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275
제275화
구룡의 눈부터 지금까지 페어차일드는 전혀 손해 보는 장사를 하지 않았다.
장동천을 비롯한 잠룡들이 차례로 낙마하거나 죽고 그들은 정치권에 자신들의 뜻에 맞는 잠룡을 심을 수 있었고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리면 그만이었다.
그 부분은 쎄잉꺼가 예리하게 짚어냈다.
페어차일드는 어찌 되었든 링로드 개발 이익을 최대한 얻어낼 수 있다면 그 사업파트너가 누구라도 좋았다.
오렌지색 불빛이 번쩍일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의 돈이 왔다 갔다 했다.
그들은 과연 오늘 사태가 어떤 곳이 이득일지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난민들이 더 이상 전과 같은 지위를 누릴 수 없으리란 것이다.
롱꺼라는 상징적인 존재가 죽으면서 이제 난민들은 뿔뿔이 흩어진 개인이 되었다.
이런 모래알 같은 집단을 하나의 조직으로 뭉친 건 순전히 롱꺼의 수완이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제 인천시가지는 전투랄 것도 없었다.
육군이 속속 들어오면서 헌병대가 교통정리까지 시작했고 하도 밀려 들어오는 장비와 트럭 때문에 교통체증까지 생길 정도였다.
그러나 구룡성채와 굴다리 상황은 반대였다.
굴다리로 웡꺼 병력들이 마구 대피하기 시작하면서 난민들이 처음 도착했을 때처럼 구룡성채 주변도 혼란스러워졌다.
이미 각 보스들은 다 죽었는데도 그 사실이 전파되지 않아 각 세력은 아직도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아까 마작을 치던 노인들은 여전히 마작을 치고 있었다.
노인들은 굉음이 연달아 들리자 뚱한 표정으로 복도를 바라보고는 다시 마작을 쳤다. 그들에게는 점수봉의 행방이 중요하지 주변이 어떻게 되건 알 바 아니었다.
그러나 이 건물에는 아직 탈출 못 한 태스크포스 13 팀원들이 있었다.
“팀장님!”
“윤숙희! 괜찮냐!”
윤숙희는 씩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앙앙!
전상영이 데려온 개가 자신도 괜찮다는 듯이 짖었다. 그 주인도 얼굴이 먼지로 시꺼맸지만 무사했다.
“그 중령은?”
“폭발에 휩쓸렸어요. 퓨즈가 끊어져서 고치러 갔는데 그만…….”
늘 이진영과 땍땍댔던 김명중 중령은 진가구가 자폭할 때 폭발에 휩쓸렸다.
육군 요원 두 명도 폭발에 산화했고 이진영은 폭파 현장을 보면서 합장을 했다.
윤숙희와 전상영은 김대현과 유인환이 무사한 걸 보고 서로 얼싸안고 기뻐했다.
그들은 심봉근이 심한 부상을 당했지만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마디씩 걱정어린 악담을 퍼부었다.
그리고 여기에서도 화제는 EV-1이었다.
엑소슈트 츠바이핸더로 개장한 EV-1은 전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더 위압적인 모습으로 바뀌었다.
“아무튼 다들 무사하니 다행이네. 자 그럼 이제 슬슬 이곳을 빠져나가 볼까?”
– 팀장님. 신희정 요원님의 연락입니다.
“이제 비둘기를 날리지 않아도 되는 거구만.”
감미영과 모든 태스크포스 13 사람들은 쓴웃음을 지었다.
– 여어, 다들 무사하신가요?
“그놈의 여어는.”
– 그쪽으로 무장헬기와 틸트로터가 가고 있습니다. 자, 팀장님. 그 대가로 뭘 사주시렵니까?
“아이스크림이요.”
– 아이스크림이요?
“더워서 지금 그게 제일 먹고 싶어요.”
안 그래도 한여름이라 푹푹 찌는 날씨에 다들 광학위장복 차림이라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 아니, 지금 팀장님 소속은 태스크포스 13이라 명령권자는 저예요. 그리고 헬기까지 보내주는데 이러시깁니까?
이진영은 폐허가 된 주변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후후 수석 괄호치고 진 괄호 닫고 그거란 말씀이시죠? 아무튼 잘쌩긴 요원님 뒤는 잘 부탁합니다. ‘해단식’에서는 비싼 술 가져올게요.”
태스크포스 13은 미완의 성공을 거뒀다.
롱꺼와 쎄잉꺼를 체포하지는 못했지만, 이들은 웡꺼와 쎼잉꺼를 자극시켜 충돌시켰고 스스로 자멸하게 만들었다.
태스크포스 13이 없었다면 웡꺼와 쎄잉꺼의 충돌은 훨씬 늦어지고 지금 공해상에서 대기하고 있는 페어차일드는 정말로 쎄잉꺼나 롱꺼와 계약을 체결했을지도 모른다.
타다다다다.
신희정이 보내준 탈출헬기가 접근하고 있었다.
서펜트 공격헬기가 겁도 없이 구룡성채 주변을 뱅글뱅글 돌면서 아직도 남아있는 쎄잉꺼와 웡꺼 병력에게 기총사격을 가했다.
구룡성채의 전투도 흐지부지 끝나기 시작했다. 일단 위층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고 각 조직원들도 굉장한 충격을 받았고 헬기 기총소사에 도망치기 시작했다.
구룡성채, 중화대루 그리고 성망개발공사도 폭격을 피할 수 없었다.
성망개발공사는 합법적인 업체였지만 육군은 헬기를 보내 완전히 박살 내 버렸다.
헬기가 구룡성채에 멈춰서고 태스크포스 13 팀원들은 서둘러 대피했다.
“이젠 당분간 이곳이랑은 바이바이네요! 팀장님! 휴가 며칠까지 쓸 수 있을까요!”
김대현은 헬기에 타면서 악을 쓰며 말했다.
“글쎄다아아! 아직 끝나지 않았어어어!”
“뭐가요오오!”
이진영은 말하지 않았지만 다들 끝나지 않은 것이 뭔지 알았다.
롱꺼 세력은 끝장냈지만 정작 사태를 키운 정 대령과 특별병과번호와는 끝장을 보지 못했다.
이진영은 헬기 위에서 폭발이 연달아 터지는 인천시가지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I got a bad feeling about this.”
헬기에는 스타워즈 팬이 없어서 이진영의 말을 알아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나쁜 예감은 언제나 정확히 들어맞는다.
헬기 전체에 푸른 전류가 휘감기면서 모든 전력계통이 마비되었다. 헬기 조종사도 전기에 감전되면서 ‘메이데이’를 외쳤다.
“제석천!”
제석천뿐만이 아니었다.
성가신 드론이 위잉하고 EV-1과 이진영을 향해 날아오고 옥상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천수관음의 올레인지 저격이 꽂혔다.
EV-1은 이진영에게 보고할 사이도 없이 새로 장비한 하드킬 폭약을 사방으로 뿜어냈다. 이건 천수관음의 공격에 대응하는 장비였다.
튀어 오른 하드킬 폭약이 허공에서 터지면서 거의 마하 2로 내리꽂히는 천수관음의 저격을 막아버렸다.
순간적으로 옥상 위에 있는 인원들은 퍼버버벙 폭약을 발사하며 EV-1이 주변을 폭발시키는 줄 알았다.
– 뭐야 저건. 대포병 사격?
천수관음은 기가 찬다는 듯 허어하는 소리만 냈다.
EV-1의 장비는 하나가 아니었다.
구출대들은 EV-1 전용 장비를 하나씩 장비하고 있었고 지금 각지에 있던 육군 특전단 병사들이나 엑소슈트에서 멋대로 총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브이다! 그 로봇이 통제하고 있어!”
아까 태스크포스 13을 구출할 때는 통신교란 때문에 EV-1이 통제코어가 되어 구출팀의 모든 병기와 시스템을 관제했다.
허무하게 전상영의 폭발로 그 계획이 좌절되나 싶더니 다시 빛을 발했다.
인천 전역에 흩어진 엑소슈트와 헬기 그리고 상공의 제트 전폭기들이 EV-1의 이동포대가 되었다.
쐐애애애액!
미사일이 수없이 내리꽂히며 천수관음의 이동 바이포드 포대를 제거했다.
천수관음이 있는 곳에도 미사일 두 발이 내리꽂히고 엑소슈트 팔라딘의 달걀 같은 전면장갑이 찌그러졌다.
대포병 사격.
EV-1은 날아온 탄자 궤적을 순간적으로 분석하고 그곳에 되레 미사일과 포탄을 먹여버렸다.
천수관음은 이동포대를 모두 잃고 XDR-01 저격모듈만 장비한 채 건물 아래로 뛰어내렸다.
타다다다다!
육군 헬기가 천수관음을 발견하고 기관포와 무유도 로켓을 쏟아낸다.
썩어도 준치라고 천수관음은 저격모듈로 헬기의 무장부분을 쏴버렸고 중장갑 헬기가 꼴사납게 땅에 쳐박혔다.
– 저 로봇은 대체 정체가 뭐야!
이 말을 하고 싶은 건 천수관음뿐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한국군 자산에서 미사일과 레일건이 쏟아져나오고 이진영과 EV-1을 덮치는 나머지 특별병과번호들에게도 공격이 가해졌다.
그러나 특별병과번호는 손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아미타여래는 남아있는 노드허브를 이용해 미사일을 해킹해버렸고 날아오는 탄자는 탁탑천왕과 부동명왕이 쓸어버렸다.
“乱れ雪月花!”
눈송이가 흩날리듯 부동명왕의 검을 타고 주변의 모든 것이 공진하기 시작했다.
아미타 여래는 단순히 관제만 하는 게 아니다.
놈은 뛰어난 연산처리 능력으로 부동명왕의 공진 능력 역시 세심하게 미세조절을 했다. 그 말은 보다 많은 ‘오브젝트’에 공진을 걸 수 있다는 말이었다.
한정된 공간에서 아미타여래의 백업은 ‘신’ 그 이상이었다.
감미영을 비롯해서 놈들에게 겨눈 총들이 공진을 이기지 못하고 퍽퍽퍽 전부 터져나갔다.
모든 사람의 레일건이 박살 나 버렸고 화약식 총기 역시 탄약과 공진주파수가 맞춰지면서 폭발을 일으키거나 총알을 아무 데나 마구잡이로 쏟아낸다.
감미영이 진동하는 아군의 총에 맞아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고 이진영의 레일건도 박살 나버렸다.
놈들을 쏠 무기가 없어졌고 남은 사람들은 특별병과번호에 하나둘 잡혀 쓰러져야 하는 걸까?
윤숙희는 총을 냅다 집어 던지면서 권총을 뽑아 부동명왕을 쏴버렸다. 이내 권총도 슬라이드가 폭발하며 하마터면 윤숙희의 얼굴에 슬라이드가 꽂힐 뻔했다.
윤숙희가 총 한 발을 쏘자마자 그녀의 뒤에서 유인환이 소리를 질렀다.
“누님! 비켜요오오오!”
유인환은 이미 부동명왕, 천수관음과 한 번 크게 붙어봤었다. 유인환은 옥상에 굴러다니는 두꺼운 원통형의 레이더 모듈을 냅다 집어 던졌다.
“대나팔초식!”
언젠가 팀원들이 다 함께 본 쿵푸허슬을 유인환은 너무 재밌게 본 모양이다.
“야, 이 미친놈아! 뭔 놈의 대나팔…….”
김대현은 유인환을 갈구려다가 입을 떡 벌렸다.
영화 속에서는 종이었지만 뻥 뚫린 레이더 모듈이 종 역할을 대신하며 ‘데에에에엥’하고 울리며 공진을 방해했다.
심지어 부동명왕의 공진 능력은 EV-1의 장갑까지 진동시켰지만 유인환의 유인원(?) 짓거리로 부동명왕의 능력이 막혔다.
그러나 아미타여래는 EV-1의 관제 능력이 공진 능력에 흔들린 걸 놓치지 않았다.
제석천의 번개가 부동명왕이 흔들어놓은 각종 오브젝트를 타고 좌라락 파고들면서 눈부시게 반짝였다.
EV-1은 마찬가지로 매니퓰레이터 암을 쳐들어서 제석천과 출력 대 출력으로 맞섰다.
두 개의 전류가 충돌하면서 펑하고 곳곳에서 쇼트가 일어나고 폭탄이 터지는 것처럼 허공에 전자기력으로 떠 있는 물건들이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생각도 못 한 곳에서 전상영이 나타났다. 제석천은 등 뒤에서 나타난 전상영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
– 이, 이건 무슨!
이 존재감이 없는 우울한 중년은 도대체 어떻게 한 건지 플렉스 폭탄 두 개를 들고 제석천의 뒤를 잡았다.
심지어 아미타여래도 이 인간이 폭탄을 들고 이동하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정말 심각한 무존재감이었다.
“번개. 싫어해. 무서워.”
누가 누구더러 무섭다고 해야 할지 모를 판이었다.
플렉스 폭탄이 제석천의 팔에 달라붙고 전상영은 다람쥐처럼 뒤로 데굴데굴 구르면서 폭발시켰다.
쾅!
번개를 뿜어내던 제석천이 폭발에 휩쓸려 옆으로 처박혔다.
보병용 엑소슈트나마 입고 있어서 치명상은 피했지만 팔 한쪽과 쇼크 발생장치가 폭발에 날아갔고 기계가 가득 찬 갈비뼈 프레임이 보였다.
부동명왕의 칼날이 전상영에게 돌아가려는 순간 EV-1이 그 앞을 막아섰다.
타앙!
EV-1만 신경 쓸 게 아니었다. 윤숙희는 침착하게 부동명왕을 노리고 권총을 쐈고 그중 한 발이 성가시게 부동명왕의 칼날에 맞았다.
아미타여래와 EV-1은 보이지 않는 장기를 두는 것처럼 변수들을 읽어냈지만 44팀의 행동들은 너무나 상식 밖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