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277
제277화
그 결과로 민의원들이 뽑히고 그들이 대한민국과 난민 지위에 관해 교섭했다.
하지만 마냥 일이 좋게 풀린 것만은 아니었다.
아직 ‘전범’들에 대한 처분이 남아있었다.
대한민국은 일관적으로 단순가담자들은 처벌하지 않고 간부 이상은 처벌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게 잘 지켜질 리가 없었다.
웡롱의 지휘관 배덕환은 난민등록을 거부하고 또다시 난민들 사이에 기생충처럼 숨었다.
또한 롱꺼의 2인자 탁일항도 중상을 당하긴 했지만, 아직 살아서 어딘가에서 암약한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난민들을 독버섯처럼 지배했던 놈들이 아직도 그들 사이에 남이 있었다.
가족과 혈연관계로 얽힌 난민조폭의 특성상 이들을 완전히 난민과 구분하는 건 힘들었다.
난민들은 놈들의 잔존 세력들을 숨겨줬다.
예전처럼 대놓고 웡꺼네, 쎄잉꺼네 버젓이 완장을 차고 돌아다니지는 못하지만, 놈들은 분명 굴다리 어둠 어딘가에 남아있었다.
결국 이득을 본 건 페어차일드였다.
페어차일드는 쎄잉꺼의 죽음으로 주인을 잃은 성망개발공사를 그대로 인수 합병했고 대한민국 육군이 장악한 중화대루까지 인수해서 ‘올드차이나’를 재건하고 있었다.
그리고 독버섯처럼 자란 난민조폭들이 힘을 잃으면서 서서히 링로드 개발의 성과가 인천과 서울 서부에도 닿기 시작했다.
가개설된 링로드의 전기가 마침내 국가 송전망과 제대로 연결되었다.
롱꺼가 있을 때도 연결되느니 마느니 하는 사업에는 수많은 귀빈들이 몰렸고 그중에는 페어차일드의 가독도 있었다.
“제기랄, 이왕 개발시켜주는 거 여기도 개발시켜주지.”
이진영은 이세화와 난민 문제, 페어차일드의 소식이 쓰여 있는 종이신문을 툭하고 책상 위로 던졌다.
축구장에서 셋방살이를 하던 중부서 사람들도 8월 초순 원래 중부서로 되돌아왔다.
지금 중부서는 공공 로봇들이 한창 인테리어 작업 중이었고 여기저기 인간 인부들이 마감공사를 하는 모습도 보였다.
조폭들의 인천시 점거는 경제에 악영향만 끼친 건 아니었다. 중부서 곳곳에도 공공인력의 빈 곳을 인간 인부들이 채우고 있었다.
아무래도 옛 난민지구까지 정비하려니 로봇 일꾼들만으로는 일손이 모자랐다.
정부에서는 로봇을 더 찍어내봤자 그걸 관리할 여력도 없으니 그냥 임시직이나마 사람을 고용했다.
어차피 당분간 돈은 충분했다.
페어차일드 개발과 궤도 엘리베이터 컨소시엄은 막대한 돈을 투자하기로 인천시와 양해각서를 체결했고 대한민국 정부와도 막판 협상 중이었다.
난민 조폭들이 독점하고 있던 링로드라는 달콤한 열매가 대한민국에 아낌없이 뿌려질 예정이었다.
이진영은 전보다 더 넓어진 강력전담부 행거를 보면서 한숨부터 쉬었다.
중부서가 더 넓어진다는 건 좋은 의미가 아니었다.
아직 2백만에 달하는 난민들은 온갖 사고를 치고 있었고, 거기에 링로드 공사와 난민지구 개발을 위해 온갖 뜨내기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딱히 거주지가 없는데도 일단 텐트부터 치고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을 난민으로 오해하고 난민 사냥꾼들이 총으로 쏴버리거나 역으로 사냥꾼들이 죽기도 했다.
롱꺼가 사라졌다고 인간의 본성이 갑자기 꽃밭으로 가득한 평화주의적 마인드로 바뀌는 건 아니었다.
거기에 러다이트 테러리스트들까지 웡꺼의 유산을 물려받으며 말썽이었다.
중부서만 해도 부천 운동장에서 이사한 후 두 번이나 러다이트 테러리스트들에게 공격당했다.
놈들은 롱꺼 놈들이 점령할 때는 잠잠했다가 로봇들이 대규모로 복구 현장에 투입되자 그걸 문제 삼았다.
놈들은 이것이 로봇 정부 도입의 신호탄이라며 주변에 사람들이 있건 없건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테러리스트들이 쓰는 방식도 과격하고 다양해졌다. 원격 조종 로봇부터 자살폭탄테러까지.
아직도 학생들이 점거 중인 서울대를 거점으로 전국 대학으로 러다이트 계가 뻗어나가면서 교육받은 테러리스트들이 이곳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복구하는 로봇을 폭파시키는 건 러다이트 테러리스트들에게는 굉장히 보기 좋은 장면이었다.
이들은 그 광경을 중계하며 전 세계에서 도네이션을 받았다.
정작 로봇들은 난민들을 위해 시체를 치우고 오물을 치우고 있는데 인간해방, 인간을 위한다는 놈들이 로봇을 공격하면서 그 작업이 더뎌지고 있었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이들 격렬 러다이트 계열은 세상을 유치하게 이분법적으로 파악하고 로봇을 옹호하는 놈들은 전부 나쁜 놈이라는 식이었다.
관내가 이런 상황이니 인천 중부서의 강력전담부가 점점 더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경찰청은 조폭 잔당과 각종 범죄 진압을 위해 완전 편제로 45팀이나 배정했다.
예전에는 44팀만 떨렁 40번 대 팀이었지만 이제는 번호 앞뒤로 꽉꽉 채워서 배정되었다.
그리고 이진영의 위치도 살짝 변동이 있었다.
지금 그는 오랜만에 정복을 입은 채 의자에 껄렁하게 앉아 있었다.
외부에는 발표할 수는 없지만 태스크포스 13의 공은 분명했다.
비록 진가구가 자폭하면서 롱꺼 확보에는 실패했지만 웡꺼, 쎄잉꺼를 이간질시켜서 세잉꺼가 칼춤을 추게 만들었다.
거기에 전상영은 중화대루, 소드타워에 이어 구룡성채까지 깔끔하게 폭파시키며 놈들의 거점을 완전히 분쇄해버렸다.
3개의 탑을 부순 자(?).
전상영 본인이 공공연하게 하고 다니는 말이다.
구룡성채는 폭발 후 충격으로 아예 무너져 내렸고 이제 난민 조폭들이 기대어 성장할만한 곳이 사라졌다.
그 공적으로 태스크포스 13에 참가한 44팀은 전원 1계급 특진이 확정되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역적으로 몰려 본청 내사 9팀에게 시달리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이만저만한 공이 아니었다.
“오우, 이진영 경감님. 췅성.”
유인환도 정복차림으로 사무실에 들어오면서 대충 경례를 했다.
“이 유인원 시끼 넌 정복도 막 터질라 그러냐?”
“근육의 힘이라고 말씀해주십쇼. 그리고 유인원이 뭡니까? 곧 후임도 들어올 텐데.”
“시끄러. 니 후임한테는 내가 너의 치부를…….”
그때 중부서 강력부장이 그의 뒤를 스쳐 지나가며 말했다.
“우리 이진영이 특별대응팀장님 밑에 있는 놈들에게 내가 치부를 말할까아, 말까아아.”
유인환은 웃음을 터뜨렸고 이진영은 이마에 손을 올리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현재 강력부장에게 이진영은 할 말이 없었다.
“어? 팀장님! 오랜만이에요오오!”
“그래, 오랜만이다. 임은혜. 몸은 괜찮냐?”
“쳇, 저 없을 때 다들 활약하는 거 보고 몸이 근질근질 했당게요.”
“활약은 무슨 다들 죽을 뻔했지. 아, 은혜 너는 이번에 대현이랑 본청으로 간다며?”
“예…….”
임은혜는 말은 안 했지만 중화대루의 탈출상황이 트라우마로 남았다.
노란 완장을 차고 밀려드는 수많은 웡꺼 놈들.
유인환이나 전상영 같은 괴물들이 미친놈들이지 보통 사람들이라면 현직에 도저히 돌아오지 못할 충격이었다.
김대현이 여자친구의 손을 잡고 말했다.
“그래도 팀장님 보러 종종 올게요.”
“돼얐다. 나 안 보러 와도 되니까. 잘들 살아. 함께해서 드러웠고 다시는 보지 말자.”
두 사람은 그 말을 듣고 깔깔 웃었다.
이 귀여운 커플은 이민호 국장에 의해 본청 안보수사국으로 픽업되었다.
각종 협상 상황에서 이진영은 김대현의 도움을 받았고 무엇보다 마스코트 임은혜가 전출을 간다니 아쉬웠지만, 굳이 떠나는 사람을 붙잡지는 않았다.
유인환도 선임인 김대현과 아쉽다는 듯 포옹을 하며 작별 인사를 나눴다.
“후후, 팀원들 떠난다고 팀장님이 아쉬워하는 걸 보니 저도 전출 갈 걸 그랬어요?”
“윤숙희 대원. 자네가 없어지면 우리 팀 술은 누가 먹나?”
“누가 먹긴요. 전상영 선배가 다 먹겠죠.”
앙앙!
전상영의 포메라니안이 맞다는 듯 뒤에서 짖었다.
윤숙희와 전상영은 중부서에 남아있기로 결정했다. 특히 전상영은 정보국 통합부서 폭발물반에서 스카웃 제의가 왔지만 바로 거절했다.
심지어 이 괴인은 승진까지 거부했다.
경위로 승진하면 팀을 떠안아야 하고 자기는 그냥 현장직이 좋다는 이유였다.
결국 윤숙희가 경위로 승진하며 44팀 팀장을 꿰찼고 새로 팀원들이 배정되었다. 그녀는 치마 정복이 어색한지 계속 치맛단을 만지작거렸다.
오늘은 올봄 결성된 이래 수많은 전설을 만든 44팀이 마지막으로 모이는 날이었다.
김상현은 없지만 새로 배속된 심봉근이 팔에 칭칭 붕대를 감고 나타났다. 김대현이 의외라는 듯 심봉근에게 물었다.
“심 선배는 전출 안 간다메요?”
“어, 술 취하고 대장님 차를 박았다니까? 진짜였어. 너 같으면 블랙스와트에서 부르겠냐?”
이 녀석도 괴짜는 괴짜였다.
원래는 태스크포스 13에 대비해 엑소슈트 파일럿으로 배속받았고 다시 블랙스와트로 돌아가는 게 당연하다 싶었다.
그러나 이 괴짜는 이진영과 월미도가 좋다며 중부서에 남기로 했다.
원래 중부서 강력전담부는 일손이 부족했고 다른 지방에서 차출된 형사들은 이곳을 ‘무덤’ 혹은 ‘관짝’이라고 불렀다.
전에 이진영이 중부지청 검사에게 말한 것처럼 검사나 형사나 다들 이곳에서 공을 세우고 얼른 월미도를 떠나려고 했다.
“그나저나 팀장님이야말로 이번에는 이민호 국장님 따라 본청으로 가시는 줄 알았는데요?”
이진영은 담배를 입에 물고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드디어 경감으로 승진하긴 했지만, 여전히 소속은 중부서였고 희한한 직함을 하나 달고 있었다.
특별대응팀장.
원래 중부서 강력부 편제는 계급이 경감인 강력부장 밑에 각 대응팀이 좌라락 배치되는 형태였다.
그러나 경찰의 악명높은 인사적체도 적체려니와, 복합적으로 변해가는 범죄 상황이나 완전 편제되기 시작하는 대응팀을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특별대응팀은 사건에 따라 각 대응팀 몇 개를 통합해서 사건을 처리하는 부서였다.
그동안 44팀이 다룬 사건은 공안사건부터 성폭행사건까지 다양했고 이런 다양한 사건은 제각각의 분야에 스페셜리스트였던 44팀 인원들이 힘을 합쳐 해결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경찰은 복합적인 사건에 대응하기 위해 첫 특별대응팀을 발족시키고 첫 팀장으로 이진영을 임명했다.
그러나 현장 반응은 지붕 위에 지붕 혹은 사족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사실상 이진영은 작은 강력전담부장으로 골치 아픈 사건들을 해결하는 해결사였다.
그 때문에 아직 출범하지도 않은 특별대응팀을 ‘족발 특대짜’, ‘특별특별팀’, ‘뭔가 특별한 집’ 뭐 이런 식으로 놀리기도 했다.
일단 윤숙희의 44팀은 특별대응팀에 배속된 상시 대응팀이고 각 사건에 따라 이진영은 각각의 사건에 특화된 대응팀을 뽑아 하나 혹은 복수의 사건을 쫓게 된다.
결국 현장 팀장으로서 이진영은 달라진 건 거의 없었고 일거리만 많아진 것이다. 가장 신난 사람은 강력전담부장이었다.
“오, 특대팀. 족발 특대자로 하나로 부탁해요오오.”
“거 부장님 같은 경감끼리 그러지 맙시다. 쫌.”
“어허이. 지금 개기시는 건가? 이진영이 팀장?”
이진영은 워낙 쌓아놓은 업보가 많은지라 이죽거리는 강력부장에게 더 할 말이 없었다.
“아무튼 다들 가자.”
강력부장은 옛 44팀 팀원들에게 힘차게 말했다.
진급식 및 포상식 준비는 다 끝났고 미리 줄을 맞춰놓은 의자에 앉기만 하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