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278
제278화
시상식은 새로 바뀐 경찰청장이 직접 나와서 시상했다.
테스크포스 13은 극비사항이라 대충 에둘러서 ‘경찰사회를 위해 헌신한’이라는 문구로 바뀌었다.
44팀 인원들이 훈장을 받고 상장을 받을 때마다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웡꺼가 죽고 중부서도 많이 바뀌었다.
이제 형사들에게 돈을 줄 사람은 없었고 인사도 많이 물갈이되며 새로운 인천, 새로운 중부서가 발족하는 날이나 다를 바 없었다.
단상 위에서 강력부장은 차례로 혁혁한 공을 세운 44팀의 명단을 호명했다.
“이진영 경감 단상 앞으로…… 어? 뭐라고? 없다고? 이진영이? 이진영이 어딨어?”
강력부장은 사회를 하다가 말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정복을 입고 얌전히 앉아 있어야 할 이진영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 * *
“거 심보 한번 고약하십니다. 딱 상 받을 고때 부르시다니.”
“하하하, 제 일정이 쪼끔 바빠서.”
“그래서 언제 우리 세화랑 일정 맞춰서 아기는 만들 건데요? 둘 다 바빠서 이거 원.”
신희정은 술을 뿜었다.
“거 쫌. 고만 놀리면 안 돼요?”
“흐흐흐 놀리는 재미가 있다보니. 왜요 또 이세화 선배한테 일러바치시게?”
놀림을 받으면서도 신희정은 킬킬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나저나. 롱꺼의 정체가 그 사람이었다니.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이진영은 말없이 탁자 위에 술을 따랐다.
두 사람은 월미도역 빈 노점 앞에 앉아 있었다.
등록번호를 받은 난민들은 일터인 노점으로 되돌아 와 또다시 노점 주변은 시끌벅적했지만, 딤섬과 홍소우육면을 팔던 이 가게는 비어 있었다.
주인장인 노인도 보이지 않았다.
“롱꺼는 계속 날 지켜보고 있었군요.”
“예, 등잔 밑이 어둡다는 게 이 말이군요.”
이진영도 진가구가 자폭할 때가 돼서야 롱꺼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롱꺼는 이진영이 출근하거나 점심에 꼭 들르던 이 가게의 주인, 바로 등이 굽은 그 노인이었다.
230만 난민의 정점에 선 사람이 중부서와 가까운 곳에서 국수를 삶고 있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이진영은 그것도 모르고 온갖 사건이나 경조사를 이곳에서 이야기했다.
롱꺼는 이진영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고 그의 인간 됨됨이를 알았기에 이진영을 다른 보스들이 죽이지 못하게 막았다.
두 사람은 주인도 없고 부글부글 끊는 면수나 육수 솥도 없는 텅 빈 가게에서 공부가주만 기울였다.
생각해보면 이딴 노점에 진짜 공부가주가 턱턱 나오는 것부터가 이상한 일이었다.
이진영은 롱꺼가 마지막으로 남긴 술을 신희정과 기울이고 있었다.
공공 로봇이 이 노점을 곧 헐 거라고 말했고 신희정은 부랴부랴 시상식이 한창인 이진영을 불러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술을 기울이려고 했다.
이 술은 롱꺼가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는지 마지막으로 이진영에게 남긴 술이었고, 뚜껑에는 이진영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이진영이 말했다.
“결국 롱꺼는 뭘 원한 걸까요?”
“아마 남미식 카르텔이었을 거에요.”
“남미식이요?”
“구룡의 눈 계획은 1단계였어요. 롱꺼가 폐병으로 건강이 나빠지지 않았다면 아마 웡꺼의 돈을 받은 국회의원들이 다수 탄생했겠지요.”
“이런 제기랄. 마약 조직이 콜롬비아나 멕시코 일부 지역을 집어삼킨 바로 그 방법이었군요.”
“예.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개자식들은 정치권에도 가득하니까요. 난민에 호의적이지 않은 국회의원을 날리고, 구룡의 눈처럼 암살로 다른 후보들도 자기검열을 하게 만들고 그다음은 내후년 있을 지방자치단체 선거였겠죠.”
“인천시장에 경기도지사까지 깡패 새끼들 입맛에 맞는 놈들로 갈아치우면 그것도 골치 아파지겠군요. 실제적인 행정은 그 양반들이 하는 거니까.”
“그것 뿐만이 아니에요. 놈들은 구자연 검사까지 놈들의 살생부에 올려놨어요. 카르텔처럼 놈들을 기소할 정의로운 판사와 검사도 공포에 질리게 만드는 거였겠지요.”
담력이 센 이진영도 그 대목에서 오한을 느끼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태스크포스 13이 투입된 타이밍이 아주 좋았어요. 만약 시간을 조금만 더 끌었다면, 그리고 롱꺼가 더 오래 살았다면 아마 인천도…….”
신희정도 두려움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정보국은 구룡성채에 남겨진 정보를 바탕으로 구룡의 눈, 24봉황의 날개 이런 롱꺼의 작전들을 복원해냈다.
롱꺼가 더 오래 살았다면.
쎄잉꺼의 아집이나 웡꺼의 폭력적인 면까지 설득하며 대한민국 인천을 남미 마약조직 카르텔의 도시처럼 만드는 것도 마냥 꿈같은 소리는 아니었다.
마약 카르텔들은 자신들을 기소할만한 검사들을 전부 죽이고 높은 형량을 내리는 판사들도 전부 죽였다.
심지어는 그 가족까지 잔인하게 죽이며 다른 검사나 판사에게 ‘잘 선택하라.’라는 메시지를 남기기도 한다.
롱꺼는 웡꺼의 무작정 봉기를 통한 무장 국가성립론이나 쎄잉꺼의 기업을 통한 난민 지위 향상 따위가 아닌, 가장 현실적인 방법으로 월미도와 인천에서의 난민들의 위치를 확고히 하려고 했다.
한국의 부패한 정치가들이 롱꺼에게 속속 충성을 맹세하고 그들의 약점을 바탕으로 새로운 형태의 난민통치기구를 대한민국에서 입법한다.
아마 이것이 롱꺼의 최종적인 목표였을 것이다.
무엇보다 롱꺼에게는 그 작전을 실행할 막대한 인력과 자금력이 있었다.
거기에 페어차일드의 뒷배까지 더해진다면 또 모를 일이었다.
“도대체 롱꺼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모르겠군요.”
웡꺼나 쎄잉꺼는 얼굴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경력 정도는 알려져 있다.
쎄잉꺼와 웡꺼는 둘 다 광저우 대학살이 벌어질 때 인민해방군의 장교들이었다.
그들은 원래 있었던 군사 조직을 난민지구에서도 그대로 유지하며 조폭이 되었다.
하지만 롱꺼의 경력은 늘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그때 신희정은 난민등록카드 사본을 꺼냈다.
“그 서류 주머니 예전부터 생각했는데 도라에몽의 요술 주머니 같다니까요?”
“흐흐, 대나무 헬리콥터는 없지만 말이죠.”
이진영은 난민번호와 자세한 경력이 적힌 난민카드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롱꺼의 정체는 물론이고 그 경력은 이진영을 황당하게 만들었다.
“대학교수? 대학교수가 조폭이었다고요?”
“본명 용운(龍雲). 거기에는 무슨 과인지 안 나왔지만, 나중에 조사해 본 바로는 ‘행동과학’에 관한 권위자였다더군요.”
“행동과학이요?”
“인간이 어떻게 행동할지 혹은 인간집단이 어떻게 변모할지 예측하는 학문이라더군요. 저도 이번에 처음 들었어요. 동업자가 알려주더군요.”
신희정은 CIA의 부속 연구소인 ‘랭글리 행동과학연구소’의 명함을 꺼내서 이진영에게 보여줬다.
행동과학? 랭글리, CIA 그리고 행동과학연구소?
어딘지 수상한 냄새가 풀풀 풍겼다.
이진영은 카드와 명함을 바라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롱꺼-용운은 늘 웡꺼와 쎄잉꺼의 예측을 뛰어넘는 움직임으로 두 조직을 압도하며 난민의 정점에 올랐다.
“그리고 이건 CIA의 선물. 용운은 북중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쫓고 있던 사람이에요. ‘봉신공정(封神工程)’하고 관계된 인물이라던가?”
“봉신공정은 또 뭐에요?”
“북중국놈들의 헛짓거리입니다. 초능력이 어쩌고저쩌고. 저도 보고서를 읽다가 워낙 말도 안 되는 소리라 그냥 넘겨버렸습니다. 알잖아요? MK울트라.”
초능력이라는 말에 이진영도 눈썹을 찡그렸다.
MK울트라는 미국 중앙정보국 CIA의 가장 뼈아픈 삽질이었다.
냉전시대 CIA는 소련의 미사일 기지 등 비밀시설을 알아내려고 원격투시 초능력자를 고용하거나 초능력자를 양성한다고 한바탕 난리를 쳤다.
그러나 나중에 비밀이 해금된 결과 MK울트라는 그저 LSD라는 기가 막히는 마약을 만들어 냈을 뿐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수상쩍은 행동과학연구소.
미국과 중국에게 쫓기던 대학교수.
초능력 양산계획 MK울트라.
그리고 정 대령이 롱꺼에게 꼼짝 못 하고 당하기만 했던 이유.
정 대령은 왜 롱꺼가 죽기 전까지 감히 그를 거스르지 못했을까?
긴고아도 긴고아지만 정 대령은 심지어 롱꺼에게 충성을 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이진영은 문득 롱꺼가 죽기 직전 ‘코피를 흘리고 있는’ 장면이 떠올랐다.
“요원님. 에이…… 아니겠지요?”
“음…… 뭐. 그게 맞겠지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말이죠. 상식적으로.”
신희정과 이진영은 주어와 서술어를 다 빼고 말했지만 서로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들었다.
이진영은 마지막으로 롱꺼-용운의 난민등록카드를 노려봤다.
“적어도 비밀 하나는 풀렸군요.”
이진영은 롱꺼의 난민번호를 손으로 짚었다.
“난민번호 0000041.”
이번에는 신희정이 고개를 갸웃했다.
“롱꺼의 난민번호가 왜요?”
“롱꺼는 죽기 전 난민등록카드를 가지고 있었어요. 번호는 0000042. 그리고 그 카드를 들고 난민등록을 위해 몰린 난민들에 의해 밟혀죽은 아이의 시체라고 말했어요.”
“아…. 그러고보니.”
이진영은 그 단편적인 사실과 번호의 숫자로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냈다.
“롱꺼도 그 아이를 밟아 죽인 어른 중에 한 명이었어요. 방한복과 이불, 텐트를 받으려고 아우성치는 와중에 아이가 깔려 죽지만…….”
난민등록소의 참극은 TV로 방영되었고 이진영이나 신희정도 익히 알고 있었다.
신희정은 씁쓸했는지 술을 들이켜다 동작이 멈췄다.
“롱꺼가 그동안 왜 팀장님을 죽이지 않았는지 알겠어요.”
“예?”
“류모성 사건.”
신희정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같은 난민의 아이를 밟아 죽였지만, 팀장님은 난민 아이를 구하기 위해 중화대루로 쳐들어갔잖아요. 분명 그 모습을 보고 양심에 거리꼈던 거예요.”
이진영의 눈앞에 문득 롱꺼가 봤던 광경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눈이 내리는 와중에 사방에서 사람들이 아우성을 치고 이리저리 밀리다가 아이 하나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깔려 죽는다. 롱꺼는 방한복과 즉석밥 한 상자를 들고 미소를 지으며 나왔다가 노란 난민카드를 들고 깔려 죽은 아이의 시체를 발견한다.
두 사람의 난민카드는 41번 42번, 바로 붙어있었고 롱꺼는 이성을 잃은 자신이 무슨 추악한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는다.
이진영도 씁쓸함을 참지 못하고 롱꺼가 남긴 술을 털어 넣었다.
“아무튼 롱꺼는 죽었고. 이제 다 끝났군요. 조폭들의 치세도. 월미도의 혼돈도.”
“이진영 팀장님. 아직 다 끝난 건 아니에요.”
“정 대령과 특별병과번호 말씀이시군요.”
신희정은 미소를 지었다.
“대체 마이크로웍스는 무슨 짓을 한 거람? 이브이 원과 44팀이 하나하나 놈들을 박살 낼 때는 저도 환호성을 내질렀다니까요? 아, 그러고 보니 이브이가 안 보이네요?”
신희정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진영이 상을 받는 날이니 분명 EV-1도 파트너 옆에 있어야 할 테지만 검은 프레임의 로봇은 보이지 않았다.
“아, 그 녀석 송전망 개통 행사에 갔어요.”
“예?”
“주인은 마이크로웍스니. 주인이 달라니 별수 있나요? 어차피 오늘은 시상식밖에는 안 하고.”
신희정은 진한 눈썹을 구기며 술잔을 털어 넣었다.
“제기랄, 대기업끼리 싸우고 있군요. 그것도 결국에는 돈 문제에요.”
“돈 문제라뇨?”
“번번이 페어차일드의 돈벌이를 마이크로웍스의 이브이가 방해한 꼴이잖아요?”
신희정은 주변을 둘러보며 작게 말했다.
“마이크로웍스도 신인천개발공사에 손을 댄다는 소문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