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s RAW novel - Chapter 295
제295화
목을 자르고 심장을 적출한 시체.
북부서에도 세 건이나 보고되었고 부평경찰서나 부천서에도 비슷한 사건이 총 5건이나 보고되었다.
각각 담당형사들은 연쇄살인에 방점을 두고 수사본부에 모든 자료를 넘겼다.
피해자들의 신원도 매춘부에서 일반회사원에 만화가도 있었고 제각각이었고 EV-1이 지적했듯이 수법도 미묘하게 달랐다.
심장이냐. 머리냐? 때론 이진영이 목격한 사건처럼 외과적 처치 수술처럼 정교하게 목을 떼어간 것도 있는가 하면 어떤 것은 그냥 힘으로 목뼈를 으스러뜨린 사건도 있다.
“이러니, 저 위쪽에서 난리로군. 뭐 이리 목이 잘린 시체들이 많아.”
각 지서에 있던 자료들이 취합되면서 모아놓고 보니 수급절취 살인사건은 한두 건이 아니었고 지역도 서울, 경기 가리지 않았다.
사실 이 사건 관할은 이민호가 지휘하는 수급철취수사본부에 있었고 이진영이 굳이 끼어들지 않아도 되는 사건이었다.
아니 관할로 따지면 본청 수사본부가 모든 사건을 지휘하고 있기 때문에, 이진영의 독자 수사는 여러모로 문제 소지가 될 터였다.
하지만 어제 그 이상한 범인을 본 이후 이진영은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그는 일단 서울시경 자료까지 참수 사건 서류를 바닥에 늘어놓고 사건들이 보고된 날짜들을 유심히 노려봤다.
“가장 첫 사건은 캐논볼 레이스 이후로군. 캐논볼 레이스라…….”
“무슨 사건이요?”
“아이, 깜짝이야. 아직도 안 갔어요?”
이진영은 뚱한 얼굴로 김수경을 바라봤다. 그녀는 수첩을 꺼내서 뭔가를 적으며 눈을 반짝거리고 있었다. 이…….
진영은 힐끔 그녀의 수첩을 훔쳐봤지만, 그녀는 잽싸게 수첩을 가렸다.
“그…… 비밀 유출하려는 건 아니에요. 꿈이 소설가예요.”
“아. 그래요?”
이진영은 짧게 대답했다. 그는 약간 흥미가 생기긴 했지만 귀찮은 일에 엮이는 건 질색이었다.
“팀장님을 주인공으로…….”
“안 돼요. 노우, 오 갓. 노우 플리이즈.”
이진영은 질색팔색했다. 지금도 경찰 24시 때문에 피해가 이만저만 아니었다. 소설까지 나오면 그 뒤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진영은 공을 벽에 튀기면서 천장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아직도 그의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키워드들이 얽혀서 뭐 하나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았다.
그는 행어 위쪽에서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수급절취 수사본부 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민호 국장이 주관하는 수사대책본부 회의가 열렸다. 이진영과 강력전담부장은 지서 담당자의 자격으로 참석했다.
회의내용은 지지부진했다.
안보수사국은 각지에서 벌어진 수많은 사건들을 구룡의 눈 계획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특히 죽었다는 전직 국회의원의 사건에 대해 브리핑하며 이것은 국가에 대한 테러라는 말로 회의 결론이 나버렸다.
이진영은 잠자코 회의내용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사 방향에 대해 ‘테러’로 미리 결론을 낸 것치고는 본청 공안부의 브리핑은 깔끔했고, 이진영은 다른 지역에서 벌어진 또 다른 참수살인 정보를 볼 수 있었다.
인천에서만 12건, 부천에서 7건,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 일대에서 2건.
딱 봐도 참수살인은 서울 서부와 인천, 경기도 일대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특히 인천시는 어제 벌어진 육공 요원 피살사건까지 더해 12건이었고 압도적으로 많았다.
안보수사국이 중부서에 수사본부를 차린 것도 인천 중부서 관할 사건이 많았고 무엇보다 월미도 조폭 잔당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아무래도 이미 수사 방향이 결정 난 거다 보니 어떻게 수사할지도 정해져 있었다.
회의가 끝나고 이진영은 화이트보드를 바라보며 이민호에게 말했다.
“제정신인가요? 이대로 쳐들어갔다간 육군 친구들뿐만 아니라 우리 식구들도 많이 죽어요.”
“어쩔 수 없잖아?”
이민호도 담배를 입에 물면서 한숨부터 쉬었다.
“경찰청 전체가 인수위 눈치를 보고 있어. 서가영 대통령 당선인께서 사건 보고를 받고 심기가 많이 불편하신 모양이다.”
“하긴, 암살을 당해 디질 뻔했으니 이해는 한다쳐요. 근데 굴다리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서 뜬금없이 배덕환이나 탁일항, 혹은 조직원들을 잡아 오라니?”
“까라면 까야 하지 않겠냐? 너희 중부서 아이들도 길잡이로 또 차출해야 할 것 같은데?”
“제기랄, 하여튼 본청에서는 뭔 일만 났다 하면 중부서를 가지고 그런다니까?”
화이트보드에는 월미도 조폭 조직의 잔당들의 사진과 몽타주가 붙어 있었다.
경찰은 전향한 난민조 폭들을 이용하여 이들의 얼굴과 특징 등을 가능한 한 자세히 확보해놨다.
“국장님, 이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또 뭐가.”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범인은 이놈들이 아니에요. 뭐, 이놈들도 궁극적으로 다 잡아들여야 할 놈들은 맞긴 한데, 우선순위를 생각해야죠.”
이민호는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끄고 말했다.
“이진영이, 너 뭔가 알고 있냐?”
“일단 이 사건을 보세요. 이거하고 이거는 순서가 달라요. 먼저 심장을 꺼내고 그 다음에 목을 잘랐습니다. 근데 이건 먼저 목을 절개한 후 척추와 신경을 들어내고 심장을 최종적으로 절개했죠.”
“그게 무슨 차인데?”
“하나는 완벽한 죽음을 선고하고 하늘의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의식에 가깝고, 또 하나는 전신 의체화 사이보그 수술에 가까워요.”
“뭐야, 범인이 두 명이라는 거야?”
“최소요.”
“최소?”
“예, 발바리 사건도 있어요. 현재 44팀에 배당된 사건인데…….”
“아, 그건 나도 알아. 판사 양반 딸이 강간당하고 죽었지. 근데 그게 왜?”
“그놈도 최근 범죄 양상이 목을 자르고 정액을 흩뿌리는 것으로 바뀌었어요.”
“모방범죄라는 건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세 개의 다른 사건이 존재한다고 보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일괄적으로 수급절취라고 통합해서 수사할 게 아니에요. 그리고 이걸 월미도 조폭의 짓이라고 여기는 건 더 어이없죠.”
이민호는 탁자를 손가락으로 탁탁 두들기다 말했다.
“몇 시간 주면 되냐?”
“이틀이요. 그전까지만 병력투입 막아주실 수 있어요? 아무리 봐도 이건 뻘짓이라니까요?”
이진영은 탁일항등의 이름이 남은 화이트보드를 턱으로 가리켰다.
“이틀. 빡센데. 네 잘 쌩긴 친구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또 너구리굴 인맥입니까? 근데 그 친구 본 지 한 달이 넘었지 말입니다? 전화로 수석이 되었다는 소식은 들었어요. 아무튼 그것도 알아볼게요.”
이민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잘라 말했다.
“그럼 대책본부랑 서장님은 내가 맡을테니, 넌 대응팀 돌려서 증거를 물어와. 빠를수록 좋아.”
“예, 알겠사옵니다.”
이진영은 말년병장처럼 경례를 붙였다.
“그리고 혹시 국장님. 제 담배 한 갑 가져가셨어요?”
“야, 내가 니 담배가 어딨는 줄 알고?”
“아, 이상하네. 새로 한 보루 샀는데 한 갑이 빈단 말이에요. 중부서에 도동놈이 있는 건가.”
이진영은 고개를 갸웃하며 회의실을 나왔다.
행어로 내려오자마자 다른 형사들이 회의내용을 듣기 위해 또다시 이진영에게 모여들었다.
“뭐래요?”
“이틀.”
“이틀이요?”
이진영은 뜬금없이 그렇게 대답하고는 박수를 쳐서 주요 대응팀 팀장과 팀원들을 불러 모았다.
“상부에서는 탁일항과 배덕환이를 잡으러 월미도로 당장이라도 쳐들어갈 기세야.”
“예? 굴다리 안쪽으로 들어간다고요?”
“시간은 이틀. 다들 굴다리 들어가서 웡꺼의 잔당 놈들과 싸우고 싶지 않다면 뭐라도 찾아내야 해.”
윤숙희를 비롯해 굴다리의 악몽을 겪은 사람들은 모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경찰 24시의 애청자였던 임은혜도 웡꺼 놈들이 노란 물결처럼 들이닥치는 걸 보고 질려서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였다.
중부서 형사들이라면 굴다리는 금기어 중에 금기어였다.
“팀장님, 우리는 대체 뭘 쫓으면 되는 거죠?”
이진영은 ‘다 잘해라’라는 모호한 말 따위는 하지 않았다.
“11팀, 2팀은 바쁜 거 알지만 너희들은 육공 요원 공격사건을 쫓는다. 44팀은 발바리 사건. 알겠지? 12팀. 어딨어? 어, 너네들이 44팀 도와주고. 23팀과 17팀은 귀타귀 사건을 쫓는다.”
이진영은 최소 각각다른 세 개의 사건을 다른 팀에게 배정했다.
“먼저 2팀, 11팀 어제 그 사건. 육공 요원이 공격당했다. 그리고 메모리얼 병원의 말로는 사이보그 적출수술에 가깝다고 했어. 그쪽으로 알아보고. 뉴 희망빌라 여자 신원은 어떻게 되었지?”
윤숙희가 말했다.
“여자 신원은 진미향. 난민이고 현재 27세에요. 윤락녀로 3년 전부터 활동했다고 하더군요. 전쟁고아고 가족관계나 남자친구는 딱히 없습니다. 원한 관계도 없고요. 아, 그리고 살해에 사용된 총기는 EBR-14E에요.”
“그 저격총 유난히 나랑 악연이 많구만. 탄자에 남겨진 흔적을 감식해서 알아봐. 의외의 소득이 나올수도 있어. 그리고 윤숙희, 발바리 그놈 분명 다시 사고를 칠 거야. 그러니 그 전에 잡아야 해. 정액 DNA는 아직 매칭이 안 되는 거야?”
“예, 난민으로 추정됩니다.”
“하긴, 난민은 DNA 등록이 안 되어 있으니. 오케이, 12팀, 축구장 사건으로 바쁜 건 알지만 44팀 도와줘.”
“팀장님, 정확히 뭘 쫓으면 되지요?”
“놈이 난민이라면 그 아랫도리를 방벽 붕괴 전에는 가만히 놔뒀을까?”
“아, 그렇군요. 난민들 사이에서도 피해가 있었을 수도 있겠네요. 왜 그걸 생각 못 했지?”
“나도 오늘 아침에야 떠오른 거야. 난민대표부에 가서 그 이전 성폭행 피해 기록 같은 거 조사해봐. 아마 피해자가 한둘이 아니었을걸?”
이진영은 세세하게 지시하며 전체적인 수사상황을 조율했다.
그리고 귀타귀 사건을 이야기하려고 할 때 박민영이 손을 들었다.
“팀장님, 이건 제가 신고를 받은 사건이기도 하고 제가 맡으면 안 될까요?”
“너는……. 음. 알았어. 네가 조사한 정보가 제일 많을 테니. 그럼 유인환 그리고 17팀장 니들은 박민영이 하는 조사를 지원하는 형태로 수사 진행해. 제일 먼저 쳐야 할 곳은 마이크로웍스야.”
또다시 박민영이 말했다.
“이미 마이크로웍스에 왜 개발부장이 거기 있었는지 물어봤지만, 답변을 거부당했습니다.”
“기업 비밀이라는 건가? 그쪽이라면 나도 인맥은 있어. 내가 직접 물어볼게. 그러면 귀타귀 팀은 현장 탐문조사 및 감식 다시 한번 봐봐.”
수사 지시를 마친 이진영은 다시 박수를 쳐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시간은 이틀이야. 다들 개처럼 기어보자고. 안 그러면 굴다리로 들어가서 웡꺼의 잔당과 싸우게 될 판이다. 자, 나가자! 이기자! 엘지 트윈스!”
여기저기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형사들은 씩 웃으면서 이진영이 지시한 대로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서서 바깥으로 나갔다. 이제는 정말 개처럼 돌아다니며 증거 하나라도 찾아내야 할 판이었다.
그러나 이진영은 다시 한껏 군기 빠진 자세로 되돌아가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는 주머니에서 방울공을 꺼내서 툭툭 튀겼다.
“저, 팀장.”
이번에도 프랑소와즈의 움직임으로 뒤에 전상영이 있다는 걸 알아챘다.
“예, 선배. 선배는…… 아, 선배 혹시 그 이상한 체포조 놈들 쫓아보실래요?”
“음…… 알았어.”
“아, 조심하세요. 그놈들 육군이 있는 곳에서 버젓이 사람 납치하고 돌아다니는 놈들이에요.”
전상영은 그저 엄지손가락만 척하고 치켜세웠다.
도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건지 의미불명이었지만 적어도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전상영이 스르륵 공기 속에 녹아들 듯 행어 바깥으로 나가고 나서 이진영은 다시 프랑소와즈랑 놀아주었다.