양의 플렉스 폭탄이 콘크리트 외벽에서 폭발하며 건물 내벽이 와르르 레고처럼 무너져 내렸다.
아까 밥을 짓던 꼬마도 새벽에 복도에서 축구를 하던 청년들도 전부 건물 잔해에 깔려 죽었으리라.
쎄잉꺼는 자리에서 일어섰고 체잉꺼가 접의자를 들고 그 뒤를 따랐다.
20미터의 콘크리트 통로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고 그 안에서 기관총과 레일건을 쏘며 저항하던 놈들이 사다우카에 잡혀 하나둘 쓰러졌다.
일반 소화기나 레일건 따위로는 사다우카의 장갑복을 뚫을 수 없었다.
하얀 장갑복을 입은 놈들이 천천히 걸어가면서 롱꺼의 마지막 호위병들을 전부 죽였다.
장갑복에 튕튕 레일건이나 소총탄이 허무하게 튕기면서 동시에 수많은 롱꺼의 부하들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섞였다.
통로가 다 정리되고 하얀 옷의 쎄잉꺼가 사다우카가 뚫어놓은 길을 따라 걸었다.
통로는 거의 다 무너져 내렸고 폭 50센티미터의 통로만 남았다.
그러나 사다우카들에게 이딴 통로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놈들은 벽을 타고 달려서 건너편 통로에 다다르고 합금 사다리를 펼쳐서 쎄잉꺼가 넘어올 수 있게 만들었다.
쎄잉꺼는 사다리를 텅텅거리며 걷다 말고 다시 조용해진 구룡성채를 노려봤다.
“여긴 처음 봤을 때부터 존나 싫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