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281
제281화
8부 병과번호 44418
제 1 특수작전 전투 적용단(SOCAG-Special Operations Combat Application Group) 예규
제 2조-(용어의 정의)이 예규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SOCAG의 ‘특수작전’은 육군 특수전 지원단의 편제에 따르지 않는 작전으로서 대통령, 혹은 육군참모총장 직접발령의 독립특수작전을 뜻한다.
2. SOCAG의 지원자는 특수작전 투입에 앞서 신체개조 등 처분에 동의한 자를 말한다.
3. (생략)
제 4조-(작전목적) SOCAG의 작전은 육군 작전사령부의 지휘를 받지 않으며 완벽한 독립부대로서 대통령, 육군참모총장 등 명령권자의 명령에만 따른다.
제 17조-(병과번호의 부여)모든 지원자는 SOCAG에 소속된 때로부터 기 부여된 군번과 병과번호가 말소되고 새로운 군번과 병과번호를 부여받는다.
x1 좋은 시간을 보냅시다(Let the good time roll).
추석이 내일모레였지만 늦여름 더위가 보통이 아니다.
한낮의 푹푹 찌는 더위가 사람을 띵하게 만든다.
중부서는 아직도 인테리어 공사 중이었고 하필 강력부 행어에 에어컨 설치가 늦어지면서 곳곳에서 공장용 대형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형사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잡아 온 범인들을 다그치거나 책상에 늘어져 세월아 네월아 근무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진영도 자신의 사무실을 나와 대형선풍기 앞에서 전의자 두 개를 붙여놓고 누운 채 아이스티를 마시고 있었다.
올여름이 어찌나 더웠는지 그는 트레이드 마크인 스카잔 점퍼마저 벗어 던지고 반팔티와 반바지 차림에 쓰레빠를 끌고 다녔다.
높으신 양반들은 ‘작은’ 강력부장이 저러고 다니니 중부서 애들이 근무태도나 복장 상태가 엉망이라며 난리였다.
엄밀히 따지면 이진영도 이제 경찰 간부로서 위엄과 체통을 위해 서에서는 경찰정복을 입어야 하지만 그는 그딴 건 아랑곳하지 않았다.
“특장님! 냉면 왔슴다!”
유인환의 부름에 이진영은 좀비처럼 상반신을 벌떡 일으켰다.
그의 주변에 축 늘어져 있던 44팀이나 23팀 팀원들도 좀비가 달려들 듯 배달음식통에 달려들었다.
“야 임마들아! 물냉 내 거라고! 비냉 시키고 물냉 가져간 시끼 누구야?”
이진영은 뒤늦게 인간 배달부에게 왔지만 남은 건 비빔냉면뿐이었다. 부하들 중 누군가가 이진영의 물냉을 가로챈 것이다.
그는 세상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비냉을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아니이, 물냉 먹고 싶으면 물냉을 시킬 것이지…….”
앙앙, 그의 발치에서 전상영의 개 프랑소와즈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재롱을 떨었다.
이 영리한 개는 요새 먹을 게 없으면 그의 근처에도 오지 않는다.
“뭐, 임마. 넌 꼭 이럴 때만 친한 척이드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이진영은 양념이 묻지 않은 수육 한 점을 떼서 프랑소와즈에게 줬다.
개가 찹찹거리며 수육을 먹고 이진영도 후루룩거리며 늦은 점심을 냉면으로 해결했다.
그때 윤숙희가 냉면을 들고 와서 쪼록하고 육수를 좀 나눠줬다.
“팀장님 고맙죠?”
“윤 여인 혹시 그대가 내 물냉을 가져간 건 아닌가? 만날 비빔국수만 먹는 그대가 왜 물냉을? 내 과학수사를 해서 반드시 범인을 찾아낼 거이네.”
“예예. 어련하시겠습니까.”
“어허, 어련이라니. 그대의 개김성도 굉장히 발전했구려. 허허. 조직이 사람을 이렇게 만든 것인가? 아니면 그대 같은 강한 여인만 조직에 들어오는 것인가?”
윤숙희는 ‘뭔 개소리냐?’는 표정으로 표정을 찌푸렸다.
직급이 깡패라고 욕이나 안 먹는 게 다행이었다.
이진영은 육수 얼음을 아삭거리면서 물냉인지 비냉인지 모를 걸쭉한 냉면을 후루룩 들이켰다.
형사들이 자주 배달시키는 곳이니만큼 양도 많고 맛도 제법 괜찮았다.
이진영은 냉면을 단숨에 비우고 프랑소와즈를 들고는 일부러 녀석에게 꺼억하고 트림을 했다. 개는 또 좋다고 네 다리로 헤엄치는 시늉을 하며 헥헥댄다.
이진영은 다시 붙인 접의자에 누워 공을 던졌고 개는 좋다고 공을 가지러 달려간다.
늦여름, 날이 너무 더워서 그런지 날씨 탓에 범죄자들도 의욕이 없어진 모양이다.
한동안 러다이트 테러다 인질극이다 뭐다 하며 바빴다가 최근 한 주간은 별다른 사건이 없었다.
덕분에 특별대응팀장도 하릴없이 대기하다가 집으로 가는 평온한 일상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에어컨 없는 중부서에 갇혀 있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이 상황을 중부서 형사들은 ‘불지옥 대기’라고 불렀다.
윤숙희는 냉찜질팩을 정수리에 올리고 열심히 44팀의 영수증을 처리하다 세월아 네월아 하는 이진영을 쏘아봤다.
“이진영 팀장님. 할 것 없으면 영수증 정산이나 도와주세요. 이거 행정 로봇한테 맡겨도 한세월이네요.”
“윤 여인이여. 나는 특별대응팀장일세. 특별특별한 사건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것이 특별특별한 직함이 붙은 나의 업무라네.”
이진영의 근처 책상 위에는 ‘특별대응팀장 경감 이진영’이라는 명패가 올려져 있었다.
저 명패는 윤숙희나 유인환 등 팀원들이 ‘멕일 용도’로 일부러 화려하게 제작해 선물했다.
그러나 명패는 꽤 쓸모가 있었다.
정복을 입지 않는 이진영은 그냥 현장 형사처럼 보였고 종종 사람들은 명패를 보고 나서야 이 사람이 ‘작은 강력부장’이라는 걸 알아챈다.
그런 일을 몇 번 겪고 나서 이진영은 요새 저 삼각명패를 늘 옆구리에 끼고 다닌다.
“하여튼 한량경위 시절보다 더한 한량경감이라니 원. 경찰 상부에서 팀장님 승진시킨 거 아마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을걸요?”
윤숙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사무를 처리했다.
이진영은 한량경위에서 한량경감으로 승진한 셈이었다.
경감급이면 경찰 간부 중에서 가장 바쁜 직종이었지만 그는 강력부장도 아니고 그렇다고 현장 대응팀장도 아니라 붕 뜬 위치였다.
불지옥 대기가 시작된 뒤 그의 주업무는 중부서의 새로운 마스코트 프랑소와즈와 놀아주는 것이었다.
개는 어느새 방울 소리가 나는 공을 물고 와 이진영의 손에 쥐여주었다. 이진영은 다시 흐느적거리면서 공을 던졌다.
딸랑딸랑.
분명 벽에 맞고 바닥에 공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야 했지만, 개가 헥헥대는 소리밖에 안 들린다.
이진영이 눈을 뜨고 공을 던진 방향을 바라보니 낯선 사람이 고무공을 들고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오, 나이스 캐치. 근데…….”
공을 받은 사람은 하얀 해군 정복 차림의 군인이었다.
계급은 소령이고 나이는 30대 초반?
구리빛으로 그을린 피부가 하얀 정복과 대비되어 건강미가 돋보였고 눈썹도 진하고 체형도 호리호리한데다가 이목구비도 연예인 로봇처럼 굉장히 잘생겼다.
“누구…….”
해군 장교는 곧바로 그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이진영 경감님.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예…… 에. 감사합니다만 그런데 누구…….”
이진영은 악수를 하면서도 고개를 갸웃했다.
육군이야 이진영이 육군 중사 출신이기도 하고 태스크포스 13에서 함께한 육군 아저씨들과 이래저래 연락을 주고받는 사람이 생겼지만, 해군에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소령은 이진영이 한 번 만났다면 절대로 까먹지 않을 정도로 잘생겼다.
“어? 혀어엉!”
뜻밖의 곳에서 뜻밖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 더운 날에도 바벨을 들고 체력단련을 하고 있던 유인환이 헐레벌떡 뛰어와서 해군 소령을 콱 끌어안았다.
“형! 어쩐 일이야!”
“형?”
“형이라고?”
유인환을 아는 모든 사람들의 머리에 물음표가 떠오르는 것만 같았다.
소령은 동생이 끌어안고 빙글빙글 돌자 당황해하면서도 씩 미소를 지었다. 구릿빛 피부에 상큼한 미소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특장님! 제 친형이에요.”
이진영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그쪽이 유인환의…….”
“예, 친형입니다. 유인영이라고 합니다.”
유인영 해군 소령은 상큼하게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러니까. 친형? 사촌형이나 동네형 아니고요?”
“예, 인환이 친형 맞습니다. 인이 돌림자에요.”
유인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이진영을 비롯한 44팀, 23팀 사람들이 왜 괴상한 눈으로 보는지 이해 못 하는 것 같았다.
손님이 왔으니 더운 곳에 계속 세워둘 수는 없었다.
이진영과 특별대응팀 팀원들은 유인영을 취조실로 모셨다.
어이없게도 피의자 인권이다 뭐다해서 이곳은 에어컨이 먼저 설치되어 있었다.
유인영은 취조실로 들어오면서 떨떠름한 표정이 되었다.
옆에는 온갖 난민들 잡범이나 기본소득 범죄자들이 취조실에서 심문을 받고 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손님을 더 좋은 방으로 모셔야 하는데 여기 밖에 냉방이 안 돼요. 근데 그…… 소령님이 정말로 인환이의?”
“아, 쫌! 특장님! 몇 번을 말해요! 친형 맞다니까요!”
계속 같은 질문이 반복되자 유인환이 짜증을 냈다.
그러나 이진영이라고 딱히 놀리려고 묻는 게 아니었다.
떡 벌어진 어깨에 근육질 로마병사처럼 생긴 유인환과 호리호리한 체형에 상큼한 미소가 빛나는 유인영은 전혀 형제처럼 보이지 않았다.
“하하, 인환이랑 저 너무 달라 보이죠? 그런 말씀 자주 들어요. 인환이는 어머니 닮았고, 저는 아버지를 닮았거든요.”
유인영 소령의 말은 한층 더 미스테리를 불러일으켰다.
이진영을 비롯한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은 전부 이 형제의 ‘어머니’가 어떻게 생기셨을까 하고 순간 생각했다.
이진영은 돌려서 말했다.
“어릴 때 형님분이나 인환이는 어머님에게는 절대 대들지 못하셨겠군요.”
“어? 그거 어떻게 아셨어요?”
“아…… 예. 뭐 예.”
굉장한 실례가 될 수도 있기에 이진영은 대충 얼버무리고는 딴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근데 유인원, 아니 인환이 보러 여기까지 오신 건 아닐 테고. 아 이순신함에 근무한다고 그러시지 않았나요? 그러고 보니 고비마다 도와주셨는데 감사 인사도 못 드렸네요.”
이진영과 44팀은 내사번호 057399, 장현권 사건에서 해군의 큰 도움을 받았다.
진소홍과 내연관계에 있었던 해군 장교의 심문이나 각종 항해데이터도 해군의 도움으로 입수할 수 있었다.
그 후에도 러다이트 테러리스트의 공격이나 해상강도 사건에서 이진영은 유인환의 친형 유인영의 도움을 받았다.
“별 말씀을. 인환이가 배속된 곳인데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하하, 그럼 이쪽도 보답을 해야겠네요. 마침 난민지구에 새로 생긴 술집이 죽이는 곳이 있습니다.”
유인영은 관자놀이를 검지로 긁으면서 곤란하다는 시늉을 했다.
“제가 기독교인이라 술은 좀…….”
여기저기서 ‘아아’하는 탄식이 새어 나왔고 그중에서도 주당이자 미남자를 좋아하는 윤숙희가 아쉽기 짝이 없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럼. 뭐 좋은 식당 하나 잡죠. 인환이 형님도 오셨겠다 제가 한턱 쏘겠습니다.”
유인영은 계속 관자놀이를 긁었다. 유 소령은 상쾌한 겉모습만큼이나 예의 바르고 좋은 사람이었다.
이진영은 유인영의 모습을 보고 뭔가 용건이 있어 이곳에 왔다는 걸 눈치챘다.
그는 동생이 아니라 특별대응팀장인 이진영을 알아보고 바로 걸어왔었다.
이진영은 뒤늦게 유인영 소령이 항해특기가 아니라는 걸 뱃지와 부대마크를 보고 눈치챘다.
번개표시에 함교 안테나 마스트가 양갹으로 새겨진 특기뱃지. 그리고 정복의 부대마크도 ‘해군 정보사령부’ 마크였다.
이진영은 미소를 지우고 유인영을 바라봤다.
“음. 쓸데없는 사람은 내보내야 할까요?”
“아뇨. 같은 팀 아닌가요?”
“그래도 격이 있는 법이죠. 윤숙희, 유인환 팀장급들만 남고 나머지는 아웃. 패트, 혹시나 공조 기록 필요할 수 있으니 경찰망 연결 후 대기.”
– 이브이 원을 불러올까요?
“어, 대신 좀 불러줘. 그 녀석도 애들이랑 놀아줄라면 빡세긴 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