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276
제276화
폭탄마(?)는 플렉스 폭탄 두 개로 제석천을 박살 내지 않나.
여경은 자동소총을 쓸 수 없는데도 권총으로 악착같이 총을 쏘며 부동명왕의 틈을 만들지 않나.
이 미친놈들은 총을 쓸 수도 없는데 항복은커녕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저항했다.
설월화가 쓸고 나간 자리에는 김대현도 있었다.
김대현은 공진 능력으로 소총이 박살 나자 냅다 주머니에서 ‘슬링’을 꺼내더니 콘크리트를 재서 던져버렸다.
이 시대에 다윗과 골리앗에 나올 법한 슬링이라니? 말이 슬링이지 그냥 돌팔매였다.
임은혜는 김대현의 이 고상한 취미(?)를 늘 탐탁지 않아 했다.
강변에서 슬링으로 돌을 던지는 걸 보고 한심하다는 듯 ‘오빠, 상견례 할 때는 제발 휴일에는 돌 떤지러 나간다고 말하지 마.’하고 신신당부했다.
돌은 길쭉하게 생겼고 불규칙한 궤도를 그리며 부동명왕의 칼날을 때렸다.
태앵!
부동명왕의 칼날이 멋대로 공진하며 진동이 역류했다. 손목, 팔꿈치 어깨 순으로 부동명왕의 유동액이 터져나가며 검은 유동액이 솟구쳤다.
“비켜, 비켜!”
오늘부로 유인환의 별명은 빼도박도 못하고 유인원이었다.
녀석은 박살 난 2연장 미사일 포트를 냅다 미사일째 집어 던졌다. 탁탑천왕은 그걸 분해하려다가 폭발을 일으켰고 펠리컨 박스에도 파편이 처박혔다.
“크하하하하! 이것이 벽력탄(霹靂彈).”
“어디가!”
특별병과번호는 이 기상천외한 미친놈들을 잘도 건드렸다.
아직 임은혜가 빠져서 완전체는 아니었지만 44팀은 육군의 도움 없이도 특별병과번호를 압도해버렸다.
게다가 로봇 등록소에서 싸울 때와 달리 완전체로 아미타여래가 등 뒤에 있는데도 이 모양이었다.
그리고 결정타를 넣는 건 이진영과 EV-1이었다.
이진영도 공진으로 소총이 폭발하며 바닥에 떨어진 ‘은장 피스메이커’를 주워들고 탁탑천왕을 쏴버렸다.
탁탑천왕은 총알을 맞고 비틀거리며 유동액을 주르륵 흘렸고 또다시 아미타 여래와 옥상에 있는 모든 놈들을 향해 EV-1의 관제폭격이 시작되었다.
링로드 아래로 저공비행을 하던 해군 전폭기에서 공대지 미사일이 쏟아져나오고 128개, 아니 그 이상의 표적이 동시 조준되었다.
“뭐, 뭐야 이거! 누, 누가 관제하는 거야!”
항공모함 이순신의 오퍼레이터는 경악했다.
지금 충무공 이순신은 인천 전역의 C5I 시스템을 감당하며 각 공격군의 정보를 업데이트하고 있었다.
그 모니터에 무수한 표적들이 좌라락 떠올랐다.
특별병과번호는 물론이고 웡꺼, 쎄잉꺼의 잔당들이 저항하는 곳도 조준점이 떴다. 함대 인공지능보다 더 굉장한 뭔가가 모든 정보자산과 공격무기를 관제하고 있었다.
– 팀장님.
이진영은 피스메이커를 서부영화의 보안관처럼 한 바퀴 돌리면서 빵하고 입으로 소리를 냈다.
그는 이미 EV-1의 트리거 모듈을 검지로 누르고 있었다.
오늘은 아미타여래까지 포함된 특별병과번호의 완패였다.
놈들이 포진한 곳에 미사일이 수십 발 내리꽂히고 인천 전역의 급소에 미사일과 폭격이 퍼부어졌다.
특별병과번호 놈들의 모습도 그리고 인천시 곳곳도 검은 연기에 휩싸이면서 순간적으로 사라져버렸다.
EV-1은 파일벙커를 뽑으면서 검은 연기 속으로 돌진했다.
그러나 아미타 여래는 바보가 아니었다.
미사일과 헬기에서 날아오는 로켓을 방어하긴 했지만 탁탑천왕, 제석천은 치명상을 입었고 천수관음 역시 저격모듈을 전부 잃었다.
– 이브이 원. 넌 오늘 일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아미타여래와 세 명의 특별병과번호는 투신자살을 하는 사람처럼 옥상에서 뒤로 떨어졌다.
구룡성채 중간에는 탁탑천왕의 드론들이 떠 있었고 드론들은 네 명을 하나하나 받아내면서 안전하게 땅 밑으로 내려갔다.
마치 손오공이 근두운을 타고 내려가는 모양새였다.
EV-1은 놈들을 또다시 조준했다가 대기모드로 되돌아갔다.
– 지하로 내려갔군요. 더 이상 추적해도 소용없을 것 같습니다.
이진영도 EV-1의 등에서 내려서 건물 밑을 바라봤다. 특별병과번호는 구룡성채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오늘 혁혁한 공을 세운 44팀은 하나둘 이진영의 옆으로 다가와 특별병과번호가 사라진 어둠 속을 내려다봤다.
“팀장님 말대로 이대로 쉽게 안 끝나겠군요.”
“그래. 정 대령과 저놈들을 전부 잡기 전까지는…….”
다시 신희정이 파견한 헬기가 다가오고 이진영은 무너져 내린 구룡성채 한쪽과 은색 피스메이커를 노려봤다.
“대체 이건 왜 여기 있는 거지?”
x7 롱꺼(龍哥)
‘피의 밤’ 다음날 오후 7시.
인천 시내는 완전히 대한민국의 수중에 떨어졌다.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인천을 점령했던 난민들은 썰물 빠져나가듯 월미도로 도망쳤다.
인천시가지 곳곳에는 온갖 오물과 난민들이 남긴 잡동사니, 각종 가재도구 등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정부는 인천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설정하고 공공 로봇을 대량으로 투입해서 시가지를 정리했다.
일단 폭격이 휩쓸고 지나간 거리는 그나마 거리꼴을 갖췄지만, 난민들이 멋대로 침입한 소드타워나 각종 시설물, 주거지구 등은 여전히 엉망진창이었다.
이걸 전부 다 복구하려면 한두 달 만으로는 부족했다.
인천 시내 수복 선언 이후로 바빠진 건 경찰서와 주민센터 같은 관공서였다.
인천에서 대피한 사람들이 부천 축구장으로 몰려와서 아우성을 쳤다.
뭐가 없어졌다느니, 집 복구하는 데 국가 지원금은 없냐느니.
마침 인천시청은 근처에 있는 도서관에서 업무를 대신했고 마치 무슨 축구 빅게임이 열리는 날 마냥 축구장과 도서관이 사람들로 미어터졌다.
그러나 아직 전쟁이 끝난 건 아니었다.
인천시가지 곳곳에는 아직도 웡꺼 패거리 일부가 건물을 점거하고 무력 시위 중이었다.
7만이나 되는 병력이 전부 월미도로 돌아갈 수는 없었고 놈들은 지하로 숨어들어 러다이트 계 테러리스트와 연계했다.
그러나 이들이 ‘보급’을 받을 곳이 막막해졌다.
육군은 내친김에 중화대루까지 들어가서 방어선을 만들었고 난민들은 전보다 좁은 영역으로 내몰렸다.
대한민국 정부의 일처리는 전혀 깔끔하지 못했다.
감히 인천을 무력으로 점거한 놈들을 친절하게 대해 줄 리가 만무했다.
일단 여권이 없는 사람들은 전부 중화대루 밖으로 쫓겨났다.
텐트? 임시거주구조물? 이런 건 전혀 꿈도 꿀 수 없었다.
난민 기구나 자선단체에서 난민들을 돕긴 했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은 더 이상 난민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난민들은 더 철저하게 차별을 받았고 심지어 남자들은 웡꺼 조직원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았다.
문신을 한 사람은 경찰에 끌려가서 초연검사나 마약검사를 받았고 바로 중화대루 밖으로 끌려 나갔다.
난민들이 아우성을 쳤지만 아무도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건 감정의 문제였다.
롱꺼 세력이 인천을 점거하는 동안 마치 점령군처럼 거들먹거렸고 사람들은 TV에서 그 광경을 보고 단단히 속이 뒤틀렸다.
덕분에 늘어난 건 난민 대상 증오범죄였다.
사람들은 ‘전범사냥’을 하러 간다면서 철망 펜스를 넘고 웡꺼 놈들이 했던 짓을 고대로 반복했다.
난민들이 속절없이 죽어 나가는데도 정부는 방관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방관한 것만은 아니었다.
“증오의 연쇄를 끊어야 합니다! 난민등록을 다시 받고 이들에게 최소한의 인도적 지원을 해줘야 합니다!”
만약 다른 정치인들이 말했다면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었을 테지만 이 말을 한 사람은 이세화였다.
중화대루에서 탈출하는 이세화의 모습은 여러 번 TV 화면을 탔고 한때는 난민폭동을 쳐부수는 참 정치인으로 한창 포장되었다.
거기에 참전용사이자 구룡의 눈의 한 축으로서 난민에게 죽을 뻔했던 그녀가 하는 말이니 사람들은 대놓고 반박은 못 했다.
다만 웡꺼 놈들의 점령지였던 인천시에서 안보문명당과 이세화의 지지율은 곤두박질쳤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세화는 그저 말만 앞세우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UN 난민기구에 출석해서 적극적으로 난민을 도와달라고 말하기도 했고 마찰이 빚어지는 중화대루 근처에 후보 사무실을 만들었다.
이곳에 한국 유권자가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난민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 보복 중단과 한국 정부의 개입을 촉구하기 위해서라도 그곳에서 버텼다. 선거 따위는 그녀에게 알 바 아니었다.
무차별 보복의 희생양 중에는 난민 아이들도 있었고 ‘미시시피 버닝’의 한 장면처럼 남자아이의 성기를 자르는 미친놈들도 많았다.
난민들도 이세화가 달가울 리 없었고 결국 이세화를 싫어하는 극단적 테러리스트들과 난민 모두에게 목숨의 위협을 받았지만, 그녀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세화는 더운 여름날 곳곳에서 시체가 썩어가는 난민지구를 돌아보면서 난민지구의 적나라한 실상을 알렸다.
유력한 대선후보인 이세화가 저러고 다니니 정부도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대규모 호위병력을 파견해서 그녀를 호위하고 난민등록을 새로 받아주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안보문명당은 간위예 전쟁 난민 특별법을 개정했다.
개정된 부분은 딱 하나였다.
제 45조(난민 지원시설의 운영 등) ①법무부장관은 제 24조, 제 39조에서 정하는 업무등을 효율적으로 설치하기 위하여 난민지원시설을 설치하여 운영할 수 있다.
②법무부 장관은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1항의 업무를 민간에게 위탁할 수 있다. 법무부 장관은 1항의 업무를 법무부 소속의 난민등록소 및 난민관리 사무소에 위임한다. (21XX. 7. 29 개정.)
롱꺼가 분노하고 3차까지 난민들이 봉기한 것은 그 원인을 따지자면 민간사업자의 난민등록 때문이었다.
업자들은 대충 도급에 도급을 받아 푼돈으로 난민들을 대충 관리했고 그 불만이 폭발해 봉기로 이어졌다.
이제 난민등록의 책임은 대한민국 정부가 지게 되었다.
겨우 난민등록의 위임사무를 바꾸는 개정이었지만 특별법 개정으로도 말이 많았다.
아직 난민들의 위치는 불안정했고 자칫 잘못하면 난민들을 전부 대한민국이 떠안을 수도 있었다.
지금 기본소득을 받는 국민들도 국가가 생활 수준을 유지하는 데 허덕이는 판에 230만 난민들까지 가세한다면 답이 없었다.
이세화 등 난민 온건파는 정부와의 협상으로 이들을 국민으로 받아들이는 절차를 제안했지만 그건 봉기를 일으키기 전 상황이었다.
이제 그런 극약처방은 통하지 않았고 어떻게든 난민과 공존은 해야 했다.
그 첫걸음이 바로 난민등록이었다.
수많은 공공 로봇이 난민등록을 받아주고 난민지구의 오물과 사체처리를 도왔다.
공공 로봇 투입은 막대한 비용이 들었지만, 이세화가 UN도 들쑤시는 바람에 나라의 체면을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
이세화가 총대를 메고 나서니 다른 인권단체나 각종 자선단체도 다시 적극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의료 로봇들부터 수많은 단체들의 도움이 잇따르면서 증오로 얼룩진 난민지구에도 한 줄기 희망이 생겼다.
난민들은 처음 등록할 때처럼 길게 줄을 서지도 않았고 난민번호를 받아 세계 자선단체들의 인도적인 지원을 받았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피의 밤 때 웡꺼, 쎄잉꺼, 롱꺼 이 대보스 세 명이 전부 죽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껏 난민을 대표했던 조폭들이 전부 죽으며 그 자리를 대신한 건 난민들의 대표부였다.
난민들은 난민사무소가 여는 것과 동시에 자신들의 교섭단체를 만들었다.
UN은 분쟁지역에서 늘 그러는 것처럼 난민들의 총선을 도왔고 난민지구에서는 처음으로 자신들의 대표를 뽑는 선거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