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294
제294화
“뇌를 넷상에 백업하는 전뇌화 프로젝트의 일환이죠. 각종 핸드폰 케이블처럼 하나의 단일한 신체 프레임 있다면…….”
“아, 아선이나 제너럴 에어로믹스 같은 로봇 프레임 제조사들도 통합규격에 맞춰서 제조하며 단가를 낮출 수 있으니까.”
도은주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다.
“하지만 유니버설 프레임은 아직 시험단계에요. 승아 때문에 알고 있겠지만 환자의 신체에 맞춰 세심하게 커스텀된 의족을 연결해도 괴사증이 발생하지 않으려면 꽤나 신경을 써야 하거든요. 고작 의수나 의족도 그런데 전신 사이보그면 아마…….”
한승아의 보호자인 이진영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사이보그 기술은 인간의 생명을 연장시킬 인간 버전 2.0이라며 꿈의 기술인 것처럼 보이지만 생각하지 못한 복병을 만났다.
“그래서 인공지능 OS를 도입하는 거죠. 신경을 제어할 수 있게 도와주기 위해 말이죠. 아무리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유니버설 프레임이 있다고 하더라도 신경괴사증을 제어하려면 막대한 리소스와 OS가 필요할 거예요.”
리소스, OS.
그 대목에서 이진영의 눈이 번득였다.
“그걸 순식간에 제어할 수 있다면요?”
도은주는 이진영의 확신에 찬 얼굴을 보고 눈썹을 찡그렸다.
“그게, 제어가 가능하다고요? 병원의 인공지능들도 리소스 부족으로 애를 먹는 판에요?”
“후후, 당신도 어마어마한 제어성능을 가진 OS를 직접 봤잖아요?”
“제가요?”
도은주는 점점 더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아무튼 고마워요.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이진영은 도은주의 이마에 뽀뽀를 하고는 ‘여어’하는 인사를 남겼다.
“은주 씨. 프렌치 레스토랑은 내가 알아보는 걸로요!”
도은주는 얼굴이 빨갛게 되어 근처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으, 은주라고 불렀어. 으아아아.”
더 중요한 걸 생각했어야 하는데 도은주는 거기서 모든 생각이 멈춰버렸다.
한편 이진영은 이진영대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적어도 이유 한 가지는 찾아냈다.
“아미타여래라면 그녀가 말한 대로 뇌와 인공신체 간의 괴리감을 해소할 수 있을 거야. 그래, 놈들이 사이보그인데도 신체 괴사증이 없었던 건 그 때문이었군. 근데 그게 놈들이 맞다고 쳐도 왜지? 왜 새로운 뇌와 심장이 필요한 걸까?”
이진영은 문득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의 머릿속에서 어린아이들 학습지 같은 광경이 펼쳐졌다.
사과하면 연관된 단어인 빨간색으로 줄을 좍 긋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새로운 뇌’에서 줄이 뻗어나가 또 다른 단어로 연결되었다.
“특수부대원.”
이진영은 그 단어를 자기 입으로 말하고 온몸에 소름이 좍 돋았다.
새로운 뇌.
즉석에서 한 사이보그 수술.
유니버설 프레임.
막대한 리소스를 가지고 있는 아미타여래.
그리고 ‘적합한 지원자.’
이진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그건 또 그게 설명되지 않아. 놈은 왜 전직의원 따위를 노린 거지?”
같은 방식으로 심장을 적출당하고 목이 잘린 시체들은 인천지역 외에도 또 있었고 이진영의 추리는 또 벽에 부딪혔다.
당장 무슨 의원나리와 현직 육군 장교가 죽지 않았다면 이민호가 새벽부터 중부서에 올 이유가 없었다.
“꼭 이런 식이란 말이지 술술 풀다가 다시 멋대로 엉켜버리니 말이야.”
아직은 뭐하나 뚜렷한 증거가 없었다.
EV-1의 말대로 목을 자른 사건이 전부 다 개별적인 사건일 수도 있고 통합된 하나의 사건일 수도 있었다.
또한 특별병과번호가 개입되었다는 것 자체가 억측일 수도 있었다. 모든 것은 이 새벽 안갯속처럼 희뿌연 오리무중 속이었다.
* * *
이진영은 이번엔 버스를 타고 중부서로 되돌아왔다.
버스에 탄 사람들이 이진영을 보고 힐끔거렸지만 그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예전 천도영 사건처럼 본청주도의 수사본부가 설치되고 중부서는 인천 함락 이래 처음으로 높으신 양반들이 많이 들락날락거렸다.
이진영은 어제 저녁과도 사뭇 다르게 돌아가는 강력부 행어를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아니, 이름이 저게 뭐래? 수급절취 연쇄살인사건? 누가 보면 모가지가 영화 티켓인줄 알겠네. 한자가 저게 뭐야?”
이진영은 궁서체로 수급절취(首級切取)라 쓰인 종이를 바라보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하여튼 사람들 억지로 한자어 만들기 좋아한다니까? 그 시간에 차라리 딴 걸 하지.”
강력부장은 수건을 목에 걸고 세월아 네월아 하는 이진영에게 호통을 쳤다.
“이진영이! 너 임마 아침부터 어디 갔다 오는 거야! 어제 잠복 실패랑 각종 사건들 니가 브리핑해야 할 걸 내가 하고 있잖아!”
오히려 바빠진 건 강력부장이었다. 서장은 취임한 지 얼마 안 된 터라 중부서 현장 일을 잘 몰랐고 중부서의 터줏대감인 강력부장이 브리핑을 도맡아 했다.
이진영은 서류파일을 양옆에 끼고 있는 강력부장을 보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조깅이요.”
“조기이잉? 니가 언제부터 조깅을 했다고?”
강력부장이 이진영의 머리 냄새를 킁킁 맡았다.
“그리고 머리 좀 감아라! 아니다. 으아악 냄새. 그냥 모자를 벗지 마. 빨리 가서 머리 좀 감고 와. 너도 이젠 어엿한 간부잖아?”
이진영이 모자를 고쳐 쓰자 또 타박이었다. 이진영은 듣는 듯 마는 둥 접의자로 되돌아왔다.
안개가 끼나 싶더니 오전부터 강력부 행어가 후끈거렸다.
에어컨은 여전히 가동되지 않았고 사람도 많다 보니 수증기가 모여 넓은 행어 위에 구름처럼 떠 있었다.
“팀장님! 어제 사건 보고서 결재! 패트한테 넘겼어요! 위층에서 빨리 달래요!”
“알았네, 윤 여인. 결재하지.”
특별대응팀은 강력전담부 일에서 각종 행정처리를 쏙 뺀 형태였다.
이진영의 발치에는 어느새 프랑소와즈의 방울공이 굴러와 있었고 이진영은 의자에 눕듯이 삐딱하게 앉아 벽에 공을 던졌다.
개는 꼬리를 흔들며 좋다고 난리였다.
“프랑소와즈 여기서 너랑 나만 태평한 것 같구나.”
바쁜 건 ‘수급절취 연쇄살인범 수사대책본부’라는 긴 이름을 가진 본부 구성원뿐만이 아니었다.
입구 쪽에서는 다른 방송국과 경찰 24시 제작진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먼저 찜했다니까요! 보도 허가도 사전에 받았고! 우리가 먼저예요!”
– 아니! 그런 게 어딨어요! 우리도 취재해야 한단 말이에요!
김수경과 경찰 24시 제작진은 모처럼 만에 잡은 특종을 놓칠 수야 없었다.
그들은 스크럼을 짜고 다른 방송국 로봇이나 기자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
일반 기자 로봇들은 인간을 밀어 넘어뜨릴 수 없었다.
결국 경찰 로봇이 개입되어 김수경과 경찰 24시 일부 제작 로봇을 제외하고는 전부 바깥으로 내쫓았다.
문이 닫히자 강력부 행어는 더욱더 더웠다.
이진영은 소란이 벌어지거나 말거나 벽에 공을 튀기고 있었고 김수경이 냉큼 달려왔다.
“경감님. 어제 사건에 대해 여쭤봐도 될까요?”
“아뇨, 안 돼요오오. 바빠요오오.”
“예? 아니 개랑 노시면서.”
“다, 수사하고 있는 중이랍니다아. 일하고 있어요오.”
프랑소와즈가 딸랑딸랑 방울공을 물고 오고 김수경에게도 헥헥댔다. 그녀는 ‘아이구우우’를 연발하며 프랑소와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지조 없는 녀석. 쳇.”
김수경은 프랑소와즈를 끌어안고 개발로 마이크를 들이대듯 이진영을 가리켰다.
“자, 이젠 인터뷰 좀 하실 수 있겠죠?”
“노코멘트.”
“아, 왜요오오.”
“수사 중에는 노코멘트입니다.”
“지금 수사 중이라고요? 아무리 봐도 개랑 노는 것 같은데요?”
“원래 안락의자 탐정은 원래 이런 겁니다. 모든 탐정과 형사들이 꿈꾸는 최고의 꽃놀이패죠.”
이진영은 방울공을 던졌고 프랑소와즈가 김수경에게 안긴 채 다리를 발발발 흔들었다.
김수경은 미심쩍은 눈으로 이진영을 바라봤다. 그때 11팀 형사 이시영이 이진영의 옆 접의자에 앉았다.
“팀장님 말씀하신 거 육공과 헌병대 쪽에 조사해봤습니다. 헌병도 자신들을 사칭하는 체포조가 돌아다니는 거 알고 있다더군요.”
“목격된 장소는?”
“뻔하죠. 중화대루 일대입니다. 빌어먹을 우리 관할이에요. 어떤 놈들인지 우리 관할에서 버젓이 헌병대 행세를 하며 사람들을 납치하고 있는 겁니다.”
이진영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육공 말고 헌병대 쪽에는…….”
“예, 우리도 그 체포조 놈들 발견하면 알려주는 대신 그쪽도 발견하면 알려주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북부서에는…….
“그것도 알아봤습니다. 참수된 피해자 동종사건 취합해서 11, 14 팀장님한테 보내라고 했습니다.”
“오케이 수고했어. 시영이. 내 캐비넷에서 스니커즈나 츄파츕스 꺼내먹어도 좋아.”
이시영은 장난스럽게 경례를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김수경은 프랑소와즈를 안은 채로 다시 이진영에게 뭔가를 물으려 했다.
또 바로 다른 수사관이 이진영의 옆에 앉았다.
“중화대루 테러 사건 증거입니다. 전상영 선배님이 플렉스 폭탄에 사용된 리모콘을 발견했습니다. 나름 세제 통에 넣어 부식액으로 처리한다고 했는데 기판 일부에 지문이 있더군요.”
“그래서?”
“지문감식 결과 서울대 점거 용의자 중 한 명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이미 수배된 놈이고 인간해방전선 밀봉교육을 받았다고 과 동기가 증언한 놈입니다.”
“인간해방전선이랑 엮을 수 있겠군.”
“인간해방전선은 일괄처리해서 본청 공안이나 특경 관할이잖아요? 본청 공안으로 넘길까요?”
“어, 인환이 녀석 죽을라고 하던데 수고는 덜어줘야지. 아 그리고 공안 1부가 아니라 2부로 넘겨. 1부가 여기 오면서 아마 관할이 바뀌었을 거야.”
“예, 알겠습니다.”
수사관이 자리에서 일어서면 또 다른 수사관이 이진영의 옆에 앉았다.
그냥 노는 것처럼 보였지만 수사관들은 이진영이 지휘하는 모든 사건의 브리핑과 수사보고를 직접 했다.
때론 팀장급이 그의 곁에 앉아있기도 했고 때론 박민영 같은 현장수사관이 직접 보고하기도 했다.
형사들은 둥그렇게 배치되어 있는 접의자를 ‘나이츠 오브 라운드’ 즉 기사의 원탁 혹은 카멜롯이라고 부르곤 했다.
이진영이 특별대응팀장을 맡으면서 새로 도입한 방식이었다.
지금까지는 강력부장까지 수직적으로 쭉 보고가 올라가면서 사건을 결재 맡는 방식이었다면, 이건 원탁이 상징하듯 작은 강력부장인 이진영이 현장팀원들과 직접 소통하면서 유기적으로 사건을 지휘했다.
그만큼 사건처리는 유기적이고 보고와 조치 또한 굉장히 빨랐다.
또한 이진영은 이 원탁에 앉아 형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끔 별개의 사건처럼 보이는 사건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아내기도 했다.
김수경은 프랑소와즈를 안은 채 이진영이 사건을 처리하고 지시하는 걸 뚫어지게 바라봤다.
이진영은 별다른 브리핑 없이도 특별대응팀에 소속된 팀이나 지원이 필요한 건들을 척척 처리했다. 정말로 안락의자탐정 노릇이 따로 없었다.
이진영은 인사권과 행정명령권만 없을 뿐 강력부 전체의 지휘자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팀장급에게 보고할 사건은 바로 팀장급에게 반려하거나 상부에 보고해야 할 사항은 부장에게 직접 보고하면서 권한을 침범하지 않았다.
형사들이 우르르 왔다가 우르르 사라지고 이진영은 다시 접의자에 축 늘어져서 공을 던졌다. 김수경은 그저 입만 떡 벌리고 이진영의 깔끔한 일처리에 감탄했다.
“티, 팀장님. 이거 찍으면…….”
“안 됩니다. 당연히. 수사비밀이에요우. 범인들이 들으면 좋다고 그러겠죠?”
이진영은 한가롭게 공을 튕기면서도 오직 한 가지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발밑에는 비슷한 방식으로 죽은 사람들의 사진이 좍 널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