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291
제291화
육공 상급자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이진영에게 악수를 청했다. 이진영도 아는 사람이다.
“아, 그 성함이…… 죄송. 그때 못 물어본 것 같은데요?”
“하하, 그때는 하도 급박한 상황이라 통성명도 못했네요. 육공 정성화 소령입니다.”
정성화 소령은 피의 밤 때 이진영과 함께 태스크포스 13 대원들을 구하러 같이 들어간 바로 그 구출팀의 책임자였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그 소식 못 들었네. 그때 붙잡힌 친구들 찾으셨나요?”
“예, 운이 좋았어요. 저 이브이 원이 대폭발 쇼를 해주는 바람에 간신히 구출해냈습니다.”
EV-1이 관제하여 인천에 수백 기의 미사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들이꽂혔다.
정 소령은 그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탁일항의 계책으로 태스크포스 13의 꼬리가 밟히고 베이스캠프, 안전가옥이 동시에 털리고 육군 특전단이 웡꺼에게 잡혔었다.
정성화 소령은 특전단 요원들을 구하기 위해 이진영, EV-1과 중간에 헤어졌었다.
그때 감미영 팀장과 함께 있던 윤숙희 등이 웡꺼에 잡힌 게 아닐까 싶어 조마조마했던 걸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했다.
“아무튼, 서서 이야기하긴 그러니 취조실로 모시죠. 아, 오해는 마세요. 거기가 에어컨이 제일 빵빵하거든요.”
“예, 뭐 저희는 손님이니 어디든 상관 없슴다.”
이진영은 삼각명패를 옆구리에 끼고 취조실로 육군공안부 요원들을 안내했다. 정 소령은 꽤나 인망이 두터웠는지 10명의 부하들을 이끌고 취조실로 들어왔다.
이진영은 삼각 명패를 자신의 앞에 턱하니 놓고 손님들더러 앉으라는 시늉을 했다.
“팀장님, 커피요.”
이민영이 쟁반에 커피를 가득 담아서 가져왔다. 육군 요원들은 아이스커피를 나눠 받고 자리에 앉자마자 각종 파일들부터 펼쳤다.
“음, 바쁘신 모양이군요.”
“예, 우리 측 요원이 엽기적인 방법으로 살해당했으니 쓰리스타가 난리에요.”
“쓰리스타면 육군 정보사령관이겠군요.”
“흐흐흐, 그분이 팀장님을 용산으로 끌고 오라는 거 제가 간신히 뜯어말렸습니다.”
이진영도 커피를 홀짝이며 쓴웃음을 지었다.
“저희도 바쁘니 간단하게 정보 공유하죠. 저희는 발바리라는 강간 살해범을 쫓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재밍이 걸렸고 시체를 발견하게 된 겁니다.”
이진영은 EV-1이 살아있는 육공 요원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그냥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솔직히 사실대로 이야기해도 피아식별이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이진영의 조치는 아무 문제 없어 보였다.
“흠. 우리 요원의 피살을 보게 된 게 경찰로서는 우연이라는 건가요?”
“우연이라고 해야 할까요?”
정 소령은 고개를 갸웃했다.
“육공에서 어디까지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 거기에 따라 공유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달라질 겁니다.”
“기브 앤 테이크라는 건가요?”
“장삿속이죠, 뭐.”
정 소령은 잠시 이진영을 쳐다보다 한숨부터 쉬었다.
“좋습니다. 그쪽이 ‘오야’니 이쪽부터 패를 까지요. 살해된 수사관은 일련의 탈영 사건을 쫓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군무이탈 체포조였어요.”
이진영의 눈이 번득였다.
“특수부대원의 탈영이겠지요? 육군 특전단이나 808 같은?”
정 소령과 수행원들은 깜짝 놀란 표정이 되어 서로를 바라봤다.
“어떻게 알았냐고 물으시면 대답해드리는 게 인지상정. 모종의 쏘스로 협력 요청을 받았습니다.”
“흠,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군요. 저희 측에 확인된 것만 세 건의 ‘탈영’이 월미도 인근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전원 모종의 이유로 선발된…….”
“소콤이겠지요? 특수전 통합사령부.”
“오우, 거기까지 알고 계신 겁니까?”
“해군 두 명, 공군 세 명, 육군 세 명. 뭔 월미도에서 정모라도 열린 겁니까? 뭐 이렇게 많이 실종되었어요?”
정 소령의 눈이 빛났다.
“그 친구도 그걸 알아보고 있는 중이었죠. 근데 갑자기 재밍이 걸리면서 상부와 연락이 끊겼어요. 이 팀장님은 범인을 본 유일한 사람입니다. 작은 정보라도 좋아요. 위에다 이야기 할 거리라도 주세요.”
천하의 육공도 이번 사건에서는 전혀 정보가 없었고 정 소령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중부서에 왔다.
그러나 이진영도 부시마스터 주포를 맞고도 움직였던 범인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곤란했다.
특별병과번호?
육군 요원을 살해한 놈이 특별병과번호라는 보장은 없다.
메인 노드허브가 파괴되며 인천 전역에 대한 지배권을 잃었지만, 놈들에게는 아미타여래가 있었다.
놈들은 지금까지 이 아미타여래가 주변을 해킹하며 왜곡 현상을 만들어내면서 잡히지 않았다.
굳이 자신을 쫓아오는 육공 요원들을 죽여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그렇다면 귀타귀 사건을 일으킨 의문의 살인 로봇 내지 엑소슈트?
예리한 뭔가로 목을 자르는 것과 기계 팔로 목을 으스러뜨리는 건 상당한 차이였다. 그러나 이 경우는 심장을 적출해 냈다는 것이 공통점이었다.
또 하나 남은 건 발바리였다.
이쪽은 피해자가 남성이고 발바리 입장에서는 육공요원을 공격할 이유가 ‘오인살해’밖에는 없다.
하지만 오인살해라면 도망치기도 바쁠 텐데 뭐 하러 목과 심장을 적출한단 말인가?
“아직 부검이 진행 중이라 일단 현장 감식 로봇에 의한 초동 검시보고서를 말씀드리죠. 예리한 칼날에 의해 목이 단숨에 잘렸고 심장과 신경계 일부가 외과적 처치에 의해 같이 적출되었습니다.”
“외과적 처치요? 그렇다면 범인은 외과 로봇이라는 건가요?”
“아마도 의사거나 아니면 그런 종류의 처치에 능한 놈들입니다. 그리고 이건 좀 이상한 건데…….”
육공 요원의 시신은 육군에 인계했지만 초동 검시를 한 건 치도리와 돌돌이였다. 치도리는 이상한 초동검시 보고 문항을 집어넣었다.
“프라모델이랍니다.”
“프라모델이요?”
“예, 로봇 프라모델의 목을 뽑아내듯 머리를 적출하고, 경동맥과 심장혈관 일부까지 같이 적출했다고 합니다. 왜 그랬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말이죠.”
치도리는 전문 검시 로봇은 아니었고 그저 이상한 점만 꼼꼼히 기록하고 소견을 남겼을 뿐이다.
EV-1이 이진영을 닮듯 치도리도 박민영의 꼼꼼함을 닮았다.
“이상하군요. 보고서를 보면 EV-1이 주포사격을 개시한 상황에서 그런 짓을 했다고요? 여간 침착한 놈이 아니거나 완전히 맛이 간 놈이군요.”
“예, 그래서 저희도 미스테리 동호회의 셜록홈즈들이 난리도 아닙니다.”
이진영은 취조실 밖을 엄지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다른 형사들이 열 일 제쳐 두고 이 이상한 사건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다.
“흠, 그리고 또 주실 정보는요?”
“저희가 오늘 검거하려고 했던 범인과 수법이 비슷합니다. 심장 적출은 모르겠지만 여자를 강간하고 모가지를 잘라가는 놈이죠. 그리고 사방에 자기 정액을 뿌려두고요. 잡아갈 테면 잡아가라 식이죠.”
3차 봉기 전에도 발바리는 정액을 흩뿌리는 괴상한 행동으로 경찰의 주목을 받았다.
정체를 밝힐 수 없는 높으신 양반의 딸내미에게도 그런 짓을 했으니 경찰이 주목을 안 하는 게 이상했다.
정 소령은 대놓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럼 팀장님은 그 성폭행범 놈이 우리 요원을 죽였다고 보시는 겁니까?”
“뭐라도 물어가셔야 한다고 말씀하시기에 말한 것뿐입니다. 지금으로선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때 박민영이 주저주저하면서 뭔가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지만. 이진영이 슥 옆을 돌아보면서 눈치를 줬다. 정 소령도 눈치가 백단인 사람이었다.
그는 박민영을 힐끔 보고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지금으로서는 그것뿐이라는 거군요. 알겠습니다. 또 오지요.”
“예, 근처에 돼지국밥 잘하는 데 있어요. ‘특별임무팀’ 해단식도 못 했는데. 다음에 오시면 제가 한 잔 사죠.”
“하하,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요.”
정 소령은 이진영과 악수를 했고 그가 턱을 살짝 들자 육공 요원들이 우르르 일어섰다.
군기가 빠질대로 빠진 중부서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아, 정 소령님. 하나만 더 물어봐도 될까요?”
정 소령은 정모를 쓰면서 손을 들어 말하라는 시늉을 했다.
“어제 난민지구에 들어간 탈영병 체포조가 있나요?”
정 소령은 핸드폰을 꺼내 뭔가를 검색하더니 바로 잘라 말했다.
“없습니다. 현재 육군 헌병대 체포조는 육공에 모두 보고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육군이나 해공군 아저씨들이 신난민방벽 안으로 들어간 적은요?”
정 소령은 별소리를 다 듣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어떤 군의 장병도, 심지어 미군이라 할지라도 난민방벽 철조망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진영은 흐음하고 뜸을 들이다 말했다.
“현장에서 육군으로 추정되는 특수부대원 한 명이 실종된 정황이 있습니다. 그리고 의문의 체포조가 실종자와 교전한 흔적이 있습니다. 자세한 자료는 공유하겠습니다.”
“특수부대원이라. 설마 비등록 난민지구에서 실종되었다고 보시는 겁니까?”
“그쪽이 제일 가망성 있어요.”
“후후후, 이 집은 손님 대접이 기묘하네요. 다 끝나고 일어나려는 데 가장 맛있는 걸 주시다니요?”
정 소령은 장난스럽게 거수경례를 하고 문밖으로 나갔다.
정 소령은 초동 검시보고서와 발바리에 대한 정보만으로 물러섰다.
그는 육공 놈들 중에서도 상식적인 인간이었고 이진영의 심기를 거슬러봤자 국물도 안 나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육공 요원들이 되돌아간 후 이진영은 바로 담배부터 물었다.
“팀장님. 그…….”
“박민영, 사람 좋아 보여도 저 정 소령도 육공이야. 절대로 방심하면 안 돼. 그리고 어차피 정보력은 우리 집이 최고거든. 정보가 아쉬운 건 정보국이나 육공이야.”
이진영은 잘라 말하고는 박민영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애기아빠는 이만 퇴근하셔. 귀타귀고 뭐고 다 내려놓고 가정에만 충실해.”
“팀장님에게 들으니 전혀 설득력이 없군요.”
이진영은 으윽하는 소리를 내며 가슴을 틀어쥐며 익살을 떨었다.
박민영은 귀타귀 사건 서류와 오늘 보고서를 파일에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진영이 말했다.
“박민영,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야. 사건에 매몰되면 진상이 보이지 않아. 퇴근할 때는 다 잊고 마누라 타박이라도 안 받을라면 치킨이라도 사가.”
이진영은 5만 원 짜리 두 장을 박민영에게 내밀었다.
“치킨값치곤 많은데요?”
“그럼 애기 이유식 값에 보태. 싫음 관두등가.”
박민영은 냉큼 5만 원짜리를 낚아채고 빙긋 미소를 지었다.
이진영은 취조실에 홀로 남아 덩그라니 남겨진 명패를 볼펜으로 두드렸다.
그는 박민영을 보면 자꾸 김상현이 떠올랐다. 김상현은 중부서에서 몇 안 되는 기혼자였고 행복한 가정을 꾸렸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김상현의 와이프는 스트레스를 풀려고 쇼핑중독에 빠졌고 김상현은 이혼을 막기 위해 웡꺼의 돈을 받았다. 이진영은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
난민들을 챙겨주고 살갑게 지내면서도 부사수인 김상현의 가족은 어떻게 지내는지 전혀 신경 쓰지 못했다.
이진영은 아직도 김상현이 이세화에게 총구를 돌리는 그 끔찍한 장면을 잊을 수 없었다.
최근 인천 중부서에 전출 온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박민영을 특별히 더 챙겨주는 건 김상현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는 노력이었다.
이진영은 볼펜으로 드럼치듯 자신의 명패를 두드리다가 명패를 옆에 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 지금쯤이면 검시보고서도 올라왔을 테고…… 램프의 지니에게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